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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6501

    金孝子哀辭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저자가 영일현에 유배되었을 때 들은 효자 金德三에 대한 실기와 그를 추모하는 애사이다. 김덕삼의 자는 상지, 본관은 월성이며, 대대로 영일에 살았다. 11세에 아버지를 잃고 執喪하는데 어른처럼 하였고, 소찬을 먹으며 3년상을 치르는 동안 사람들이 혹 죽을 권해도 눈물
    출처 : 유교넷
  • 356502

    琴君命摯莘叟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琴命摯를 애도하는 글이다. 저자는 망자의 아버지와 서로 아끼며 막역한 사이였는데 불행하게도 그대가 40세가 되기도 전에 아버지를 따라 죽으니 애통하다. 그대는 妙年에 소과에 붙어 부로들이 기대하였고 벗들이 推重하는 사람인데 어찌 이렇게 빨리 가버리며, 그 후손인 11
    출처 : 유교넷
  • 356503

    祭葛菴李先生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갈암 이현일(1627∼1704) 선생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선생은 학봉과 서애 두 선생을 왕래하였고, 두 형을 따라 가학을 이었다. 천거로 관직에 나아가 활동하다가 종성에서 6~7년동안 유배생활을 하였다. 자제들을 가르치기를 부지런히 하여 전통을 잇고, 무리들을 이
    출처 : 유교넷
  • 356504

    祭外舅恒齋李公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외구 항재 이숭일(1631~1698)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망자는 혁혁한 아버지와 맹모의 덕을 갖춘 어머니 정부인을 모시고 가훈을 법 삼고 성리학에 잠심하고 옛글에 뜻을 두었다. 형을 모시고 연마하니 학문은 후생들에게 모범이 되고 기량은 큰 집의 주춧돌이 될 정도
    출처 : 유교넷
  • 356505

    祭洪公(游益)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妹夫 홍유익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망자는 어려서부터 거짓이 없었고 기질이 온순하였다. 유자들의 아취로서 가지런히 닦고 편안히 지조를 지키며 배불리 먹지 않고 의복은 겨우 형체를 가릴 정도로 가난해도 편안하게 여긴 어진 성품이었는데 이제 돌아가니 슬프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6506

    祭金天若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김세흠(1649∼1721)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망자는 속진에 물들지 않고 온화함이 옥과 같았다. 중간에 지우를 만나 홍문관에 올랐으나 충간하다가 출삭되어 6년 만에 귀양살이에서 풀려났다. 저자는 그와 시를 읊으며 훈지처럼 우애가 좋았는데 이렇게 먼저 가니 애통하
    출처 : 유교넷
  • 356507

    祭宗父參奉公文(遷層時)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종부 권목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망자는 인후한 덕과 화목한 풍모로 효로 어버이를 섬기고 충으로 사람들을 접했다. 모습은 의젓했으며 몸은 꽉 찼던 영령 앞에 곡하며 변변찮은 음식을 갖춰 올린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6508

    祭宗兄荷塘先生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종형인 하당 권두인(1643∼1719)의 영전에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509

    祭季弟正字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계제 권두휘의 영전에 쓴 제문이다. 망자는 자품이 순수하고 재주를 갖췄으며 문장이 넉넉하고 덕이 화락하였다. 어려서 부모를 잃어 형수에게 의지해 살았고, 저자가 해남에 유배되자 서울에서 수 천리를 건너올 정도로 형제간에 우의가 돈독하였는데 먼저 떠나보내게 되니 마음에
    출처 : 유교넷
  • 356510

    祭蓺姪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조카 권예의 영전에 쓴 제문이다. 망자는 어려서부터 저자의 집안에 의탁해 지내며 부형들의 기대가 두터웠다. 저자가 해남에 유배되었을 때 혹독한 더위를 무릅쓰고 멀리 찾아오는 등 믿음을 두터웠는데 40세 이전에 죽었으니 그 애통함이 심하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6511

    祭次子德養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차자 덕양의 영전에 쓴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6512

    處士文公行狀 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처사 문필징에 대한 행장이다. 문필징은 자는 헌중, 본관은 남평이다. 과거를 일삼지 않고 부모 곁에 머물러 정성을 다하였다. 부모님 상을 당해서는 12년 동안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올리며 몰골을 잃을 정도로 애훼의 정을 다하여 향당 사람들에게 자주 칭송되었다. 스승이
    출처 : 유교넷
  • 356513

    遺事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창설재 권두경이 쓴 유사로,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두기는 자는 숙장이고, 만년에 호를 청사라 하였다. 공은 충정공 권벌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濡, 어머니는 선성김씨 鑒의 딸이다. 공은 1659년(효종 10)에 영릉에서 태어나 1722년(경종 2)에 몰했다.
    출처 : 유교넷
  • 356514

    墓誌銘(幷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李光庭이 쓴 묘지명이다. 권공의 휘는 두기, 자는 숙장이다. 아버지는 權濡, 백형은 창설재 권두경으로 문명으로 이름이 있었다. 1687년(숙종 13)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96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를 제수받았다. 예조좌랑이 되었다가 1701년 옥사가 일
    출처 : 유교넷
  • 356515

    墓碣銘(幷序)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趙德鄰이 쓴 묘갈명이다. 공은 충재선생의 5세손이고, 아버지는 휘 유로 오랫동안 덕명이 있었고, 어머니는 예안김씨로, 아들 넷을 두어 현달한 자가 세 명이니 공은 셋째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뛰어나 그를 본 사람들이 모두 그릇으로 여겼고, 어려서부터 홀로 응중하여 장난
    출처 : 유교넷
  • 356516

    挽詞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李浹‧李琓‧李裁‧李棟完‧鄭葵陽‧權榘‧沈檀‧趙德鄰‧金聖鐸‧李光庭‧權相一‧洪重徵‧李萬敷‧李淑‧韓宗揆‧金始鑌‧金侃‧金汝鏜‧金履萬‧柳升鉉‧權贄‧睦天壽‧金光國‧柳聖和‧金命錫‧李守約‧安鍊石 등이 쓴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56517

    祭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李裁가 쓴 제문이다. 망자는 어려서는 혼인의 우호가 있었고, 장성해서는 함께 근심하는 의리가 있었으며 늙어서는 세한에도 서로 기약하는 중망이 있었다. 충재선생의 도의를 이어 뛰어난 자취를 남겨 집안을 크게 일으켰고 나라에 기둥이 되었다. 자신은 망자의 묘소에서 이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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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18

    又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趙德鄰이 쓴 제문이다. 망자와 같이 충간을 하는 신하가 다시 있을까를 근심하며 애통해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519

    又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백형 權斗經이 쓴 제문이다. 망자의 빼어난 기상과 환로에서의 부침을 서술하며 자식처럼 키운 아우의 죽음이라 슬픔이 그지없다고 말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520

    又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중형 權斗緯가 쓴 제문이다. 망자가 조정에서 諫言으로 있을 때 이잠의 옥사와 관련하여 상소를 올려 귀양을 가게 된 경위를 중점적으로 말하면서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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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21

    又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權萬이 쓴 제문으로, 망자는 천성이 빼어나 가문을 빛냈으며 상소를 올려 유배를 가게 된 일 등 생전의 행적을 서술하며 영결을 고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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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22

    跋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두기
    권상익이 쓴 발문이다. 1886년(고종 23)에 후학 조성복이 근서하여 『청사선생문집』4권을 마무리하여 1910년(융희 4)에 『청사선생유집』이 완성되었다. 처음에 두와공 권방도가 청사선생이 남긴 글을 모아 4책을 만들어 보관하다가 6세손인 긍하가 책을 낼 계획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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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23

    토헌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치
    토헌집(土軒集) 土軒 權緻의 문집. 石印本, 6券3冊. 四周雙邊, 半郭 20.5×16.0㎝, 有界, 10行20字, 上下向二葉花紋魚尾:30.0×20.3㎝. 義城 金景植이 쓴 序文이 있다. 구성을 살펴보면, 卷1~2는 詩와 輓詞, 卷3은 詩‧輓詞‧書簡文‧雜著‧說, 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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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24

    팔오헌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팔오헌집(八吾軒集) 八吾軒 金聲久의 문집. 木活字本, 金禹銖, 1873, 7卷4冊:四周雙邊, 半郭 20.1×14.8㎝, 10行20字 註雙行, 內向二葉花紋魚尾:30.3×19.5㎝. 문집의 맨 앞부분 28쪽은 世系圖가 실려 있다. 卷1과 卷2는 詩인데 시 가운데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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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答太白山僧, 竹嶺, 首山驛 登智臧峴用地名戱成一絶, 雙嶺, 利孚峴, 挽裴都事(幼華), 健元陵爐冶所次壁上韻, 咏懷, 陵所有感, 挽柳鎭安(元之), 偶吟(二首), 浮石寺僧雲霽來傳家鄕消息, 偶吟(藏頭體), 又(織錦體), 患手瘡偶吟(二首), 十月二十九日自 大殿賜帽掩一件香醞一鐥密
    출처 : 유교넷
  • 3565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咏懷, 戱吟, 卽事, 送遞任馬有感, 無聊中忽憶前年春與李繡衣成大唱酬事不覺悵黯仍次其韻, 送春, 遣懷, 偶吟, 天久不雨麥苗焦枯望霓之餘得膏澤可喜, 雨中書懷, 送鄭敎授還京(二首), 又疊前韻以贈, 卽事(回文)體, 戱題, 雨中夜坐用崔孤雲窓外三更雨登前萬里心爲韻, 偶吟, 老杜詩云四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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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27

    辭持平疏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675년(숙종 1) 사헌부 지평을 제수받았을 때 사직을 하면서 올린 상소문이다. 사헌부는 백관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기관으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자신과 같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부적당하다고 사양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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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28

    辭修撰疏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678년(숙종 4) 홍문관 수찬직을 제수받았을 때 사직을 청하는 상소문이다. 자신을 성품이 용렬하고 게을러서 작은 재주도 없는 사람으로 수 년 전부터 담으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병세가 있어 공사 두 가지 면에서 적임이 아니므로 사직을 청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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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29

    請應天弭災疏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678년 임금이 등극한 이래로 정사에 근면하여 큰 과실은 없었지만 작년과 올해 가뭄이 계속되어 사방의 밭이 타 들어가고 논은 거북 등처럼 갈라졌으니 임금께서는 궁전을 피하시고 음식의 반찬 가지 수를 줄여 천심을 얻도록 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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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30

    乞歸養仍陳時弊疏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부모님의 나이가 칠순이 넘었으므로 고향으로 돌아가 봉양하고 싶다는 뜻에서 사직을 청하면서 당면한 현안 사안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상주하는 상소문이다. 1670년(현종 11)과 1671년에 예년에 없던 큰 흉년과 전염병이 만연하여 諸道의 諸邑이 텅빈듯하여 지혜로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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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31

    殿下勿以人廢言更加澄省焉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답하여 말하기를 상소를 살펴보니 말한 여러 가지 내용이 모두 걱정하고 사랑하는 정성이 아님이 없으니 내가 가상히 여겨 마음에 세기지 않을 수 없다. 너는 사직하지 말고 가서 부모를 잘 모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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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32

    辭副修撰疏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679년(숙종 5) 홍문관 부수찬직의 사직을 청하면서 올린 상소문이다. 신은 십여년 전부터위장이 좋지 않은 증세가 있었는데 금년 봄부터는 가슴과 배 사이가 막히는 듯한 증세가 있습니다. 그리고 질병 이외에도 전일에 신과 자리를 함께 하였던 여러 사람이 아직 罪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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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33

    答權山長(濡,1680)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680년(숙종 6)에 제주도 㫌義에서 현감으로 지내고 있으면서 山長 權濡에게 보낸 편지이다. 더위에 잘 지내고 있는지요. 이곳은 여름 장마가 매우 심합니다. 5월 이후에는 햇빛을 보는 날이 이삼일도 되지 않습니다. 衣食도 구하기 힘들고 병이 생기려고 하니 매우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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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34

    與權山長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가을이 깊어가는 이즈음에 잘 지내고 있는가? 나는 예전대로 지내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남쪽 국화는 여전히 피고 있건만 북쪽에서 와야 할 편지가 오지 않는다. 앞산 봉우리만 바라보고 있으니 근심만 가득하다. 어느 때 이 역경을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등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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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35

    與權春卿(1679)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679년(숙종 5)에 春卿 權斗經(1654∼1726)에게 보낸 편지로, 7월에 제주도 㫌義에 도착을 하자마자 보낸 것이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 없고,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없어 우리나라의 풍토가 아닌 듯하다. 나의 집과는 3,000여리 정도이니 참으로 새가 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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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36

    答權春卿(1704)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704년(숙종 30)에 춘경 권두경에 대답한 편지이다. 보내준 서찰을 받고 바쁘게 지냄을 알았다. 日記와 관련된 일은 어제 少章 權斗紘(1668∼?)을 만나서 나의 의견을 세세히 전달하였다. 책을 간행하는 일은 대충해서는 안 되고 자세히 교정을 본 연후에 출판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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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37

    與權春卿天章(斗經)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어제 공의 아들을 만나서 봄 추위에 잘 지내고 계심을 알았으니 위로가 된다. 문집을 改刊하는 일은 매우 중대하다. 반드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널리 수렴해야지 후회가 없다는 등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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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38

    與天敍(重夏,1706)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706년에 전라도관찰사로 있는 天敍 洪重夏(1658∼?)에게 보낸 편지이다. 나는 여름 더위에 곤욕을 치루었다. 가늘 바람이 서늘한데 아직 회복이 되지를 않았으니 역시 나이가 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글을 지어달라한 부탁대로 지어서 보내니 형편없더라도 한 번 웃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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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39

    與孫敵萬(1693)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693년(숙종 19)에 敵萬 孫萬雄(1643∼1712)에게 보낸 편지이다. 일전에 내가 보낸 2통의 편지는 받았는가? 나는 가문이 불행하여 동생이 세상을 떠나 애통한 마음을 견디기 힘들다. 공이 사직소를 올렸다고 하지만 수락되기 힘들 듯하다. 사세를 잘 살펴 처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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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40

    與金仲輝(,1678)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678년(숙종 4)에 仲輝 김총에게 보낸 편지이다. 나와 형하고의 거리는 고개 하나 사이인데도 소식이 막연하다. 나는 부모님이 건강이 좋지를 않아 항상 걱정이고 양식 사정도 매우 좋지 않다는 등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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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41

    答宋文星(光璧)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文星 宋光璧(1628∼?)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내주신 편지와 품질 좋은 茶도 받았다. 행정을 보시면서 잘 계심을 알았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 닭을 키우고 농사도 짓고 심신을 수양하면서 친구들과 즐겁게 보내고 싶다는 등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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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42

    與宋文星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문성 송광규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나는 아직도 관직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經筵에서 올바른 말을 하여 요순시대 같은 이상적인 세상을 직접 보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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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43

    與金天休(學,1671)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671년(현종 12)에 天休 김학암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형이 떠나고 난 이후 무엇을 잃어버린 듯이 섭섭하다. 또 나는 공무에 얽매여 직접 만나서 작별을 하지 못했으니 안타까움을 어떠하겠는가? 등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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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44

    與成國華(文夏,1683)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683년(숙종 9)에 國華 成文夏(1638∼1726)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러 해 동안 인사를 드리지 못해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욱 절실하다. 월천 조목이 교정을 본 朱子 관련 저서가 공이 가지고 있음을 아우를 통해서 들었다. 나하고 공과의 거리가 멀지 않으니 열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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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45

    答寄鍵兒(1695)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695년(숙종 21)년에 함경북도 明川에서 장남 汝鍵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를 받고 편안히 지내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楚辭』와 韓愈의 글을 읽으면서 지내고 있지만 어찌 수 많은 책을 다 읽을 수 있겠는가? 다만 단정히 앉아 朱子書를 열심히 읽고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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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46

    八吾軒銘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자신의 호인 八吾軒에 대해 지은 銘이다. 耕吾田 나의 밭을 갈고 飮吾泉 나의 샘물을 마시고 採吾巓 나의 산에 있는 나물을 캐고 釣吾川 나의 냇가에서 낚시를 하고 披吾編 나의 책을 읽고 撫吾絃 나의 거문고를 연주하고 守吾玄 나의 신념을 지키면서 終吾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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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47

    祈雨祭文(1678)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678년(숙종 4)에 弘文館 修撰으로 있을 때 지은 기우제문이다. 『조선왕조실록』 1678년(숙종 4) 6월 8일에 宗廟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사가 있는데, 당시 기우제문을 지은 사람이 저자 김성구임을 추론할 수 있다. 西方岳瀆·北方岳瀆·東方山川·南方山川·木覓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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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48

    祈雪祭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社稷檀과 宗廟 그리고 北郊에서 눈이 내리기를 기원하며 지은 祈雪祭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56549

    顯陵丁字閣及神門修改先事告由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文宗과 그의 비 顯德王后의 능인 顯陵의 丁字閣과 神門(陵園 앞에 세운 문)을 수리하기 위해 올리는 고유문이다. 지금 수리를 하고 있으니 경건히 그 사유를 아뢴다고 하였다. 현릉은 東九陵의 하나로 京畿道 九里市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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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550

    安山鄕校修改移安文(1678)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
    1678년(숙종 4)에 홍문관 修撰으로 있을 때 安山 鄕校를 옮기면서 지은 移安文이다. 이안문은 신주나 영정 등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때 짓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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