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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仲舒(萬敷,1732)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息山 李萬敷(1664~1732)에게 『언행록』, 『연보』 등을 출간하는 일에 대해 답한 편지이다. 退溪 선생의 『언행록』과 『연보』에 대해 이만부는 ‘근거한 바가 없는 듯하다’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적확한 논의이기는 하지만 이미 간행이 끝난 시점에서 追毁하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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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宅仁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中庸』 首章의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 君子 愼其獨也”란 구절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다름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 구절에 대해서 玉川 趙德隣(1658~1737)은 앞 단락은 오로지 靜만을 가지고 말했으며 뒷 단락은 오로지 動만을 가지고출처 : 유교넷 -
355003
與趙宅仁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앞 편지의 답장을 받은 뒤 수긍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다시 저자의 시각을 토로하는 편지이다. 앞의 편지에서 저자가 밝혔던 입장을 되풀이하여 『중용』 首章의 ‘戒懼’는 動과 靜을 겸하여 넓게 말한 것임이 명백하다고 재차 강조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5004
與趙宅仁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중용』의 여러 가지 구절에 대해 조덕린이 자신의 생각을 적어서 보내온 글을 보고, 저자가 의심이 남는 부분을 조목별로 구분하여 의견을 제시하는 글이다. 모두 아홉 조목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辨誨曰’이라 하여 조덕린의 말 중에서 의심이 되는 부분을 제시하고 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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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宅仁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程子의 “鬼神은 造化의 자취이다”라는 부분에 대한 논의이다. 조화의 자취란 음양과 人鬼가 감응하는 正理를 가리키는 것이지 괴이하고 부정한 자취를 아울러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조덕린의 견해는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조화의 이치를 제대로 깨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출처 : 유교넷 -
355006
答趙宅仁(1727)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조덕린이 1726년 11월에 보냈던 편지를 저자가 반 년이 지난 1726년 4월에서야 비로소 받아보고 답장한 글이다. 조덕린은 영조 원년(1725)에 弼善으로 당쟁의 폐해를 상소하였다가 鍾城에 유배되었고 1727년에 풀려나 副應敎가 된 바 있다. 이 당시는 조덕린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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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宅仁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密庵 李栽(1657~1730)가 사망한 뒤 심사가 더욱 슬프며 집안에 기댈 곳이 없음을 한탄하는 한편 노쇠하여 자리를 함께 하고 정을 나눌 수 없는지라 그리워하는 생각이 간절함을 말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5008
與權方叔(1724)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저자가 만년에 사귀던 河上의 柳兄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망한 사실을 아쉬워하였다. 한편 저자는 屛谷 權榘(1672~1749)의 처소에서 권구가 만든 璇璣玉衡을 본 적이 있었는데 법도에 딱 맞다고 생각하였던 바, 저자를 위해 자그맣게 하나를 만들어 주어 때때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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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處士府君家狀 4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동완저자의 부친인 李天紀의 가장이다. 가장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府君의 휘는 天紀이고, 자는 善卿이다. 선조는 孝寧大君인 補이며, 태종의 둘째 아들이다. 讓寧大君과 함께 泰伯·仲雍의 절개를 지켜서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부친의 휘는 晉哲이며, 通禮院左通禮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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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氏姊遺事 5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동완金龜重에게 시집간 姊의 유사이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癸卯年 9월 1일 金氏姊가 죽었다. 모친이 매우 오래도록 애통해하며 딸의 純潔하고 孝愛스러움을 기억해 주었다. 특히 모친의 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일화와 함께 기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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蒼雪翁遺事 5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동완蒼雪 權斗經에 대한 유사이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權斗經이 9세 때 저자와 처음 만났다. 성품과 자질이 端雅하고 溫粹, 仁和한 기운이 있었다. 어렸을 때 權斗經은 紙冊甲을 매우 좋아했다. 저자는 그것을 빼앗아 다른 곳에 숨겼는데, 권두경은 노여워하는 기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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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동완李琓‧李光庭‧權萬‧成世瑊‧金鼎元‧金偕‧金聖銊‧權東著 등이 고인이 된 저자를 조문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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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동완李琓‧洪游範‧金汝鎔‧權萬‧三溪儒生‧金汝鏜‧權謩‧金鼎元‧權斗山‧鄭碩範‧權莢 등이 고인이 된 저자를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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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동완후학 李光庭이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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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동완1741년(영조17)에 趙述道가 찬술한 李棟完의 행장이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선생의 휘는 棟完이고, 字는 國材, 茅山은 自號한 것이다. 선생은 왕실의 후손이다. 恭靖大王의 別子인 孝寧大君 補는 泰伯·仲雍의 德이 있었기 때문에 至德祠에 제향하였다.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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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狀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동완1739년(영조 15) 저자의 아들 李師濂이 찬술한 家狀이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府君의 휘는 棟完이고, 자는 國材이다. 1651년(효종 2) 7월 21일에 태어나서 1726년(영조 2) 8월 7일에 향년 76세로 죽었다. 묘는 蔚珍西面 蘆田里에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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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事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동완族孫인 李泰春이 지은 글이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선생의 자질은 英銳하였다. 어렸을 때는 荷塘 權斗寅에게서 배웠고, 蒼雪 權斗經과 함께 공부하였다. 蒼雪公에게 뒤진 면이 있었을 때 선생은 부친이 寓居한 聞州에 반년을 머물며 『通鑑』15권을 爛熟하여 외웠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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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陽里社奉安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동완金翰東이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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移建時奉安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동완李仁行이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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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識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동완金益銖가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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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숭일항재집(恒齋集) 恒齋 李嵩逸의 시문집. 원집 6권 3책, 속집 2권 1책. 목판본. 저자의 詩文은 조카인 密庵 李栽가 수습하여 2책으로 淨寫하여 家藏해 왔다. 그 뒤 저자의 玄孫 李宇根이 密庵의 手寫本을 바탕으로 삼고 이후에 수집한 것을 덧붙여서 6권 3책으로 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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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유정문수정재집(壽靜齋集) 『壽靜齋集』, 壽靜齋 柳鼎文의 문집. 12권 6책.壽靜齋 柳鼎文의 문집. 木板本, 12卷6冊(附錄포함):四周雙邊, 半郭 19.8×16㎝, 10行20字, 上下二葉花紋魚尾:31.5×20.5㎝. 문집은 후손에 의하여 편집되어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나출처 : 유교넷 -
355023
신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신암집(愼庵集) 愼庵 李晩慤의 문집. 木活字本, 柳淵博‧柳廷鎬, 1908, 10卷5冊:四周雙邊, 半郭 21.7×16.5㎝, 有界, 10行20字 註雙行, 內向二葉花紋魚尾 :30.8×20.8㎝. 권말에 실린 李中轍의 발문에 따르면 문인 李載基가 선생의 문집을 편집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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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草草庵歌, 冬曉起讀先祖與南時甫別幅感而有述, 詠蟬, 詠雪次老杜, 春雪次長蘇, 樂浪懷古奉送聾窩族祖(彦淳)燕京之行, 又呈一律, 詠小瀑, 琴梅村丈人(詩述)以詠瀑小詩奔放急促之意太多沈潛停滀之意全欠遂和其韻以警之更疊前韻以見志(二首), 秋日偶感(回文), 白雲洞(1837), 錦城壇疊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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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所庵李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所庵 李秉遠 선생에게 올린 편지. 요즘 옛날에 비해 공부도 잘 되지 않고, 과거 준비를 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이러한 근심을 구제하려면 어찌해야 좋을지 방도를 알려 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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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定齋柳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定齋 柳致明 선생에게 답한 편지. 요즘 『朱子語類』를 공부하며 소일하고 있지만 篇帙이 너무 많아 싫증이 쉽게 나니 節約하는 방도를 質正하여 달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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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定齋先生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정재 유치명 선생에게 답한 편지. 벗들과 『心經』을 공부하고 있으며, 이번 달 안으로 金健壽 등 뜻이 맞는 친구들과 鳳停寺에 가서 강론하려고 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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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定齋先生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정재 유치명 선생에게 올린 편지. 『孟子』에 辭讓之心은 禮의 단서이고 恭敬之心이 禮라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陳北溪, 胡雲峯, 朱子가 약간 다르게 보았으니 어찌 이해해야 좋을지 회답하여 주기를 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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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定齋先生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정재 유치명 선생에게 답한 편지. 戒懼의 뜻에 대하여 종래의 학설은 靜에 포함시켰으나 실제로는 動靜을 포괄하는 것이니 이에 대하여 질정하여 주기를 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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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定齋先生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정재 유치명 선생에게 올린 편지. 戒懼에 대한 저의 견해가 柳致游에게 인정받았고, 戒懼는 存養이고 謹獨은 省察로서 動靜을 포괄하니 이에 대하여 회답하여 주기를 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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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申方伯(錫愚)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관찰사 申錫愚에게 답한 편지. 내가 올린 글에 대하여 세 번이나 품평해 주어 감사하고, 부득이하게 올린 정황을 살펴달라고 부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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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松西姜公(橒)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松西 姜橒에게 보낸 편지. 한 달 전에 환후가 차도 없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하고 있으며, 정신과 마음을 고요하고 화평하게 지니고서 병을 잘 조리하여 완쾌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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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信庵李丈(秉夏)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信庵 李秉夏에게 보낸 편지. 수십일 전에 가르침을 받고 돌아왔으나 舊習을 떨치지 못하여 공부에 진전이 없음이 서글프며, 柳致皓가 淸凉山을 유람하며 많은 시문을 가져오면 臥遊의 즐거움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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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壽靜齋柳丈(鼎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壽靜齋 柳鼎文에게 보낸 편지. 나는 詩學을 급선무로 여기지 않지만 경관과 흥을 만나면 시가 없을 수 없고, 시는 근심을 떨치는 바탕이 된다. 그러나 마음으로 주재하지 못하고 내달려 돌아오지 못하면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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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梅村琴丈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梅村 琴詩述에게 답한 편지. 보내준 詩文이 매우 훌륭하여 칠언절구 2수를 지어 보낸다고 한 뒤 평안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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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外舅權公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장인 權命夏에게 올린 편지. 이번에 영남의 疏會를 本院에서 열기로 하였기에 疏會의 날짜와 장소를 道內에 통고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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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可庵朴丈(宗喬)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可庵 朴宗喬에게 답한 편지. 지난해 「秋興八首」를 지어 보내 높은 평가와 함께 화답시를 받았으며, 연세가 많은데도 斯道의 진작에 힘을 쏟는 것이 훌륭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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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坦窩金丈(鎭華)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坦窩 金鎭華에게 보낸 편지. 가르침을 받고 돌아온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 건강은 어떠하며, 金興洛은 어떤 책을 보고 있는 지 등을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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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進士丈(獻奎)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進士 姜獻奎에게 답한 편지. 나는 조금 문자를 평할 줄 아는데 昌黎畵記와 柳州遊山記 등은 문체의 바름을 얻었고, 문장 결구의 방법은 같지 않지만 名物과 事實을 기록하되 때로 議論‧直敍하여도 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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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進士(宗垕)丈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진사 朴宗垕에게 답한 편지. 보내준 시문을 잘 보고 있으며 근래 주자와 퇴계 등의 글에 공력을 기울여 가르침을 주었는데, 보내준 글을 책상에 놓고 보면서 성찰의 바탕으로 삼겠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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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丈(致休)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李致休에게 답한 편지. 두 편의 글을 보내주는 은혜를 입어 기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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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安寢郞(景褘)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참봉 安景褘에게 보낸 편지. 『湖門遺集』과 『李子粹語』를 繕寫하여 보내준 일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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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安寢郞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참봉 안경위에게 보낸 편지. 나는 요즘 廣陵 산수의 명승을 즐기고 있는데, 질문에 곧바로 답해주어 고맙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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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丁監役(學淵)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監役 丁學淵에게 보낸 편지. 나는 산림에 살며 여생을 마치려 하고 있으며, 가을에 金健壽와 함께 방문하려 하기에 미리 소개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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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東林柳丈(致皓)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東林 柳致皓에게 보낸 편지. 戒懼는 動靜을 포괄한다는 자기의 說과 柳致游와의 문답 내용을 적고 가르침을 주기를 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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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丈(庭百庭龍)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李庭百과 李庭龍에게 답한 편지. 무더위로 고생하며 『東里遺集』을 읽은 뒤의 느낌을 적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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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崔進士(象龍)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진사 崔象龍에게 보낸 편지. 편지를 보내주어 고맙고 나는 가을에 시를 읊으며 自樂하고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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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文瑞(健壽)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文瑞 金健壽에게 답한 편지. 程子와 蘇氏, 朱子 등의 知覺에 대한 설을 인용하며 때로는 수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박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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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文瑞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문서 김건수에게 답한 편지. 三年喪 服制에 대한 견해를 적고 가르침을 주기를 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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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文瑞別紙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각문서 김건수에게 답한 別紙. 一有之의 뜻에 대하여 朱子 등의 설을 인용하여 一有之는 體를 좇아서 말한 것이니 『朱子語類』를 가지고 虛心하게 보아 歸一시키기를 청하였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