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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侄以方(是棱)文(1623) 3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族侄인 金是棱(1579~1622)의 小祥을 맞아 지은 제문이다. 같은 해에 태어나서 같은 뜻을 가지고 道義를 서로 즐겼건만, 먼저 죽어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김시릉의 자는 以方, 호는 松湖, 본관은 의성이다. 아버지는 涌이고 어머니는 眞城李氏이다. 일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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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梧峯申公(之悌)文(代人作,1624) 3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申之悌(1562~1624)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제문으로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지은 것이다. 신지제의 자는 順甫, 호는 梧峰‧梧齋, 본관은 鵝洲이다. 1589(선조 22)년 증광문과에 甲科로 급제, 1601년 正言‧예조좌랑 등을 역임하였고, 1604년 세자시강원문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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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子爾相文(1631) 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아들 爾相(1599~1630)이 32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음을 애통하면서 지은 제문이다. 너의 형(金爾章)은 19살에 죽고, 너의 숙부(金遠)는 27세살에 죽어, 너와 너의 동생만은 오래살기를 바랐는데, 이제 너마저 어린 나이에 죽게 되어 너무 가슴이 아파다는 내용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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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次子爾後文(1631) 41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아들 爾後(1605~1631)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 지난해에 형(爾章)이 죽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또 너마저 죽게 되어 자신이 죽으면 무덤조차 만들어줄 사람이 없게 되었음을 비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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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舅玉峯權公文(1632)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장인이자 스승인 玉峯 權暐(1552~1630)의 大祥을 맞아 존경하고 흠모하고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생전에 스승은 너그럽고 온화하고 두터운 덕을 지녔으며, 五福에 모든 선을 두루 갖추어서 贅言이 필요 없지만 40여년을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은 제자의 마음을 전하고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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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爾後夫婦合葬成墳文(1633) 43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아들 爾後 夫婦의 무덤을 합장하고서 지은 제문이다. 아들이 죽은 2년 뒤에 며느리마저 죽게 되어 합장하게 되었음을 언급하면서 생전에 스승에게 인정받은 아들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뜻을 이루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은 아버지인 자신의 부덕한 소치임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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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維遠文(1634) 43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權維遠의 小祥을 맞아 생전의 아름다운 행실을 기리고 있다. 빼어난 재주를 지녔지만 어눌한 듯하며, 풍부한 문장력을 가졌지만 졸렬한 듯한 행동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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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室宜人安東權氏文 4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아내 安東權氏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제문이다. 41년간의 부부로 지내면서 살아온 순간들을 돌이켜보면서 시집와서 연이은 喪을 치르느라고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지내는 못한 채 고생만 하다가 죽은 아내를 위로하고 애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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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子婦載寧李氏文(1637) 4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셋째며느리 載寧李氏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 세 아들이 연이어 죽고, 며느리마저 태어난 지 8일밖에 되지 않은 손자만 남겨두고 죽은 것에 대한 애통한 심정을 전하고 있다. 그런 손자가 이제는 손을 잡고 무릎에 기어오르고, 먹을 것을 찾아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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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兵使(俊龍)文(代人作,1642) 4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金俊龍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를 대신해서 지은 글이다. 서로 만난 지가 수십여 년이 되어 믿음이 두텁고 친척처럼 지내다가, 10월 보름에 매우 위태롭다는 말을 듣고 먼저 아들을 보내어 문안을 드리게 했는데, 오늘 결국 訃告가 이르자 매우 슬퍼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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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直講宅甫文(1651) 4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直講을 지낸 權寏(1580~1652)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권환의 본관은 安東, 자는 宅甫. 호는 二愚堂이다. 大器의 아들이며, 외조는 興海 裵希度이다. 寒岡 鄭逑의 문인이다. 5형제가 모두 사마시에 합격하여 ‘權氏五賢子’라는 칭송을 받았다. 1610년(광해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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祠宇開基告文(1632) 4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살던 집을 새롭게 신축하였으니 대대로 번영하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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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居成造告由文 4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연이은 사고가 발생하여 새롭게 이사를 했으니 후손들에게 복을 내려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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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溫井文(1634) 4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신령스러운 온천물이 샘솟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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葛蘿山祈雨祭文(代府伯作,1644) 4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葛蘿山에서 祈雨祭를 올릴 때의 제문으로 府伯을 대신해서 지은 것이다. 모든 것은 목민관의 부덕한 소치로 백성들에게 아무 잘못이 없으니 비를 내려 백성들을 보살펴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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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周王山日記(1620)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4월 16일에서 18일까지 2박 3일 동안 趙景行과 함께 周王山을 유람하면서 겪었던 일과 감회를 기록한 일기이다. 16일은 비가 오는 와중에 옷을 흠뻑 젖은 채 三宜村을 들러 建旗巖에 묵기까지의 과정을 기술한 것이다. 초저녁에 암자에 도착한 일행은 山僧 4‧5명의 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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準奉勑書迎受中宮殿陳賀箋(代人作)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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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宣務郞軍資監主簿府君墓誌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先考인 金安繼의 묘지명이다. 金近의 先考인 金安繼(1556~1599)의 자는 順伯, 호는 梅隱, 본관은 義城이다. 惟一齋 金彦璣 문인이며, 南致利‧權暐‧申之悌 등과 교유하였다. 임진왜란 때 군량미를 지원한 공으로 인해 軍資監主簿에 제수되었다. 金近의 어머니는 月城李氏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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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陽南公墓誌(1637)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죽은 지 27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무덤에 묘지명이 없다는 아들 南砡의 부탁으로 지은 南興達(1562~1610)의 묘지명이다. 남흥달의 본관은 英陽, 자는 顯卿. 호는 慕菴이다. 시조는 敏이고, 증조는 참봉 處昆이고, 조부는 참봉 健이고이다. 아버지는 효행으로 이름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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舍弟弘之行錄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동생 金遠(1595~1621)의 행록이다. 자는 弘之, 호는 遜庵이다. 近의 동생이며, 張顯光의 문인이다. 성리학에 밝고 실천에 독실하여 鄭維藩은 일찍이 ‘文詞에 獨步’라 칭찬하였으며, 黃汝一 또한 稱賞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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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子爾章行錄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장가도 가지 못하고 19세의 어린 나이로 죽은 맏아들 金爾章(1597~1615)의 행록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범상하지 않았으며, 부처 같은 큰 귀를 지니고 있었다. 重厚하고 謹勅한 자질을 지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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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雲甫行錄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柳嵒의 행록이다. 타고난 품성이 효성스러웠으며 마음에는 사악함이 없었다. 16세에 文翰과 行義가 뛰어나 鄭佺(1569~1639)이 일찍이 “鄭榮邦(1577~1650)의 재주가 뛰어나지만 柳嵒는 鄭榮邦 몇 사람보다 낫다.”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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針說(1630)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저자인 金近이 서울에서 돌아오다가 龍城 新村에 사는 李景伯의 집에 들렀는데, 이웃 마을에 金氏 성을 가진 의원이 침술로 매우 유명하다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래서 평소 병을 안고 살았던 맏아들 爾相의 병을 치료케 하였다. 침을 맞은 아들은 피가 멀리까지 뻗칠 정도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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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解(1631)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자식들이 앞서 죽는 등 중년 이후 겪은 연이은 가정사의 불행을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53세 되던 해에 지은 것이다. 1615년(광해군 7)에는 맏아들 19세의 나이로 장가도 가지 못한 채죽고, 1621년 봄에는 동생이 27세의 나이로 후사도 없이 죽고 1630년(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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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笙潭唱和錄後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여러 어진 이들과 함께 창수한 시들이 중간에 변고를 당해 대부분 산실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특히 崔鎭邦이 지은 12詠과 李師聖이 지은 4韻 2수는 모두 뛰어난 작품이었지만 遺落되어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래서 그 시들 중에 겨우 남은 몇 편만을 모아 한 책으로 엮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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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沙金錄後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어릴 때부터 편언척자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모두 기록하여 두었는데, 중간에 화를 당해 수정할 생각도 하지 못하다가, 글씨도 살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더 이상 刪削하지 못해서 거친 글이 되어 버렸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자손들은 자신의 글에 대해 순서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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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舍弟次田家雜興後(1639)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동생 金遠이 자신의 ‘田園雜興’시에 대해 차운한 5언 율시 3수를 기록해 두면서 병풍으로 만들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동생의 뛰어난 시적 재능을 칭찬하면서 短命한 것에 대해서 한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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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從弟不求堂(迬)新刊族譜後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사촌 동생 金迬(1606~1681)이 새롭게 간행한 족보를 보고 쓴 글이다. 족보 간행을 위해 힘쓴 사촌동생의 행동과 신종추원한 정성에 감동하였음을 전하면서 金迬의 자는 汝定이며, 호는 不求堂이다. 克繼의 아들로 1639년(인조 17) 문과에 급제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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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저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사로 鶴沙 金應祖의 7언 율시와 睡隱 李弘祚의 5언 배율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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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저자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사촌 동생 不求堂 金迬가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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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錄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막내아들 四休堂 爾聲(1609~1677)이 기록한 저자에 대한 행록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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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誌銘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開谷 李爾松(1598~1665)이 지은 저자에 대한 묘지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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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大山 李象靖(1711~1781)이 지은 저자에 대한 묘갈명이다. 슬하에 4남 4녀를 두었는데, 장남 爾章은 스물도 되기 전에 일찍 죽었으며, 둘째 생원 爾相과 셋째 爾後도 모두 일찍 죽었다. 넷째 爾聲이다. 딸들은 趙咸一‧金鐆‧鄭基中‧宋時毅에게 시집갔다. 庶子는 爾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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龜巖精舍奉安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后山 李宗洙(1722~1797)가 지은 龜巖精舍 봉안문이다. 저자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는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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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享祝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고금을 배우고 전원에서 도를 익혀 遺風이 후손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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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遠祠上樑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俛庵 李㙖(1739~1810)가 지은 追遠祠 상량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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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근저자의 족손인 西山 金興洛이 지은 문집의 발문이다. 저자의 9대손인 拓菴 金道和가 지은 문집의 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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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헌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양진우헌집(愚軒集) 愚軒 金養鎭의 문집. 木板本, 金翼洛, 1906, 10卷5冊:四周雙邊, 半郭 20.2×16.2㎝, 10行20字, 內向二葉花紋魚尾:31.7×21.7㎝. 행장과 묘갈명으로 구성된 부록은 따로 편책하지 않고 10권에 포함하였다. 아들 金翼洛의 발문에 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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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당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택룡조성당집(操省堂集) 『操省堂集』, 操省堂 金澤龍의 문집. 木板本, 金宗璧‧金胤元, 1912, 4卷2冊:四周雙邊, 半郭 18.5×15.8㎝, 10行19字, 註雙行, 內向二葉花紋魚尾:31.2×21.0㎝. 문집 첫머리에 李晩煃의 서문과 金龍庇에서 시작하여 12세 저자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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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택룡陪月川函丈遊簞巖次韻(二首), 函丈與花伯登淸遠生以家忌還寒谷不得會過浮浦口占, 過簞巖有感, 陶院夜坐有感, 濯纓潭泛舟, 寒谷十六詠(寒谷先廬, 平郊薄庄, 樓閣琴書, 石間花柳, 東岡素月, 西峯落日, 南山蒼翠, 北嶺烟霞, 淸溪釣漁, 綠洞樵採, 講林童冠, 臥雲巖榭, 鰲潭訪友, 月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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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택룡書天山屋壁, 輓權僉知(采), 步松樹下起感, 雪夜偶占, 己亥孟春十六日與方伯韓益之約會儒生於紹修書院製述右日朝自九皐小家蓐食起行沿溪信馬而(三字缺)汨㶁巖壑奇峭恍然有風舞雩詠歸底意思吟得七絶呈益之兼示豐倅李(堉)察訪河(受一)院長閔(興業)諸君求和, 己亥二月寒食以賤疾吟呻度日且雨雪連作不能強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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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月川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택룡月川 趙穆(1524~1606)에게 올린 편지이다. 월천은 저자가 8세 때 처음 수학한 스승이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병석에 누워있었고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아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보름께 權平昌과 서울 가기로 약속했는데, 병이 아직 낫지 않았으며 혹시 중도에 병이 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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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택룡조목에게 올린 편지이다. 龜城(영주에 있음)에서 돌아오는 길에 찾아 뵈려 하였으나 날이 저물어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죄송하다고 하였다. 지금 찾아뵙고 안부를 물으려 하였으나 이웃집에서 혼사관계로 말과 종을 빌려가는 바람에 찾아뵙지도 못했다고 하였다. 비석 세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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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택룡조목에게 올린 편지이다. 1600년 진주 提督官으로 있을 때 보낸 듯하다. 가을 試驗官이 정해지면 고향으로 올라가려 하였는데, 國喪으로 연기되었기 때문에 내달 그믐께 돌아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향교에 위판 봉안하는 일을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에 버려두고 가기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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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택룡조목에게 올린 편지이다. 이리저리 벼슬자리를 옮겨 다니는 상황이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또한 고을에서 河陽琴氏 어른이 모친상을 당했다는 것과 金垓(1555~1593)의 외조모와 李貽復 모자가 하루 사이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하였다. 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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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택룡조목에게 올린 편지이다. 지난해 湖南에서 이별한 뒤로 안부를 묻지 못하였고, 올해는 같은 道에 있으면서 찾아뵐 수 있을 것 같더니 여의치 않다고 하였다. 궁벽한 골짜기에 수령으로 있으면서 말씀드릴 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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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택룡조목에게 올린 편지이다. 그곳 사람이 이곳에 도착하였으나 아무 소식을 전해주지 않는 것을 보니 필시 그 사람이 선생님께 아뢰지 않고 왔기 때문이라 하였다. 仲春쯤에 내려가 찾아뵈려고 하였으나 말미를 얻지 못했고, 또 모든 사람들이 말리기 때문에 가지 못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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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琴惺齋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택룡惺齋 琴蘭秀(1530~1604)에게 올린 편지이다. 하늘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참봉의 몇 통 편지를 받고 안부를 알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하였다. 섬에 매어 있어 돌아갈 기약이 아득하니 언제 뵐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아들 琡과 고을의 다섯 명이 함께 사마시에 합격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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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琴惺齋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택룡금난수에게 올린 편지이다. 저자 자신은 여름 이래로 병이 들어 신음하고 있다고 하였다. 鳳城(봉화) 사람들에게 선생께서 정사하시는 것을 물어보니, 하나같이 칭찬하는 말을 듣고 매우 기쁘다고 하였다. 바라건대, 나가서 백성들의 고충을 물어보고 현자제들과 고충을 덜수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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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琴金山彦康(愷)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택룡琴愷(1562~1629)에게 보낸 편지이다. 금개는 금난수의 아들이다. 이웃고을까지 왔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쉽다고 하였다. 자신은 녹록한 산천에서 근심 속에 날을 보낸다고 하였다. 이번 시험에서 인재를 몇 명이나 뽑았는지 물었다. 그리고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