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6701
親耕頌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1739년(영조 15) 봄에 主上께서 東郊에서 직접 경작을 하시니 古人의 예를 따라 聖德을 찬양하기 위하여 지었다출처 : 유교넷 -
356702
道溪講堂移建上樑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道溪講堂을 이건하며 지은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356703
道溪見一祠移建上樑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道溪講堂의 見一祠를 이건하며 지은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356704
天雲亭重建上樑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天雲亭을 중건하며 지은 上樑文이다출처 : 유교넷 -
356705
社稷壇祈雨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가뭄으로 곡식이 자라지 않아 고통 받는 백성들을 위하여 비를 내려줄 것을 빌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6706
大屯山龍湫祈雨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가뭄이 심하여 파종할 수 없고 파종한 것도 말라 들어가니 이후 세금을 감당할 길이 없다. 만약 太守에게 죄가 있다면 벌을 주시고 죄 없는 백성을 위하여 비를 내려 주시기를 빌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6707
祭訥隱先生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訥隱 李光庭의 영위에 올린 제문이다. 斯文의 宗匠이면서 자신을 推獎해주시며 물음에 답하여 주신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이제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 우리 黨을 생각하니 더욱 슬프기만 하다출처 : 유교넷 -
356708
祭牛川鄭公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藥圃 鄭琢(1526~1605)의 후손인 牛川 鄭公의 영위에 올린 제문이다. 훌륭한 분의 후손으로 태어나 그 명성을 이어감에 힘을 쏟았으며 銀臺에서 일하며 밤낮으로 열심히 하여 주상의 칭찬을 들었던 분이 갑작스럽게 떠남을 아쉬워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6709
祭立齋姜公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立齋 姜再恒(1689~1756)의 영위에 올린 제문이다. 재주가 뛰어난 이가 제대로 마치기 어렵다는 말을 증명이나 하듯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6710
祭金公穆然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金穆然의 영위에 올린 제문이다.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였으나 命으로 받아들이며 편안해 하였던 公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6711
祭金子深(厚源)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金子深의 영위에 올린 제문이다. 훌륭한 가문의 宗黨으로 태어나 德業에 힘을 쏟아 주위의 重望을 입었으며, 임종 전 耽羅의 소식만을 걱정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여 더욱 슬프기만 하다출처 : 유교넷 -
356712
祭江左族父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族父인 江左 權萬의 영위에 올린 제문이다. 荷塘, 蒼雪齋 이후 族義를 이끌었던 江左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조정에 들어가 왕의 살펴주심을 입어 先祖의 수진본을 올리고 받아 돌아온 일이 그리워지며 이제 의지할 곳 잃은 자신의 처지가 슬픔을 더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6713
祭族叔(葸)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族叔인 葸의 영위에 올린 제문이다. 輿望에 부응하듯 族誼를 훌륭히 다졌던 공이 마지막까지 소원하였던 江左 文集이 아직도 未完으로 남아 있음이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6714
祭進士族父(蓍)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進士를 지낸 權蓍(1678~1747)의 영위에 올린 제문이다. 병환의 소식을 듣고 찾아갔으나 나의 건강을 염려하시어 만나주시지 않으시며 우리 집 일을 걱정하셨던 公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6715
祭陶漁族兄(正始)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陶漁齋 權正始(1692~1765)의 영위에 올린 제문이다. 세상 名利에 메이지 않고 자연을 벗 삼아 글을 읽었던 公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6716
祭小山族兄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族兄인 小山 權正宅(1706~1765)의 영위에 올린 제문이다. 어릴 때부터 같이 蒼雪齋의 문하에서 글을 익혔기에 마음속의 이야기도 할 수 있어 정다웠다. 이제 속마음 털어놓을 곳을 잃어버린 자신의 처지가 더욱 슬프기만 하다출처 : 유교넷 -
356717
祭族弟平卿(正明)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白陽 權正明(1711~1763)의 영위에 올린 제문이다. 一藝로 이름을 이루지 못하고 白身으로 명을 마친 公을 애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6718
祭從弟叔玉(正冕)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從弟인 權正冕의 영위에 올린 제문이다. 나와는 년월을 같이하여 태어나 자질이 훌륭한 從弟가 갑작스러운 한 번의 병환으로 세상을 떠남을 슬퍼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6719
李聖功哀辭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살아 文藝로 칭송을 받았던 聖功 李興之가 삼십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을 슬퍼하는 哀辭이다. 그의 姊兄인 宋君據를 통하여 사람됨을 들었기에 만나길 원하였는데, 만나보니 성품이 安詳하고 일을 결단하는 의지가 있음을 보았기에 成就를 바랬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痘症에출처 : 유교넷 -
356720
宗姪可遠(思近)哀辭(幷序)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痘症으로 인하여 세상을 떠난 宗孫 權思近(1722~1739)의 죽음을 슬퍼한 哀辭이다. 군은 어려 행동거지가 어른과 같음이 있었고, 열 살의 나이에 부모상을 당하였으나 예를 실행함이 어른과 같음이 있었다. 결혼을 하여서는 가정안의 일을 처리함에출처 : 유교넷 -
356721
無爲齋權公行錄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無爲齋 權業(1689~1755)의 行錄이다. 공은 충재 권벌(1478~1548)의 6세손으로 安東人이다. 어려서부터 궁구함에 남다른 끈기가 있었다. 자라서 伯氏公의 권고로 1726년(영조 2)에 鄕解에 참여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였다. 떨어짐에도 命이 있음을 받아들이고출처 : 유교넷 -
356722
淸澗公金公墓誌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淸澗公 金鼎元(1655~1735)의 墓誌銘이다. 공은 文節公 金淡之공의 8세 손으로 禮安人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섬김에 온화한 낯빛으로 하였다. 부모께서 돌아가시자 슬픔이 禮를 넘어섰으며 말이 혹 부모의 遺蹟에 이르게 되면 목메어 울지 않음이 없었다. 매일 家廟를출처 : 유교넷 -
356723
附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1798년(정조 22)에 주상께서 공의 生卒年紀를 적어 올릴 것을 명함에 樊巖 蔡濟恭(1720~1799)이 總裁官이 되어 卒記를 적어 올렸다출처 : 유교넷 -
356724
行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저자는 어려서 자질이 남달랐으며 자라 학문함에 庸學과 『朱子書節要』를 좋아하였다. 과거를 보기 이전에 「形上下說」‧「物格知至說」‧「中庸總論」‧「志疑」‧「勿忘勿助辯」‧「毋自欺說」‧「自彊不息說」‧「四端七情辯」‧『近思錄講義』 등을 저술하였으니 그 학문의 정심함을 알 수 있출처 : 유교넷 -
356725
行錄後序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定齋 柳致明(1777~1861)이 행장을 부탁받고 지으면서 행록에서 빠져 있는 家系와 正祖가 公의 卒記를 간단하게나마 적어 올릴 것을 命한 실제의 일에 대한 기록으로 序를 대신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6726
通訓大夫世子侍講院設書兼春秋館記事官平庵權公行狀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嘉善大夫를 지낸 韓鎭庭이 지은 행장이다. 遺事와 行錄의 내용과 유사하지만, 1762년(영조 27)에 일어난 사도세자의 참극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공은 참극을 막으려 英祖에게 피로써 간청을 하였고 훗날 보위에 오르는 世孫을 모시고 英祖에게 나아가 눈물로서 청을 하출처 : 유교넷 -
356727
墓碣銘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定齋 柳致明이 평암 선생의 일대기과 家系, 그리고 사도세자와 관계된 일을 간략하게 기록한 墓碣銘이다출처 : 유교넷 -
356728
墓誌銘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海隱 姜必孝(1764~1848)가 지은 墓誌銘이다. 선생께서 떠나면서도 아쉬워한 일이 사도세자와 관련된 일이기에 顯隆園誌를 근거로 당시의 일을 먼저 적었다. 이외의 사적에 대한 기록은 유사나 다른 글들과 비슷하다. 선생의 증손인 權載大의 청으로 적은 墓誌銘이다출처 : 유교넷 -
356729
遺事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아우인 權正欽(1713~1787), 權正龍이 적은 遺事이다. 平庵 선생은 初名이 沉이며 字가 子剛이었는데 후에 이름을 正忱으로 字를 子誠으로 고쳤다. 安東人으로 冲齋 權橃의 칠세손이며 父는 藎이요, 母는 生員을 지낸 全州人 柳以觀의 장녀이다. 公은 1710년(숙종 3출처 : 유교넷 -
356730
讀平庵遺事 4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선생의 사후 팔십 년 만에 만들어진 유사를 읽고 金宗杰이 적었다출처 : 유교넷 -
356731
朝野摭錄 4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선생과 관계된 朝野의 기록을 적어 놓았다출처 : 유교넷 -
356732
輓詞 4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鄭圭‧金埅‧趙進道‧金宅東‧趙述道‧金弘望‧金瑋‧金鼎鋎‧權芨‧權正運‧權思溥‧權應度 등이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356733
祭文 5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金翼漢‧李果‧權正模‧權正欽‧權正宇‧權正實‧權思浩‧權思溥‧權思健‧權應度‧權就度 등이 올린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356734
文集後書 6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침大山 先生의 후손인 肯庵 李敦禹(1807~ 1884), 孫璉夏, 그리고 선생의 현손인 退逸軒 權泳夏(1810~1879)가 선생 사후 남기신 글이 시대적 사건을 많이 담고 있음이 이유가 되어 백년 뒤에서야 1873년(고종 10) 간행되었음을 밝히고 있는 後書이다출처 : 유교넷 -
356735
학림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학림집(鶴林集) 鶴林 權訪의 문집. 원집-木板本, 1844, 11卷 6冊:四周雙邊, 半郭 21.2 ×16.4㎝, 有界, 10行20字, 內向二葉花紋魚尾:32.0×21.0㎝. 속집-木活字本, 권재중, 1931, 2卷1冊 : 四周雙邊 21.4×17.0㎝, 有界, 10行2출처 : 유교넷 -
356736
詩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巖齋伏次先生韻乙酉, 春日遊水落臺, 遊淸凉山丙戌, 行視水落臺有作, 巖齋玩雪聯句二十二韻, 敬次先生韻贈李景顔憲愚, 與族兄而瞻睆遊西岳寺丁亥, 曉枕聞雞, 次金行之光裕贈南行韻, 夜坐書空, 次裴克初泰紹見寄韻二首, 偪側詩一律贈裴克初, 夢食茴薌覺後思之疑是回鄕之兆遂吟茴薌詩一絶示諸友,출처 : 유교넷 -
356737
詩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春祝戊午, 與金溪松坡諸友會廣寺滯雨, 廬江四絶, 贈柳明瑞廷燁恩行, 新居雜詩六首, 卜居, 鑿池, 種樹, 治圃, 採藥, 讀書, 憫旱次東坡旱後韻, 偶吟二首, 聞柳臨齋曵屐下堂傷其腰每欲一問而僕亦病已久矣聊次前韻以謝不情, 與疏首成叔晦彦根同遊虎溪書院, 敍懷, 卽事, 伏日偶吟, 次老杜출처 : 유교넷 -
356738
詩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元朝甲子, 挽金內兄德翁象錬, 敬呈趙同樞相抃進士回榜宴席幷序, 贈金子野兼簡蘇湖沙村求和, 七月旣朢後與金君楫光濟金景理相燮聖爲宗鐸李幼珍宗儒泛舟游上洛臺仍尋先祖磨厓公江亭遺墟遂賦二律, 右上洛臺, 右江亭遺墟, 贈金翰之歙谷謪中, 挽李景眞憲儒, 挽柳皞汝象春, 送金子野之任伊川, 挽宋敬輔,출처 : 유교넷 -
356739
屛山書院請額疏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도유를 대신해서 병산서원의 사액을 청한 소문이다. 병산서원은 문충공 유성룡과 그 아들 수암 유진을 제향하는 곳이다. 정조는 직접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내게 했으며, 명나라 장수들과의 왕복서첩에 대해서는 특별히 발문을 지어 주었다. 유성룡의 사업과 도학, 유진의 덕업을출처 : 유교넷 -
356740
應旨求言疏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1806년 9월에 雷變이 있자, 순조는 朝野의 직언을 구했다. 학림은 국가에서 강상을 범한 자들에게 엄한 법률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변괴가 발생한다며 민폐를 혁파하여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시행할 것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국법을 엄중히 하여 문란해진 세상 풍출처 : 유교넷 -
356741
上大山先生(1767)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대산 이상정(1711∼1781)에게 올린 서간문으로, 세상의 득실과 이해, 빈부에 마음이 동여되지 않아야 고인의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것과, 독서와 궁리, 학문과 사변에는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과, 일부의 『논어』에 이치가 모두 실려 있으나 서책이 귀로 직접 듣출처 : 유교넷 -
356742
上大山先生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대산 이상정에게 올린 서간문으로, ‘침묵’으로 지리하고 허탄한 폐해를 구제하고, ‘장엄’으로 나태하고 교만한 기질을 교정하고 싶다는 것과, 벗을 통해 갈암 이현일의 「行吟錄」과 제산 김성탁의 왕래 書蹟을 구해 읽고 눈물을 훔쳤다는 사연들이다출처 : 유교넷 -
356743
上大山先生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대산 이상정에게 올린 서간문으로, 가르침이 모두 궁행과 심득에서 근원하여 일상생활의 도리에 절실하며, 내외와 본말이 서로 일치한다는 뜻을 서술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6744
上大山先生(1768)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대산 이상정에게 올린 서간문으로, 위차의 조천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禮疑 몇 조목에 대해 답변을 청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6745
上大山先生(1769)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대산 이상정에게 올린 서간문으로, 글을 읽어도 얻은 것이 없고 일을 처리하는 데는 거친 점이 많아 일상의 수작이 후회되고 부끄럽다면서 이에 대한 처방을 구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56746
上大山先生(1774)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대산 이상정에게 올린 서간문으로, 사단칠정의 논의에서 고봉과 퇴계의 합치되지 않은 점과 인신의 魂魄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6747
答洪義州檍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1770년(영조 46)에 의주부윤으로 있는 홍억(1722∼1809)에게 답한 서간문으로, 감사가 의주를 순시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홍억에게 자신의 형편을 아뢰어 달라는 사연이다출처 : 유교넷 -
356748
答李參奉重光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참봉 이중광에게 답한 서간문으로, 유배를 가게 되어 답장을 드리지 못했다는 것과 근래 유배에서 풀려났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56749
答李后山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후산 이종수(1722∼1797)에게 답한 서간문으로, 주역을 읽으며 이치를 궁리하는 이종수를 부러워하면서 어려움에 처신하는 도리에 대해서는 고인이 講明한 것이 상세하다는 사연이다출처 : 유교넷 -
356750
與李后山(1769)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후산 이종수에게 보낸 서간문으로, 대산선생의 문집 정본이 확정되었는지 여부와 고산정사의 경영과 기획에 대해 묻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원임으로 있는 소수서원의 孔夫子[공자] 영정의 개모와 영각을 새로 짓자는 논의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