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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6351

    從兄羅溪公遺事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金必東(1706~1756)에 대한 유사로 그의 자는 子明이고, 호는 羅溪‧龍巖子이며, 鶴巖公 金景澯의 아들이다. 약관에 詩賦로 이름을 떨쳤으나 科場에는 나가지 않았다. 天性이 仁孝하고 祖先을 모시는데 정성을 다했으며, 租稅 납부에 남보다 우선 하였다. 家內의 화목에
    출처 : 유교넷
  • 356352

    從兄處士公行錄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金泰東(1723~1786)에 대한 행록으로 그의 자는 聖瞻이고, 承文正字 景沈의 아들이다. 堂父 鶴陰公에게 글을 배워, 평생 단 하루라도 이유없이 독서를 거른 적이 없었다. 성품이 후박, 검약하여 사치를 싫어하고, 농담도 잘 하였으나 중요한 일에는 반드시 신중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353

    伯兄處士公行錄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金翼東(1716~1780)에 대한 행록으로 그의 자는 聖弼이고, 健元陵 參奉 景溫의 아들이다. 起居와 행동에 반드시 長者의 명을 지키고, 취학 이후에는 종일 독서하였으며, 자라서는 아버지가 매일 밤 한 권의 책을 외운 후에 취침하라는 말을 지켜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
    출처 : 유교넷
  • 356354

    家弟處士君行錄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金斗東(1732~1776)에 대한 행록으로 그의 자는 萬瞻이고, 健元陵 參奉 景溫의 아들이다. 才性이 뛰어나 書史를 섭렵하고 大義에 스스로 통하였다. 사람의 장단점을 말하거나, 남과 다투거나 나쁜 말을 하기 싫어했다. 추위에 굶주린 사람을 보면 곧 옷을 벗어 주었으며
    출처 : 유교넷
  • 356355

    挽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趙述道‧金若鍊‧成彦根‧嚴思健‧李敬儒‧姜世白‧趙居善 등이 저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56

    祭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趙述道‧金宗發‧南漢朝‧柳範休‧鄭來成‧柳晦文‧琴養蒙‧黃舒漢‧李彙陽‧金翰東‧金熙周 등이 저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57

    行狀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1880년에 李敦禹가 지은 저자의 행장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58

    墓碣銘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진동
    權璉夏가 쓴 저자의 묘갈명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59

    용담집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용담집(龍潭集) 龍潭 任屹의 문집. 6권 3책.龍潭 任屹의 문집. 石印本, 任象德‧任鼎鎭, 6卷3冊:四周雙邊, 半郭 19.2×15.0㎝, 有界, 10行21字, 註雙行, 上二葉花紋魚尾:30.5× 21.0㎝. 예조참판 丁範祖(1723∼1801)의 서문과 1786년(정
    출처 : 유교넷
  • 356360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龍潭快閣題詠三首, 龍潭雜詠四十一絶, 翠虬亭, 鳳栖壇, 無曲壇, 羽人壇, 佳卉壇, 叩月門, 度雲墻, 蒼壁臺, 釣鼇臺, 淸節臺, 振衣臺, 龍潭, 醉榭, 書壁, 琴架, 梅階, 竹塢, 鶴頂, 壽峯, 寒屛, 靑砰, 文峀, 海林, 樹石, 汀沙, 鷺磯, 鳧渚, 巖花, 沜柳, 木橋
    출처 : 유교넷
  • 356361

    上寒岡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鄭逑에게 보내는 안부편지로, 여름 혹서의 안부를 여쭙지 못하다가 지난달 말에 서신을 보내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問目을 보내면서 지난번 問目에 대한 가르침을 아직 받지 못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鄭逑는 任屹의 스승이다. 字는 道可, 호는 寒岡, 시호는 文
    출처 : 유교넷
  • 356362

    上寒岡先生問目 1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스승인 鄭逑에게 의문을 조목별로 정리하여 묻는 問目이다. 특히 예학과 『心經』 등에 관한 문목이 주요 내용을 이루는 것은 임흘이 鄭逑의 학문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음을 예증하는 것이다. 이 문목에는 『古鏡重磨方』‧『心經』에 관한 의문을 조목별로 묻는 問目과 정구의 答目
    출처 : 유교넷
  • 356363

    上寒岡先生 20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鄭逑에게 問目을 보내면서 問目에 대한 가르침을 청하는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64

    上寒岡先生問目 20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鄭逑에게 冠禮, 喪祭禮에 관해 묻는 問目과 정구의 答目이 함께 정리되어 있다. ① 冠禮에 대해서는 『書儀』가 司馬光의 禮이고, 古冠禮가 『儀禮』를 말한 것이 맞는가? ② ‘正月內擇吉’이라고 할 때 만약 정월 내에 일이 생겨 관례를 행할 수 없다고 하면 다음달에 행할
    출처 : 유교넷
  • 356365

    答曹芝山(好益) 1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曺好益(1545~1609)에게 보낸 답신이다. 매화 핀 창가에 가랑비 내리는데 문득 편지를 받게 되어 그 기쁨을 어찌 표현할 길이 없다는 고마움과 안부를 묻고 있다. 그리고 스승을 뵙고 가르침을 받지 못해 공부에 진척이 없음을 하소연하며, 퇴계선생의 「敬齋箴」과 「夙
    출처 : 유교넷
  • 356366

    更質前問 8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曺好益의 答目에 대해 다시 질의한 문목이다. 문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襴衫’조에서 ‘지금은 생원의 의복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直領은 백성들의 평상복이라고 하면서 반드시 난삼으로 생원의 의복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② ‘唱喏’조에서
    출처 : 유교넷
  • 356367

    與曹芝山 10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曺好益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편지이이다. 퇴계의 「敬齋箴」과 「夙興夜寐箴」을 벽에 걸어두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하지만 몸소 살피고 힘써 행할 수 없음을 두려워한다. ‘思無邪, 毋不敬’라는 6자를 두 잠의 근본으로 여기고 노선생의 글을 벽에 걸어 헛되고 게으른 태도를 극
    출처 : 유교넷
  • 356368

    與曹芝山 21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조호익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편지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전혀 듣지 못했던 조호익의 안부를 물으며 날로 병약해져 가는 저자의 근황을 담고 있다. 특히 조호익의 정성스런 가르침을 받아 더욱 힘쓰고자 하지만 자꾸 쇠락해져만 가는 저자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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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69

    答溪巖金子峻(坽) 21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저자보다 20년 어린 金坽(1577~1641)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내온 편지에 의해 김령이 병환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자 자신도 병환과 가난으로 인한 조상을 섬기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함을 전하고 있다. 김령의 호는 溪巖이고, 자는 子峻, 시호는 文貞
    출처 : 유교넷
  • 356370

    與金子峻 22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김령의 편지에 대한 답신의 편지이다. 저자는 김령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계속 서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변론하며, 『禮記』,『易林』, 『陶隱集』, 여러 사람의 간찰, 선생의 언행론, 선인의 자필 편지 등을 상자와 보자기에 보내며 『心經』을 돌려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출처 : 유교넷
  • 356371

    答金子峻 22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김령에게 보내는 답신이다. 지난 밤 꿈에서 淸標를 접하고 편지를 받게 되었음을 말하면서, 김령이 근심없이 돌아가게 된 것을 기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療養하면서 책을 보는 기쁨과 자신의 고루함에 대한 탄식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372

    與金子峻 22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김령에게 보내는 편지로 여름에 쓴 것이다. 김령의 편지를 받은 반가움을 마치 어둠 속에서 촛불을 얻은 것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김령의 謙退에 대해 격려하며, 더욱 忠厚의 뜻을 돈독히 하기를 바라는 심정을 적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373

    答金子峻 23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김령에게 보내는 답신이다. 병환 중에 문득 편지를 받게 된 반가움을 말하며, 저자가 아직 이르지 못한 主敬의 공부를 언급하고 있다. 만일 主一無適의 공부로 조용히 함양하여 오래 쌓인다면 마음이 항상 腔子에 있게 되고, 공효가 반드시 純熟함에 이르게 되어 成覸이나 顔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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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74

    答丹谷郭靜甫() 23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곽진에게 보내는 답신이다. 가을빛이 아름답고 물색이 다하는 듯한데 은거하는 곽진은 어떠한 지를 묻는 안부로 편지를 시작한다. 그리고 저자가 일생을 힘쓴 忠孝에 관한 생각을 전개하였다. 곽진(1568~1633)의 자는 靜甫, 호는 丹谷이며, 본관은 현풍이다. 權宇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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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75

    答郭靜甫 23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곽진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맹춘의 편지를 너무 늦게 받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며, 저자가 仲春에 德龜山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사실을 인편을 통해 답신한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병통이 없다면 天中節에 선산을 돌보며 머물 예정인데, 이때 昌樂과 함께 만나고 싶은
    출처 : 유교넷
  • 356376

    與郭靜甫 24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곽진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별의 한스러움과 다음해 봄 꽃필 무렵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377

    答 24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곽진에게 보내는 답신이다. 저자는 평소 白雲과 丹橋 사이에서 만나고자 하였으나 뜻밖의 일들로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담고 있다. 수일 동안 찬 기운이 돌아 문을 열고 바람이 닿으면 통증이 있다는 사연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378

    答靑城書院士林 24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청성서원 사림들에게 보내는 답신이다. 權好文(1532~1587)과 金誠一(1538~1593)의 位次문제에 대한 두 가지 의견을 밝혔다. 남향의 위치를 비우고 동서로 놓는 문제에 대해 老先生(鄭逑)은 옛 祠廟에 동서로 놓는 선례가 있다면 가능하지만 없다면 논란이 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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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79

    與朴都事(漉) 25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朴漉(1542~1632)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저자의 능력이 박록의 道德과 문장에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박록으로부터 嘯皐 朴承任(1517∼1586)의 행적을 기록하는 책임을 맡게 된 것에 겸양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또한 기록의 규모는 黃幹이 찬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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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80

    聖賢格言靜裏恒誦 26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성현의 격언을 모아 놓은 글이다. 『心經』‧『論語』‧『周易』‧『宋史』 등에서 가려 뽑아서 고요한 가운데 항상 외울 수 있도록 기록한 일종의 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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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81

    養老囊說 27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善谷縣 北溪에 사는 權是中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쓴 글이다. 어려서부터 모친을 섬기는 효자였지만 죽조차 먹을 수 없을 만큼 가난하였다. 손수 농사일을 하고 땔나무를 구해 봉양하였지만 모친은 그 수고로움을 모르게 하였다. 간혹 부귀한 집에 초대되어 맛있는 음식을 먹게
    출처 : 유교넷
  • 356382

    咸州志跋 28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정구의 『咸州志』에 쓴 발문이다. 발문의 앞부분 몇 행이 빠져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383

    晩悔齋日記 29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퇴계의 제자인 賁趾 南致利(1543~1580)에 관한 처사로서의 淸高함을 일화 1조로 소개한 글이다. 화재에 일기 4권이 소실되었는데, 이 1조는 「南賁趾言行雜錄」에서 옮겨 적었다
    출처 : 유교넷
  • 356384

    字說要義 29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요긴한 한자들을 가려 뽑아 음과 훈을 해설한 글이다. 또한 한자의 용례까지 다양하게 수록되었다
    출처 : 유교넷
  • 356385

    祭嘯皐先生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저자의 스승인 嘯皐 朴承任(1517~1586)에게 올린 제문이다. 퇴계 문하의 嫡傳을 계승하고 이색의 遺緖를 접한 선생의 학문을 애도하고 선생의 학문을 배울 수 없게 됨을 비통해 하는 저자의 심정이 담겨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386

    祭月川先生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저자의 스승인 月川 趙穆(1524∼1606)에게 올린 제문이다. 퇴계의 문하에서 배운 선생의 학문과 顔回의 一簞食一瓢飮하는 학자로서의 청빈한 삶을 애도하였다. 스승을 잃은 제자의 애통함이 절실하게 나타나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387

    祭金勿巖(隆)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벗이자 가르침을 받았던 勿巖 金隆(1549~1593)에게 올린 제문이다. 고고한 학과 같은 자태와 굳은 절개, 자로 잰 듯한 올바른 행동,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儒兵을 모았던 행적 등 그의 학문과 행동, 事功을 기리고 있다. 또한 저자의 눈과 귀를 열어주고, 어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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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88

    祭琴勉進齋(應壎)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勉進齋 琴應壎(1540~616)에게 올린 제문이다. 宿病으로 인해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金光輔에게 부탁하여 고인의 영전에 酒果를 올리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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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89

    祭朴大庵(惺)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大庵 朴惺(1549~1606)에게 올린 제문이다. 음식을 먹으면서 맛을 알고 병에서 사람을 구할 줄 아는 이라고 기리며 저자에게는 스승이자 벗이었던 애틋한 사건들을 회상하며 공의 죽음을 애통해 하였다. 임진왜란 때 金誠一과 더불어 愛君憂國의 정성을 다하였던 공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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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90

    祭裵翰林(龍吉)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翰林 裵龍吉(1556~1609)에게 올린 제문이다. 저자의 병환으로 인해 아직 궤연에 가서 곡하지 못한 채 궤연이 마치게 되었음을 애통해 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6391

    嘯皐先生行狀 6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嘯皐 朴承任(1517~1586)의 행장이다. 선생의 자는 重甫이고 全羅道 羅州 潘南縣에서 계출된 성씨이다. 曾祖는 秉鈞, 祖는 䃞, 父는 珩이고 母는 禮安金氏 萬鎰의 딸이다. 1517년(중종 12) 11월 19일 寅時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민하였던 그는 15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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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92

    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1786년(정조 10) 늦여름에 李級이 쓴 龍潭 任屹의 행장이다. 행장이 100여 년이 지난 정조대에 행장을 쓰게 된 배경과 문집을 만들기까지의 정황을 간략히 전술한 후 임흘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임흘의 업적을 기록한 행장이 없어서 매몰되고 가려졌던 기록들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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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93

    又 11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1790년(정조 14) 丁範祖가 찬한 행장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흘의 자는 卓爾, 호는 龍潭이다. 始祖인 溫으로부터 宋朝에서 벼슬한 盛族이었다. 6세인 澍가 元에서 벼슬하다가 공주를 따라 고려에 와서는 돌아가지 않았다. 御史大夫를 지내며 출사하였고 豊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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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94

    墓誌銘(幷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1790년 10월 安鼎福이 찬한 묘지명이다. 그 내용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임흘의 자는 卓爾, 호는 龍潭이다. 始祖인 溫은 宋나라 昭興府 사람으로, 中華의 名族이었다. 6世인 澍에 이르러 송나라가 망하고 元에서 벼슬한다. 공주를 따라 고려에 와서 돌아가지 않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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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95

    墓碣銘(幷序) 18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李獻慶이 찬한 묘갈명이다. 묘갈명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예전 龍潭 任선생은 뜻이 독실하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聖賢의 格言을 취해 한편으로 만들어 항상 암송하였다. “思無邪, 毋不敬, 獨行不愧影, 獨寢不愧衾, 上帝式臨, 其敢或貳” 등 236자를 아침저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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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96

    實蹟摭錄 20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임흘의 행적이 실린 기록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발췌한 원전은 敬窩 金烋의 기록, 松巖魯 李龍蛇의 日記, 參議 柳宗介遺事, 琴易堂 裵龍吉의 鄕兵日記, 鶴峰 金誠一의 狀啓, 艮齋 李德弘의 上疏, 苟全 金中淸의 上疏, 『金苟全集』 중에서 「上任大將書」, 『嘯皐先生門人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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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97

    宣城邑誌 30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宣城邑誌』에 실린 임흘에 관한 기사를 옮겨 실은 것이다. 원래 『龍潭遺集』에서 있는 것이며,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任屹의 자는 卓爾이고, 豊川 사람이다. 中廟 때 名臣인 昭簡公 由謙의 曾孫이다. 司馬試에 합격하였다. 寒岡 鄭逑에게 배웠으며, 禮學에 매우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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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98

    輓詞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金中淸‧金坽의 輓詞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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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399

    贈遺 / 기록자료>고도서 / 임흘
    제현들이 보내온 글을 담고 있다. 제현들의 글은 다음과 같다. 嘯皐 朴承任의 「次任卓爾」, 月川 趙穆의 「次任卓爾」, 寒岡 鄭逑의 「答任卓爾書」, 靑巖 權東輔의 「龍潭快閣題詠次韻」, 여기에 차운한 五峯 李好閔, 春塘 吳守盈, 海月 黃汝一, 靑虛齋 孫曄, 勿巖 金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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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400

    우간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
    우간집(雨澗集) 雨澗 金虎運의 문집. 木板本, 金鎭麟‧金鎭麒, 1872, 6卷3冊:四周雙邊, 半郭 19.4×15.7㎝, 10行18字 註雙行, 內向二葉花紋魚尾:32.2× 20.8㎝. 卷1은 詩 44수가 수록되었고, 卷2는 問目, 卷3은 書와 箴‧銘‧序‧記‧識‧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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