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呈大宗伯書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예조판서에게 올린 呈文으로 문경에 사는 金千壽가 자신들의 칠대조의 자손으로 외지에서 遊離하다 족보를 잃어버렸으나 하나의 文蹟을 보관하고 있어 일가임이 분명하니 본관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여 달라는 내용이다. 金涌의 아들 鸞壽가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부모를 잃어버렸다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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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聞慶宗人呈禮曹書 3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앞의 呈大宗伯書와 내용이 같다. 金鸞壽의 후손들이 농민으로 전락하여 자신들의 힘으로 정소하지 못하자 대신 작성해 준 것이다. 자신들은 원래 의성김씨로서 안동 천전의 雲川 金涌의 후손임을 金鸞壽가 남긴 火餘世系를 바탕으로 원래의 본관을 회복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달라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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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亨之(宇夏)哀辭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李宇夏의 영전에 올린 哀辭이다. 孝友하고 忠信한 성품으로 선생 장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향당의 추앙을 받았으나 일찍 사망하였음을 안타까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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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淸彦哀辭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崔湜의 영전에 올린 哀辭다. 崔湜은 金虎運이 대구의 옻골로 장가든 후 만난 처가의 인물로써 서로 절친했다. 崔湜은 篤行君子였으나 불행히도 수가 길지 못하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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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叔天成(始定)哀辭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族叔 金始定의 영전에 올린 哀辭다. 29세에 요절함을 아쉬워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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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兄(昌運)哀辭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族兄 金昌運의 영전에 올린 애사다. 1789년 작성한 것으로 金昌運이 종족의 기대하는 바요 士友들이 추숭하는 바였으나 30이 못되어 요절하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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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孫建五(鎭福)哀辭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15세에 요절한 金鎭福을 기리는 애사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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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洞內山川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疾疫과 痘疫이 사라지도록 一洞의 山川에 올린 제문이다. 당시 전염병이 극성하였음을 이 제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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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百弗庵崔先生墓文(1810)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崔興遠(1705~1786)의 묘를 이장하고 난 다음 올린 제문이다. 최흥원이 살아 있을 때의 상황을 회상하고 가르침을 많이 받지 못함을 아쉬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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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東巖柳先生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東巖 柳長遠(1724~1796)에게 올린 제문이다. 先妣의 상을 당하여 문목을 올려 가르침을 받았으나 어리석다고 배척하지 않고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는데 더 이상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슬프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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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尤園李公(楨國)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尤園 李楨國에게 올린 제문이다. 林泉에서 학문에 침잠하면서 풍속을 바로잡았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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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舅石澗崔公(光鎭)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장인 崔宇鎭에게 올린 제문이다. 최우진의 학문이 우뚝하였으며 漆洞의 학문을 繼述하였음을 언급하였다. 최우진은 백불암 최흥원의 문인이다. 光자는 宇자의 잘못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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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丈(馨進)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金馨進에게 올린 제문이다. 김형진이 독실하고 가산이 풍요하였으며 문예에 뛰어났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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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柳士能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柳奭祚(1768~1803)에게 올린 제문이다. 동갑으로 知己로 사귀었더니 병으로 인해 사망하였다고 안타까워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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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兄處士公(宗運)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족형 金宗運에게 올린 제문이다. 덕이 높아 후생의 矜式이 되었고 사장에 능하여 문학에 진력하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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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處士公(相權)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족숙 金相權에게 올린 제문이다. 문중의 矜式이었으며 先考(始弘)와 동년으로 선고를 형으로 부르는 사이로 매우 절친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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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姪應賚(箕壽)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요절한 족질 金箕壽에게 올린 제문이다. 자신의 친동생도 金箕壽가 죽은 지 몇 개월 후 하세하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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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祖雲川先生遺事(丁卯上言時)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金涌(1557~1620)에게 시호를 내려줄 것을 청하였을 때 같이 작성한 것이다. 1807년(순조 7)의 것이다. 金涌의 자는 道源 호는 雲川으로 어릴 때부터 영매하였고, 月川 趙穆‧西厓 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90년(선조 23) 문과에 급제하고 159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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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柳晦文‧金虎燦‧李家淳‧李鋉‧柳健休‧李周齡‧崔溭‧柳致明‧趙彦儒‧李海永‧李定秀‧李海德 등 12人이 김호운의 영전에 올린 것으로 모두 22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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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詞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金弼敎‧鄭涑‧申悰模가 올린 것으로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을 아쉬워하였다. 모두 3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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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金鵬運‧金坤壽‧崔溭‧金養運‧申思永‧金羲壽‧金漸運‧金象運‧金祚雲‧金祖壽 등 10인이 10편의 제문을 올렸다. 이중 金祚雲‧金祖壽가 올린 제문은 遷葬할 당시의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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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崔孝述이 1863년(철종 14)이 金虎運의 아들 憲壽의 부탁을 받고 작성한 것이다. 공의 휘는 虎運, 초휘는 迪運이며, 본관은 義城이다. 靑溪 金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始弘이며 어머니는 高靈申氏로 通德郞 思柱의 딸이다. 1768년(영조 45) 汾浦里에서 태어났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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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幷序)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李敦禹가 撰한 것으로 崔孝述이 작성한 行狀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행장보다 약간 간략하나 그 내용은 거의 같다. 생몰과 가계의 유래 등에 대하여 적고 학문이 조정에 쓰일 만하였으나 그 수가 짧아 뜻을 펼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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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誌銘(幷序) 4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호운從孫 金岱鎭이 김호운의 아들 憲壽의 부탁을 받고 작성한 묘지명이다. 行狀‧묘갈명과 내용이 거의 같으나 소략하다. 학문에 힘썼고 가학을 잘 계승하였으며 후학의 矜式이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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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청사집(晴沙集) 晴沙 權斗紀의 문집. 木活字本, 金徹淵, 1910, 4卷2冊:四周雙邊, 半郭 23.0×15.6㎝,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黑魚尾:32.0×21.0㎝. 晴沙集은 1886년(고종 23)에 후학 조성복이 근서하였다. 문집 중 卷1∼2는 총 22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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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次從兄(斗運)韻, 伏次伯兄蒼雪公(斗經)韻, 次從兄(斗光)舟中阻雨韻, 次李文昌(台翊)韻, 送金子兼(履達)南還, 次李殿中尙之(德玄)韻, 垂釣滄波間(月課), 挽鄭英陽熙伯(錫僑), 挽懶隱李公(東標), 挽柳上舍道應(宗時), 挽宋靑松(光璧), 挽金公(漢奎), 戊寅春行冲祖忌祀于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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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贈孫玄叟(德昇), 次李幼材(裁韻, 挽李士久(後榮), 挽金彦兼(台重), 同孫玄叟李眉仲(德其)賞蓮于縣東堤上, 次東萊伯李邦彦(正臣)見贈韻, 贈黃山丞呂天卿(命舉), 辛卯九月萬姪告歸以四韻留別追後和送, 金道兼(弘濟)投示古詩步其韻錄呈, 次李君(義兼)韻, 述懷寄孫玄叟, 次慶尹權子定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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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司憲府持平疏(1706)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1706년(숙종 32) 8월에 사헌부 지평을 사양하며 올린 상소이다. 자신은 천박하고 비루함이 남들보다 심하여 비록 한미한 관직이라도 견디지 못한다. 주상께서는 조정의 일로 근심하는 날이 많은데 자신처럼 아무런 공이 없는 사람이 군주의 성스럽고 밝은 은혜에 보답하거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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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辭持平疏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1706년 10월에 사헌부 지평을 사양하며 재차 올린 상소이다. 자신처럼 소천한 사람이 그 직위를 맡으면 주상의 은혜에 보답할 수 없고, 병든 몸으로 근근히 부축을 받으며 지내고 있으니 고향에 거처하며 조섭하는 편이 나으니 헤아려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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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司諫院正言疏(1707)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1707년(숙종 33) 7월에 사간원 정원을 사양하며 올린 상소이다. 자신은 병이 들어 부임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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擬再辭正言兼陳所懷疏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1707년 9월에 사간원 정언을 재차 사양하고 겸하여 옥사에 대한 소회를 진술하여 올리려 했던 상소이다. 저자는 사간원 정언을 제수 받았으니 즉시 나아가는 것이 마땅하지만 늙고 병이 닥쳐 부축을 받아야만 걸을 수 있는 상황이라 부임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더불어 혹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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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司憲府持平疏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1707년 10월 사헌부 지평을 사양하며 올린 상소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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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松月齋李公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송월재 李時善(1625∼1715)에게 답한 편지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가 뜻하지 않게 편지를 받아 기쁘고 보여주신 가르침이 커서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부끄럽다. 중춘(2월)에 季公의 회갑연을 연다고 들었으니 그 즐거움이 손에 잡힐 듯하다. 넉넉하게 성의를 다하지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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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士達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사달 김정(金,1670~1737)에게 답한 편지이다. 금릉 관리가 전해 준 답신을 받고 보니 편지 가득 감계한 뜻이 넘쳐 거듭 감탄하며 자신은 유배지에서 큰 병을 면한 걸로 족하다는 말로 안부를 전하고 있다. 마음먹은 일을 행하기는 하나 볼만한 것이 없는데다가 상소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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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天輝(明夏)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이명하에게 답한 편지이다. 자신은 被譴이후로 큰 질병은 면했고, 풍토가 청량하여 그럭저럭 날을 보내고 있으니 바랄 것이 없다. 세상의 덕으로써 칭찬하시고 유학으로써 면려하신 가르침이 종이 가득 진실되어 감당할 수 없다. 당연한 말을 간략하게 올려 간언한 상소일 뿐인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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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章叔(樟)器余(榏)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장숙 김장(1653∼1744)과 기여 김익에게 답한 편지이다. 홍역으로 몇 달째 고생하고 있다고 들으니 멀리서 걱정됨을 이기지 못하겠다. 자질들이 보내온 情과 文이 갖추어진 편지를 받아보니 마주하여 담론하는 것 같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자신은 炎瘴과 힘들게 싸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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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文注書(德龜)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주서 문덕구에게 답한 편지이다. 뜻밖에 편지를 받으니 말뜻이 정중하여 감사와 부끄러움이 교차되고, 별록에 보여 준 가르침이 이미 이르렀으나 감히 강담하지 못한다. 찬술하신 大君子의 아름다운 말과 의로운 행실이 쾌하여 어리석어 글을 하지 못하는 자는 감히 손댈 수 없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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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生命學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김명학에게 답한 편지이다. 해우한 지 한 해가 지나 그립던 차에 소식을 전해오니 붙잡고 두세 번 읽기에 즐겁다. 젊어서는 배움이 없고 늙어서는 명성을 듣지 못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어떠한 지 묻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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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宗兄荷塘先生(斗寅)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종형인 하당 권두인에게 올린 편지이다. 자신은 수개월동안 산에 있으니 몸에 병이 더해지는 듯한데 종형은 어떠하신지 묻고 있다. 절에 도착하니 서생중에 삭발을 하고 중이 된 자가 있다고 하여 불러보니 그 성질이 아낄 만하고 이미 삼경사서를 다 읽었다 한다. 자신이 강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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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宗兄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종형 권두인에게 답한 편지이다. 자신은 고된 상황이 날마다 더해져 힘든데 잘 계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위로가 된다. 어제는 특별히 좌참찬에 제수되어 주상의 은혜가 특별히 이르렀는데 睦林一 또한 특별히 호조참의에 올랐다. 그리하여 걱정이 되기는 하나 마음을 모아 함께 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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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宗兄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종형 권두인에게 올리는 편지이다. 봉화인이 돌아가는 길에 편지 한 통을 보내니 살펴주시고, 혹독한 더위에 어떠하신지 궁금하다. 자신은 여전하고 큰 병을 면했으니 다행일 뿐이다. 어제 승정원에서 소식이 전해지니 가을 사이에 혹 도사가 될 것인데 만약 관동지방으로 나간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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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伯兄蒼雪先生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백형 창설재 권두경에게 올리는 편지이다. 김천연이 돌아가는 길에 편지 한 통 올리오니 무더위 속에서 정사를 다스리는 근황이 어떠하신지 궁금하다. 형님의 눈병이 심해졌다 하오니 우러러 염려됨이 심하다. 자신은 예전처럼 무탈하게 무더위를 씻어 내며 지내고 있고, 일없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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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伯兄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백형 권두경에게 올리는 편지이다. 서울에서 내려오니 부침의 근심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처한 유배지는 북쪽 샘이 달고 독기가 이르지 않는 곳이 그나마 다행이다. 흥양 유배지에서 김세흠이 보낸 편지에 부러운 뜻이 있어 도리어 웃었다. 유배지에 도착하여 얼마 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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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季弟少章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季弟 權斗鉉에게 보낸 편지이다. 무사히 상경했다는 말을 들으니 위로가 되고, 백지상태로 오랫동안 머무르며 갖가지 일을 겪으니 근심스럽다. 이미 이긴 뒤에 몸을 보존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것이니 작은 이익 때문에 큰 우환을 범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또한 빈부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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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藼兒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아들 훤에게 주는 편지이다. 권송이 가지고 온 편지에 근황을 살펴보았고, 자신은 어제 아침에 소장을 올려 비답을 받아 변방의 끝으로 지극히 멀리 유배를 가게 되었으니 그곳은 해남이다. 상소의 말이 지극히 과격한 것을 꺼리지 않아 이런 엄한 징계를 받게 되었으니 모름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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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藼兒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아들 훤에게 주는 편지이다. 어제 답서를 받고 극심한 추위에 형편은 어떠한지 그립고 그리워 잊을 수 없다. 자신은 오늘이 어제 같고 하루가 같은 날이다. 서원에서 고요히 공부에 힘쓰지 못하고 있다고 들으니 걱정된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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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都叅禮遠卿(永成)序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참례 도영성이 호남에 부임하는 길에 전송하는 글이다. 벗 원경은 모습은 작으나 마음이 크고 행동이 방정하며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벗들에게 우애가 있다고 평하였다. 또한 이번에 호남으로 부임하게 된 것은 재주가 적어서가 아니라 시세에 따라 知遇를 받기 때문이라고 위로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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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裵秀才(慶垕)序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배경후를 전송하는 길에 써준 서문으로, 힘써 노력하여 구하되 빨리 달성하려고 하지 말고 운수에 맡겨 입신하여 효도를 다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배경후는 자신이 궁벽한 곳에 귀양 와 있을 때 배움을 구한 선비로, 용모가 온화하고 말이 간결하며 경전을 배우는데 공손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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慕逸軒重修詩序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호남의 시인 鄭道淵이 화답을 부탁한 일모헌 율시에 대한 서문이다. 일모헌은 정도연의 아버지가 조부 일헌공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누헌이다. 일헌공은 문학으로 당세 이름을 있었고 일헌으로 자호하였다. 군의 아버지는 특별히 이 이름을 누헌에 게시하여 사모하는 뜻을 드러내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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炳燭齋箴(幷序○鄭君名萬載)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10년지기 벗 鄭萬載와 시를 주고 받으며 스스로를 경계하는 글이다. 정만재는 호남인이고, 중후하면서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민첩하고 학문이 넓어 풍속에 얽매이지 않는 성품이다. 저자는 그를 평하기를 해남에 유배되어 있을 때 찾아와 서로 더불어 詩를 나누었으니 글이 볼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