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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6901

    寄兒(1785)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아들에게 부친 편지글로, 혼인을 해서 아내가 있으니 책임이 더욱 무겁다는 것과 가사와 노복을 잘 다스릴 것과, 일기는 학업의 진도를 상고하는 것이니 스스로 터득한 문의와 선배들에게서 들은 고사를 아울러 기록해서 비망의 자료로 삼기를 당부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6902

    寄兒(1787)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로, 제 때에 공부하지 않으면 장차 착수할 곳이 없다는 것과, 直所에서 개성으로 가서 선조의 유허지를 심방하였다는 것과, 이전적‧유봉사와 함께 거처하면서 강론을 했다는 것과, 면재 이병운이 그 아비에게 보낸 편지글을 보았는데 문필이 자연스럽고 의리
    출처 : 유교넷
  • 356903

    答兒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아들에게 보낸 답서로, 배움에 뜻을 둔 것을 기특하게 여기고, 학문은 힘써 행하는 데 달려 있을 뿐이니, 만일 입으로만 말하고 행실이 따르지 않는다면 설화에 불과할 것이라면서 더욱 격려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6904

    答姪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조카 억이 여동 종인가의 상례의 절차와 의식에 대해 묻자, 거기에 답한 글로 행상 및 하관, 제주 및 우제‧제전‧상거 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905

    寄三從孫必秉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삼종손 권필병에게 보낸 글로, 공부는 일의 유무를 떠나 잠시라도 틈만 나면 책을 볼 것과, 글을 읽지 않을 때라도 뜻을 한결같이 하여 마음을 보존해서 頓忘에 이르지 않아야 할 것과,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할 때는 오직 공경과 삼감, 관대와 용서로써 주관할 것을 당부
    출처 : 유교넷
  • 356906

    師門記聞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스승 이상정으로부터 견문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아홉 단락으로 서술되었다. 복숭아의 씨와 감의 씨를 성에 내재된 인에 비유해 설명한 것도 있으며,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는 대학의 구절과 성리학의 수행방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존양성찰’에 대해 논의한
    출처 : 유교넷
  • 356907

    孝狗說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봉화의 변씨의 집에 어미개가 죽자 새끼 개가 수없이 미친 듯 짖어대며 며칠간 음식을 먹지 않으면서 어미 개 곁을 지키다가 마침내 죽었다. 죽은 뒤 열흘이 지나도 피육과 모골이 생시와 다르지 않자, 사람들이 깜짝 놀라 지성에 감동한 것이라 여겨 무덤을 만들어 주고는 이
    출처 : 유교넷
  • 356908

    魯有兩生不肯行論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한나라 고조가 숙손통의 말을 들어 노나라의 유생들을 불렀으나 두 명의 유생이 그 명을 따르려고 하지 않은 고사를 예로 들면서 예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예악을 국가 명맥의 원기로 파악하여 시대를 쫒아 제정하고 도와 더불어 소장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909

    念中論應製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응제의 글로 성리학의 중요한 개념인 ‘염중’에 대해 서술한 것인데, 저자는 ‘염’자에 집착하면 이미 未發의 ‘중’이 아니며 존양 본원의 공부를 상실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염’과 ‘사’는 원래 피차의 구분이 없으며, ‘중’을 마음을 유지하고 본성을 기르는 약방으로
    출처 : 유교넷
  • 356910

    春王正月論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공자가 『춘추』를 지으면서 주나라의 시월을 기준으로 한 것에 대해 논술한 것으로, 저자는 예로부터 제왕의 교체와 흥기에는 제도와 문물이 각각 한 시대의 규모가 있음을 주장하면서, 공자의 존주의 의리가 ‘春王正月’에 담겨 있음을 강조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911

    玉帶私議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1786년(정조 10) 동지에 이면긍(1753∼1812)이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명나라 고황제의 유물이라 하면서 옥대를 바치자, 그 옥대의 유래의 진위에 대해 의론한 것으로 저자의 실증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912

    泮邨謾錄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1787년(정조 11) 3월 초9일에 저자가 반촌에서 전적 이우를 만나 종유했는데 봉사 유범휴도 그 자리에 참석하였다. 이 글은 성찰의 자료로 삼기 위해 그때 강론하고 토의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논의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대부분 『대학』과 『중용』의 본문과 주석에
    출처 : 유교넷
  • 356913

    送兒衱赴省試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아들 급이 성시에 응시하러 가자, 그때 당부한 글로, 말을 하거나 일을 추진하거나 음식을 들 때나 항상 부모를 잊지 말고 ‘경’에 의지해 처신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출처 : 유교넷
  • 356914

    自警雜錄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저자 자신이 경계로 삼기 위해 작성한 글로 모두 26개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문‧대인‧언행‧경술‧문장 등에 대해 잡록의 형태로 평소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그중 그의 문장관을 피력한 글을 보면, 인의예지가 마음에 근본하고 덕업‧문장이 외부에 발하여, 이치와 마
    출처 : 유교넷
  • 356915

    送鄭亞使岐瑞赴湖南序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1785년(정조 9) 겨울, 정기서가 예조의 원외랑으로 있다가 호남의 都事로 나가게 되자, 종유하던 친구와 더불어 관근교에서 전별연을 베푸면서 써준 글이다. “군자는 지위가 없는 것을 근심하지 않고 수립할 것이 없는 것을 근심한다.”는 성인의 말을 인용하여 위로하고
    출처 : 유교넷
  • 356916

    仲朔宴屛風帖序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백운재 권응수(1546∼1608)가 참석한 중삭연의 모습을 그린 병풍첩의 서문이다. 권응수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아 전공을 세워 1604년(선조 37)에 공신록에 올랐고, 4년 뒤 1607년(정미)에 공신연에 참석하였다. 권응수 장군 유물로 현재 4폭의 태평
    출처 : 유교넷
  • 356917

    送李典籍致道南歸序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1774년(영조 50)에 문과에 급제해서 1787년(정조 11)에 국자 전적에 임명되었던 이치도가 남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는 글이다. 저자는 시를 지을 줄 모른다고 하면서 定形도 없고 方所도 없는 구름을 끌어와 권계의 뜻을 기탁하고, 이백의 ‘楚山秦山多白雲’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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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18

    送柳監察達夫光澺序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감찰 유광억을 전송하는 글로, 말이 없을 수도 없고 또한 말을 길게 할 수도 없다고 하면서, 유언과 무언의 사이에서 자신의 끝없는 암연한 회포를 표현했다. 돌아가 위수 가에서 낚시하고 있으면 달밤에 흥에 겨워 배를 타고 방문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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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19

    安東權氏族譜序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권유‧권명우‧권사엄‧권사호‧권성봉 등이 주축이 되어 1793~1794 년간에 발간한 안동 권씨 족보의 서문으로, 저자는 족보를 편찬하는 의미를 족속을 넓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전의 안동 권씨 족보로는 권람의 성화보, 권기의 을사보, 동곡의 갑오보, 권태시의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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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20

    林溪曹公實紀序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임계 조경온(1548~1592)의 실기 서문으로, 시문이 수삼 편에 불과하나 「매계」시 삼장은 천기에서 발하여 성령에 합치되고, 「영모재기」 한편은 글자가 모두 정성에서 유출된 것이다. 그리고 충의공 권응수에게 답한 세편의 서간은 忠憤이 격절하고 계책이 빈틈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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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21

    林氏五孝傳後敍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청부에 살던 다섯 효자의 전을 읽고 그 글의 말미에 쓴 것이다. 다섯 효자는 임상헌의 5대조 이하 4대에 걸친 임인득‧해봉 등을 지칭한다. 다섯 효자에 대해 입전한 자는 공조판서를 지낸 근애 임시철(1740∼1805)이다. 저자는 효는 모든 행실의 근원이며 사람의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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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22

    檜谷書堂文會錄序 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전긍재 김서일(1694~1780)이 여러 동지들과 함께 세운 회곡서당에서, 두곡 김장의 명으로 열린 모임에서의 문회록 서문이다. 문회에서는 시부 수십축이 지어졌고, 백장이 열렸으며, 상락대 아래 공수포의 위에서 뱃놀이를 즐기기도 하였다. 단구의 김장‧하성회‧김운보‧김
    출처 : 유교넷
  • 356923

    權氏三世稿序 3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저자의 생고조인 樊谷에게서 수업한 귀여 권시망과 귀여의 아들로 갈암 이현일(1627∼1704)을 사사한 감곡 권성기와 감곡의 아들로 포헌 권덕수와 종유했던 남반 권극태의 시문을 모은 三世稿의 서문이다. 번곡은 경당 장흥효의 고제로서 도산을 사숙하여 명리를 천하게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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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24

    魯軒權公遺稿序 4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임진난에 창의하여 그 사적이 『화왕동고록』 및 『공산회맹록』에 기재되어 있는 노헌 권응생(1571~1647) 유고의 서문이다. 노헌의 선대인 귀봉은 회재 이언적(1491∼1553)을 사사하여 심법의 종지를 터득했고, 귀봉의 아들 참봉공은 문행으로 이름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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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25

    退庵權公實紀序 4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노헌의 아들로 당세에 명망이 매우 높았던 퇴암 권임(1600~1654) 실기의 서문이다. 퇴암은 소암 임숙영(1576∼1623)을 사사하여 학업이 성취되었는데, 소암이 후사 없이 죽자, 장례를 주관하였고 소암의 유고를 편찬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6926

    延安宋氏族譜序 4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연안 송씨는 여산에서 분파하여 다시 삼파로 나뉘었는데, 연안 선비 송철명이 안동의 선비 송흥렴‧송사원 등과 도모하여 합쳐서 족보를 발간하였다. 저자는 이글에서 족보를 편찬할 때는 계파를 상세히 살피고, 과환을 상고해야 하며, 종파와 지파의 문란, 적자와 서자의 논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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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27

    河東山水可遊者記 4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1767년(영조 43) 동짓달, 하동 횡포촌에 있을 때 하군정‧하군선 형제와 더불어 하동의 산수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이다. 이글의 말미에서 저자는 요산요수를 성인의 인지와 연결시켜 논하고 있는데 성인을 배울 것을 희망하였다. 저자는 처하는 바가 높을수록 보는 것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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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28

    由道齋存省樓記 5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하남의 횡포촌에 위치한 박씨의 재사인 유도재의 존성루에 대한 기문이다. 도는 사물의 당연한 이치로 사람들이 함께 말미암는 것이다.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인 바 그래서 군자는 두려워하고 삼가는데 바로 존양과 성찰을 이른다. 재와 루를 명명한 본래의 뜻을 유기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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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29

    審安齋記 5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소녕원 낭관이 수직하는 심안재에 대한 기문으로 ‘심안’이라는 재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취하였다. 體用에 통달한 군자는 얻음과 잃음을 동일시하고 총애와 욕됨을 잊어버려 설정된 상황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처럼 초연히 자적함으로써 세간의 외적인 일이 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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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30

    鳳山書堂記 5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감문 梧響에 있는 봉산서당에 대한 기문으로 서당은 1784년(정조 8)에 건립되었다. 인륜을 밝히고 육행을 닦으면 풍속이 돈후해지고 예악이 흥행하게 된다. 서당을 짓는 목적은 바로 ‘作成’과 유관하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6931

    遊西京記 5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1787년(정조 11)에 고도인 개성을 기행하고 나서 지은 기문이다. 제릉의 능관인 이진택과 동행하면서 선죽교‧화담‧화곡서원‧대흥산성‧박연폭포‧관음사‧대흥사‧만월대‧숭양서원 등을 둘러 보았는데, 저자의 선조인 구봉군의 유허와 국재의 묘지를 찾아서는 참배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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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32

    水落臺雜記 6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수락대와 주변에 있는 동은병‧서은병‧석출대‧석문 등의 경물에 대한 잡기로 신해년 만추에 지었다. 대의 이름은 소자첨의 적벽부에서 취하였으며, 저자가 여은동에 우거한 것은 수락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반해서였다. 권방은 또한 적벽부의 글자를 모아 오언 율시 12수 지어
    출처 : 유교넷
  • 356933

    逍遙堂記 6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선석의 남쪽에 있는 소요당에 대한 기문으로 당은 저자의 족부되는 송은이 유거하는 곳이다. 소요당에 오르면 수십리 밖의 학가산과 조골산 등이 시야에 들어와서 산림의 흥취가 그윽하다고 했다. 저자는 고인이 도덕의 숲에 소요한 사실을 들어, 당의 이름을 ‘구하지 않고 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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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34

    進溪書堂記 6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저자의 친우인 진사 권계선의 진계서당에 대한 기문이다. 서당의 이름은 서당 앞을 흐르는 작은 시내에서 따왔으나 시냇물이 웅덩이를 채우고 흘러가 바다로 들어가듯 학문과 도학의 끝없는 진전을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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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35

    道湖精舍記 7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영천 신광진이 그의 선조 교리공을 위해 세운 도호정사에 대한 기문이다. 정사의 이름인 도호는 단산을 지나가는 위수의 이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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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36

    花川書堂記 7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영천 신녕의 서북쪽, 갑현 아래 온천동에 있는 화천서당에 대한 기문이다. 서당은 그 동네에 거주하는 권사국이 친족과 함께 지었으며 선대의 뜻을 서술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三代의 교육이 인륜을 밝히는 것이라면서 사장의 배움이 옛날 도와 다르지만 군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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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37

    書巖齋文會錄後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1766년(영조 42) 12월에 저자가 김경온‧이경안 등과 암재에서 만나 좌담을 한 뒤 남긴 제명록에 붙인 발문이다. 이 문회는 저자가 지난 1760년 5월에 타음 이장과 금계 권장 등과 이곳에서 회강하였던 전례를 계승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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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38

    題兒衱對策諸篇後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아들 급의 대책 여러 편에 붙인 발문으로 저자의 정문에 대한 견해를 살필 수 있는 글이다. 저자는 科文이 하나의 작은 기예에 불과하지만 군신간의 의리에 있어서는 폐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여 그 공용성은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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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39

    書朴潛冶知誡答權重之書後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잠야 박지계(1573∼1635)가 권중지에게 답한 편지글의 ‘격물물격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힌 발문이다. 박지계의 명확하고 절실한 면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의리의 정미한 곳에 있어서는 미진한 데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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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40

    書朴主簿堣加喪一朞說後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주부 박우의 ‘加喪一朞說’ 뒤에 붙인 글로 상례에 대한 논변이다. 3년 상을 마치고 다시 1년을 더 연장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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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41

    書延安宋公遺事後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풍현에 사는 송사원‧송사근 형제의 6대조 송적의 유사에 붙인 발문이다. 송적의 유적에 대해서는 제산 김성탁(1684∼1747)과 대산 이상정의 서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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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42

    龍巒權公遺稿跋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안동의 읍지인 『영가지』와 『안동권씨족보』를 편찬한 용만 권기(1546∼1624)의 유고에 붙인 발문이다. 저자는 “『영가지』가 있다면 권기의 이름이 영가의 산천과 더불어 영구히 전할 것이고, 권씨보가 있다면 권기의 자취가 권씨의 후손과 더불어 길이 전할 것이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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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43

    謹書先祖磨厓公遺事後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저자의 7대조로 판서를 지낸 마애 권예(1495 ∼1549)의 유사 끝에 적은 글이다. 세상에 참된 영예과 비난이 없어진지 오래되어, 毁譽의 많고 적음으로써 천하의 시비를 정할 수 없으나 성현의 한마디 말이면 포폄이 결정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마애의 진퇴와 출처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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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44

    鐵城聯芳集跋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고성이씨의 선대 유집인 『철성연방집』에 붙인 발문이다. 유집은 임청각 주인 이의수가 용헌의 후손이자 망헌의 방손으로 삼세의 유집이 인몰되어 전하지 못할까 두려워, 족숙 이주로‧이주정 등 여러 종친과 함께 행촌 이암(1297~ 1364) 등의 시문을 모아 간행한 연방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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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45

    松潭蔡公逸稿跋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강호의 일사로 도의를 스스로 즐겼던 송담 채응린(1529~1584)의 일고에 붙인 발문이다. 송담은 계동 전경창(1532~1585)에게 배우고, 월천 조목에게서 강학하였으며, 괴헌 곽재겸‧낙재 서사원 등과 사우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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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46

    題權士貽家乘後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완성의 용진촌에 거주하는 권사이 소장의 가승 끝에 소감을 적은 글이다. 가승에는 시조로부터 그의 부조에 이르기까지 생졸과 묘지‧명갈‧장뢰 및 외가의 팔고조도 등이 기재되어 있는데, 권사이의 내외 선조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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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47

    題權一大詩卷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30년 전에 작고한 성곡옹 권일대의 시권에 붙인 발문이다. 권일대의 시에 대해서는 해좌 정범조(1723∼1801)와 팔우헌 조보양(1709∼1788) 등 제공들의 논평이 이미 있기 때문에 췌언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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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48

    丹溪河先生家廟上梁文(1804)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사육신 중 한 분인 단계 하위지(1412∼1456) 선생의 가묘를 세울 때 지은 상량문이다. 단계의 복관과 입후는 明陵조에 이루어졌고, 증시와 祿孫은 영조조에 시행되었다. 그리고 정조 초기에 경연에서의 주청에 의해 종사로 하여금 고‧조‧증조‧고조와 같이 제향을 받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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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49

    臨淵亭上梁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임연정을 세울 때의 상량문으로, 임연정의 주변 경관과 정자 주인의 인품‧행적, 정자의 규모‧제도 등을 서술하면서, 상량 이후에 녹문의 절의를 추구하며 한적한 생활을 할 것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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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6950

    洛江亭重建上梁文(1806) 2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방
    저자의 본생 7대조인 마애 권예(1495∼1549)를 추모하는 낙강정을 중건할 때의 상량문이다. 권예는 형조판서·대사헌·이조판서·우참찬 등 요직을 역임하고 마흔 남짓한 무렵에 향리로 물러나서 10여 년 은거했는데, 중도에 을사사화를 겪었으나 초연히 홀로 모면했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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