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嘯巖處士徐公行狀 28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嘯巖 徐承禧의 행장이다. 1588년(선조 21) 義城 佳音里에서 아버지 徐克悌와 淑夫人 咸陽朴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자질이 뛰어났고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당시 梧峯 申之悌, 敬亭 李民宬 등과 같은 지역에 살면서 학문을 연마하고 막역한 벗으로 사귀어 ‘三道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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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生曾王考濯滄軒府君家狀 3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증조부 徐漢奎(후에 漢祐으로 개명) 家狀이다. 아버지 徐尙弼과 어머니 密陽朴氏 朴恁의 따님과 사이에서 1667년(현종 8)에 태어났다. 1682년(숙종 8) 부친상을 당하여 어린 나이로 예를 다해 상례를 치렀고 탈상 후 과거에 뜻을 접고 어머니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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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曾祖考九巖公家狀 3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종증조부 徐漢儁의 가장이다. 아버지 徐尙逸과 어머니 義城金氏 金湊과의 사이에서 1668년(현종 9) 9월 8일 松生縣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자질이 淳古하고 총명하였으며 특히 기억력이 뛰어났다. 우애가 독실했는데 中年에는 上坪에 옮겨와 집을 짓고 형제가 노년을 함께 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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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處士府君家狀 3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아버지 徐爾亮의 가장이다. 아버지는 徐致中이고 어머니는 完山柳氏와 義城金氏이다. 생부는 徐致龍이고 어머니는 鵝州申氏와 咸安趙氏인데 咸安趙氏 소생이다. 1733년(영조 9) 8월 4일생인데, 자질이 총명하여 스스로 배움에 나아갔고 문장을 이해함에 있어서 다른 아이들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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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生員晩洲權公遺事 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權以復의 遺事이다. 권이복의 字는 旡悔이고 號는 晩洲로 생원을 지낸 厚庵 權濂의 아들로서 1740년(영조 16) 5월 1일 安德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과 달랐고 태어난 자질이 고명하였으며 경서를 두루 읽었고 특히 맹자를 중시했다. 자라서는 역법과 지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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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祖考處士府君遺事 8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고조인 權尙逸의 遺事이다. 禮賓寺參奉을 지낸 아버지 梅軒 權琫과 鵝州申氏 申恁의 따님과의 사이에서 1628년(인조 6) 8월 14일에 태어났다. 타고난 자질이 粹美하고 寬弘하였으며 아버지와 어머니 상을 당함에 한 결 같이 가례에 입각해 의절에 맞게 처리했다. 향리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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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考處士府君遺事 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서활의 조부인 徐致中의 행록이다. 徐致中은 아버지 徐漢挺과 加平李氏 李垃의 따님과의 사이에 1709년(숙종 35) 12월 25일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질이 端粹하고 국량이 넓고 두터워 사람들이 모두 큰 인물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12세에 아버지 상을 당해 장례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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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處士行錄 1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處士 黃㶅의 行錄이다. 黃㶅은 字가 學中이고 그 선조는 平海人으로 靑鳧의 靑雲驛에 들어와 世襲吏役을 지냈다. 黃㶅은 1758년(영조 34) 2월 6일 驛村에서 태어났다. 厚庵 權濂의 문하에 나아가 처음엔 과거공부를 익히다 그것이 末業임을 알고 性理書를 배우기를 청하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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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妣孺人咸安趙氏行錄 1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서활의 어머니 行錄이다. 함안조씨는 貞節公 漁溪 趙旅의 후예인데, 아버지는 趙景源과 어머니 義城金氏 金世鍵의 따님 사이에 1731년(영조 7) 2월 26일에 태어났다. 1758년(영조 34)에 서활의 아버지에게 시집왔는데, 婦德을 잃은 적이 없다. 남편이 벗을 좋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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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室孺人永川李氏行錄 1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죽은 부인 永川李氏을 위해 지은 行錄이다. 1759년(영조 35) 3월 8일 생인데 천성이 柔婉하고 총명함이 뛰어났다. 자라서 達城의 徐活에게 시집을 왔는데 婦道를 잘 지켜 시부모를 모심에 효성을 지극히 해 先妣인 朴氏가 여러 달 병으로 누었을 때 밤낮으로 지극히 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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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弟處士君行錄 16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仲弟의 행적을 적은 글이다. 성격이 강직하고 견고하며 깨끗했는데, 1780년(정조 4) 숙부에게 입후되어 생가를 포함한 두 집의 어버이를 정성으로 모셨다. 1789년(정조 13)에 생부가 돌아가시자 자신 집안의 일보다 생가의 일을 우선적으로 돌보았으며 사소한 음식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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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1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李秉運의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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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19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李秉遠의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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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李羲發의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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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李家淳의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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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0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趙基永의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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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申思永의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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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李彦淳의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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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李秉夏의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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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李玄好의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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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金養休의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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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1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琴詩述의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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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柳致球의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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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2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金鎭宇의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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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李秉運과 李秉遠이 지은 제문이다. 淳和한 자태와 精邃한 학문을 칭송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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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柳範休(1782~1839)가 지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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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金道壽가 지은 제문이다. 실천은 孝悌를 위주로 했고 학문은 誠敬을 위주로 했음을 말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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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4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趙纘漢, 柳致球, 申弘運 등이 지은 제문이다. 가학을 이었고 川沙에 문하에 들어 배웠음을 말했고, 공부는 엄밀했고 실천한 도리는 평실했다고 추모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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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25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대산 李象靖의 손자 李秉運(1766~1841)이 지은 행장이다. 서활의 高祖는 徐尙逸이고 曾祖는 徐漢挺이며 祖는 徐致中인데 모두 隱德이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 學窩 徐爾亮과 咸安趙氏 貞節公 趙景源의 따님인 어머니 사이에서 1761년(영조 37) 11월 16일 馬坪里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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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33 / 기록자료>고도서 / 서활정재 柳致明이 지은 묘지명이다. 아버지 徐爾亮와 어머니 咸安趙氏 趙景源의 따님 사이에 태어났다. 아버지에게는 繼配인 咸陽朴氏 朴聖藎의 따님이 있었다. 厚庵 權廉에게 배웠으며 스승인 후암공이 죽은 후에는 그의 아들인 晩洲 權以復을 스승의 예로 모셨다. 1789년(정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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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천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문천집(文泉集) 文泉 金熙紹의 문집. 木活字本, 金禹銖, 1874, 4卷2冊:四周雙邊, 半郭 21.3×15.1㎝, 10行21字, 上下二葉花紋魚尾:31.4×20.2㎝. 卷1에는 詩와 詞가 실려 있고, 卷2에는 書, 卷3에는 雜著‧箴‧銘‧上梁文‧記‧序‧祭文, 마지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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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高山書堂, 大山先生颺黃日有感, 大山先生舊宅, 高山講席用先師集中韻示諸友, 陶山書院賜祭日有感, 讀退溪先生集謹次陶詩飮酒二十韻, 謹次退陶集黃錦溪十畵韻(陋巷簞瓢, 舞雩風詠, 桐江垂釣, 栗里歸耕, 濂溪愛蓮, 孤山詠梅, 洛社獨樂, 武夷九曲, 孔明草廬, 康節兒車), 謹次退陶集和陶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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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聖淳孟浩哀詞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이 문집의 저자의 친구인 이성순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 먼저 이성순은 행실이 후덕하고 언사에 과묵하고 재주가 높고 겸손했으나 중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서 자손이 의지할 데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荀卿의 「傷悼詩」를 외어 위로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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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君載淨哀詞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권재정은 안동권씨 명문가 인물인데 훌륭한 姿性을 가졌고 저자와의 만남에서 더욱 이러한 면을 확인했는데 24세에 일찍 죽어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한 글이다. 특히 義利 분별이 엄정하여 대성할 인물이어서 일찍 죽게 한 天道를 알 수 없다고 탄식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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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從孫綱銖誄詞 4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집안 형인 海中公의 長孫인데 학문을 즐겨서 해중공이 아꼈으며 저자가 형의 집을 방문했을 때 잠을 방해할까 책을 소리내서 읽지 못하게 하였는데 손자는 암송하고 밤이 깊어서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학문에 매진하다 感疾로 죽어서 안타깝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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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東巖柳先生長源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상대방의 안부와 자기 안부를 하고 학문의 방법에서 실천이 중요함을 언급했다. 성현의 문자를 보면서 齊家나 接人에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이치에 어긋나고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하고 약석이 되는 가르침을 내려 줄 것을 당부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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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心學圖의 양심과 본심이 인심의 발현으로 보면 어느 것이 양심이고 본심인가에 대한 질문에 퇴계의 대답을 제시하면서 사람에게 여섯 개의 마음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中庸』과 서산진씨의 말을 빌려 주장을 제시했다. 또 「閑邪存誠章」‧『近思錄』의 彼此, 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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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后山李先生宗洙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이종수에게 보낸 편지로 안부 인사를 하고 찾아서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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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公埦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이완에게 보낸 편지로 최선생이란 분의 勸戒를 많이 저버렸는데 유사를 읽고 가르침을 다시 받는 것 같다고 하고 문집을 맡아 일을 추진하지 못하는 것을 죄스럽게 여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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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壺谷柳公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유호곡에 보낸 편지로 자신의 건강이 나쁘고 학문도 하지 못한다고 겸사하고 유교가 떨어진 시기에 기둥과 같은 책임을 다하며 후배를 이끌어 준다고 그를 칭찬했다. 그리고 『節要書』를 읽으면서 의심나고 모르는 것이 있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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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壺谷柳公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가을이 옴에 몸을 보살피고 우환 소식이 와도 듣기만 하고 哭를 하지 못하며 깊은 곳에 묻혀 허물이나 없게 지내며 問候도 오래 못함을 말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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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際可愼可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자신은 머리는 어지럽고 이도 좋지 않아 위축되어 高山의 책임을 다할 수 없다고 命을 따를 수 없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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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廬江의 일에 대하여 사리에 밝은 사람이 변화에 대응을 해야지 기분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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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公宅仁行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자신은 집안에 엎드려 있다고 하고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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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公宅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먼저 더운 날씨 걱정을 하며 안부를 묻고 婦事로 근심이 된다고 하였다. 『대산집』을 보고 정한 견해가 있으면 말해주기를 당부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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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公宅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행사가 정돈되었는가 묻고 마음은 主宰이기 때문에 빼앗기거나 지나치게 어렵게 해서도 안 되며 점진적으로 공부를 넓혀나가서 일에 임하여 통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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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公宅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공부하고 있는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기는 허물을 고치지 못하고 물러나 있어 자기와 남을 다 그르친다고 겸양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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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公宅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亡弟의 行狀을 봐달라고 부탁한 편지이다. 직접 본 것, 전해들은 것을 기록했지만 누락한 것이 많다고 스스로 겸양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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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學先獻淳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돌아올 때 주자의 「鳳山詩」를 외우며 슬픈 감회를 일으키고, 주자의 편지와 정이의 말을 가져와서 천지만물과 내가 하나라는 점을 말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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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學先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희소종형의 죽음 애도하고 古人의 시가 지금의 자기 현실을 대신 말해준다고 하고 「移居韻」에 화운시를 지어서 서로 생각하는 심정을 나타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