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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秉憲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아들 秉憲(1783~1870)에게 보낸 편지이다. 병헌의 자는 景直, 호는 梅窩이다. 읽었던 글 중에 의문점이 있을까봐 太極圖와 心極圖를 보내니 벽에 걸어두고 잠심하여 음미하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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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周憲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아들 周憲(1787~1843)에게 보낸 편지이다. 20일만 지나면 20세의 성인이 되어 더 이상 부모의 策勵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나이인데도 독서에 매진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촌음도 아껴 猛將이 병법을 쓰듯이 酷吏가 법을 다스리듯이 혼신의 힘을 다해야 나중에 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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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兒周憲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아들 周憲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독서를 함에 무엇을 이루려고 하지 말고, 뜻을 세워 오래 지속되지 못할까를 염려하면서, 어려운 과거공부보다는 내면수양의 방법인 誠과 敬에 힘을 쏟으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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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兒周憲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아들 周憲에게 답장한 편지이다. 글공부를 게을리 하는 자식들의 행동을 지적하면서, 집에서도 愛親敬長하는 않는 자제들을 책망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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示兒彛憲孫兒大奎大紹大紳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아들 彛憲(1811~1865)과 손자 大奎(1806~1873)‧大紹(1808~1872)‧大紳(1810~1890)에게 보낸 편지이다. 나태해진 마음을 가다듬고 寸陰도 아껴서 글공부에 매진하라는 당부의 내용이다. 彛憲의 자는 景則, 호는 二齋이다. 大奎의 자는 章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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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彛憲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아들 彛憲에게 보낸 편지이다. 中庸의 ‘誠’을 朱子가 ‘眞實無妄’으로 해석하였듯이, 독서를 함에 虛假(생각 없이 거짓됨)하지 않고 眞實한 마음으로 임해야 함을 당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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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悔說(1829)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68세 때 지은 것으로 뉘우침이 있으면 고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몇 가지의 후회를 기술하고 있다. 첫 번째는 어려서부터 경전에만 몰두해 학문하지 않은 것이요, 두 번째는 문장을 짓지 않은 것이요, 세 번째는 자식 가르치기를 좋아하지 않아 자손들이 어리석게 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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戒臥說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음양의 이치를 들어 눕는 것을 경계하는 글이다. 천지에 음양의 이치가 있어 낮은 陽이고 밤은 陰이며, 動은 양이고, 靜은 음이 되듯이, 사람은 깨어있을 때가 양이고 잠잘 때가 음이며, 앉아 있을 때가 양이요, 눕는 것이 음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낮에는 動하고 밤에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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惜村陰說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내용이다. 공자가 15세에 ‘志于學’하고 30에 ‘而立’했듯이, 15세에서 30세까지의 15년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30세에 ‘而立’의 여부가 결정나기 때문에 짧은 시간도 아껴서 부지런히 노력해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 또 1년은 12달 36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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甘文縣蓮桂所錄案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甘文縣의 대과와 소과에 급제한 이들을 기록해 놓은 명부에 대한 서문이다. 감문현은 신라시대부터 정착해 살았는데, 그동안 크게 이름을 떨친 사람이 없다가 영조대에 와서 한 집안에서 현달한 인물이 5명이 나왔다. 鈍巖 趙葵陽(1706~1776)과 그의 아우 八友軒 趙普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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入學圖說後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서애 유성룡은 『東國名臣錄』 跋文에서 고려말 益齋 李齊賢과 牧隱 李穡이 중국을 유람하여 정주학을 우리나라에 전해주면서 성리학이 시작되었으며, 圃隱 鄭夢周가 끊어진 학문을 다시 창도했으며, 陽村 權近이 후학을 가르쳤는데, 冶隱 吉再에 양촌 권근에게 배웠으며, 金叔滋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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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龍巖題錄後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全聖中 아들 全宗奫이 선친의 유적지에 느낀 바 있어 李說書와 朴知縣이 기록한 『九龍巖題名錄』을 가지고 와서 발문을 부탁하기에 기록한 것이다. 권위가 성균관에 유학할 때 서울에 있던 사람 중에 영남인은 上舍 全聖中과 學士 李學源이었다. 이학원은 같은 해에 사마시에 합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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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廟祭廳上樑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별묘에 제청을 짓고 올린 상량문이다. 상량을 올린 뒤로 本孫과 支孫들이 모두 번창하고 제사들 폐하지 않아 조상의 은덕이 자손들에게 미치게 하고, 여가가 있으면 학문을 하고 효도하는 마음으로 친족들을 돈독하게 함에 이르도록 해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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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鶴林先生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빼어난 자질과 의젓한 풍모를 지닌 鶴林 權訪(1740~1808)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이다. 영남의 종장이요 사림들의 자랑이며, 붕당을 멎게 하고 향촌의 질서를 확립한 공이 죽어 매우 애통하다는 내용이다. 권방의 자는 季周, 호는 鶴林, 본관은 安東이다. 濤의 아들이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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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鶴湖金先生(奉祖)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鶴湖 金奉祖(1572~1630)의 무덤을 이장할 때 지은 제문으로 勿溪儒生들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서애 유성룡의 문인으로 한강 鄭逑(1543~1620)와 함께 영남의 유학을 부흥시켰음을 기리고 있다. 김봉조의 자는 孝伯, 호는 鶴湖, 본관 豐山이다. 大賢의 長子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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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樵隱公(讜)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족숙인 樵隱 權讜(1731~1812)의 죽음을 위로하는 제문이다. 권당은 정밀한 문장과 芝蘭같은 군자다운 면모를 지녔으며, 이치를 잘 헤아려 일을 처리함에 매우 자세하였고 시비를 잘 분별하여, 영남에서 유학의 종장으로 추존되었으며 소순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자는 仲得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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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宗叔幽溪公(相允)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종숙 幽溪 權相允(1742~1796)의 大祥을 맞아 그의 학덕과 인품을 기리기 위한 제문이다. 후학들을 가르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아 후학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자세하게 알려 주어 의혹을 풀어 주었다. 본래 위기지학에만 힘쓰려고 하였으나 부친 權德起(172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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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調彦(致梅)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李致梅의 효행과 덕행을 기리기 위한 제문이다. 그의 덕행을 韓愈가 중국 安豊 지방의 蕫昭의 행실을 두고 읊은 동생행이란 시를 인용하고 있다. 『韓昌黎集』권2「嗟哉董生行」에 의하면 “아, 董生이여,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古人의 글을 읽는구나! 하루 종일 쉴 새 없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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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內兄李公(德裕)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아내의 오빠인 처남 李德裕의 대상을 맞아 지은 제문이다. 이덕유는 全義李氏로, 그의 先祖가 임란에서 장렬하다가 순절함으로 인해 나라에서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려를 내려 주었다. 그러나 그는 부친의 효행에 대해서는 정려가 내려지지 않음을 苦心하다가 정려가 내려지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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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趙七之(陽復)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趙陽復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지은 제문이다. 氷玉같은 자질에 비단결 같은 마음을 지녔으며, 신선처럼 매우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벼랑 같은 곳에 살면서도 평지에 사는 것처럼 태연하였다. 욕심이 적고 온화하여 오랜 수를 누릴 줄 알았는데 겨우 70세밖에 살지 못했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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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趙一峯丈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一峯 趙錫晦(1727~1802)의 학덕을 기리기 위한 제문으로, 그의 아버지 趙葵陽과 아들 趙顯濶龜은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조석회는 문과에 급제하여 3代가 모두 가문을 빛낸 것을 기리고 있다. 조석회의 자는 而晟, 호는 一峯, 본관 漢陽이다. 아버지는 葵陽이며, 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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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內兄李公(義裕)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처남 李義裕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제문이다.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 갔을 때 함께 놀았는데, 그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하다가 백발이 성성한 나이인 작년 가을에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 좋았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때 同宿하면서 들국화 활짝 피는 가을에 다시 만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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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和彦(禎運)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金禎運(1767~1827)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제문으로 맏아들을 대신해서 지은 것이다. 명망 있는 의성김씨 집안에서 태어나 才德을 겸비하였음을 칭송하면서도 가문을 빛내지 못하고 갑자기 죽게 되어 마음이 끊어질 듯이 아프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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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弟德仁(衱)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族弟 權衱(1767~1820)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제문이다. 아버지인 학림 權訪의 학문과 덕행을 이어 家學을 잘 전수하였으며, 집안에서는 부모를 공경하고 행동을 삼가 하고 남과 접할 때는 忠厚하였고 일을 처리함에는 자세하고 세밀하였으며, 용모와 행동거지는 단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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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弟德誠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族弟 權意裀(1771~1832)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제문이다. 가학을 잘 전수받아 자신의 재주를 숨기고 궁핍한 살림에 학문만을 연구하면서 몸소 위기지학을 실천한 덕행을 기리고 있다. 서로 막역한 친구사이로 지내면서 함께 水落臺를 유람한 기억들을 상기시켜 주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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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亡子儒憲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역병에 걸려 20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막내아들 儒憲(1790~1809)의 大祥을 맞아 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글이다. 아들이 죽은 이듬해에 손자가 태어나 지금은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닐 정도가 되었으며, 손자를 바라보면 마치 아들을 대하는 것 같다는 말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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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處士府君行錄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저자 權褘의 선친 權睦에 대한 행록이다. 권목의 자는 而緝, 아버지는 燮이고, 어머니는 全州柳氏로 生員 元鉉의 딸이다. 어려서 조부와 부친을 여의어 숙부에게서 글공부를 배웠으며, 조모와 모친을 섬김에 정성을 극진히 하였다. 타고난 품성이 강직하고 올곧으며, 행실은 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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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氏處士公行錄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저자의 형으로, 文行이 있었으나 17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權業裀(1759~1775)의 행록이다. 권업의 字는 吉甫, 아버지는 睦이다. 어머니 선성이씨가 임신한 지 24개월 만에 그를 낳았는데, 골격이 빼어나고 모습이 비범하였다. 성품이 관대하고 활달하였지만 다른 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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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七理氣傳受旨訣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四端七情 理氣의 구분이 朱子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선조인 陽村權近이 東方理學의 鼻祖임을 언급하고 있다. 惟一齋 金彦璣의 理氣에 대한 입장을 수용하면서 율곡의 氣發說을 부정하고 퇴계의 理氣互發說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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漫錄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中庸의 序文에 대한 東陽許氏의 입장, 沙溪 金長生의 논어에 대한 주석, 퇴계언행록에서 鶴峯 金誠一과 퇴계와의 ‘理’에 대한 문답 내용, 西厓 柳成龍이 月川 趙穆에게 답장한 학문하는 요체, 月沙 李廷龜가 栗谷 李珥의 묘표에서 언급한 내용, 澤堂 李埴의 상례에 관해 언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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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肯菴 李敦禹(1807~1884)가 지은 저자의 行狀이다. 權褘는 장가를 세 번 갔는데, 첫 번째 부인은 全義李氏 養黙의 딸로, 3남 1녀를 두었으며 권위와 같은 해인 1835년(헌종 1)에 죽었다. 맏아들 秉憲은 백부인 權業裀의 양자가 되었으며, 둘째는 생원 周憲이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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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定齋 柳致明(1777~1861)이 지은 저자의 묘갈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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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평소 저자와 친분이 있는 朴時源‧金羲壽‧黃中敏‧趙顯湜‧李家淳‧趙顯佐‧李秉馨‧徐成烈‧李蓍秀‧金在純‧趙翼相 등이 저자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애도하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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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趙顯濬‧全宗奫‧朴宗垕‧宋欽昊‧權裯‧權師憲‧權成憲 등이 저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하거나 저자의 행적을 기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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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文(189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위李晩煃(1845~1921)가 지은 문집의 발문이다. 이만규는 집안에 간직해 오던 『九龍契帖』을 보고 문집의 저자인 權褘가 자신의 조부인 霞溪 李家淳과 도의를 맺었음을 알았고, 권위의 손자인 命九와 命海가 문집의 교정을 부탁함으로 인해 문집을 읽어본 결과 권위의 인품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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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소암집(素巖集) 素巖 金鎭東의 문집. 木活字本, 金震永, 1880, 6卷3冊:四周雙邊, 半郭 20.0×14.6㎝, 10行20字 註雙行, 上二葉花紋魚尾:30.0×19.5㎝. 서문과 발문은 없다. 卷1에 詩‧書, 卷2에 書‧祭文, 卷3은 序‧記‧跋識‧頌‧上樑文‧雜著,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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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除夜, 辛巳初二日謁叔父鶴陰公墓感吟一絶, 權如天(思溥)避痘疾久寓從遊甚樂告歸敍別, 甲午二月將西遊俗離權如天阻痘不偕以絶句見贈路中步其韻, 六日入懷衙拜呈從兄, 八日與卯君及敎姪同發懷仁暮泊俗離洞口有三株松卽世祖大王駐輦處也, 自福川向引中以獅子, 次稷姪韻, 石崙寺次老先生效周景遊紫極宮感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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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1780)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대산 李象靖에게, 斗東의 아들 熙紹와 熙洛, 아들 熙奮의 교육을 맡아달라고 청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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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先考行狀을 부탁하고 감사를 드리는 편지이다. 別稟에서는 喪葬禮에 대한 4가지를 질문하였다. 첫째, 재종형에게 출계한 조카가 축문에 ‘心制人某’라 칭하는 것이 禮에 마땅한가를 묻고, 이에 대산선생은 반드시 ‘心制人’이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였다. 둘째, 종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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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蔡相國(濟恭)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채제공에게 先考의 묘갈문을 청해서 글을 받고 감사를 드리는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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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台甫(承延)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鎭東이 40년 고질로 壅滯症이 있고, 나이가 들면서 금년 봄에 小渴이 생겼는데, 선생의 頤養之法을 구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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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文(1784)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柳道源이 물은 ‘進齋’가 鎭東의 선조인 七峯山人의 齋號이며, 동강선생의 『言行錄』에 설명이 나온다고 답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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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叔文叔遠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柳道源‧柳章源이 山寺의 鎭東에게 보내준 붓과 벼루에 대해 감사하는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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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叔文叔遠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柳道源‧柳章源에게 안부와 함께, 가형 遺事의 小識 全文을 청하고, 다시 先妣의 墓誌銘을 청하니 거절하지 말라 달라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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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蔭補로 관직에 나아갔을 때 謝恩하는 일에 대하여, 荷翁의 행장에서는 매번 관직 제수 때마다 사은한 것이 보인다고 답하고, 別紙에서는 전에 『仁說』을 읽을 때 文句의 上下 모순점을 해결하지 못하였고, 대산선생의 설명을 읽어도 역시 잘 이해되지 않았으나, 지금 ‘惑說’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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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體와 用이 본래 근원이 하나인데, 仁說과 西銘說에서는 用에서 體를 볼 수 있다 하였으니, 이는 오로지 體만 말하는 것이 된다 하고, 體의 기미가 없으면 用도 없는가? 하는 것을 문의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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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叔遠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戒懼說에 대하여 문의하고, 曾孫이 어머니가 계신데 承重하면 그 妻의 服制를 어떻게 하는가?는 문의에 老先生의 訓과 沙溪의 說로 답하고, 橫渠의 설이 사계의 설과 합치된다고 설명하는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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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道彦(宗德)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1790년(정조 14)에 김종덕에게 侍讀公에 대해 問喪하고, 두 가문이 모두 한 조상에서 시작되었는데, 진동의 家牒에 고려시대에 義城君으로 봉해졌다는 기록의 근거를 알 수 없다면서, 김종덕의 舊牒에 혹시 기록된 바가 있는지를 묻는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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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1792)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喪을 당한 김종덕에게 위로와 함께, 남한조와 中和書를 강론하다가 前輩와 의견이 다른 점이 있어서 이를 錄出하여 의견을 묻는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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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道彦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중화설의 내용은 서로 상의하여 講明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과, 『大學惑門』을 읽다가 格物의 ‘格’에 대한 해석에 김종덕의 의견을 구하는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