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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5701

    答孫兒秀三 4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손자 수삼에게 학문에 전념하라고 충고하는 편지이다. 『詩傳』은 읽고 있는지, 혹 모르는 것이 있어도 묻지 않는지, 학문에 전념하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라는 내용 등이 들었다. ‘謹讀書謹言行’과 함께, 시간은 흐르면 되돌릴 수 없으니 젊어서 학문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으
    출처 : 유교넷
  • 355702

    啓蒙疑義傳疑同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가 『역학계몽』과 『계몽전의』를 읽고 자기의 견해를 밝힌 글이다. 『계몽』의 「天一地二章」의 黃幹의 주를 보면 ‘음양의 기운은 한 번 습하고 한번 건조한데 따라 水와 火가 되고, 습과 조가 극하면 각각 목과 금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의』에서는 이에 의거하
    출처 : 유교넷
  • 355703

    霽山集疑義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가 『제산집』을 읽고 평소 의문났던 사항이나 자신의 견해를 기록한 글이다. 저자는 평소 ‘經緯說’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던 것을 남한조의 설명을 듣고 많이 깨우쳤다. 그런데 우연히 『제산집』을 읽다가 김성탁 역시 비슷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내용을
    출처 : 유교넷
  • 355704

    朞三百註解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가 우연히 김성탁의 유고에서 天體周圍之圖 등 수십개의 도표를 그려 연월일시의 분도수를 설명하는 「기삼백해」를 읽었는데, 마침 평소 자신의 생각과 같은 것에 반가움을 느꼈다. 그런데 이 글은 김성탁이 유배 중에 그다지 학식이 높지 않은 선비에게 구전으로 전한 것이기
    출처 : 유교넷
  • 355705

    謾錄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가 평소 공부하면서 갖게 된 의문이나 자기 나름의 견해를 적어놓은 글이다. 주로 상례에 관련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내쫓긴 외조모에 대해서도 服을 입기 때문에, 내쫓긴 조모에 대해서도 복을 입지 않는 것은 미안하다’는 김장생의 주장에 대해 이미 조부로부터 내쫓
    출처 : 유교넷
  • 355706

    五行穉盛說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태극도해」에서 水는 음이 성한 것이기 때문에 오른쪽, 火는 양이 성한 것이기 때문에 오른쪽에 둔 데 대한 황간과 이상정의 설명이 다르다. 이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밝힌 글이다. 즉 황간은 생겨난 순서에 따른 것이고 행의 순서는 아니라고 하였고, 이황 역시 그 견해를
    출처 : 유교넷
  • 355707

    讀心無出入說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가 유배가는 날, 유범휴가 ‘心無出入’과 관련된 내용을 적은 편지를 주었다. 그런데 저자의 견해와는 약간 달랐다. 섬에서 우연히 이상정이 남긴 글에 이와 관련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心三層說이었다. 저자와 유범휴는 이 중 각각 2조와 3조에 집착하는 것이었다.
    출처 : 유교넷
  • 355708

    讀愚潭集疑義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가 『우담집』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정리한 글이다. 특히 정시한이 이경숙에게 쓴 편지 중에, ‘태극은 一理이고, 천지는 일체이다. 따라서 천하만상에 일리가 두루 있다’는 요지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의미를 부연설명하고 있다. 대체로 인물성동이론에 대한 저자의 입장
    출처 : 유교넷
  • 355709

    讀一元消長圖 4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가 장흥효의 ‘일원소장도’를 읽고 느낀 바를 쓴 글이다. 이는 복희와 문왕이 남긴 것을 인해 先天, 後天의 妙를 밝힌 것이다. 일원 십이회를 중분하여 선천, 후천의 용으로 하였고, 뒤의 학자들은 모두 여기에서 설명을 출발하여 확대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상세히 연
    출처 : 유교넷
  • 355710

    山水彙編引 4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가 『산수휘편』을 편집하고 쓴 서문이다. 저자는 천하를 두루 유람하지 못해 늘 우물안 개구리처럼 좁은 안목을 가진 것을 아쉬워하였다. 이에 古人의 문집에서 산수를 유람하고 쓴 시나 글이 있으면, 다소를 막론하고 모두 모아 한 질을 만들어 『산수휘편』이라 이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5711

    月城金氏族譜序(代大人作) 4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가 부친을 대신하여 쓴 『월성김씨족보』 서문이다. 세대가 멀어지면 소원해지는 것은 자연적인 이치이다. 그러므로 족보를 만들어 항상 염두에 두어 같은 宗族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서로 간에 출세와 학식이 다르고 세대가 멀어져서 마치 타인과 같이
    출처 : 유교넷
  • 355712

    晉州河氏族譜序(代大人作) 5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가 부친을 대신하여 쓴 『진주하씨족보』 서문이다. 하위지가 역신으로 몰려 적몰된 이후 사손이 끊겼다가 다시 이었다. 그러나 족보를 만들지 못했다. 이에 사손인 택해와 용천씨가 새로 족보를 만들기로 하고 저자의 부친에게 서문을 부탁하여 쓴 글이다. 하위지로부터 세대
    출처 : 유교넷
  • 355713

    皇甫忠定公實紀序(代大人作) 5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단종 때 죽은 황보인의 실기 서문이다. 당대의 사직을 책임지던 신하로써 비운에 죽었지만, 숙종‧영조‧정조대에 복관과 증시 등 조치가 연이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글이 30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모두 흩어져 버렸다. 이에 정일찬씨가 여러 사람의 문집에
    출처 : 유교넷
  • 355714

    琴英烈公實紀序(代大人作) 5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고려 후기의 문신 금의의 실기 서문이다. 금의는 과거에 장원급제하였고 문명을 떨쳤다. 네 차례나 지공거를 지내, 그 문생을 ‘琴學士玉筍門生’이라 하였다. 중서시랑과 벽상공신에 임명되는 등 고관도 여러 차례 역임하였다. 그러나 말년에 沈江의 화를 입고, 정인지에 의해
    출처 : 유교넷
  • 355715

    恒齋先生李公文集序 5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항재 李嵩逸의 문집 서문이다. 저자는 세속의 명예를 구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던 이숭일의 삶을 추모하고 있다. 단순히 학문에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유일로 천거된 이후 행했던 것을 보면 실용, 경세학에도 뛰어났다고 평하였다. 평소 저술이 많지 않아 시문 약간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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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16

    陽坡柳公文集序 5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양파 柳觀鉉의 문집 서문이다. 저자는 유관현의 일생을 정리하면서 크게 3가지 사실을 특기하고 있다. 하나는 사도세자의 사부로서 세자의 교육에 전념하고 충성을 다했던 것, 막역한 친우이던 제산 김성탁이 유배당하자 천리길을 멀다하지 않고 직접 찾아가 위문했던 것,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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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17

    杞菊亭記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도우경씨의 부친이 뜰 가득히 기국을 심고 또 그 사이에 정자를 만들어 기국정이라 이름붙이고, 매일 그 사이에 독서하며 기국을 완상하는 것으로 낙을 삼았다. 그리고 저자에게 기문을 부탁하였다. 저자는 젊었을 때 주자가 진용천에게 쓴 글을 읽고, 늘 기국을 뜰에 키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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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18

    玉溪遊山錄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가 1769년(영조 45) 9월, 이상정‧김종덕 등을 따라 청송 옥계를 유람하고 쓴 일종의 기행문이다. 고모동과 효자비를 지나면서 그곳의 풍광과 효자 김생의 효행을 기록하였다. 이튿날은 송학서원을 들렀고, 거기서 권렴‧조상변‧김세익 등 10여 인이 여행에 동행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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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19

    贈崔仲蘊三省錄跋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가 자신이 초록해 놓은 『삼성록』을 조카사위인 최벽에게 주면서 쓴 발문이다. 최벽은 젊은 나이에 과거에 올랐으나 관로가 트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실망하지 않고 물러나 자신의 학문과 행동을 수양하는 데 전념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성현의 격언이 담긴 이 책을 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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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20

    書族子秉殷先故遺墨後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족질인 병은이 이상정‧이광정 등의 서찰 10여 장을 배접하고 첩으로 만든 다음, 저자에게 발문을 부탁하여 쓴 글이다. 저자는 장정이 화려하고 가문의 手澤이 화려하게 단장이 되어 매우 반갑고 고맙다고 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외형으로 보이는 서체와 서책의 아름다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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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21

    長洞齋舍上梁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의 고조부인 수은 이홍조의 장동 재사를 건립하고 쓴 상량문이다. 저자는 재사 건립을 계기로 敦宗의 誼에 더욱 힘쓰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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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22

    龜巖精舍上梁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一直 龜尾에 세거하는 의성김씨의 입향조 五友堂 金近을 위한 별묘인 귀암정사가 건립되어 쓴 상량문이다. 귀암정사는 의성김씨 오우당파의 문중 사우였고, 이곳의 건립을 계기로 조상의 학풍을 더욱 발전시키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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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23

    魯林書院明敎堂重修上梁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賁趾 南致利를 제향한 노림서원의 명교당을 중수하고 쓴 상량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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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24

    陶山書院賜祭時告由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1792년(정조 16) 정조가 도산서원에 사제하게 하였음을 고유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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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25

    魯林書院景賢祠還安告由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노림서원 경현사를 수리하기 위해 위패를 잠시 옮겼다가 다시 還安하면서 쓴 고유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5726

    『대산집』이 완성되었음을 가묘에 고유하는 글이다. 모두 52편 26책의 문집이 완성되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저자가 종질을 대신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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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27

    島行時告家廟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가 고금도로 유배를 떠나면서 고유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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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28

    祭南野朴公文(代大人作)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남야 박손경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제문이다. 저자의 부친 이광정을 대신해 썼다.
    출처 : 유교넷
  • 355729

    祭外王考竹所公文(庚寅緬禮時)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1770년(영조 46) 외조부인 김양현의 묘를 이장할 때 쓴 제문이다. 저자는 어머니의 가르침, 그리고 생전에 그를 귀여워했던 외조부를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는 풍수가의 말에 따라 이장하게 되어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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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30

    祭叔父大山先生文(1782)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숙부 이상정의 상을 당해 쓴 제문이다. 숙부의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가르침을 받아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없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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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31

    祭百弗庵崔先生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백불암 최흥원의 제문이다. 그의 높은 학문과 향리에서의 품행을 그리는 한편, 저자 부친과의 세교를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는 저자가 가르침받고 싶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상을 당하게 되어 매우 안타깝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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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32

    祭后山李公文(1798)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후산 이종수의 제문이다. 저자는 대산과 소산의 학문을 이은 이가 후산이라고 평하면서, 그의 죽음으로 앞으로는 누구에게 배워야 하냐고 탄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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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33

    祭叔舅齊省齋公文(1776)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공의 작은 외삼촌인 齊省齋 金崇德의 제문이다. 저자는 어렸을 때 외조모를 따라 이광정에게 공부하러 왔던 외삼촌의 모습과 연전에 병든 모습, 그리고 생전의 탁월한 학문과 후진 양성에 열정을 보였던 모습 등을 회상하며 슬픔을 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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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34

    祭苟齋金直甫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구재 김종경의 제문이다. 관직도 마다하고 자연을 즐겼던 모습, 사문의 촉망을 받던 재주 등을 그리며 그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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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35

    祭金行之(光裕)文(1784)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김광유의 제문이다. 저자는 그와 함께 동문수학하던 때를 그리며 그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5736

    祭金弘輔(宗燮)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김종섭의 제문이다. 김종덕의 아우로 학문에 전념하던 모습, 상중인 저자를 찾아 위로했던 일 등을 그리며, 평소 병약했지만 장수하리라 기대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니 슬픔을 견줄 바 없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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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37

    祭李伯維(宇綱)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이우강의 제문이다. 동문수학하며 지내던 일을 그리면서, 막걸리에 마른 과일을 안주로 바치며 이별을 고한다고 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5738

    祭亡弟可久(壔)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의 동생 이도의 제문이다. 동생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괴로운 심정, 비바람불고 꽃비내리는 날, 제사지내는 날 동생의 빈자리를 견디지 못해 몹시 괴로운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5739

    祭從弟穉勤(垍)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의 종제 이기의 제문이다. 50의 나이에 돌아간 것을 매우 아쉬워하면서,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과거에도 오르지 못하는 등 실력에 비해 불운했던 삶도 아울러 안타까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해를 돌보지 않고 오직 의로 일관했던 삶을 높이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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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40

    義士權公遺墟碑銘(幷序○代大人作)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다대포에서 일본군과 대적하다 전사한 권복흥의 유허비명이다. 저자가 부친을 대신해 썼다. 그가 순절하자 조정에서 문에 정려를 세우고 향인이 사우를 세워 제향하였다. 그런데 조정의 명으로 사우를 훼철하게 되자, 그 유허에 작은 비를 세우면서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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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41

    祭酒禹先生墓碣銘(幷序)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성리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역동 우탁의 묘갈명이다. 우탁의 묘가 실전되었는데, 안동부 북정리 사람이 묘를 쓰다가 우연히 발견하였다. 그러나 비밀에 부쳤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어 송사로 번졌고, 결국 승리하여 묘를 새로 개수하였다. 그리고 그 후손인 龜協 등이 비석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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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42

    贈持平敬堂先生張公墓碣銘(幷序) 3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경당 장흥효의 묘갈명이다. 원래 장흥효의 묘에는 외손 이형원이 쓴 작은 묘표만 있었다. 이를 1809년(순조 9) 공의 5대손 익한‧세한 등이 비석을 세우고자 하여 저자에게 묘갈명을 부탁해 쓴 것이다. 그가 학봉과 서애의 학문을 이었고, 한강 정구의 찬탄을 받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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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43

    柳溪郭公墓碣銘(幷序) 4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郭涌의 묘갈명이다. 본관은 苞山, 자는 汝達, 호는 柳溪이다. 부친은 再謙, 모친은 永陽 李氏이다. 정구와 서사원에게 사사하였다. 1603년(선조 36) 생원에 입격하였고, 1616년(광해군 8)에 졸하였다. 부인 盆城 金氏와의 사이에 2남 1녀가 있다. 그의 7대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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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44

    東巖柳公墓碣銘(幷序) 4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유장원의 묘갈명이다. 유장원의 조카 유성휴의 부탁으로 썼다. 유장원의 자는 叔遠, 호는 東巖, 본관은 全州이다. 부친은 信迪, 모친은 豊山 金氏이며, 生父는 觀鉉, 生母는 一善 金氏이다. 9세 때 백부인 慵窩 柳升鉉에게 학문을 배웠다. 26세 때에는 仲兄인 蘆厓 柳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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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45

    集慶殿參奉權公墓碣銘(幷序) 4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權叔經의 묘갈명이다. 저자는 그 후손인 응두의 부탁으로 썼다. 권숙경의 자는 達卿, 본관은 안동이다. 부친은 密이다. 1509년(중종 4)에 태어나 1577년(선조 10)에 졸하였다. 산사에 거하면서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나, 과거에 오르지 못하였다. 뒤에 학생으로 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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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46

    第二十七再從叔處士公墓誌 4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의 재종숙 李述靖의 묘지명이다. 그가 돌아간 이듬해 저자가 강진으로 유배를 당하였다. 이에 그 아들인 헌이 편지로 묘지명을 부탁해 쓴 글이다. 대산 이상정의 문하에서 학문을 하였다. 늙어서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나 그 이름을 얻지 못하여 애석하다고 하면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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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47

    雪月堂先生金公行狀(代大人作)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金富倫의 행장이다. 본관은 光山, 자는 惇叙, 호는 雪月堂이다. 부친은 綏, 모친은 順天 金氏이다. 1531년(중종 26)에 태어나 1598년(선조 31)에 졸하였다. 9세에 시를 지을 정도로 영특하였으며, 16세에 직접 퇴계 이황을 찾아 학문을 익혔다. 퇴계는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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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48

    通德郞永禧殿參奉顧齋先生李公行狀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李槾의 행장이다. 본관은 載寧, 자는 君直, 호는 顧齋이다. 부친은 隆逸, 모친은 光山 金氏이다. 1669년(현종 10)에 태어나 1734년(영조 10)에 졸하였다. 10세에 소학을 익혔으며, 관례를 마치고 숙부인 갈암 이현일에게 사사하였다. 부친의 유지를 이어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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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49

    先考承議郞司圃署別提府君家狀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의 부친인 李光靖의 가장이다. 본관은 韓山, 자는 休文‧景實, 호는 小山이다. 생부는 泰和, 생모는 載寧 李氏이고, 20세에 출계하여 종조숙부인 志和의 후사가 되었고, 모친은 光山 金氏이다. 1714년에(숙종 40) 태어나 1789년(정조 13)에 졸하였다. 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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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5750

    再從叔弘文館校理約窩公行狀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
    저자의 재종숙인 李顯靖의 행장이다. 본관은 韓山, 자는 孟休, 호는 約窩이다. 부친은 再和, 모친은 光山 金氏이다. 생부는 命和, 생모는 星山 呂氏이다. 1721년(경종 1)에 태어나 1789년(정조 13)에 졸하였다. 1737년(영조 13) 종형인 대산 이상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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