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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言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倣淵明停雲詩呈族兄亨萬(會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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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言絶句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謹次族兄匏山公(龍普)韻(匏山公自川前將涉汾浦津與雨皐蒙泉諸公各賦一絶余年十二隨諸公後), 送邊文伯, 過檜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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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言四韻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元朝自警, 春雨, 上禪庵贈再從弟天贊(冕運), 小至吟贈別柳士能(百祚)申爾周(冕朝)成之(鳳朝)叔度(憲朝), 輓李景直(宗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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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言古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小池移蓮(幷小序), 輓族叔幼吉(始翰), 輓族姪綬之(履壽), 贈崔成彦(洵)景孝(涍), 又贈長篇, 輓族姪仲行(景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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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言絶句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元朝自警三絶(壬寅), 觀申雙石遺稿, 過琴湖, 贈崔景深(溭), 冶溪次亨萬兄韻, 霽山先生復官改題時感吟, 和崔景善(濩)二絶, 讀易有感, 夜坐書懷, 梅月堂遺墟有感, 輓族姪明則(時喆)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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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言四韻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舟中望鼇山書院, 過南冥先生故里, 謹次崔臺巖原韻, 百弗庵崔先生旌閭時次愚山鄭丈(宗魯)韻, 拜寒岡先生院祠, 贈天贊, 次崔淸彦(湜)盆梅韻(幷序), 雲谷書堂小會伏次雨皐丈席韻, 韶州與柳士能申爾成成之叔度夜話, 輓族叔處士公(始寅), 仙亭旣望夜酬唱, 次族從以凝(羲壽)族譜韻, 應牓日與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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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東巖柳先生喪禮問目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東巖 柳長源(1724~1796)에게 올린 상례에 관한 문목이다. 問 : 사계 김장생은 初喪 때는 망자의 처가 주부이고, 虞祔 이후는 主喪者의 妻가 주부라고 하였으며, 갈암 이현일도 이 설이 좋다고 하였는데, 우복 정경세는 卑者가 初獻을 하며 尊者가 아헌을 한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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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雨皐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金道行에게 올린 서한이다. 金道行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객지에 있으면서 朱書를 공부하고자 한다고 하였으며, 몇몇 동지들과 같이 보고자 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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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雨皐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성균관에 거접하고 있으면서 金道行에게 보낸 서한이다. 性命之書를 읽고 감발하고자 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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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東巖柳先生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東巖 柳長源에게 올린 서한이다.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음을 사죄하고 문하에서 학문을 수업하였으나 그 가르침을 잘 익히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과거에 급제하고 난 다음의 것으로 보여 진다. 소송에 관한 책을 箚補하여 엮었으니 가르침을 내려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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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崔淸彦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崔湜(1762~1807)에게 보낸 답장이다. 痘疫으로 인하여 이사하였음을 전하고 殯殿을 옮기게 되어 안타까운 심정을 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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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崔淸彦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崔湜에게 보낸 서한으로 夫人洞사건에 대한 도회에서 공의가 준엄하였음을 말하였고, 여강의 통문에 대한 답을 보내었으나 도회의 날에 맞추어 가지 못하였음을 한탄하였다. 부인동 사건은 대구 부인동의 洞約과 관련하여 부인동의 동민들과 최씨가의 서얼들을 한편으로 하고 최씨 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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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崔淸彦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崔湜에게 보낸 서한으로 자신은 학문에 힘쓰지 못하고 있다고 하고 그대는 가학의 연원이 있으니 내가 下交하는 대열에 있으면서 백척간두에서 진보할 수 있는 것이 그대의 책임이 아닌가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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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崔淸彦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崔湜에게 답한 것으로 崔湜의 학문은 頂門一針이라고 하고 혹시 자신이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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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冥棲庵刊所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冥棲庵 간역소에 보낸 것으로 『갈암집』 교정에 참여하고 난 다음의 것으로 보인다. 문집의 간행은 사문의 대운과 관련된 것이지만 자신은 병이 있어 말석에 참여하였지만 큰 도움이 못되어 죄송스럽다고 하였다. 1811년의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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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陶淵會中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瓢隱 金是榲을 서원에 배향하기 위한 작업이 100여 년이나 지났으나 아직 성공하지 못하였음을 아쉬워하면서 자손으로써 祖先만을 천양하고자 하는 것은 부당하지만 그 도덕과 風節이 백세의 사표가 되는 자는 일종의 공론이므로 자손은 은인자중하는 것이므로 어찌 조선을 천양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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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九峰族兄(鵬運)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족형 金鵬運에게 보낸 것으로 芝村 金邦杰의 유고를 빨리 간행할 것을 주장하였다. 지금 菊村 형과 仙寺에서 모여 필사하고 편집하기를 약속하였으니 형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시일을 늦추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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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崔穉先(孝述)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백불암 최흥원의 緬禮를 주관한 崔孝述에게 보낸 서한이다. 면례가 무사히 마쳤음을 축하하면서 또한 그대는 백불암의 冢嫡이니 家訓을 이어 학문에 힘쓸 것을 권면하였다. 崔孝述은 崔湜의 아들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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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崔穉先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崔湜의 상을 마치는 최효술에게 보낸 서한으로 애통함 때문에 몸을 상하지 말도록 위로하고 직접 가지 못함을 사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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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徐善膺(元模)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徐元模의 서한을 받고 답한 것으로 학문에 더욱 힘쓸 것을 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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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晦如(相曄)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李相曄에게 보낸 서한으로 학문에 힘쓸 것을 권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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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族弟景胤(祚運○1807)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상례에 대한 언급이다. 상주가 5‧6세로 너무 어리면 아이 이름으로 題主 祝을 하지 말고 舍兄 某 가 대신한다고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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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再從姪疇壽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재종질 疇壽에게 학문하는 방법을 권하는 내용이다. 탐독하는데 힘쓰지 말고 그 뜻을 음미하도록 하라고 하였고, 내용을 완전히 알고 난 다음, 다음 단계로 나아가 완전히 알아 통달하도록 하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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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牌箴(幷序)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敬牌에 대한 잠에 서를 붙인 것이다. 敬牌는 百弗庵 崔興遠이 소장하고 있으면서 지표로 삼은 것인데 최흥원의 명에 의하여 盆梅賦를 짓고 敬牌에 대한 箴을 쓰도록 하였으나 얼마 안있어 최흥원이 사망하자 당시 쓰지 못하였다. 뒤에 최흥원이 자신의 학문방향을 보고자 한 것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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進修箴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다행히 선비가 되어 행함에 篤敬하고 말은 과묵하게 할 것을 다짐하면서 학문에 힘쓸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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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學六箴(幷小序)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소학의 立敎‧明倫‧敬身‧稽古‧嘉言‧善行의 6편에 대한 잠을 붙인 것이다. 어릴 때부터 글자는 익혔으나 실천하지 못하였다. 이제 30여년이 지나 실천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였다. 주자가 『대학혹문』에서 소학의 공부는 敬이라고 하였으니 敬身 一條가 그 책의 의미를 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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鏡銘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어 마음에 추호라도 때가 끼지 않도록 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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枕銘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베게를 베고 잠을 자면서도 兢懼하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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栗里世稿序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외사촌 申載錄의 부탁을 받고 쓴 것이다. 石南‧棄翁‧雙石園 3世의 유문을 엮어 편집한 것으로 고령신씨는 拙齋 申湜이 퇴계의 학문을 계승한 이후 石南-棄翁-雙石園 3세에 걸쳐 영남의 표상이 되었다고 하였으며, 그 문집들은 한 가문에 비장해서 볼 것이 아니라 世敎를 부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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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申君悰模序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外從姪 申悰模에게 준 글로 先世에 번성하였던 문호가 悰模代에 와서 몰락하였음을 아쉬워하고 悰模가 學問에 힘쓰고자 하자 장려하는 글을 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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汾浦石臺記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汾浦의 石臺 근처로 거처를 옮기고 쓴 글이다. 앞에는 괴석이 있고, 뒤에는 작은 연못이 있으며 대의 옆에는 거북같이 생긴 바위가 3‧4인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다. 그 경치가 九曲 중 鏡浦나 臨川 보다 낫다고 하였다. 이에 집을 지어 독서하고 養性할 곳으로 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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盆池記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石臺 아래 盆池에 붙인 기문이다. 못 안에 화분 같이 생긴 작은 섬이 있어 각종 꽃들이 피어 혹은 향기로, 혹은 약으로 쓸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盆池로 이름붙이고 독서하는 여가에 즐기고자 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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杏壇記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雨谷에 복거하면서 壇을 쌓고 공자의 杏壇弦歌의 뜻을 취하여 이곳에 학문하는 자가 가득하였으면 한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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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理大全抄集後識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性理大全을 읽고 중요한 내용을 초록하여 그에 대한 識를 붙인 것이다. 性理는 六經에 그 말이 근원하고 주자에 의해 절충‧집성되어 의리가 판연하게 드러났는데 明 永樂帝가 유학을 포장하여 이 책을 이루었으니 그 공이 크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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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胡氏傳卷後識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집에서 소장하고 있는 春秋胡傳의 유래를 적고, 春秋胡傳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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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杜詩五言抄集後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杜甫의 시를 직접 抄集하여 玩賞하면서 느낀 감회를 적은 것이다. 詩家의 맹주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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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壺隱亭後孫家藏帖後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壺隱 金珽의 후손가에서 소장하고 있던 家帖을 보고난 다음의 감회를 적은 것이다. 金珽의 행실은 나라에까지 드러나 효행으로 정려를 받고 대대로 이어졌으나 그 후손들이 몰락하여 선조의 업을 계승하여 떨치지 못하게 됨을 아쉬워하였다. 이에 그 7대손 泰興이 舊蹟을 보존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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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子哭子張辨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증자가 母喪을 당하여 齊衰服을 입고 있으면서도 子張의 상에 가서 곡을 한 것에 대한 辨이다. 劉氏는 증자가 삼년상 안에 다른 이들과 같이 섞이지 않고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군자의 예라고 하였는데 잘못된 행동이 아닌가 하였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증자는 孔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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陽村論禮後辨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魯昭公이 모상 중에 사신을 접대하였다. 증자가 묻자 공자는 非禮라고 하였다. 권근은 陳 司敗의 일을 들어 공자의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 나는 틀렸다고 본다. 모상 중에 사신을 대접하는 것은 失禮의 작은 부분이고, 失禮의 작은 부분을 숨기고 말하지 않는 것은 聖人之心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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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書攷疑辨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書傳』「周書」의 내용 중 의문나는 점을 적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金藤의 일과 관련하여 陳氏가 제기한 무왕‧주공‧성공의 나이 등에 대한 의문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로는 성왕은 44세까지 살았으므로 己卯生이 맞고 무왕의 나이 86세에 아들을 낳는 것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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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興詩有中庸之義辨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感興詩에는 중용의 뜻이 있다. “현천의 幽黙/ 仲尼의 無言”이라는 구절은 중용과 표리되는 것이고 이 시의 첫머리에 天地之化를 말한 것은 중용의 첫머리에 말한 一理이다. 그러므로 감흥시에는 중용의 뜻이 있다. 그러므로 주자의 감흥시와 張載의 西銘은 중용의 뜻이 있는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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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講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대학』을 서문부터 十章까지 자신이 이해한 대학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序文은 인의예지의 性을 설명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고, 삼강령은 규모가 되며, 팔조목은 절목이 되니 明明德은 格致誠正修의 규모가 되며, 格致誠正修은 明明德의 절목이 된다고 하고 至於至善은 明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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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箚疑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중용』에서 중요한 문제점을 뽑아 제가의 설을 정리한 것이다. 예를 들면 율곡이 精一執中을 動時工夫라고 하는 것은 미안하다고 하자 퇴계가 “靜時工夫는 어떠한 공부인가. 당초에 순이 인심도설을 설명하였을 때 모두 已發하였기 때문에 精一執中이라고 하였다”고 답한 내용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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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疑義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심경』의 내용에 대하여 자신의 의문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각종의 의견을 적은 것이다. 그 대상이 된 것은 ① 天理人欲同行而異情 ② 人有四百四病 皆不由自家 ③ 痛憶‧放退 ④ 累心‧心累 ⑤ 格物窮理 但立誠意 ⑥ 放心 등의 문제였다. 『심경』의 주요한 내용을 거의 망라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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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書箚疑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여러 책을 읽고 그 책들에서 나오는 내용 중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을 뽑아 정리한 것이다. 『太極圖說』의 無極而太極, 太極‧動靜의 문제, 『易』의 一陰一陽之謂道라고 했을 때 道의 내용과 陰陽의 내용 및 陰陽‧五行의 관계, 『논어』 衛靈公편의 ‘一以貫之’에 대한 이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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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端七情說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四端七情에 대한 선유들의 학설을 적고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였다. 四端은 理發, 七情은 氣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였고 四情에 해서는 발하여 中節했을 때는 理之所爲發로 不中節했을 때는 氣之所爲發로 정리하였다. 그러므로 나누어서 七情을 兼四端하고 四端은 七情의 善 一邊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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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統性情說抄集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장재의 『橫渠語錄』에 나오는 “心統性情”에 대한 문구를 제시하고 이어서 주자의 統에 대한 해석, 林隱 程復心(1257~1340)의 心統性情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였고, 心統性情에 대한 자신의 평가와 그 근거가 되는 구절을 『중용』‧『대학』‧『맹자』 및 장재‧정자‧주자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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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警錄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25세 때의 것으로 자신의 일상을 반성하고 학문에 힘쓸 것을 다짐하고 義와 利의 차별을 분명히 할 것, 집안을 잘 다스릴 것 등을 다짐하였다. 당시 金虎運家의 노비가 5‧6口에 불과하였음을 알 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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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雲川先生上言草(代士林作,1807)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雲川 金涌(1557~1620)에게 시호를 내려줄 것을 청한 것이다. 사림을 대신해서 썼다. 雲川 金涌의 行義가 사림이 존숭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김용의 집안 내력, 학문 연원 등을 언급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起義한 사실, 국가에 대한 충성 등을 언급하였고 성리학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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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人洞事通各院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대구 부인동 사건과 관련된 통문이다. 백불암 최흥원이 동약을 세워 실행하였는데 이는 林下의 대경륜으로 美法이었는데 지금 무뢰배와 천류들이 백불암이 세운 제도를 부정하고 무너뜨리려 하므로 이는 서얼이 적자를 능멸하고 명분에 죄를 입은 것이지만 본손이 미약하여 사림들이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