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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5801

    上趙內舅 1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외숙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한 달 전 川沙로 스승을 찾아뵙고 열흘을 머물다 어제 왔음을 전하고, 상대는 스승의 집과 가까이 있으니 잘 따라 배우도록 권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02

    與南屛鄭丈(璞) 1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스승 김종덕 문하의 南屛 鄭璞(1734∼1796)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스승의 문하를 벗어나서 하릴없이 시간을 허송한다는 근황을 전하면서, 주왕산 유산 계획에 대해 물었다.
    출처 : 유교넷
  • 355803

    與克難齋權丈 1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克難齋 權濟敬(1737~1814)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세상일에 얽매인 채 공부에 있어서 하루는 진보하다 십일을 뒤로 물러나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04

    答柳丈(廷燁,1805) 1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松皐 柳廷燁(1737∼1814)에게 보낸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5805

    與李監役(樹仁,1814) 1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懼庵 李樹仁(1739∼1822)에게 보낸 편지이다. 병으로 고생하는 중에 평소의 소소한 의지와 목표도 상실한 채 그럭저럭 살아가니 예전 격려하고 권면해주던 지극한 뜻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06

    與雪坡孫丈 1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雪坡 孫星岳(1741∼1815)에 보내는 편지이다. 지난해 주왕산을 노닐 때 자신은 達城과 永陽 사이에 일이 있어서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손성악은 대산 이상정의 제자이다.
    출처 : 유교넷
  • 355807

    與止淵南丈(景羲) 1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경주에 사는 止淵 南景羲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 번 만남에서 받은 가르침을 언제나 잊지 않고 있다고 했고, 가을을 맞은 집안의 쓸쓸함으로 인해 더욱 지난번 다녀온 止淵의 경치가 생각난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08

    答閔進士(誾爀) 1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보내준 소중한 서찰에 감사하고 나서 공부에서의 진척을 물었다.
    출처 : 유교넷
  • 355809

    答孫丈(履九) 1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아버지가 생존해 있는 嫡孫의 상에 대해 그 할아버지는 大功服을 입고 朞服을 입지 않는다는 葛庵 이현일의 말을 인용하며 상례에서 중점은 아들에게 있지 손자에 있지 않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10

    答金外舅(龍㶅) 15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외숙인 金龍㶅에게 상례에 관한 내용에 답한 편지이다. 이미 달을 미루어 장례를 시작한 것은 비록 천연두로 인한 것이었다지만 踰月制에 어긋난 것이고 절차에 따라 變服하는 의절을 위배한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출처 : 유교넷
  • 355811

    與李春伯(1809) 1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北亭 李宗周(753∼1818)에게 보낸 편지로, 이전에 함께 慶州의 명승을 함께 노닐며 구경한 흥취는 평생에 없었던 일임을 말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12

    答趙動悔(相述,1796) 1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動悔窩 趙相述(1744~1810)에게 답한 편지로서 상대의 공부가 주로 경전을 넓게 공부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요점을 파악하고 나면 평생의 힘든 공부가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13

    與洪華老(宅夏) 1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華老 洪宅夏(1753~1820)에게 보낸 편지인데, 자신은 산중에서 고요한 가운데 말없는 경지를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유택하는 大山 李象靖의 제자이다.
    출처 : 유교넷
  • 355814

    答李健之 1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健之 李野淳(1755∼1831)에게 답한 편지이다. 손자가 둔한 자질과 급한 성격으로 누를 끼침이 많겠지만 가까이 두고서 가르침으로 그러한 병폐들을 바꾸어 주기를 청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15

    與金日章(慶進,1791) 1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日章 金慶進(1752~1794)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공소하고 거칠지만 스승 문하에서 계발의 가능성을 얻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16

    答趙恭輔(友愿,1795) 2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상대가 편지를 통해 일러준 나태함이 생겨나면 중간에 해이해진다는 경계는 바로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 했고, 어떻게 자신의 여러 병폐를 극복하고 성취를 이룰까를 자문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17

    與金幼澄(1797) 2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金幼澄에게 보낸 편지로 后山 李宗洙(1722 ∼1797)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그를 잃고 남겨진 유림의 안타까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18

    答金幼澄(1807) 2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봄 사이에 角溪에 띠로 엮은 정자를 지었는데, 책을 안고 구름을 베고 누워 晩年을 보낼 만한 곳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19

    答金幼澄 2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中庸과 大學의 순서가 같지 않은 것에 관한 깨우침을 일러 준 것은 지극히 정밀하여 더욱더 상대방의 학문적 식견이 고명함을 알았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20

    與金幼澄 2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스승의 緬禮를 언제로 정해야 장지에서의 일이 순조로울 수 있을지를 염려하고 이어서 선생의 친척과 제자들은 장례에 관해 이론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21

    答金南爲(鵬運,1808) 2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南爲 金鵬運(1755~1812)에게 답한 편지이다. 자신의 神精은 수시로 散失되고 家計는 고갈되어 여러 현명한 벗들의 부끄러움이 될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22

    與柳燁如(晦文,1816) 2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柳晦文(1758∼1818)에게 보낸 편지이다. 上疏 문제는 義에 비추어 볼 때 마땅히 잠시 유보해 놓고 기다렸다 나중에 다시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23

    答權叔尊(得仁) 25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문집간행은 本家에만 맡길 일이 아니므로 같은 동리에 살면서 師門의 일에 열성인 상대가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부탁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24

    與金用吉(始幹) 2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폭염 더위 속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병든 동생과 함께 주왕산에 머물고 있는데 아침 저녁으로 기암절경을 보고 있노라면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25

    答金叔明(熙洛,1802) 2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지난날 교유하며 노닐었던 즐거움을 추억하면서 동생을 데리고 주왕산에 들어가 수 십일을 머무르는 동안 얻은 소득에 대해 이야기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26

    與鄭明應(必奎) 2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동문수학한 벗 魯庵 鄭必奎(1760~1831)에게 보낸 편지이다. 궁벽한 산간에 머물며 비록 서책을 대하고는 있지만 별 소득이 없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27

    與李公宅(仁行,1818) 28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晩聞齋 李仁行(1758~1833)에게 부친 편지이다. 지난 날 玉溪와 遯窟에서 함께 노닐던 추억을 상기했고, 이어서 자신은 닥쳐오는 근심을 피해 주왕산으로 들어온 지 이미 수십 일이 되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28

    答安潤汝(琥重) 28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예전 함께 從遊하던 즐거움을 상기하면서 한 마리의 말을 타고 나가 상대와 함께 유유히 노닐고 싶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모두 실현할 길이 없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29

    與金以凝(羲壽,1820) 2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東園 金羲壽(1760∼1848)에게 부친 편지이다. 세모를 맞은 자연의 풍경을 전한 후 英山은 상대의 고향이자 많은 선배 학자들이 깃들던 곳으로 아직 그들의 자취가 남아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30

    答金文彦(始奎) 3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자신의 기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세월의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젊은 시절 목표를 하나도 이룬 게 없이 하릴 없이 늙어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31

    答權翰卿(時鵬) 3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헤어진 후의 아쉬움과 베풀어 후의를 잊을 수 없다고 했고, 約齋 權炳(1723~1772)의 유고 간행은 교감에 철저를 기해서 오류를 없애야 할 것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32

    與李仲脩(庭淳)夢叟(巖淳,1831) 3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廣瀨 李野淳(1755~1831)의 두 동생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야순의 죽음은 사문의 불행이라며 형을 잃은 두 사람을 위로 했고, 어릴 적부터의 知己를 잃은 슬픔을 말하며 자신은 누구에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33

    與柳景韓(斗文),答柳景韓 3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雅谷 柳斗文(1761∼1822)과 주고받은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5834

    몇몇 친구들과 溪山을 답사하고 함께 좋은 논의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阿谷에 들러 景韓 형제를 만난 것은 좋은 일이 겹친 것이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35

    答徐誠伯(有濂)柳景緝(德祚,1812) 3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일찌기 柳景範과 더불어 茅屋을 지어 함께 지낼 것을 결의했는데, 그 벗을 잃은데다 사는 곳도 멀어져 옛 희망을 실현할 길이 없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36

    與金一老(宗壽) 3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川上에서 하루 밤을 지내며 나누었던 대화를 회고하면서 주왕산 遊山을 조만간 도모하자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37

    答金稺瞻(斗壽) 35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지난 번 만남 이후 헤어진 아쉬움을 전했고 서책에 뜻을 두고 벗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身病을 잊는 방법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38

    答金肯吾(在根,1822) 35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은거하여 지내는 가운데 보름간 함께 지냈던 金洛均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39

    答趙天休(基永) 3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方壺 趙遵道(1576~1665)의 遺文이 상대의 노력으로 편집되었다고 들었는데 이제 對勘의 명을 받들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40

    答李善長(元祥) 35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평소 간절히 보기를 원했던 大學補遺를 오랜 사귐의 의를 잊지 않고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5841

    答柳周翰 3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벗인 柳炳文(1766∼1826)을 잃은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그와의 우의는 다른 사람이 미치지 못함이 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42

    答柳周翰 3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상대가 물어온 中庸의 “誠을 가릴 수 없다[誠之不可掩].”는 구절의 내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43

    答洪利用(宗涉) 3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靑城(현재의 청송)에서의 모임은 6‧7년이 지났지만 때때로 생각이 나서 마음이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44

    與金稺功(養運) 3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霽陰 金養運(1764~1824)에게 보낸 편지인데, 자신의 일상은 근심 중에 지나는데 장차 이렇게 끝이 날까 걱정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45

    答金稺功 4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商山 趙子希가 자신이 사는 곳을 방문하여 며칠 동안 함께 지냈는데 그의 풍류와 언변이 뛰어났음을 말했고 상대와 함께 하지 못해 유감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46

    答趙學仲 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자신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의지는 나태해지고 시간이 갈수록 학문은 더욱 퇴보하여 못난 촌사람이 되어간다는 한탄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5847

    答趙學仲 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스승인 川沙의 유집 간행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들었다면서 제자들이 힘을 합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48

    與趙學仲(1826) 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노경에야 비로소 주자가 말한 하루의 편안함이 하루의 복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고 했고 본원을 점검하는 것이 老境의 공부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49

    答趙學仲(1829) 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자신은 날마다 손자들과 文義를 공부하는데, 이는 마치 도살장에서 禮佛하는 격인 것 같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5850

    答趙學仲(1831) 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
    손자들과 마치 친구처럼 어울려 文義를 토론하는 즐거움을 누림을 말했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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