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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6101

    藏敎閣上樑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正祖가 嶺南人을 위무하면서 벼슬을 내려준 교지를 갈무리하기 위해서, 영남의 根柢라고 할 수 있는 安東에 藏敎閣을 건립할 때에 작성한 상량문이다. 1807년(순조 7)에 지방 유림의 발의로 장교각을 세우고 정조가 經筵에서 내린 교지를 봉안하려는 논의가 이루어져 건립에
    출처 : 유교넷
  • 356102

    旗山精舍記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1796년(정조 20)에 안동 동쪽에다 이종주 가문의 자제 8~9인이 협력하여 지은 기산정사에 대한 기문이다. 집안 자제들이 모여서 학문을 강론하고 정신을 수양하기 위해 지은 이 건물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곳에서 속세의
    출처 : 유교넷
  • 356103

    養蒙齋記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族祖 東皐公의 養蒙齋에 대한 기문이다. 동고는 품속에 보배를 간직한 채 은둔하여 사는 인물로, 마을에서 가깝고 산수가 그윽한 곳에 이 양몽재를 지어서 門族 및 인근의 자제들을 모아 학문을 가르치고 있는 인물이다. 이종주는 동고와 같은 집안의 후생으로서 이곳에서 학문을
    출처 : 유교넷
  • 356104

    北亭記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저자가 1802년(순조 2)에 지은 北亭에 대한 기문이다. 주위에 아름다운 경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자의 이름을 ‘北’이라는 글자로 명명한 것을 나무라는 혹자의 비판에 대해서, 이종주가 북정이라고 이름을 붙인 내력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자신은 험난한 가운
    출처 : 유교넷
  • 356105

    南屛集後序(1813)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저자가 스승으로 모셨던 南屛 鄭璞의 문집에 쓴 서문으로 1813년(순조 13)에 지었다. 정박의 志趣는 東漢의 高士와 같고 풍류는 江左의 群賢과 같고 문장은 盛唐의 諸家와 같은 바, 저자가 중국의 빼어난 산천을 유람하고 중국의 뛰어난 인물과 교류하면서 얻고자 하였던
    출처 : 유교넷
  • 356106

    祭大山李先生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저자의 스승인 大山 李象靖을 추도하는 제문이다. 孔子 이후로 전해지던 유학의 도를 退溪 李滉(1501~1570)이 이어받아 嫡傳이 되었고, 대산은 稼亭 李穀(1298∼1351)과 牧隱 李穡(1328∼1396)의 후손으로서 錦水 땅에서 퇴계의 학통을 계승하며 明誠과 敬
    출처 : 유교넷
  • 356107

    祭金日章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金慶進을 추도하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08

    祭族叔桐湖公(弘著)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族叔인 桐湖 李弘著(1730~1791)를 추도하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09

    祭族姪汝俊(民秀)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族姪인 李民秀를 추도하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10

    祭南屛鄭公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저자의 스승인 南屛 鄭璞을 추도하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11

    祭川沙金先生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저자의 스승인 川沙 金宗德을 추도하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12

    祭宗兄虛舟公(宗岳)文(遷厝時)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宗兄인 虛舟 李宗岳(1726~1773)을 추도하는 제문으로, 移葬할 때 지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13

    祭俛庵李丈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俛庵 李㙖(1739~1810)를 추도하는 제문이다. 이상정의 조카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14

    祭族叔處士公(孝慶)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族叔인 李孝慶을 추도하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15

    祭雨臯金公(道行)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雨皐 金道行(1728~1812)을 추도하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16

    柳子美(懿文)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柳懿文을 추도하는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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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17

    祭艮巖李公(埦)文(遷厝時)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艮巖 李埦(1740~1789)을 추도하는 제문으로, 移葬할 때 지은 글이다. 이상정의 아들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18

    祭霽庵族兄(宗儒)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族兄인 霽庵 李宗儒(1749~1811)를 추도하는 제문이다. 뒤에 이름을 周老로 고쳤다.
    출처 : 유교넷
  • 356119

    祭宗姪竹塢翁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宗姪인 竹塢 李宜秀(1745~1814)를 추도하는 제문이다. 初諱는 廷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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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20

    祭李君擇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李(1755~1813)을 추도하는 제문이다. 본관은 韓山으로, 君澤은 字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21

    祭龜窩金令公(㙆)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龜窩 金(1739∼1816)을 추도하는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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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22

    祭族叔曳尾公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族叔인 曳尾 李有慶을 추도하는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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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23

    祭李參判令公(鼎揆)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養閒堂 李鼎揆(1735~?)를 추도하는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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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24

    祭亡室孺人全州柳氏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부인인 孺人 全州柳氏를 추도하는 제문이다. 通德郞 柳明休의 딸이며, 三山 柳正源(1703~1761)의 손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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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25

    祖考通德郞府君家狀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祖父인 通德郞 李元美(1690~1765)의 행적을 기록한 家狀이다. 본관은 固城, 자는 美卿, 호는 永慕堂이다. 11세조는 鐵城府院君에 봉해진 容軒 李原(1368~1429)으로 世宗을 보필하고 左議政에 올랐으며, 이원의 아들 李增(1419~1480)이 안동에 거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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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26

    先考成均進士府君家狀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이종주의 아버지인 李弘直(1724~1768)의 행적을 기록한 家狀이다. 자는 孟方, 호는 嶺隱이다. 증조부는 李後植, 조부는 李時興, 아버지는 李元美, 어머니는 昌寧成氏이다. 성장하여 厚庵 權濂(1701~1781)에게 수학하였고, 1754년 增廣試 진사에 합격한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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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27

    挽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鄭來成‧李祥發‧權思浹‧李野淳‧金是瓚‧李頤淳‧李泰淳‧金熙周‧李鼎儼‧李鼎基‧姜‧金熙奮‧金會運‧柳炳文‧李家淳‧柳徽文‧李宗休 등 17인이 지은 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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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28

    祭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李龜星‧李秉運‧柳致明 등 3인이 지은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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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29

    行狀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李宗周의 字는 春伯, 號는 北亭 또는 癡軒, 本貫은 固城이다. 조상 중에는 고려시대에 文僖公 李尊庇‧文貞公 杏村 李嵒‧文敬公 平齋 李岡이 모두 덕업과 문장이 뛰어나 역사에 기록되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容軒 李原이 鐵城府院君에 봉해졌고, 李增에 와서 비로소 안동에 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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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30

    墓誌銘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어려서부터 한 번 본 글은 바로 외울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으며, 장성해서는 鄭璞과 李象靖에게 배운 뒤에 川沙 金宗德에게도 수학하며 계발한 바가 많았다. 모친상을 당한 뒤로는 과거공부에 대한 뜻을 버리고 四書六經을 비롯하여 兩漢과 唐宋의 글을 익혔으며 특히 朱子와 退溪
    출처 : 유교넷
  • 356131

    跋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梅村 琴詩述(1783~1851)이 지은 跋文이다. 『북정집』은 저자의 시 300여 수를 비롯하여 上樑文‧序‧記 등의 문자와 家狀 약간에다 벗들이 지은 輓詞와 誄文, 후인들이 행적을 기술한 後述文字를 모아 모두 5권으로 엮은 것인데, 이는 저자의 셋째아들 李五秀가 모아
    출처 : 유교넷
  • 356132

    跋(1847)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종주
    古溪 李彙寧(1788~1862)이 지은 跋文이다. 저자의 遺集은 文이 약간이고 詩가 300여 편이다. 시를 잘 보는 사람이라야 그 시를 읽어보고서 그 사람까지도 알 수 있는데, 나와 같이 시에 어두운 사람이 저자의 사람됨을 가지고 저자의 시를 논한다면 되겠는가?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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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33

    비지집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비지집(賁趾集) 賁趾 南致利의 문집. 木板本, 南斗源‧丁思愼, 1934, 4卷2冊:四周雙邊, 半郭 20.4×15.4㎝, 10行20字,內向二葉花紋魚尾:31.0 ×20.0㎝. 鶴洞 鄭維藩(1583~1649)이 흩어진 유문을 수습하였는데 마무리하지 못하고 세상을 마쳤다
    출처 : 유교넷
  • 356134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敬次退溪先生遊淸凉山韻(1564), 原韻, 謹次退溪先生遊普賢庵韻, 原韻, 紫霄峯分韻得容字, 退溪先生輓詞(1571), 看復卦有得呈李宏仲(德弘○1573), 又用前韻呈李宏仲, 次李宏仲得字韻, 又次得字韻, 原韻, 用金道盛(隆)韻呈李宏仲, 又呈李宏仲, 輓裴參判(天錫), 陶山雜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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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35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肺石, 舜有羶行, 豐稷講無逸, 君臣相正國之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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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36

    答李宏仲(1573) 9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李德弘에게 답한 편지이다. 權宇와 그대가 문답한 논의를 읽어보고 계발된 것이 많았고, 자신의 견해를 적어 권우에게 보냈으니 조만간 볼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그 다음은 이덕홍과 復卦에 대해 논한 것이다. 朱子는 「答呂子約書」에서 “지극히 靜한 때에는 다만 能知와 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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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37

    與權章仲(好文,1576) 10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權好文에게 보낸 편지이다. 『理學通錄』을 간행하는 일은 月川 趙穆(1524~1606)과 權宇에 질의를 하였으니, 조만간 결정하여 시행할 것이라 하였다. 권우가 도산서원에 머물며 자신을 불렀으나 말이 없어서 갈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도 서원에 모여 장로들의 지시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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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38

    答或人 11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어떤 사람의 물음에 답한 편지이다. 已發 후의 裏面과 일반 裏面의 차이점에 대해 물었는데, 장경부와 주자의 설을 인용하여 裏面은 하나의 裏面이고 두 가지로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또 하나는 어구 풀이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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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39

    答金達遠(垓)問目 12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金垓(1555~1593)의 예에 관한 물음에 답한 것이다. 問 : 다른 사람의 후사가 된 경우에는 본생부모의 상례에 不杖朞 상복을 입고 心喪 3년을 치는 것이 옳은지? 그리고 題主에 養父로 칭할 경우에는 예에서는 상고할 길이 없지만 伯父로 칭할 경우에는 인정상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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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40

    答金達遠(論喪中變禮,1579) 25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상중 變例에 대한 김해의 물음에 답한 것이다. 『杜氏通典』의 조부의 상중에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을 때 상복에 대해, 『두씨통전』의 부모의 상을 함께 치르는 것과 練日(소상)에 喪廬나 堊室에 거처하는 것에 대해, 『의례』의 오복과 고금의 연혁에 관해 문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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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41

    與具栢潭(鳳齡,1579) 30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栢潭 具鳳齡(1526~1586)에게 보낸 것으로 상례에 관해 논하였다. 부친상이 끝나지 않았는데 모친상을 당했을 때 상복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모상을 당해 大祥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형제의 초상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부모상 중에 부모상을 당하면 承重喪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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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42

    與邊靑松(永淸,1578) 32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靑松府使를 지낸 邊永淸(1516~1580)에게 보낸 것으로 선친의 墓誌石 새기는 일에 관해 당부한 편지이다. 8월 15일을 加土하고 誌石을 묻는 날로 잡았다고 하였다. 지석의 문장은 모양에 맞게 종이를 잘라서 정서해서 보낸다고 하였다. 돌에 새길 때는 종이 모양에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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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43

    答權定甫(宇)問目 1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權宇(1552~1590)의 물음에 답한 편지이다. 『중용』 27장 이상의 盡心장과 至誠前知無息장은 성인의 도를 말한 것으로 바로 天道를 말한 것이고, 尊德性 이하는 學者의 일을 말한 것이니, 같은 장 안에 선후가 한결같지 않은데 人道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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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44

    答權定甫問目 6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의 물음에 답한 편지이다. 朝夕奠과 上食 때 주인 이하 재배례가 어떻게 되는가. 獻茶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魂帛을 밤이면 靈床에 놓고 옷으로 덮고 아침에 다시 靈座에 내놓는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상주는 문을 나서서 손을 전송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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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45

    答權定甫(1775) 8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목에 밤만한 혹이 나서 고생하고 있다고 하였다. 중형은 지난 달 성균관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어깨가 아파서 가지 못했다고 하였다. 廬峯에서 만날 약속을 조만간 이루어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嗜慾을 끊고 조용히 앉아서 눈을 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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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46

    答權定甫(1576년4월2일) 8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서원에서 만날 약속을 조금 미루자고 하고 몇 가지를 권우의 물음에 답하였다. 『理學通錄』은 서원에서 만나 자세히 논의하자고 하였다. 이 책을 완전하게 구비하지 못하면 吾道의 부끄러움이 될 것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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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47

    答權定甫(4월7일) 10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風病이 들어 먼저 왔기 때문에 본래 서원의 節目과 規約을 정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결말났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이학통록』을 교정하는 일은 힘을 다 써야 하지만 權丈이 오는 것을 기필할 수 없고 單辭도 보지 못했으니 어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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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48

    答權定甫(6월3일) 10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역동서원에서 添刊하게된 곡절을 월천 조목 어른께 상세히 아뢴 것은 잘한 것이라 하였다. 저자 자신도 마땅히 그곳으로 가서 節目이 어떤지 들어야 하지만 말이 없어서 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뜻은 전에 이미 말했고, 다만 李庭栢(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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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49

    答權定甫(1577년정월10일) 11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편지를 받고 신년을 잘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모친이 병이 나서 늦겨울부터 탕약으로 모시고 있으나 차도가 없어도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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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50

    答權定甫(정월22일) 11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전에 직접 찾아와 주고 또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으니 매우 감사하다고 하였다. 모친의 병세는 더 하지도 덜 하지도 않고 기력이 점점 쇠약해지니 걱정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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