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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4751

    與門中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門中의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로, 五代祖의 祠版을 매장하는데 대한 입장을 밝힌 내용이다. 庶孼이 가문을 이을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지금은 관련이 없지만 앞선 세대에서 잘못된 점이 있으면 자손의 입장으로서는 고쳐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을 전제로 했다. 지금의 관행은
    출처 : 유교넷
  • 354752

    湖上拜門錄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1781년(정조 5) 蘇湖의 大山 李象靖을 처음 찾아가 배움을 청하면서 나눈 대화내용을 기록한 일기이다. 10월 27일 26일 처음 방문하여 대산선생께 인사를 드리고 金圾·李鼎會·南漢松과 村家에서 숙식한 다음날 찾아가 初學의 공부 방법에 대해 질의했다. 立志를
    출처 : 유교넷
  • 354753

    國恤中私家練祥議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國喪의 卒哭 전에 士大夫家에서 除喪을 할 수 없다는 國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내용이다. 영조 33년(1757) 『續大典』 편집을 담당한 堂上들의 건의로 國恤을 당했을 때 卒哭 이전에 私家에서는 練祥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정해져 법전에 수록되었는데, 이는
    출처 : 유교넷
  • 354754

    己亥議禮辨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1659년 孝宗이 사망했을 때 母后인 趙大妃의 服喪기간에 대해 宋時烈이 『儀禮通解疏』를 근거로 ‘體而不正’說을 제기하여 朞年服으로 확정하도록 한데 대한 모순을 지적한 내용이다. 효종은 仁祖의 長子인 昭顯世子가 일찍 사망함에 따라 그의 母弟로서 大統을 계승했기 때문에
    출처 : 유교넷
  • 354755

    寧海冥棲菴節目(幷序)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1801년(순조 1) 寧海府使에 부임하여 存齋 李徽逸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그가 講道하며 倡學했던 冥棲菴에서 향촌 사림들과 함께 정한 節目이다. 향촌의 사대부들 사이에 尙儉·好禮·誦詩·讀書의 풍조가 남아있는 것은 存齋의 가르침에 기인하는 것으로 師表가 되는 그의 정
    출처 : 유교넷
  • 354756

    恬養說贈權公弼(象度) 3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눈이 멀어 세상을 볼 수 없으면서도 마음의 눈을 뜨고 사는 權象度에게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지어준 글이다. 그는 젊어서부터 기이한 氣像을 갖고 있으면서 高談大論으로 촉망받는 인물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적지 않은 기대를 모았으나, 끝내 가난에 찌들려 늙어가면서 눈마저 병
    출처 : 유교넷
  • 354757

    約說 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孔子가 “約으로 잃는 것은 적다”고 한 것을 토대로 約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사치로 인해 잃는 것이 없는 儉約, 분산되고 치우칠 우려가 없는 謹約, 고쳐서 깨끗하게 하는 방법을 아는 恬約, 상세하고 긴밀한 방법을 아는 精約의 4가지가 가장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출처 : 유교넷
  • 354758

    金剛遊山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자신의 나이 12, 13세 때 山寺에서 독서를 하고 있는데 한 노인이 와서 金剛山의 形勝을 상세하게 설명해준 적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한 번 유람을 해보려는 생각이 있었지만 전혀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1819년(순조 19) 6월 永興府使에 제수되었는데,
    출처 : 유교넷
  • 354759

    慵齋集序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金宗直의 문인으로 戊午士禍 때 被禍된 慵齋 李宗準(? ~1498)의 문집 序文이다. 그의 후손 李昌郁의 부탁으로 쓴 것으로, 문집 후반부에는 이종준의 동생 訥齋 李弘準(1482~1523)의 遺稿가 함께 실려 있다. 용재는 節義로 文章을 만들어 그 질박함이 감추어져 있
    출처 : 유교넷
  • 354760

    芙蓉堂文集序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壬辰倭亂 당시 義兵將으로 활약한 芙蓉堂 成安義(1561~1629)의 문집 서문이다. 寒岡의 문인으로 月川 趙穆, 愚伏 鄭經世, 桐溪 鄭蘊, 蒼石 李浚, 沙西 全湜 등과 폭넓게 교유했다. 公綽의 德과 管仲의 才를 겸비했을 뿐만 아니라, 誠實과 敦厚함으로 體·用도 겸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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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61

    永陽四難倡義錄序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永川의 士林들이 1592년(선조 25) 壬辰倭亂 당시 의병을 일으켰던 湖叟 鄭世雅(1535~1612), 1627년(인조 5) 丁卯胡亂 당시 勤王을 위해 창의했던 孫瀣, 1636년(인조 14) 丙子胡亂 당시 의병을 일으켰던 暘溪 鄭好仁(1554~1624), 172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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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62

    鄕飮酒禮序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安東府使 蓉西 尹魯東(1753~ ?)이 정한 鄕飮酒禮의 節目에 붙인 序文이다. 중국 唐代 開元年間 宣州刺史 裵耀卿이 매년 鄕飮酒禮를 행할 것을 조정에 청한 이래 그것이 『宋史集禮』 『大明會典』 등에 수록된 것을 발판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역대 임금들이 五禮儀 등을 정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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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63

    紹修書院影幀改摹日記序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紹修書院에 봉안된 晦軒 安珦(1243~1306)과 愼齋 周世鵬(1495~1554)의 影幀을 모사할 당시의 일기를 기록하면서 지은 序文이다. 5백여 년 전 안향의 영정을 중국에서 모사해 왔으나 종이가 파열되는 등 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위험이 있어 추진했음을 밝히
    출처 : 유교넷
  • 354764

    羽溪李氏族譜序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羽溪 李氏의 族譜를 편찬할 당시 지은 序文으로, 李達植의 부탁으로 쓴 것이다. 功業과 德行, 文章으로 이름 높은 인물을 배출한 가문이라 칭송하면서, 족보의 편찬을 계기로 祖先의 德業이 후손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기를 축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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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65

    五柳亭重建記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惟一齋 金彦璣의 門人으로 敎官을 지낸 阿休亭 金侃이 살면서 말년을 보낸 五柳亭을 重建할 당시 지은 記文이다. 安東 莪峴里에 자리 잡고 있다. 梧峰 申之悌(1562~1624)와 北厓 金圻(1547~1603) 등과 교유했으며, 光海君代 亂政으로 인해 관직을 마다하고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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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66

    德峯亭記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祖父 金景㶅이 지은 德峯亭을 소개한 記文이다. 虎坪의 서남쪽 山麓에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노닐던 장소였음을 회고하면서, 집안 후손들의 공부를 위한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德業을 우선한 다음 文藝에 관심을 갖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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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67

    守吾堂記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1806년(순조 6) 봄 자신이 직접 薇山 아래 守吾堂을 건립하고 지은 記文이다. ‘守吾’는 자신이 붙인 이름으로 자연의 이치가 자신을 버리면 남을 구할 수 있는 법이고 비록 요행으로 얻었다고 할지라도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자 하는 뜻에서 지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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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68

    雙節閭記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임진왜란 당시 參議 柳宗介(1558~1592)의 의병진에서 활약하다 戰死한 愼菴 尹欽信, 九思 尹欽道의 위패를 봉안한 雙節閭를 중수하면서 쓴 記文이다. 그들이 전사하자 慶尙道觀察使 鶴峰 金誠一(1538~1593)이 조정에 보고한 적이 있었고, 1620년(광해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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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69

    弘濟庵重修記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太白山 깊은 산에 자리 잡고 있는 四溟大師 惟政(1544~1610)의 유적인 弘濟庵을 重修한 것을 계기로 지은 記文이다. 과거 자신이 禮曹에서 숙직을 할 때 우연히 惟政이 임진왜란으로 聖賢의 經籍 가운데 불에 타 없어진 것을 다시 간행해야 한다고 조정에 올린 箚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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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70

    忠烈祠重修記 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세조대 李施愛의 난이 일어났을 때 동조하기를 거부하고 굶어죽은 健齋 朴宗文과, 임진왜란 당시 외롭게 城을 지키다 전사한 逸軒 鄭湛의 위패를 봉안한 禮州(寧海)의 忠烈祠를 重修하면서 지은 記文이다. 祠宇의 중수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가 도탄에 빠졌을 때 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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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71

    攬勝亭重建記 3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惺軒 白見龍(1543~1622)이 만년을 보내기 위해 지은 集勝亭의 옛터에 후손들이 다시 攬勝亭을 건립한 것을 계기로 지은 記文이다. 禮州(寧海)는 바다와 접해 있으면서도 깊은 산을 끼고 있어 隱逸의 인물을 적지 않게 배출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 인물들이 바로 稼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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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72

    題追報帖後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正祖가 사망한 후 왕이 생전에 지은 表文과 詩를 모아 『追報帖』 2책을 편찬한 뒤 붙인 跋文이다. 정조가 奎章閣을 설립하고 抄啓文臣 제도를 실시하면서 학문적 능력이 모자라는 자신에게도 講製에 참여하도록 배려해준 은덕을 회상하며, 후세 이것을 보는 사람들은 聖人의 끝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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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73

    敬書聖敎謹厚礭實四字後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1797년(정조 21) 7월 次對에서 왕이 그의 淸要職 등용을 보장하는 通淸을 지시하면서 신중하고 중후하며 견실하고 성실하여 후진들의 모범이 된다는 의미인 ‘謹厚礭實’을 언급한데 대해 거기에 함축된 뜻을 풀이한 것이다. 왕이 자신에게 修身·守道를 주문한 것으로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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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74

    書三溪書院新刊近思錄後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三溪書院에서 새로 『近思錄』 袖珍本을 간행한 뒤에 붙인 跋文이다. 中宗代 冲齋 權橃(1478~1548)이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책을 저본으로 한 것으로, 英祖가 1746년(영조 22)에 그 책을 보고서는 후손들에게 관직을 제수하는 한편 大帙로 편찬한 적이 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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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75

    洪梅軒先生文集後識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權思浹·李野淳이 주도하여 간행한 梅軒 洪俊亨(1606~1666)의 文集 뒤에 붙인 識文이다. 오로지 孝悌를 실천하면서 그 여가에 師友도 없이 문을 걸어두고 독서에만 매진하며 經史子集을 폭넓게 독파하였으며, 聖賢의 말을 篤信하고 성현의 행동을 그대로 따름으로써 사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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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76

    濟鄕孫事蹟後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安東의 鄕吏들의 행적을 모아 편찬한 『安東鄕孫事蹟通錄』의 뒤에 붙인 跋文이다. 周代 鄕吏는 下士로서 中士인 鄕大夫와 함께 향촌사회를 주도하는 위치에 있다가 五代 때 戶長으로서 향촌의 錢租를 맡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新羅王室의 후예들이 豪族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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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77

    讀書法示兒曺識其後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자손들에게 讀書의 방법과 자세를 전해주기 위해 자신의 학문적 경험을 서술한 책에 붙인 識文이다. 6세에 千字文을 읽은 다음 『十八史略』의 讀誦에 들어갔지만 태만한 나머지 진척이 없자 長者들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은 적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 재능이 모자라는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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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78

    書甲乙錄後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南野 朴孫慶(1713~1782)과 能皐 朴申慶(1713~1790)이 朱子와 退溪의 書簡을 발췌하여 간행한 『甲乙錄』의 뒤에 붙인 跋文이다. 出處 및 是非분별의 합리적 판단을 위한 목적으로 발간한 것으로, 해석상에 있어서의 논란을 소개한 내용이다. 이는 密菴 李栽(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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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79

    書金處士狀誌後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평생을 處士로 일관하며 孝行으로 모범을 보인 金潛의 行錄과 誌文 뒤에 붙인 跋文으로, 孝子란 高遠하고 卓異의 경지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日用·常行의 과정에 있을 뿐임을 강조했다. 아들 金時鈺의 부탁으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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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80

    內賜中和尺銘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왕이 中和를 목표로 한 자세로 규범과 절도를 지키며 治積을 쌓을 것을 당부하며 하사한 ‘中和尺’에 붙인 銘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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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81

    玉笛銘(幷序)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川前의 宗家에 전승되고 있는 玉笛에 붙인 銘文이다. 과거 慶州에서 본 敬順王의 玉笛과 동일한 것이라 확인하면서, 경순왕이 하나는 古都에 남겨 두고 하나는 그의 후손들에게 전승했을 것이라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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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82

    文章釰銘(幷序)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川前의 宗家에 전승되고 있는 文章釰에 붙인 銘文이다. 시조인 新羅 敬順王이 차던 것으로 靑溪 金璡(1500~1580)이 문장에 능숙할 것을 기대하며 손자인 雲川 金涌(1557~1620)에게 물려준 이래, 雲川이 아들 敬齋 金是楨(1579~1612)에게, 경재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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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83

    迂溪書院廟宇重建上樑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艮齋 李德弘(1541~1596)의 위패가 봉안된 迂溪書院의 사당을 중건하면서 지은 上樑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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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84

    開巖亭上樑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開巖 金宇宏(1524~1590)이 지은 정자를 옮겨 건립하면서 쓴 上樑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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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85

    梅鶴堂重建上樑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孤山 李惟樟(1625~1701)이 지은 梅鶴堂을 重建하면서 지은 上樑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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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86

    裵氏雙節閭上樑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興海裵氏 가문에서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조상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雙節閭의 上樑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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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87

    道淵書院樊巖蔡文肅公復享時告由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寒岡 鄭逑(1543~1620)와 眉叟 許穆(1595~1682)을 제향한 道淵書院에 樊巖 蔡濟恭(1720~1799)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지은 告由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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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88

    松川書院奉安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松川書院에 石軒 柳崇祖(1452~1512)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지은 글이다. 1823년(순조 23)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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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89

    寧海眉山書院奉安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寧海 眉山書院에 蘭皐 南慶薰(1572~1612)과 安分堂 南佶(1594~1654)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지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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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90

    草谷世德祠奉安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草谷의 世德祠에 三友堂 吳碩福(1455~1533), 竹塢 吳彦毅(1494~1566), 春塘 吳守盈(1521~1606), 竹牖 吳澐(1540~1617), 敬菴 吳汝撥(1579~1635), 寒溪 吳善基(1630~1703)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本孫을 대신해 지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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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91

    梧山里社改題後升院告由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梧山里社가 書院으로 승격했음을 알리는 告由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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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92

    龍淵書院追享監察安公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安于器·安牧·安元崇·安瑗·安從約·安理가 제향된 豊基의 龍淵書院에 安浚을 추향하면서 本孫을 대신해 지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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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93

    鶴麓追遠祠奉安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鶴麓의 追遠祠에 天有堂 金瑮(1568~1651) 鶴汀 金秋吉(1603~1686)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지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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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94

    松川書院常享祝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石軒 柳崇祖가 제향된 松川書院의 享祀를 위해 지은 祝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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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95

    追遠祠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天有堂 金瑮과 鶴汀 金秋吉이 제향된 追遠祠의 享祀를 위해 지은 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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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96

    祭大山先生墓所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大山 李象靖의 墓所에서 제사를 지낼 때 올린 祭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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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97

    祭立齋鄭公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立齋 鄭宗魯의 영전에 올린 祭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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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98

    祭龜窩金公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龜窩 金㙆(1739~1816)의 영전에 올린 祭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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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799

    祭同中樞姜公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同中樞府使 姜宅一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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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4800

    祭酉陽權公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
    酉陽 權思浩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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