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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6301

    祭張繼述(胤文)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繼述 張胤文의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02

    祭內弟李宗瑞(龜應)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처남 李龜應의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03

    祭權壻文甫(思奎)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저자의 셋째사위 권사규의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04

    祭叔父鶴陰公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鶴陰公 金景泌의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05

    祭從兄監察公(宅東)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감찰공 김택동의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06

    祭伯兄松下處士公(翼東)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김진동의 형 송하처사 金翼東의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07

    祭從姪檢討君(熙稷)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조카 김희직의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08

    祭從姪(熙晦)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조카 金熙晦의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09

    送堂弟翰之赴召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관직을 제수받고 상경하는 堂弟 翰之(翰東)에게, 관직자가 지켜야 할 마음가짐 등을 알려주는 글이다. 비록 淸官美職이라도 사양하는 마음이 진실로 아름다운 것이며, 召命, 奏對, 擧職과 一言一行一動一靜을 모두 이 마음으로 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10

    松亭會飮錄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1795년(정조 19) 봄, 鎭東이 素巖齋에 있을 때, 金洪疇가 『松亭會飮錄』과 詩軸 2卷을 가지고 와서 회음록의 서문을 부탁한 글이다. 松亭會가 지금은 없어졌으나, 한 고을에 살던 荷塘‧蒼雪‧龜翁‧訥翁 등과 八吾府君, 上舍府君 등이 모여 서로 名理를 강마하고, 詩作
    출처 : 유교넷
  • 356311

    義租分賑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저자의 집안이 본래 청빈하여, 근년같은 기근에는 추수를 한 후 조세를 납부하고 나면 살아갈 길이 막연하였다. 이에 字母錢 100꿰미[緡]로 곡식 21석을 구하고, 祭田에서 5석, 부조로 3석, 모두 29석을 얻어 부족하지만 친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오래 전에 龍潭
    출처 : 유교넷
  • 356312

    書贈李穉英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道에 이르는 방도는 讀書講經만한 것이 없으니, 이를 몸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검증하여 밤낮으로 외워 음미하면 글의 뜻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더욱 학문에 힘쓸 것을 당부한다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13

    從姪孫在達後改在純字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종질손 재달이 자신의 字 仲達에 대해 序를 부탁하자, 子張이 孔子에게 ‘達’에 대해 문의한 내용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그 實에 힘쓸 것을 당부하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14

    外孫張仁慶字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외손 장인경이 저자에게 字를 지어 줄 것을 청하자, 伯綱이라 지어주면서 그 뜻을 설명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15

    送外孫權壽海歸春陽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외손 권수해에게 朱子가 黃子木에게 내려 준 獅子 그림의 뜻을 설명하고, 지금 권수해의 학문이 黃子木보다 못하지만, 사자 그림의 뜻을 알아 이를 삼간다면, 주자에게는 미치지 못하나 황자목에 준하지는 않겠는가? 하며 舊習을 버리고 성인을 法받아 道를 밝히고 학문에 힘쓰기
    출처 : 유교넷
  • 356316

    素巖記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저자가 은거한 素巖齋의 기문이다. 그 내용은 첫머리에는 소암재 주변의 지리적인 특징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소암재는 1785년 가을에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6월에 낙성하였으며, 모두 3칸인데, 왼쪽은 ‘聞可’로 강마하는 장소로, 오른쪽은 ‘養正’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는
    출처 : 유교넷
  • 356317

    及時菴記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안동부 才山縣의 북쪽 及時洞에 있는 5대조 天有公, 고조 鶴汀公과 각파 지손의 墓 10여 기에, 자손들이 가난하여 제사도 올리지 못함을 한탄하고, 이에 堂兄 處士公이 位畓의 수확으로 水田 약간을 구입하여 제사에 이용하게 하였다. 다시 齋室을 확충하고 祭器 등을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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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18

    文峯先生文集跋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문봉집』간행의 전말을 기록한 글이다. 선생의 글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지고, 『퇴계집』 중에 편지와 唱和詩 약간이 있을 뿐이었는데, 權應度가 선생의 글을 모으자 하였으나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여, 대신 權思浹과 鎭東의 아들 熙奮이 일을 맡았다. 이후 都事
    출처 : 유교넷
  • 356319

    世稿跋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저자가 선조들의 世稿를 만들게 된 경위를 적은 글이다. 산질된 부친의 遺文을 모아 1책을 만들고, 다시 零星하나마 先世의 유고를 구했는데, 8世의 遺文 중 上3世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겨우 2~3책만 얻었고, 5세도 散失되어, 각 院祠와 문집에서 발췌하여 기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320

    追慕錄跋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저자가 仲父 西坡公에게서 동강선생의 譜系 1책을 얻었고, 또 증왕고가 기록한 내외파보 초본 1책을 얻었는데, 여기에는 김씨 得姓 이래 선계들의 분묘와, 외가 및 외가의 외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진동이 하루는 서애선생의 『永慕錄』을 구해서 읽고, 그 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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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21

    書退溪先生書帖後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퇴계선생의 서첩을 改粧한 후 쓴 글이다. 서첩은 진동이 어릴 때 季舅에게 받아 간직한 것으로, 개장하기 위해 지금 다시 보니, 글씨가 단중, 근엄하여 1획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書法은 작은 기예지만 사람의 德性에 관련이 있는데, 지금 소인배들의 천박하고 화려함만 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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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22

    書慵齋先生遺文後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용재선생과 訥齋先生의 유문이 거의 매몰되어, 두 분을 栢麓祠에 모신 지 200여 년이 되었으나, 社中의 자제들이 두 선생의 유적을 알지 못하였다. 1753년(영조 29)에 李象靖선생이 약간의 글을 모아 『四先生行錄』에 합쳐, 이를 『六先生行錄』이라 하니, 縣人들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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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23

    書啓蒙圖書節要後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鄭來成의 부탁으로 쓴 『啓蒙圖書節要』의 後識이다. 도첩은 퇴계선생이 쓴 것으로, 도산의 亦樂齋에서 공부한 芝軒 鄭公에게 전해진 것이다. 진동이 부탁을 받고 서첩을 읽어보고, 그 끝에 識를 썼다. 圖帖은 初學者들의 바른 길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옛 사람들이 ‘황금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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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24

    書黃參奉挽軸後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黃昌述의 字는 繼道, 號는 丹丘, 本貫은 昌寧이다. 노년에 司馬試에 급제하고, 숙종 때 老典으로 東部郞에 제수되었다. 辛卯年에 돌아가시니, 나이 84세였다. 당시의 碩德君子 松月齋, 荷塘 등과 진동의 王考 형제들이 만사에서 모두 公을 “福德風流”라 칭하였다. 공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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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25

    書李武夷翁(龍羽)行狀後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이용우는 내가 존경하는 벗으로, 사는 곳은 멀었으나 일찍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이용우가 죽자, 장남 是璥이 鄭士仰이 쓴 행장을 가지고 와, 진동이 이를 읽어보니 행장의 내용 중 태반이 모르는 내용들이었다. 公이 貧賤에 마음 쓰지 아니함은 黔婁에 모자람이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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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26

    書族姪故孝子贈持平濟仲行錄後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金熙普의 字는 濟仲, 鎭東의 종형으로 上舍公 國采의 2子이며, 開巖先生의 8대손이다. 孝友로 이름이 났으며, 관찰사에게 孝烈로 추천되어 1789년(정조 13) 持平에 증직되었다. 鎭東이 濟仲보다 13살 위지만, 그 조카 仁載가 가져온 행장을 보니, 자신이 부모를 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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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27

    庚戌生聖人頌(幷序)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元子의 탄생을 축하하는 글이다. 丁亥年과 壬戌年에 성인들이 많이 태어났지만, 庚戌年에도 공자‧주자가 태어난 해임을 상기시키고, 朱子에서 500여 년이 지난 1790년(정조 14)에 元子邸下가 태어나셨으니 400년 大曆報가 새로워 질 조짐이라면서 기뻐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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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28

    松下宅上樑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선조들이 입향하여 터를 잡았던 봉화 海底里의 松下村에 띠를 엮어 집을 짓게 된 경위를 적고, 주변의 경치를 상세히 묘사하고, 柱聯의 내용을 기록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29

    兒子熙質寢室上樑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저자가 56세 되던 해에 본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아들 熙質의 집을 지어주게 된 경위와 자신으로 인해 아이들이 飢寒에 빠졌던 지난날을 위로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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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30

    烈婦曺氏傳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京山의 선비 金宗宅의 妻 曺氏에 대한 기록이다. 조씨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병에 허벅지 살을 베어 치유하였다. 암행어사가 이를 듣고 조정에 글을 올려 烈婦로 포상한 내역을 적은 글이다. 김종택은 東岡先生의 후손이며, 曺氏는 본관이 昌寧으로, 成翰의 따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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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31

    遊小白山錄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1774년(영조 50) 3월 壬午日에 鎭東이 從弟, 조카 등 11인과 소백산을 유람하고 지은 글이다. 진동은 퇴계선생이 지은 「遊山錄」을 읽은 후, 선생의 뒤를 따라 늘 소백산을 오르고 싶어 하다가 이 해 소백산에 오르면서 보고 느낀 바를 기록한 글이다. 옛 기록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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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32

    晴川書院分院顚末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東岡先生을 모신 청천서원의 건립 전말을 기록한 글이다. 寒岡先生이 동강선생의 서원을 건립하려다 鄭仁弘의 모함으로 중단된 사실과, 한강선생이 돌아가신 후 士論으로 두 선생을 一廟에 모시고자 하였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시행하지 못한 일 등이 기록되어 있다. 戊辰年에 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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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33

    內舅泰安朴氏墓誌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외숙인 朴挺元(1699~1771)을 위해 지은 묘지이다. 박정원의 자는 元直, 본관 泰安이다. 진동의 외숙이다. 부모 봉양과 형제와의 화합, 奉先에 온 정성을 다하였으며,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 國朝故事, 사족의 계보 등에 통달하였고, 사람의 長短을 입에 올리는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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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34

    再從孫十三歲兒壙誌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再從孫十三歲兒壙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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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35

    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眞一齋柳先生行狀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柳崇祖(1452~1512)에 대한 행장으로 그의 자는 宗孝이고, 호는 眞一齋이며, 본관은 全州로, 典牲署令을 지내고 이조참판에 증직된 之盛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爲己之學에 힘썼고, 11살 때 ‘朝’字 韻에 “朝朝戶戶炊煙起”라 하고, 對句로 “夜夜家家犬吠無”라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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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36

    朴昌潤(1658~1721)에 대한 행록으로 그의 자는 德而이고, 본관은 泰安으로 北部參奉을 지내고 호조참판에 증직된 朴慶光의 아들이다. 生父는 朴琛이며, 저자의 외증조부다. 참판공에게 집안을 빛낼 인물이란 칭송을 받고 그에게 입적되었다. 1683년(숙종 9) 증광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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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37

    成均生員西溪府君行錄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朴泰茂(1677~1756)에 대한 행록으로 자는 春卿이고, 본관은 泰安으로 황해도수군절도사 박창윤의 아들이다. 1695년(숙종 21) 향시에 응시하였으나 省試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그해 芝溪의 서쪽에 西溪書室을 짓고 날마다 講讀을 일삼았다가 부친의 권유로 17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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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38

    李守謙(1674~1739)에 대한 행록으로 그의 자는 益卿이고, 본관은 眞城으로 퇴계선생의 6대 冑孫이다. 1712년(숙종 38) 음직으로 莊陵參奉이 된 후 여러 관직을 거치고,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그 해 가을 사헌부감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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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39

    松顔具公行錄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具贊祿에 대한 행록으로 그의 자는 汝膺이고, 본관은 綾城이며, 栢潭 具公의 문하였다가 나중에 퇴계선생을 師事하였다. 宣城의 浮浦에 살면서 과거공부를 하다가 나중에 안동의 眠鷺에 집을 짓고 田野의 농부와 함께 농사를 지었다. 만년에는 乃城縣 서쪽에 松顔亭을 지어, 齋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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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40

    金孝子行狀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金潛(1715~1765)에 대한 행장으로 그의 자는 而昭이고, 文節公 金淡의 10세손이다. 형제와 우의가 매우 깊었으며 부모 봉양을 잘 하였다. 어머니가 배가 부풀어 오르는 병에 걸려 백약이 효과가 없었는데, 하루는 丹陽의 李奎文이 편지를 보내 “꿈속에서 어떤 노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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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41

    槐潭處士裵君行狀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裵相說(1759~1789)에 대한 행장으로 그의 자는 君弼이고, 본관은 興海이다. 5~6세 때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자라서는 『易學啓蒙』‧ 『律呂新書』 등을 탐독하였고, 1780년(정조 4) 겨울에 蕭寺에서 周易을 읽었다. 나중에 求道의 뜻을 지녀 湖上 李象靖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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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42

    從先祖伊溪公遺事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金宇弘(1522~1590)에 대한 유사로 그의 자는 勉夫이고, 호는 伊溪‧知足堂이며, 본관은 義城이다. 1546년(명종 1) 생원과 1553년(명종 8)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간 이후 병조좌랑‧함안군수‧나주목사‧영흥부사‧밀양부사 등을 지냈다. 성품이 엄격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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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43

    從先祖茅溪公遺事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金宇容(1526~1608)에 대한 유사로 그의 자는 正夫이고, 호는 茅溪이다. 東岡 金宇顒과 형제로, 함께 학문을 시작하였으나 병으로 과거는 폐하였다. 천성이 孝友하고, 강직, 염정하였으며 재물에 담백하여 한 터럭이라도 남의 것을 취하지 않았다. 1589년(선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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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44

    從曾祖進士公行錄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金聲裕(1645~1691)에 대한 행록으로 그의 자는 德周이다. 三司와 삼척부사를 역임하였고, 이조판서로 증직되었다. 仲兄金聲久에게 학문을 배워 1675년(숙종 1) 진사가 되었다. 퇴계선생의 문인인 艮齋 李德弘과 天山齋 李咸亨이 『心經』을 공부한 것을 각자 기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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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45

    仲父處士府君遺事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金景漢(1687~1759)에 대한 유사로 그의 자는 士章이다. 성품이 매우 엄중, 과묵하여 함부로 웃거나 말하지 않았다. 科擧보다는 書史를 즐겼고, 매일 밤 論語를 암송하여 늙어서도 폐하지 않았다. 모친상에는 내외의 구분을 엄격히 하였으며, 傍親의 忌日에도 遠近親疎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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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46

    叔父成均進士府君行錄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金景瀗(1690~1744)에 대한 행록으로 그의 자는 幼澄이고, 호는 松窩으로 홍문관 수찬을 지낸 汝鍵의 아들이다. 관찰공에게 학문을 배워 義方之敎를 얻었으며, 伯氏 松鶴公을 아버지처럼 모셨다. 1721년(경종 1) 진사가 되었으나 과거는 포기하였다. 1739년(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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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47

    金景溫(1692~1734)에 대한 행록으로 자는 光甫이며, 저자의 生父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눈으로 한번 보면 이를 외워, 조부 八吾公(金聲久)이 매우 사랑하였다. 詩文을 지으면 비록 老師, 宿儒도 이를 앞서지 못하였다. 14~15세 때 靑巖亭에서 荷塘 權斗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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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48

    仲父通訓大夫行河陽縣監西坡公遺事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金景澈(1698~1764)에 대한 유사로 그의 자는 幼淸이다. 집이 가난하여 송진을 캐서 불을 밝히고 季氏 佐郞公과 함께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여, 弱冠에 文詞가 널리 알려졌다. 1741년(영조 17) 생원이 되고, 1748년(영조 24) 좌랑공이 騎省郞을 제수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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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49

    叔父通訓大夫行兵曹佐郞鶴陰公遺事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金景泌(1701~1748)에 대한 유사로 그의 자는 源仲으로, 진사 汝鏜의 셋째 아들이다. 다른 사람이 읽는 책 소리를 듣고 곧 이를 외웠으며, 堂兄 松鶴公에게 학문을 배웠다. 집이 가난하여 河陽公과 배고픔을 참고 독서를 했으며, 밤이면 송진을 캐서 불을 켜고, 짚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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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50

    先妣孺人泰安朴氏行蹟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泰安朴氏(1695~1762)에 대한 행적으로 그녀는 生員 朴泰茂의 따님이다. 16세에 先考에게 시집오셨다.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성품은 늘 온화하고 순하였으며 친족간에 매우 화목하였다. 1716년(숙종 42) 先考가 돌아가신 후, 매우 심한 병이 아니면 上食에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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