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后山先生李公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李宗洙의 행장이다. 본관은 眞城, 자는 學甫, 호는 后山이다. 부친은 起三, 모친은 全州 柳氏이다. 생부는 德三, 생모는 義城 金氏이다. 1722년(경종 2)에 태어나 1797년(정조 21)에 졸하였다. 7세 때 19사략을 배웠다. 17세 때 이광정의 영향을 받아 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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執義坡平尹公遺事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尹師晳의 유사이다. 본관은 坡平, 호는 晩遯庵이다. 부친은 垠이다. 6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맏형인 師路가 부마가 됨으로써 宗子가 되었으나 막내인 師夏에게 양보하였다. 사헌부 집의에 올랐으나, 연산군 때 사화가 일어나자 처자를 데리고 청주 玉華臺에 은거하였다.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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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湖尹公遺事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尹涉의 유사이다. 본관은 坡平, 자는 景楫, 호는 竹湖이다. 부친은 希曾, 모친은 順興 安氏이다. 1550년(명종 5)에 태어나 1624년(인조 2)에 졸하였다. 7세 때 양친을 여의었다. 栢巖 金玏이 우연히 길에서 보고 감탄하여, 숙부인 金富民에게 적극 추천하여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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叔父大山先生遺事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저자의 숙부인 李象靖의 유사이다. 저자가 직접 듣고 보았던 이상정의 학문과 인품을 하나하나 술회하는 형식으로 쓰고 있다. 이상정이 평소 성인이 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했다는 것, 성인이나 자신이나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성인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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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府君遺事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저자의 부친인 이광정의 유사이다. 이상정의 유사와 마찬가지로 저자가 직접 듣고 보았던 이광정의 학문과 인품을 하나하나 술회하는 형식으로 쓰고 있다. 저자는 우선 이광정이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 ‘문리를 지나치게 상세히 살피는 것이 옳은 방법이긴 하지만, 자칫하면 잣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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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妣恭人義城金氏遺事 4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저자의 모친인 의성김씨의 유사이다. 부친은 良鉉, 모친은 晉州 鄭氏이다. 1713년(숙종 39)에 태어나 1756년(영조 32)에 졸하였다. 19세에 시집와서 3남 3녀를 낳았다. 저자는 평생 모친이 자신에게 가르쳤던 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고 있다. 동기간에 재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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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子日記(疏廳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1792년(정조 16) 사도세자의 신원을 청하는 영남만인소를 올리면서 작성한 일기이다. 일기는 같은해 윤 4월 13일 삼계서원에서 보낸 통문과 陪疏儒生 65인의 망기가 도착했다는 것에서 시작해서 8월 2일 안동향교에 모여 정조의 聖諭를 널리 선포하고, 비답 등의 원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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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寅日記(子秉鐸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우1805년(순조 5) 12월 27일 김달순의 筵奏로 인해 저자가 강진 고금도로 유배갔을 때 쓴 일기이다. 저자의 아들인 병탁이 썼다. 일기는 1806년 정월 14일 저자에게 島配의 명이 내려졌다고 한데서 시작해서 4월 27일 解配되어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와 사람들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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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야집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매야집(邁埜集) 邁埜 徐活의 문집. 木板本, 6卷3冊:四周雙邊, 半郭:20.4× 15.2㎝, 有界, 10行20字 註雙行, 內向二葉花紋魚尾 : 32.0×21.0㎝. 이 책은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자와 간행연대를 알 수 없으나, 권말에 있는 李秉運 등의 간기에 의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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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陪厚庵權先生步臨溪上呼韻命賦, 孺子亭與柳周翰(崧祚)呼韻各賦, 金川如(宗祿)家喜見盆梅口占, 敬次永川淸湖齋舍重建韻, 金凝之(宗駿)柳士綏(樂祚)來訪因與之同遊周山, 陪晩洲權丈(以復)步入雲水洞, 梨田驛次柳周翰韻, 山中滯雨留一日柳周翰賦卽事求和, 皮木洞小瀑與柳周翰柳景範(洛文)呼韻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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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厚庵權先生(1779) 1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스승인 厚庵 權濂(1701∼1781)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산 속 깊이 들어와서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책을 읽고 있다면서 공부의 근본을 세우지 못하는데다 이끌어줄 선생도 없음을 한탄하며 조만간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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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金先生(1791) 1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스승인 川沙 金宗德(1724∼1797)에게 보낸 편지이다. 십년을 우러르던 끝에 다행히 반달 여 동안의 가르침을 받아 마음 속 깊이 새겼다고 했다. 이어서 거듭 베풀어주신 가르침을 지금 멍하게 잊어버리고 간직하지 못한 것은 공부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탓이라며 자책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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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1793) 18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근래 집안의 우환과 상사가 잇달아 통곡을 하며 보내느라 마음이 썩어 문드러질 정도라고 했다. 이어서 유학이 추구하는 학문은 고원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며 평이하고 가까운 곳이 공부의 착수처임을 말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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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 1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공부에 있어서 본령이 서지 않아 책을 읽어도 공소함에 빠지게 된다면서, 경계하고 가르쳐 해이함에 빠지지 않게 해 줄 것을 청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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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川沙先生(1795) 2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오랫동안 직접 배움을 받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상대의 덕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자포자기하는 자신을 반성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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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1796) 2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마음을 다스리고 실천을 하는 것은 남이 아닌 자신에게 달린 것이므로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상 중에 도덕실천에 힘쓰면 공부의 착수처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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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東巖柳先生(1790) 2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東巖 柳長源(1724∼1796)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상사로 인한 슬픔을 호소했고 상례에 관한 의문을 별도로 적어 여쭈니 알려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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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東巖先生(1793) 2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東巖 柳長源에게 부친 편지이다. 근래 집안의 상사가 잇달아 애통하기 짝이 없다고 했고, 세속의 일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해 문하에 출입하는 일이 소원해진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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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方伯(光顔,1807) 2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경상도관찰사인 尹光顔(1757∼1815)에게 보낸 편지이다. 공무에 바쁜 가운데 편지로 禮에 대해 물어준 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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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侯(義浩,1796) 2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澹寧 洪義浩(758∼1826)에게 보낸 답신이다. 상대의 겸손한 덕을 칭송하면서 자신같이 비천한 사람이 어떻게 상대의 물음에 답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겸양의 말을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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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韓侯(光近) 2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서원의 향사가 가까워 오는데 國忌가 있어 문제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자신의 의견도 상대의 뜻과 다르지 않지만 文莊公 愚伏 鄭經世의 의견을 인용해 국기가 원래 중한 것이기는 하지만 향사도 폐할 수는 없다는 뜻을 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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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沈侯(能栻) 25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서원과 향교에서의 강회의 전통을 다시 회복하려는 상대의 취지에 크게 동의한다고 했다. 이어서 자신을 천거한 것에 대해 겸양의 태도로 사양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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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成侯(近默,1833) 2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果齋 成近默(1784∼1852)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의 예학에 관한 학식을 칭찬하고 보잘 것 없는 자신에게 베풀어 준 과분한 은혜에 감사했다. 이어 흉년에 대해 근심하면서 오늘의 荒政이 옛날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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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侯(玄好) 2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이현호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질병이 더욱 깊어지고 세월은 점점 더 지나가니 상대의 맑은 태도를 오래 접하지 못할까 걱정이라고 했고, 상대방 아들의 뛰어난 文才를 칭찬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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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侯(箕明,1837) 2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2년여에 걸친 병으로 인해 집밖의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지만 상대가 베푼 德政에 대해서 들은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또한 집의 노복들을 束伍軍에 편성하는 것을 면제시켜 준 것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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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尹東萊(景鎭,1826) 2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尹景鎭에게 답한 편지이다. 1~2년 사이에 연달아 두 아우를 여의어 머리가 하얗게 세고 가슴은 뻥 뚫린 듯하며, 귀에는 이명이 들리고 눈은 침침해져 비록 경치 좋은 곳으로 놀러 가서 심회를 열고 싶지만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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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徐通川(秉淳) 28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徐秉淳에게 답한 편지이다. 보내준 편지에 아직 답을 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상대가 임금의 명을 받아 부임지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후 더욱 멀리 떨어서 그리운 마음이 더할 것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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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徐通川 28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아들이 요절해 죽은 데 대해 멀리서 위로의 편지와 더불어 부의를 보내줌에 감사하면서 편지를 읽을 때마다 비탄을 금할 길 없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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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奉化(南圭,1818) 2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한가한 겨를에 서책을 보며 자신을 기르는 즐거움을 누리는 상대를 부러워하면서 병약한 체질에 여러 가지 일을 당하여 쇠약한 모양이 더욱 심해져 옛날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변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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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陶山書院會(中代本邑校院作) 3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봉화읍의 서원과 향교를 대표해 도산서원에 보낸 편지이다. 『心經』이 聖學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는 指南으로 퇴계선생이 이 책을 특별히 아낀 것은 그 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도산서원에서 이 책을 다시 판각하려는 논의가 있음을 들었다면서 재원상의 어려움이 있다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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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司馬所會中(1799) 3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대산 이상정의 遺集 발간에 관한 일로 司馬所에 보낸 편지이다. 재원을 여러 읍에 분담하기로 했는데, 본 읍은 재력이 넉넉하지 못하니 여타의 행사들을 멈추고 더욱 중요한 유집 간행에 주력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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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京城宗中 3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서울에 있는 종중에 보내는 편지이다. 경성의 종중에서 세 번째 편찬한 족보에서 鄕派를 별도의 족보에 모아 넣었다고 들었는데 이는 宗統을 근원으로 함께 모은다는 원칙에 맞지 않은 듯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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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沙川宗中 3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普牒 간행 관련된 일로써 沙川의 宗中에 보낸 편지이다. 비록 파가 나뉘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지만 同根一源의 취지를 명심해야 함을 말했고, 보첩의 간행은 각 분파가 힘을 합하고 서로 상의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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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大丘譜所 3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대구에 있는 譜所의 편지에 답하는 글이다. 족보 발간은 문중의 큰일이며 선조들이 몇 년에 걸쳐 실현하지 못했던 일인데, 지금에 와서 여러 현명한 이들이 애를 쓴 결과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했다. 부탁받은 서문은 일가의 일인지라 겸양으로 사양할 수 없으니 맡아서 쓰겠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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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晩洲權丈 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스승인 후암 권렴의 아들 晩洲 權以復(1740 ∼1819)의 편지에 답한 편지이다. 인생에 있어서 만나고 헤어짐이 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잘 알지만 때로 소회가 일어 뜻이 즐겁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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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晩洲權丈 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한 해를 보내면서 보낸 편지이다. 궁벽한 곳에서 기거하며 또 1년을 보내니 슬픈 마음이 더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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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晩洲權丈 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紫岸山 속으로 이주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곳은 자신의 스승이자 상대의 아버지인 權濂이 마음에 두었던 곳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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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晩洲權丈 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우환이 겹쳐 심려가 크다는 자신의 근황을 알리면서 공부에 있어서 자신이 얻은 체득의 소회를 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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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晩洲權丈(1807) 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식견은 얕고 문장은 보잘 것 없는 자신이 저술한 책을 보내니 살펴봐 달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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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雨皋金丈(道行,1804) 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雨皐 金道行(1728∼1812)에게 답한 편지이다. 지난 가을 밤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고, 헤어져 돌아온 후에 보내준 편지와 글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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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壺谷柳丈(範休,1806) 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壺谷 柳範休(1744∼1823)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들 元模가 자질이 보잘 것 없고 배운 바도 없어서 상대의 문하에서 공부할 자격이 부족하지만 灑掃應待의 일로 문하에서 부려준다면 다행이겠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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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壺谷柳丈(1807) 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方谷 柳洛文(1766~1807)이 운명을 달리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아들을 다시 가르침을 받으러 보내는데 사람됨이 공소하고 問辨에 어두워 상대에게 누가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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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壺谷柳丈 5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壺谷 柳範休(1744∼1823)에게 답한 편지인데, 제례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전하고 상대의 생각을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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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容淵金丈(宗發,1799) 5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容淵 金宗發(1740~1812)에 답한 편지이다. 스승인 권렴의 遺集 草藁가 이미 나왔음을 전하고 교감을 부탁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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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容淵金丈(1804) 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찾아 뵌 지 이미 반년이 넘었는데 가르침을 받들고자 하는 마음이 날로 더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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俛庵李丈(㙖,1806) 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俛庵 李㙖(1739~1810)에게 보낸 편지이다. 사도세자의 신원을 청하는 영남만인소의 소두였던 이우가 전라도 고금도로 유배되어갈 즈음 보낸 안부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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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龜窩金丈(㙆) 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龜窩 金㙆(1739~1816)에게 보낸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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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晦屛申丈(體仁,1793) 8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敬을 추구하지 않으면 책을 읽어도 단절되고 일에 응함에 있어서도 오류가 많게 된다면서, 敬이란 유학의 一字 부적과 같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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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芝陽趙丈(相彦) 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서원을 세워 崇德尊賢하고 유학의 발전시키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 중의 하나로서, 敎化가 이로써 세워지고 威儀가 이로써 떨쳐지게 되며 禮義廉恥가 이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이어서 서원에서 일어난 變故 관련 수습책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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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臨汝齋柳丈(,1804) 1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臨汝齋 柳(1730~1808)에게 보낸 편지이다. 하회의 玉淵亭에서의 만나 가르침을 받은 것은 평생의 갈증을 푼 것과 같았다고 하고서 자신의 일상 근황을 전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