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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景範 5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柳洛文에게 보낸 편지인데, 退溪의 저작을 가려서 베끼고 있는데, 옮겨 적은 것을 보내니 상대도 베껴두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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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景範 5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퇴계의 저작을 베껴 쓰는 일의 진척상황을 전했고 병이 다소 호전되어 몸을 일으키는 것이 나아졌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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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景範 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산중에 눈이 오고 계곡에 얼음이 언 소식을 전하고 그 가운데 두문불출하여 수십 일의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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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守初(基復) 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금년 들어 병이 다소 나아지고 벗들과의 만남도 줄어들었다는 근황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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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際可(秉運) 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동문수학한 벗인 俛齋 李秉運(1766~1841)에게 보낸 편지로 자신의 추위 속에서의 안부를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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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際可 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40여년이 되었지만 행적을 적는 일을 이제야 시작하여 龜窩 金㙆(1766~1841)이 지은 行狀을 받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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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際可 8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병든 몸에 하루가 일 년 같지만 蘇湖와 高山 사이를 노닐던 시절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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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時有(經進) 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보내준 문집을 스승의 문집과 수시로 열람하는데, 마치 초가집의 같은 방에서 그분들의 말씀을 친히 듣는 듯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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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光賓(炳觀,1806) 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井山 金炳觀(1767∼1825)에게 답한 편지이다. 惡德‧凶德 등의 표현이 있지만 德은 본디 오로지 善 일변도의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공부하는 사람은 이 德의 純善無惡한 실체 위에서 실천 공부를 해야만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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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閔祖彥(宗爀)稺學(致博,1797) 1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과거시험 역시 원래 추구해야 할 목표이기는 하지만 당장 직면한 또 하나의 목표, 즉 爲己之學에 주력하여 성취하길 바란다는 당부를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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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右文(羲發) 1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雲谷 李羲發(1768∼1849)에게 부친 편지이다. 죽은 아들과 요절한 손자가 요절해 그 뜻과 사업이 잊히는 것이 원통하다면서 대략 적은 草記를 함께 보내니 그것을 토대로 행록을 지어 줄 것을 부탁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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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德明(誠進,1835) 1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73세에 쓴 편지인데, 백발에 슬픔이 가득하고 그저 세월만 모한 채 살아가는 듯하다며 후손들의 죽음을 보는 안타까움을 호소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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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叔章 1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우리가 일상에서 직면하는 모든 곤경과 고통이 바로 유학이 지향하는 공부의 징험처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을 완성하는 토대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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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學源(家淳) 1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霞溪 李家淳(1768∼1844)에게 답한 편지이다. 해가 갈수록 병이 더해지고 있으며 비록 책을 눈을 가리고 잠을 쫓는 수단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정신이 쇠약해져 물이 새는 그릇이나 꺼져가는 촛불 같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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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子强(健休) 1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大埜 柳健休(1768∼1834)에게 부친 편지이다. 寢郞(參奉벼슬을 일컬음) 兄이 세상을 떠나자 유림이 의지할 곳이 없어졌고 斯文의 희망이 사라졌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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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徐景濂(有洛) 1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近齋 徐有洛(1770∼1834)에게 답한 편지이다. 湖軒에서 밤에 토론하고 龜社에서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일이 부박한 세상에서 다시 얻기 어려운 귀한 모임이었다고 회상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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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元禮(養中) 15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자신은 老境과 형제의 죽음에 따른 상심으로 나무처럼 뻣뻣하게 되었고 정신조차 상실한 듯하다며 괴로운 심경을 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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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厚之(載坤) 15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상례의 追後成服과 관련된 문제를 언급한 편지인데, 이전 선배의 定論이 있으니 이를 따르면 되지 별도의 杜撰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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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厚之 1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산소의 비석을 세우는 문제에 관해 언급한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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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益之 1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敬과 閑邪存誠 등을 중심으로 心에 관한 문제를 朱子의 견해에 의거해 설명한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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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益之 1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두문불출하고 벌레나 물고기와 벗하며 살아가는 근황을 전하고, 三貴와 四勿은 유학에서 서로 전하는 비결과 같으니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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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愼可(秉遠) 1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동문수학한 벗 所庵 李秉遠(1774∼1840)에게 요통과 안질로 힘든 가운데 서책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고 답한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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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叔顒(象觀,1809) 1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30여 년 동안 뛰어난 선배 학자들에게 나아가 배웠지만 여전히 큰 진전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배움의 진보를 다짐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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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誠伯(致明) 2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定齋 柳致明(1777∼1861)에게 답한 편지로, 공부가 전일하지 않고 이치에 투철하지 않으면 스스로 안배하기 어려움을 알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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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子周(文裕,1830) 2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磨巖 李文裕(1777∼1854)에게 답한 편지이다. 홍역이 그곳에 미치지 않았다니 외부의 사특한 객기 군자가 독서하는 곳을 침범하지 못함을 알겠다며 다행스러워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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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重如(奎燮) 2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國喪 중에는 민간의 크고 작은 제사를 그치는 것이 국가에서 규정한 제사의 의전이라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상례와 제례에 관한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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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而聖(彥聖,1823) 2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方翁의 유문과 黃君의 散藁를 차례로 간행해 죽은 벗이 잊혀지지 않게 하자는 견해에 동의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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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晦則(鼎文,1832) 2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壽靜齋 柳鼎文(1782∼1839)에게 답한 편지로 공부는 오로지 독실하게 밀고 나아가야 함을 말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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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晦伯(根復) 2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보내온 서신의 공부 관련 내용은 어느 것도 증험되지 않거나 절실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러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자신을 단속하기를 오래하면 반드시 성취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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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徐若先(成烈,1831) 2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산간벽지 깊은 곳에 처하여 벗들의 소식을 접한 지 오래되었다고 했고 아이가 서울을 다녀오는 길에 들를 것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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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叔仁(東協,1807),答李叔仁(別紙포함),答李叔仁,與李叔仁李老則(元協) 2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李東協과 주고받은 4통의 서신이다. 心을 중심으로 하는 수양의 문제, 학문방법의 문제, 下學上達의 문제 등을 다루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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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景烈 3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朱子書節要는 그 논리가 엄밀하고 규모가 크므로 거듭 읽으면 반드시 배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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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海明(炳運)別紙(1830) 3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조선의 유학자들은 禮記에 근거해 禮說을 논했음을 말했고, 선배들의 定論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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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來鳳 3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공부는 절실하고 비근하며 쉬운 곳에서부터 시작해 깊이 생각하고 힘써 행해야 한다고 했고, 別紙에서 中庸에 관한 상대의 여러 의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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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聲振(秉玉,1831) 3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흉년의 정황을 근심스레 말했고 茅屋을 지어 병을 다스리며 지내는 것이 오랜 계획임을 말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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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君悅(基抃,1829),答趙君悅 37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趙基抃에게 답한 2통의 편지이다. 첫 번째 편지에서는 四書를 잠심해 숙독할 것을 말했고, 두 번째 편지에서는 顔子의 四勿과 曾子의 三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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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重汝(艮壽,1813),答金重汝(1816) 3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앞에서는 下學人事의 공부가 바로 上達天德의 공부임을 강조했고, 뒤의 편지에서는 四書와 小學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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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直(洛均) 4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심신을 추스리고 아이들을 깨우치며 효제를 실천하면서 독서를 읽는 것으로 여생을 마치는 것이 고인들이 추구한 바인데 자신은 여러 현실적인 장애로 여의치 않음을 말하고, 근래 읽고 공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면려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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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仲憲(秉章,1823) 4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先後緩急의 순서에 비추어 보면 詩書禮樂 등의 책은 四書만 하지 못하다고 평했고, 灑埽應對의 일 가운데서 순서에 입각해 차근차근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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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仲思(致儼) 4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萬山 柳致儼(1810~1876)에게 답한 편지로, 상대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으니 더욱 정진해 家學을 빛내라고 면려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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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士直(宅貞) 4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三冬 사이 이룬 학문에서의 성취에 대해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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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黃㶅 4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밖으로는 세속의 일에 매이고 안으로는 낡고 나태함이 습관을 이루어 공부에 큰 진전이 없는데, 세월을 흘러가 끝내는 케케묵은 촌사람이 되어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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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仲弟達初(潑)叔弟粹玉(1791) 4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趙學仲‧柳周翰‧朴宗寶‧權星耉 등과 孺子亭에서 모여서 강학한 성과를 전하면서 마음 속으로 깨달은 바가 없지 않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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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兩弟(1792) 4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첫째 동생은 지나치게 강하고 둘째 동생은 지나치게 유약하니 서로를 보완해가면서 부형들의 기대에 부응하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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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兩弟 4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옛 사람은 사흘을 떨어져 있으면 괄목상대하게 진보했다면서 동생들의 학문의 진전을 묻고 서로 도와 앞으로 나아갈 것을 면려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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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達初 4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첫째 동생에게 답하는 편지로 喪禮에 관한 문제에 대해 자문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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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粹玉 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막내 동생에게 답한 편지로 心經을 통해 좋은 의견을 제출한 데 대해 칭찬하면서, 성격이 지나치게 유약해 자세하게 이치를 캐물어 들어가기를 꺼리는 점을 고치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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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季弟愼之(淑,1814) 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大廳 공사를 끝냈는지를 묻고, 자신의 본래 의도는 크게 짓지 않고 단지 대여섯 간의 규모로 해 선조를 받들고 후손들이 여유롭게 지내는 것이었다고 밝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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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伯兒元模(1802) 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맏이에게 답하는 편지로, 배운 바 책의 내용을 體認하지 않고 하루하루 헛되이 보내는 것을 질책하고 일상 중에서 늘 儒家 자제의 기상을 잃지 말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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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元兒(1804) 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맏이에게 보낸 편지로, 병산서원과 고산서원 등을 다녀오면서 여러 좋은 벗들과 교유한 여정의 성과를 소개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