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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6151

    答權定甫 11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그대 누나의 죽음을 듣고 몹시 놀라고 애통하다고 하였다. 복제도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몇 가지 제시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152

    答權定甫(12월) 12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친구로서 가르침을 잊지 말라는 간절한 부탁과 『이학통록』에 誤字가 많다고 들었는데 매우 걱정이라고 하였다. 또 竹山에서 『啓蒙傳疑』를 간행한다고 들었는데, 『이학통록』보다 오자가 더 많을 것 같아서 염려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153

    答權定甫(1578년정월) 13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별지를 통해 물은 것은 지금 정신이 황망하여 자세히 볼 수 없으니 나중에 다시 보내겠다고 하였다. 『이학통록』은 이미 교정을 마쳤을 것 같지만 오자가 전혀 없다고 보장할 수 없고, 本草를 이봉사가 이미 가져갔다고 하니 매우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154

    與權定甫 13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이 문장으로 마음이 빼앗기는 것을 경계해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덕홍과 주고받은 편지를 보니 논의가 지루하고 산만한 병통이 있으니 고쳐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155

    答權定甫(7월) 14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이덕홍과 주고 받은 편지를 보니, 省察은 행할 때 공부이지만 성찰은 마음에 知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덕홍은 그렇지 않다고 하니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七情이 오로지 人心에 속한다는 것은 미안한 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출처 : 유교넷
  • 356156

    答權定甫(11월) 15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칠정은 오로지 인심에 귀속시킬 수 없다는 지난 날의 견해에 다시 생각한 것이 있는가라는 권우의 물음에 답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57

    答權定甫(1579) 16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모친상 중에 다시 백형의 초상을 당해 매우 애통하다고 하였다. 모친 상의 大祥 제사가 임박했는데 이런 초상을 당했으니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혹시 禮書에서 본 것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158

    答權定甫(7월1일) 17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퇴계선생 원본 『啓蒙傳疑』와 이봉사가 전한 中本과 죽산의 新本과 저자가 등사한 등본 등 네 건을 보내니 啓蒙과 하나하나 대조하여 교정해 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이 전한 것은 일찍이 柳雲龍이 한 번 교정을 보았고 그 사이에 교정한 것이 많으
    출처 : 유교넷
  • 356159

    答權定甫(8월) 17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자신은 병이 차도가 없어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있다고 하였다. 『계몽전의』는 자신이 교정을 봤지만 격식이 어긋나거나 틀린 곳이 있으니 반드시 그대가 교정을 보고 이봉사에게 넘겨주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160

    答權定甫(10월6일) 18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오랫동안 병석에 있는 자신의 처지를 말하였다. 『계몽전의』에 대해 이봉사에게 물어보니 과연 그대가 생각한대로 되었고, 또 개인적으로 첨부할 것을 지시해 주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161

    答權定甫(12월) 18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曾祖妣의 사당에 祔祀한다고 한 것은 曾자를 잘못 쓴 것이고, 翣扇의 용도, 韜藉에 관한 예에 대해 진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162

    答權定甫(12월22일) 20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답한 편지이다. 韜藉에 관한 설, 宗孫無後에 관한 설, 改葬 후 虞祭를 행하는 절차 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출처 : 유교넷
  • 356163

    與權定甫(1580년3월11일) 21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에게 보낸 편지이다. 요즘 앓고 있는 병세와 사용하고 있는 약에 대해 적었다.
    출처 : 유교넷
  • 356164

    祭退溪先生文(1571년정월14일) 22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退溪 李滉의 제사에 올린 제문이다. 선생은 산악의 정기를 모아 金玉같은 자질을 타고 났다고 하였다. 천년의 도통을 이어 동방의 학문을 열었다고 하였다. 선생의 자리에서 봄바람이 불고 흉금은 가을 달처럼 고고했다고 하였다. 지난 7년 동안 스승으로 모셨는데 갑자기 세상
    출처 : 유교넷
  • 356165

    祭退溪先生文(1571년겨울小祥) 22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퇴계선생의 소상 제사 때 올린 글이다. 선생이 돌아가신지 어느덧 1년이 지났건만 선생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눈물이 줄줄 흐른다고 하였다. 한 잔 술로 제 정성을 올리니 흠향하시기 바란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166

    書『啓蒙傳疑』後 22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1578년에 쓴 것으로 『啓蒙傳疑』를 교열하고 감회를 적은 것이다. 『계몽전의』는 이황이 朱熹의 『易學啓蒙』에 해석을 붙인 책으로 이황의 손자 李安道의 부탁으로 교열 보고 난 후 소감을 적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67

    先考處士府君墓誌 23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부군의 이름은 藎臣, 자는 公輔, 성은 南氏로 본관은 英陽이다. 1505년(연산군 11)에 태어났다. 성품이 온화하면서도 지조가 있었다. 약관의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모시는데 효성을 다하였다. 1530년(중종 25)에 진사시에 합격한 후로는 과거 공부를 하지
    출처 : 유교넷
  • 356168

    先妣孺人卞氏墓誌 26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先妣의 성씨는 卞氏이다. 1510년(중종 5)에 태어났다. 성품이 유순하고 온화했으며, 20세에 선친에게 시집왔다. 시어머니를 모시는데 정성을 다했으며, 30년 동안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제사를 받들 때는 정성과 공경을 다했으며, 친족들과 화목하였으며, 이웃사람들에
    출처 : 유교넷
  • 356169

    賁趾先生世系圖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시조 南敏에서 저자에 이르기까지 世系를 도표로 기록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70

    賁趾先生年譜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시조 南敏에서 저자에 이르기까지 世系를 도표로 기록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71

    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權宇가 지은 것이다. 군의 성은 南氏, 이름은 致利, 자는 義仲, 본관은 英陽이다. 1543년(중종 38)에 태어났다. 어려서 총명하였으며 홀어머니를 모시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약관이 넘어 퇴계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선생과 문답을 주고받는 사이에 선생
    출처 : 유교넷
  • 356172

    墓表 5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西厓 柳成龍(1542~1607)이 지은 것이다. 동문들이 모여 저자의 묘 남쪽에 묘표를 세우게 된 경위를 적고, 아울러 저자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군은 8세에 부친에 여의고 뜻을 세우고 학문에 힘써 이웃에서 칭찬하였다고 하였다. 퇴계선생이 道義로 후진을 양성하실 때에
    출처 : 유교넷
  • 356173

    墓道立石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권우가 지은 것이다. 1582년(선조 15)에 쓴 것으로 묘표를 세우게 되었음을 告由하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74

    祭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權宇‧金澤龍‧權好文‧金隆 등이 지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75

    輓詞 14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具鳳齡‧裴龍吉‧權好文 등이 지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76

    魯林書院奉安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金應祖가 지은 것으로 저자의 위패를 노림서원에 봉안한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77

    景賢祠常享祝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鄭侙이 지은 것으로 경현사에서 저자를 향사할 때 축문이다. 마음으로 올바른 학문을 전하였고 스승의 도를 이었으며 숭상하고 보답하는 예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178

    明敎堂上樑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李爾松이 지은 것으로 노림서원 강당인 명교당의 상량 때 지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79

    附錄下 1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師友들이 보낸 글을 수록하였다. 具鳳齡의 寄贈, 朴惺의 追憶, 퇴계선생 답서가 수록되었다. 그리고 사우들의 문집에서 발췌한 言行雜錄이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180

    跋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남치리
    1649년에 鄭維藩(1583~1649)이 쓴 발문과 南硇業(1592~1671)‧南斗元(1655~1713)이 쓴 발문, 그리고 丁思愼이 쓴 속집 발문이 실려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181

    석와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석와집(石窩集) 石窩 權褘의 문집. 木板本, 權命海‧權命九‧權大紳, 1899, 4卷2冊:四周雙邊, 半郭 19.2×15.8㎝, 10行18字, 上下二葉花紋魚尾:31.7×21.0㎝. 서문은 후손 頤齋 權璉夏가 썼으며, 발문은 權褘와 도의지교를 맺은 霞溪 李家淳의 후손인
    출처 : 유교넷
  • 35618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上廣興寺逢喜雨忽思朱子上雲谷通身雨濕因悟西銘解吟一絶, 伏次西厓先生集天地生物氣象韻, 夜雨, 朝晴, 謹次族叔學林先生壬子疏韻二首, 上走馬山與趙甘隱(顯佐)唱和二首, 金伯雍(熙紹)遊金剛還黃伯增(中敏)李學先(獻淳)次歇惺樓韻以題遊錄余亦續次二首, 次金伯雍文泉精舍韻二首, 洪杜谷先生延諡席
    출처 : 유교넷
  • 356183

    上晩谷趙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晩谷 趙述道(1729~1803)에게 올린 편지이다. 병 때문에 3년 동안 찾아뵙지 못한 것에 대한 죄송한 말씀을 드리며, 일간 찾아뵐 것을 전하고 있다. 조술도는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漢陽, 자는 聖紹, 호 晩谷. 玉川 趙德鄰의 손자이며 英陽사람이다. 李象靖‧金
    출처 : 유교넷
  • 356184

    上晩谷趙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晩谷 趙述道에게 올린 편지이다. 안부를 전하면서 經學을 담당할 사람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廣川에 사는 宋相天과 杜陵에 사는 鶴林 權訪은 總名하고 博雅하여 경학을 담당하기에 적격임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185

    上鶴林先生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鶴林 權訪에 올리는 편지이다.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오도록 찾아뵙지 못한 것에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면서 『中庸』의 「或問」장에서 朱子는 誠이란 ‘天理得誠之名’이라고 하면서 ‘鬼神之誠’을 ‘理’에 속한다고 보고 있는데 반해, 권위는 ‘鬼神之誠’은 ‘氣’에 속한다고 생각
    출처 : 유교넷
  • 356186

    答宋敬一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宋相天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한 동안 두문불출하면서 울적한 생활을 하다가 얼마 전에 德雲이 찾아와서 長篇詩를 지었는데, 博雅한 재주가 兄(宋相天)과 대적할 정도임을 언급하면서 조만간 형이 살고 있는 廣川으로 찾아가겠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187

    與李彛瑞(龜星,1810)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李龜星(1756~1835)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幼極(權襘‧權魯裀)형제가 과거에는 급제하였으나 分館을 받지 못한 채 죽었는데 銘旌에 뭐라 써야 할지 몰라 黃田令公에게 물으니 이와 같은 경우에 나라에서 ‘務功郞承政院主書兼春秋館記事官’에 증직시켜 준다고 하는데, 주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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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88

    答金伯雍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金熙紹(1758~1837)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작년 가을 재종형의 장사 때 지어준 두 폭의 輓詩가 매우 훌륭하였음을 전하면서, 올해 재종형의 小祥이 이미 지났지만 無聊하여 지어 둔 만시를 보내니 살펴봐 달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仙庄의 폭포가 좋다고 하여 단풍들 때
    출처 : 유교넷
  • 356189

    與金亨萬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金會運(1764~1834)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갇혀 지내던 노쇠한 자신을 이끌고 별천지 같은 仙窟을 구경시켜 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있다. 김회운의 자는 亨萬, 호는 月梧, 본관은 義城이다. 始晋의 아들이며, 20세에 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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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90

    與金孟厚(坤壽)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金坤壽에게 보낸 편지이다. ‘仙亭種檜韻’은 급하게 짓느라고 좋은 시가 못되겠기에 다시 한 수를 지어 올리니 살펴봐 달라는 청탁을 하면서, 아름다운 仙亭에 양식이 떨어진 자들이 유람하다가 개잡고 닭 잡아먹다가 빼어난 자연경관을 훼손할까 두렵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91

    答朴穉實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朴時源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박시원의 시가 노숙하고 원만하며 격조도 매우 높아 江南翁에게 뒤지지 않으며, 아울러 李家淳이 이곳에 같이 있다면 酬唱한 몇 편을 필사해서 드리고 싶을 정도임을 말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192

    答朴穉實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朴時源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소동파와 같은 재주도 없으면서 소동파의 잘못된 점만 지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따라서 좋은 말을 佩服하면서 몸소 실천하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함을 언급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193

    答李學源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李家淳(1768~1844)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이가순이 長篇詩를 지어 권위에게 질정을 청하자 권위는 두문불출한 지가 오래되어 패잔병과 같은 처지로서 평을 할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 이가순의 자는 學源, 호는 霞溪, 본관은 眞城이다. 李晩燾의 조부이며, 李宗洙의
    출처 : 유교넷
  • 356194

    與李學源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李家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 旣望(16일) 밤에 달을 대하니 詞를 잘 짓는 사람과 함께 적벽아래에 배를 띄워 노닐면서 주자나 퇴계시 및 소동파의 적벽부를 읊조리면서 가슴속의 찌꺼기를 다 씻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간절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유쾌한 일은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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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95

    與李學源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李家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96

    與李學源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李家淳에게 보낸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6197

    答姜子順(必孝)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姜必孝(1764~1848)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이전의 편지에도 답장을 못했는데 또 편지를 받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과 조만간 왕림해서 어리석은 자신은 타일러 줄 것을 청하고 있다. 강필효의 초명은 世煥, 자는 仲順, 호는 海隱‧法隱, 본관은 晋州이다. 恪의 후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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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98

    與趙奎應(星復)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趙星復에게 보낸 편지이다. 叔祖先生의 문집을 간행하여 후학들에게 배포한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리며, 보내준 1질을 읽어 보니 따로 언급할 말은 없고 다만 형과 함께 講究할 수 없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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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199

    與金汝凝(師進)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金師進에게 보낸 편지이다. 봄에 從弟와 從叔의 상을 당했음을 전하고, 책을 읽으면 정신이 피로하고 잠만 와서 걱정이라는 말을 전하면서 손자의 아둔함을 탄식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200

    與宗台(常愼)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
    常愼에게 보낸 편지이다. 선조의 사당을 세우는 일은 문중에서 이미 발의했고, 족보간행 문제를 두고 항상 고심하고 있었는데, 그 일을 맡아주신 것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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