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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參判李公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李龜雲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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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尙書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鶴鹿 李益運(1748~1817)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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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韓尙書後甫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甹山 韓致應(1760~1824)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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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柳燁如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寒坪 柳晦文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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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裵君弼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槐潭 裵相說(1759~1789)의 묘를 移葬할 때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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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鄭叔顒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谷口園 鄭象觀(1776~1820)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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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從叔父素巖公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三從叔 素巖 金鎭東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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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兄穆之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族兄인 金熙命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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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弟叔明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族弟인 金熙洛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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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弟士健文 3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族弟인 金熙天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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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夫議政府舍人宋公墓碣銘(幷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知承文院事를 역임하고 世祖代 原從二等功臣에 책록된 龜巖 宋仁昌(1403~1479)의 墓碣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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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密直司咸陽君朴公墓碣銘(幷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高麗時代 密直司를 지낸 咸陽君 朴琠의 墓碣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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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金公墓碣銘(幷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僉知中樞府事로 追贈된 金光鐸(1735~1765)의 墓碣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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炊沙李公墓碣銘(幷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炊沙 李如馪(1556~1631)의 墓碣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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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一軒李公墓碣銘(幷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五一軒 李柱世(1671~1721)의 墓碣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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淵翁權公墓碣銘(幷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淵翁 權文斗(1684~1779)의 墓碣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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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處士墓誌銘(幷序)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평생을 處士로 일관한 絅錦子 李鈺(1760 ~1821)의 墓誌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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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柳景韓墓誌銘(幷序)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處士 柳景韓(1761~1822)의 墓誌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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砂溪張公行狀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郭瑨·金是樞 등과 함께 李爾瞻의 목을 벨 것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는 과정에서 병을 얻어 사망한 砂溪 張汝華(1566~1621)의 行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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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司農卿石圃金公行狀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高麗時代 司農卿을 지냈으나 朝鮮 太祖의 부름에 不事二君의 자세로 응하지 않았던 石圃 金潞의 行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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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金君行狀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處士 金履復(1771~1808)의 行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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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敎郞權公行狀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陶谷 權勻(1435~1502)의 行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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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祖考贈吏曹參議草堂府君行略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曾祖인 草堂 金汝鐸(1658~1726)의 行錄을 정리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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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從兄弘文館修撰豹林公遺事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弘文館修撰을 지낸 再從兄 豹林 金熙稷(1742~1797)의 遺事를 기록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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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同中樞贈吏曹參判府君遺事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先親인 金始東(1731~1811)의 遺事를 정리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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裵義士傳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임진왜란 당시 從兄 裵龍吉과 함께 義兵을 일으켜 申之悌의 휘하에 들어가 적과 싸우다 순절한 裵寅吉(1571~1592)의 傳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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孺人吳氏傳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남편과 시부모의 병환을 극진히 구환하며 孝烈을 몸으로 실천한 處士 南景旭의 부인 吳氏의 傳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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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應龍傳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海西人으로 利財에 밝으면서도 이웃을 구원하는데 앞장섰던 田應龍의 얘기를 듣고 기록한 傳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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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1835년(헌종 1) 俛齋 李秉運(1766~1841)이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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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道碑銘(幷序)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定齋 柳致明(1777~1861)이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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賜祭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1832년(순조 32) 왕이 禮曹正郞 金斗明을 대신 보내 그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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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三溪儒生(柳時亨·權載遠·金玉潤 等), 李仁行, 柳尋春, 柳台佐, 李秉運, 姜橒, 柳致明, 松川儒生(柳星璣·權大淵 等), 仁溪儒生 李經周, 慶州儒生 金龜洛, 奉化鄕校儒生 琴養蒙, 寧海雲山儒生 白居海, 李蓍秀 등이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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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4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주李野淳, 李龜星, 李仁行, 朴時源, 鄭必奎, 李秉鐸, 李羲發, 李家淳, 崔昇羽, 李源祚, 族兄 金熙紹 등이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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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계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고계집(古溪集) 古溪 李彙寧의 문집. 8권 4책. 목활자본. 정확한 간행연대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그의 孫子 李中寅과 曾孫 李忠鎬의 부탁으로 舫山 許薰(1836~1907)이 跋文을 쓴 점으로 미루어 20세기 초엽에 발간된 것으로 판단된다. 권1에 수록된 詩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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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147首)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敬讀老祖先生文集, 松坡義龜石, 敬次映江亭韻(幷小序), 次野翁亭韻, 太廟陪祭日次金學士(大坤)韻, 壬辰十月發肅行中途有感而作, 丁酉三月密陽漕倉發船日作, 挽朴執義(時源), 挽金進士(祖壽)四絶, 金烏山候望臺次許敬翁(恁)韻, 蓮社夜集, 山家夜話, 輓族祖(龜時)四絶, 輓柳姉兄京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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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副摠管疏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1861년(철종 12) 74세의 나이에 副摠管으로 임명되자 高齡과 능력부족 등을 이유로 辭職을 청원한 상소이다. 원래 궁벽한 향촌출신으로 자질이 없었던 데다 배운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科擧를 거치지 않은 채 출세가도를 달려왔던 자신을 돌이키면서, 官方의 得失은 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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艮齋李先生請贈諡上言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艮齋 李德弘의 諡號를 내려줄 것을 청원한 啓文이다. 道學을 숭상하는 것은 帝王의 盛節이고 儒賢을 포상하는 것은 국가의 常典이라 전제한 다음, 옛날부터 賢君哲辟들을 贈爵 또는 贈諡한 것은 世道를 扶植하고 유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며 이덕홍도 그 범주에 포함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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擬疏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왕에게 국가의 현안을 제기하며 그 방안을 제시한 상소이다. 첫째, 正學을 숭상하고 널리 보급할 것을 건의했다. 모든 聖賢의 책을 구해서 읽지 않으면 正學이라 할 수 없으며 성현의 道를 따르지 않으면 正法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군주가 앞장서 經筵을 자주 열어 四子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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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本生大人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生父 李承淳에게 올린 편지이다. 고르지 않은 날씨에 건강이 어떠한 지를 묻고, 자신은 설사로 한동안 고생했음을 전했다. 서울의 친구를 통해 樊翁(蔡濟恭)의 文稿 刊役을 위해 임원을 선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근래 영남에서는 일마다 논의가 분분한 상황에 비추어 그 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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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叔父(後溪公)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叔父인 後溪 李頤淳(1754~1832)에게 보낸 편지이다. 淸凉精舍의 工役이 순리에 따라 결정되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道內의 의논도 흡족한 것으로 모아지고 있음을 전했다. 그러나 年少한 무리들이 科擧공부에만 몰두하고 뜻있는 자들도 文章의 성취만을 능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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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高城丈(喆祚)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疎軒 柳喆祚(1771~1842)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장마철에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수 삼년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주지 않는 바람에 놀기를 좋아하게 되어 앞으로 걱정된다며 헤어져 사는 것을 우회적으로 아쉬워했다. 대신 작성해준 時文을 아이들에게 나눠줘 읽도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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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參判(載大)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莊憲世子의 追崇을 촉구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智島에 安置되어 있는 晶山 權載大(1778~185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지난번 海島로 떠날 때 마침 일이 생겨 서울로 가는 바람에 고향의 친우들과 함께 餞別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하면서, 가을이 깊어 겨울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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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參判(致明)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定齋 柳致明(1777~1861)에게 안동사림의 保合을 위해 나서줄 것을 촉구한 내용의 편지이다. 3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하고 때때로 士友들을 통해 안부만을 전해 들었을 뿐임을 돌이키면서, 자신은 그사이 축적한 것도 없는 데다 病苦까지 겹쳐 허송세월을 보내기만 했음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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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巡相(熹淳)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慶尙監司 徐熹淳(1793~1857)에게 향촌의 문제해결을 부탁한 내용의 편지이다. 지난번 安東을 방문했을 때 나누었던 대화를 회상하며 안부를 묻고는 자신이 둘러본 안동의 농사에 대한 실태를 전했다. 작년의 홍수로 인해 川沙가 밀려들어 경작을 못한 곳이 적지 않으며 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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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進士(海祥)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進士 李海祥(1781~?)의 祭禮에 관한 문의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편지는 고맙게 받았고 맑은 가을날씨에 더욱 성취가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자신은 齒痛에다 다리가 저리는 증세로 고생하고 있음을 전했다. 질문한 攝祀儀節에 대해 「退溪集」을 비롯한 儒賢들의 문집과 「常變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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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承旨(東獻)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承旨 金東獻의 善政閣 건립타진에 관한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보내준 편지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한편, 자신은 무릎의 병으로 거의 움직이지 못할 정도임을 전했다. 안동부사를 거친 사람들의 선정각 건립문제를 왜 자신에게 타진하는지 의문을 제시하면서, 이전에 자신이 東萊府使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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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承旨(源祚)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承旨 李源祚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자신에 앞서 소식을 전한 것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자신은 10년 세월동안 草野에 살다보니 비로소 한가한 시간을 가지며 知舊들과 교유하는 등 과거에 잃어버렸던 것을 서서히 되찾고 있음을 전했다. 거기다 뜻하지 않게 陞資하는 영광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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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許敬翁(恁)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敬翁 許恁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깊은 산속에 살면서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반가움을 전하면서, 자신은 각종 病魔에 시달리고 있기는 하지만 한가한 마음으로 조상인 李滉의 글들을 모아 살펴보는 것에 정력을 기울이며 古人들이 풍요를 느낀 심정을 만끽하고자 노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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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京老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可隱 柳箕鎭(1792~1856)의 「聖學十圖」 교정과 관련한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편지 가운데 ‘信無端’으로 규정한 부분에 대해 이의가 없음을 밝히면서, (第六圖 心通性情圖의) 中·下圖에 있는 仁義禮智의 위치를 草本과 正本에서 改正했다가 갑자기 印本에서 舊圖에 의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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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京老 / 기록자료>고도서 / 이휘령可隱 柳箕鎭에게 자제의 교육을 부탁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아들이 항상 문하에서 배우고 싶어 했으면서도 科擧에 매달려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은 나아가 배우려는 결심을 했으니 자식처럼 달래거나 질책하면서 학문을 위한 門路가 어떠한 지를 조금이나마 알도록 해주었으면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