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還安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안산 향교가 완공되고 난 다음에 다시 신주와 영정을 제자리로 모시면서 지은 글이다. 환안문은 다른 곳으로 옮기었던 신주를 도로 제 자리에 모실 때 짓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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鎭海鄕校修改移安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진해 향교를 수리하면서 지은 이안문이다. 집이 기울어 무너졌으니 좋은 날을 택해 수리함이 좋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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還安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진해 향교를 수리하고 나서 지은 환안문이다. 공사가 끝나 집 모습이 새롭게 변모하였다. 神位를 편안히 모시고자 제사를 올린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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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安鄕校鋪陳修改移安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용안 향교에 설치된 여러 가지 기물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지은 이안문이다. 기물들이 오래되고 낡았으므로 좋은 날을 택해 옮긴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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還安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용안 향교에 설치된 기물들을 원래 자리로 옮기면서 지은 환안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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牛頭山龍湫祈雨祭文(1677)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1677년(숙종 3)에 5월에 경상남도 居昌에 있는 牛頭山 龍湫에서 기우제를 올리면서 지은 기우제문이다. 내가 이 고을을 다스렸지만 神明에게 죄를 얻어 이런 旱災를 만났다. 모든 곡식이 무럭 무럭 자랄 수 있는 비를 내려주기를 바란다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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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角山祈雨祭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정성이 부족해서인지 아직도 비가 내리지를 않는다. 神이 3일 계속되는 비를 내려주어 百穀을 소생시키고 백성들도 살려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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栢麓里社梅軒洪公常享祝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안동의 栢麓里社에 모신 梅軒 洪 公에게 올리는 축문이다. 홍 공은 우리 마을의 모범적인 인물로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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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東書院受理告由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易東書院을 수리하면서 올리는 고유문이다. 좋은 날을 택해 수리를 시작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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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子修撰文(1697)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1697년(숙종 23)에 죽은 아들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아아! 슬프다. 어찌 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이나 하였는가? 네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나는 세상을 살 의미가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나는 白首의 늙은이고 너는 청년이다. 어찌 백수의 아버지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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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嘉善大夫行龍驤衛副護軍府君行狀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아버지 龍驤衛副護軍 金秋吉을 위해 지은 행장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秋吉, 자는 次說, 본관은 義城이다. 신라 敬順王의 아들인 錫이 義城君으로 봉해지자 후손들이 의성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아버지(秋吉의 아버지)는 瑮, 어머니는 奉化 琴氏로 1603년(선조 36) 5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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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七松亭同會錄後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저자의 從高祖인 東岡 金宇顒(1540∼1603)이 1598년(선조 31)에 서울 明禮坊(현재의 서울 명동) 주변에 있는 七松亭에서 당시의 저명 인사들과 회합을 가지면서 지은 기록이 칠송정동 회록이다. 100여년이 지난 후인 1706년(숙종 32)에 김성구가 칠송정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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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先祖考手書古今風雅後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1706년(숙종 32)에 할아버지 瑮(1568∼1651)이 직접 쓴 古今風雅라는 서첩을 발견하여 전말을 쓴 것이다. 할아버지는 평생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으며 붓과 벼루가 주위에서 떠난 적이 없다. 내가 노년이 되어 할아버지가 남긴 친필 글씨를 찾으니 감회를 억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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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錄小識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나는 금년 가을에 解職되어 집에 있게 되었다. 3년이 있으면 不惑의 나이가 되지만 그 동안에는 과거 공부와 관직생활로 너무나 바쁘게 보냈다. 앞으로는 손길이 가는대로 기록을 해 둔다고 하는 등의 내용으로 1677년(숙종 3) 12월에 썼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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喪祭雜錄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출가를 한 딸이 아버지 忌祭에 참여할 수 있는가? 죽은 아들 祥期가 다 되어가는데 마침 집에 전염병이 돌아서 상기를 미치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喪禮에 있어서 여러 가지 예상치 않은 변수가 생길 때의 상황을 기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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朞制考疑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의 喪을 입었을 경우 윤달이 들었으면 달 수에 넣어야 하는가? 련제(練祭)의 祝文은 어떻게 하는가? 아내의 祥期가 끝나는데 남편이 없으면 어떻게 하는가? 상이 났을 경우 다양한 변수가 생겼을 경우 처리 문제에 대하여 愚伏 鄭經世, 旅軒 張顯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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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時祀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遠代 조상을 추모하면서 제사를 지냄은 후손된 자로서 마음을 다 바쳐서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역시 크고 작은 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墓祭나 忌祭는 사람들이 꼭 지내야 함을 알지마는 時祀는 아예 지내지 않는 집도 있고, 1년에 한 번, 또는 2~3년에 한 번 지내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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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生日祭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부모님의 생일날에 제사를 지냄이 禮法에 합당한 지 여부에 대해 논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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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遷錄上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1679년(숙종 5) 3월 12일: 副修撰으로 임명되다. 5월 25일: 掌令으로 임명되다. 6월 12일: 臺官으로 있는 김성구는 是非를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은연중에 자기 당파의 사람을 보호한다고 하여 관직에서 해임되다. 6월 14일: 趙祉錫을 탄핵한 다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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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遷錄下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1680년 1월 6일: 밤에 꿈속에서 임금님을 만나 그 동안에 제주도에서 겪었던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 의견을 올렸다. 첫째 제주도는 사면이 바다라서 백성들이 어디로 갈 곳이 없어 이곳의 백성들은 釜中之魚와 같다. 조정의 명령이 잘 시행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의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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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政大夫守江原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八吾軒金先生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1727년(영조 3) 3월에 密菴 李栽(1657∼1730)가 저자를 위해 지은 행장이다. 이름은 聲久, 본관은 義城이다. 원대 조상은 신라 敬順王의 왕자인 錫이다. 증조는 得可, 조부는 瑮, 아버지는 秋吉, 어머니는 全州 柳氏이다. 1662년(현종 3)에 진사시에 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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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後識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訥隱 李光庭(1674∼1756)이 지었다. 팔오헌 김선생은 타고난 천품이 순수하고 담담하게 욕심이 없으며 평생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않았다. 청빈하게 처신하였으며 의지가 확고하고 관직생활은 청렴결백하였으며 관직에 나아가고 물러갈 때 구구하게 시속에 영합하지 않았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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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幷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玉川 趙德隣(1658∼1737)이 지은 묘갈명이다. 온순하고 공손한 사람이라 덕의 터전을 이루었다. 백성들에게는 좋은 행정을 펼쳤으니 능력도 있고 선량하였기 때문이다. 자식과 손자들 모두 번창하였다. 아름다운 군자여 복을 받을지어다. 나는 그의 덕행을 기록하여 후대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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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八吾軒金先生碑陰後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공의 평생은 담담하여 욕심이 없었다. 후손으로는 공의 증손인 臥隱 金翰東(1740∼1811)이 관직을 두루 역임하여 지금은 大司諫이며 예전에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이 글을 짓는 나 述道(1729∼1803)은 공의 묘갈명을 지은 조덕린의 손자이다. 내가 주제넘게 이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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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誌銘(幷序)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경상도 義城의 명문가 집안으로 뛰어난 학자들이 대대로 이어져 왔다. 여러 세대 동안 누린 영광, 집안의 명성이 끊이지를 않았다. 조정에서는 올곧은 말을 하여 강직하다는 명성이 대궐에 가득하다. 조정에 잘못된 일이 있으나 자신의 능력으로 바로 잡을 수 없음을 안타깝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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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墓碣銘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權瑍(1636∼1718)이 저자를 위해 지은 묘갈명이다. 안동에 사는 進士 權鏜(저자 팔오헌의 3남)이 서울에서 행장 초고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묘갈명을 지어주기를 요구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네 아버지와 나는 40년 친구이다. 네 아버지의 평생을 아는 사람으로는 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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賜祭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저자가 죽은 뒤 조정에서 1707년 5월 18일에 예조좌랑 呂命擧를 보내어 그를 위해 올린 제문이다. 질병이 들어 갑자기 세상을 하여 안타깝다. 禮官을 보내어 제사를 올리니 흠향하십시오라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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士林祭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陶山書院 上有司인 李杲가 저자를 위해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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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三溪書院 都有司인 權斗經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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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3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留鄕所의 李成翼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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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3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김성구의 친한 동료인 孫萬雄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제문이다. 그대가 세상을 떠나 슬픈 나의 마음 억제하기 힘들다. 여기 제물을 올리니 精靈이 있다면 내려와 흠향하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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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3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權斗寅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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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3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李時善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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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權斗經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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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李楝完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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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4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權斗寅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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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趙德隣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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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李楝完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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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權斗經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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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裵正徽가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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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李浹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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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張璶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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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權聖矩가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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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金聖佐가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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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李杲가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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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權斗紀가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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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李栽가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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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金世欽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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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李琓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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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4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성구朴希閔이 저자를 위해 올리는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