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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7151

    答曺仁伯(1720)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曺善長에게 답한 일상적인 안부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7152

    與柳允卿(升鉉,1731)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柳升鉉에게 선조의 碣銘에 대해 부탁하는 글이다. 참판 權重經에게 선조의 갈명을 부탁하여 짓겠다는 약속을 받은 바 있지만 오래도록 소식이 없으니, 유승현에게 틈을 내어 한 번 방문을 하든지 인편으로 보내든지 하여 권중경의 답서와 銘文을 받아 부쳐주기를 요청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153

    答柳達夫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저자가 지어 보였던 시구 중에서 수정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저자가 지은 시 중에서 ‘倦翮’이란 두 글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고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던 차에, 柳顯時가 일러준 바 ‘短翮’이라는 표현이 흡족하다며 시의 수정을 바란다는 내용이다.(권9「虎溪洞主柳達夫(顯時
    출처 : 유교넷
  • 357154

    與裵守約(行儉,1724)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裵行儉이 烏川 金丈 집안의 喪禮에 대해 물었던 바, 저자가 禮書에서 근거를 찾아 일러주는 내용이다. 요점은 練祭를 지내는 기준 시점을 사망한 달로 잡을 것인지 出后한 날로 잡을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7155

    與金振伯(1731)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金聖鐸이 방문해 준데 대해 감사하는 편지이다. 산 속 궁벽한 곳으로 방문해 준데 대해 감사하는 한편, 추수하기를 기다려 중간에서 만나 책을 펴고 강론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7156

    答金振伯(1733)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金聖鐸에게 挽詞를 점검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永陽의 鄭聘君 집에서 만사를 부탁해 왔는데, 저자는 본디 詩律에 어두워 문장으로 대신하려고 하는 바 잘못된 곳이 있으면 고쳐 달라고 부탁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157

    答權企仲(芨,1732)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權芨(1698~1781)의 향학열을 칭찬하는 편지이다. 물어온 疑義는 비록 모두가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發憤하는 공부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으니, 부지런히 공부한다면 소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158

    答李世卿(廷萬,1718)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李廷萬이 독서하는 여가에 산수자연을 즐기는 뜻이 있음을 알고 선배로서 경계의 말을 전하는 내용이다. 군자가 산수를 즐기는 것은 산수의 겉모습만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다. 산의 厚重함을 보고는 내 마음도 이와 같은가를 생각해야 하고, 물의 흘러감을 보고는 내 지식도 이
    출처 : 유교넷
  • 357159

    與李世卿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저자는 밤낮으로 매화와 국화를 바라보며 감상하다가 오늘 창 앞에 대나무를 옮겨 심었는데, 때때로 즐기며 自適하느라 飢渴조차 알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정만처럼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160

    與申景楷(正模)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申正模에게 보내는 일상적인 안부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7161

    答海鄕宗族(1731)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寧海의 친족들이 안부를 물어온 데 대한 답장이다. 저자가 거처하는 궁벽한 곳에 가뭄 뒤에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나 작은 바다를 이루었는데, 창문을 열고 감상하자니 흥취가 물씬 일어남을 이기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162

    答族侄汝彬(彦煥,1729)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族姪 李彦煥에게 답한 안부 편지이다. 회갑이 되는 해를 맞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회고하면서 제대로 이룬 것이 없음을 자탄하고, 조카에게 학문과 행실을 닦아 시골의 善士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독려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163

    答汝彬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건강이 좋지 못한 조카 李彦煥을 위로하는 편지이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며 처방을 포기하고 몸조리를 하지 않는 조카를 나무라며, 宣城의 金의원이 큰 병을 잘 치료한다고 하니 조카는 아직 나이도 젊은 바 진료를 받아 조리한다면 쾌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위로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164

    答汝彬(1732)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年前에 감사의 명으로 훈장직을 맡게 되어 누차 사양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었고, 또 이번에는 감사가 조정에 아뢰어 關文이 먼저 이르고 節目이 이어 이르렀으니 체직을 청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며 난처한 입장을 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165

    答汝彬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조카 李彦煥이 禮學疑義를 물어온 데 대한 답변이다. 물음에 대해 날마다 잃어버리고 달마다 잊어버리는 저자의 처지로서는 답변하기가 힘들다고 겸양하는 한편, 조카의 물음이 근거가 부족하여 억지 견해가 있는 만큼 예를 잘 아는 사람에게 품의하여 반복하여 살필 것을 당부하고
    출처 : 유교넷
  • 357166

    答汝彬(1734)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조카 李彦煥의 향학열을 치하하는 내용이다. 자질이 아름답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조카와 마주 대하고 토론하고 싶지만 거리가 멀어 그리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였다. 말미에서는 咸州의 山訟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167

    與汝彬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喪禮에 대한 내용이다. 佳坪에 사는 趙棘人이 喪禮에 대해 물어왔는데, ‘父死代服’이란 구절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없으며, 道津의 鄭三棄의 『禮儀補遺』에 관련 문자들이 두루 열거되어 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168

    寄子天煥猷煥(1711)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아들 天煥과 猷煥에게 身心을 수습하여 독서에 마음을 기울일 것을 당부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169

    寄子天煥猷煥(1714)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집안에 별고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7170

    答子天煥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오래도록 묘소를 살피지 못하고 있었는데, 四弟(李栐)가 비록 오지 않았지만 물을 건널 수가 있기에 지금 가고자 한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7171

    寄子天煥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학문을 함에 있어서는 그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 그치지 않아야 功效를 볼 수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172

    答侄子絅煥台煥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조카 絅煥과 台煥이 물어온 喪中의 墓祀, 특히 형수의 묘사에 대하여 退溪, 愚伏의 설을 인용하여 일러주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173

    重書桑村金先生事蹟後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1727년 4월 하순에 거듭 쓴 桑村 金自粹선생의 事蹟에 대한 발문이다.(권7 「桑村金先生遺蹟跋」 참조) 김자수가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키지 않고 조선에 벼슬하였다는 ‘仕本朝’라는 말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이 비방하는데, 이 ‘사본조’라는 말은 『여지승람』이나 『영가지
    출처 : 유교넷
  • 357174

    嶺友會話題名錄序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1718년 겨울에 서울에서 영남 인사 수십 인이 모여 회합했던 일을 기록한 서문이다. 당시 玉山에 사는 金聖鎔이 太學에 있으면서 돈을 내어 술과 안주를 마련하였고, 曺善迪(1697~1756, 字 仲吉, 號 恥齋)이 識文을 기록하였고 저자가 서문을 기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175

    成徵余字說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저자의 친구 成景瑞가 아들 成信寅의 관례 후 字를 지어줄 것을 청하자, ‘信’자의 뜻을 부연하여 ‘徵余’라는 자를 지었다. 그 의미는 사람의 행동과 일은 반드시 징험할[徵] 수 있는 실상이 있은 연후에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信]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7176

    除職後呈吏曹狀(吏讀刪)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저자가 참봉을 제수받고서 사퇴하는 뜻을 기록하여 이조에 올린 문서이다. 시골에 사는 보잘것없는 사람의 이름이 잘못 알려져 분수에 넘치는 은전을 받은 바, 감당하기에 능력이 부족하며 또한 나이가 이미 70에 가까운 점을 헤아려 명을 거두어줄 것을 아뢰었다.
    출처 : 유교넷
  • 357177

    祭從舅金公(純義)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從舅 果軒 金純義(1645~1714)에 대한 제문이다. 김순의는 近始齋 金垓의 증손이다. 淸白하였으며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았고, 강 가 서재에서 거처하며 단풍잎과 하얀 눈을 즐기기도 하였으며 좌우에는 도서를 진열해 놓고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고 생전에 뵈었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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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78

    祭叔父恒齋先生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숙부 恒齋 李崇逸(1631~1698)에 대한 제문이다. 退溪가 朱子의 실마리를 이어 우리나라에 聖學을 크게 밝힌 이래로 이숭일이 그 형제들과 대업에 잠심하여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다고 평가하였다. 한편 先子께서 돌아가신 뒤 저자의 형제들이 의귀처로 삼았는데, 숙부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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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79

    祭叔父葛庵先生文(緬禮時)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숙부 葛庵 李玄逸(1627~1704)에 대한 제문으로, 이현일이 사망한 뒤 緬禮할 때에 지었다. 이현일은 세상을 근심하고 도를 지키는 마음이 정성스러웠으며 평상시 모든 행동에 있어서 정해진 법식을 지켜 잠시라도 어긋나지 않았다.
    출처 : 유교넷
  • 357180

    祭曺仁伯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曺善長에 대한 제문이다. 학문의 도는 요점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한 바, 그 요점은 바로 敬이다. 조선장은 종일토록 단정하게 앉아 66년 동안 잠시라도 이 敬을 어기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181

    祭鄭洛瑞(游蓮)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鄭游蓮에 대한 제문이다. 藥圃, 淸風子의 유풍을 이어받은 영남의 명망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몸가짐을 삼갔고 남을 대할 때에는 정성을 하여 士友들이 존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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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82

    祭季弟澤萬(霖)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막내아우 李霖에 대한 제문이다. 剛方하고 純全한 성품을 갖추었던 막내아우가 저자와 함께 4년이나 동거하며 잘 지내다가 장가든 지 얼마되지 않아 병을 얻어 40여 일 앓다가 27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것에 대하여 형으로서 수족을 잃은 듯 슬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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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83

    鳳城琴公(義操)哀辭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丈人 항렬로 아버지처럼 모셨던 琴義操에 대한 애사이다. 仁厚한 성품과 和淳한 기상으로 고을 사람들과 두루 원만하게 지냈음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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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84

    聞韶金公(龜重)哀辭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臥溪 金聖欽(1682~1757)의 아버지 金龜重에 대한 애사이다. 孝란 百行의 근본이며 萬善의 으뜸인 바, 효를 잘 실천한 것으로 미루어 그 나머지 것들은 미루어 알 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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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85

    行狀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이만(1669~1734)의 행장이다. 字는 君直, 號는 顧齋, 本貫은 載寧이다. 선대는 孟賢(호 覲齋, 관찰사)→璦(縣令, 移居寧海)→殷輔(忠武衛副司直,贈左承旨)→涵(호 雲嶽, 宜寧縣監, 贈吏參)→時明(호 石溪, 康陵殿參奉, 贈吏判)→隆逸(호 平齋, 通德郞)로 이어진
    출처 : 유교넷
  • 357186

    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묘갈명은 저자의 증손 李宇啓가 行狀을 가지고 義城人 龜窩 金(1739~1816)에 게 청하여 지은 것으로 1816년 정월에 완성되었다.
    출처 : 유교넷
  • 357187

    墓誌銘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묘지명은 저자의 현손 李海德이 평소 알고 지내던 完山人 定齋 柳致明(1777~1861)에게 부탁하여 완성되었다.
    출처 : 유교넷
  • 357188

    挽詞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延城 李浹(2수), 平原 李光庭, 永嘉 權榘, 永嘉 權德秀(2수), 聞韶 金命錫(4수), 聞韶 金聖鐸(3수), 遂安 金夏九, 永嘉 權萬(3수), 完山 柳敬時(2수), 完山 柳升鉉, 烏川 鄭重器, 完山 柳錫斗, 豊山 柳聖和, 安東 權相一(2수), 全義 李山斗, 永嘉 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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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89

    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만
    金聖鐸을 비롯하여 曲江 裵行儉, 漢陽 趙是光, 聞韶 金樂行, 門人 韓山 李汝靖, 四弟 栐, 從子 鳳煥, 堂侄 台煥 등이 지은 8편의 제문이 수록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190

    광뢰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廣瀨 李野淳의 문집. 13권 7책. 석인본. (金鍾錫) 序文과 跋文이 없어 정확한 간행 연대와 경위를 알 수 없으나 저자의 생몰년을 감안할 때 조선후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문집 가운데에는 저자가 평생 동안 수행했던 퇴계문집에 대한 상세한 고증 작업과 관련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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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91

    次歸去來辭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벼슬을 포기하고 자연과 더불어 학문을 강론하는 즐거움을 노래하였다. 내 마음을 엄한 스승 삼아 극기복례에 종사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아서 마음껏 노닐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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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9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自警八絶(癸卯, 1783), 述懷, 感集先祖退溪先生集中詩句二十九絶, 靑藜杖, 謹次先祖山居四時各四吟共十六絶,曉鷄(乙巳,1785), 漱石亭韻, 月瀾庵感次先祖和西林院詩, 敬次先祖春日書事韻, 偶詠, 月夜憶同志, 川沙楠木, 小兒云白鷺瘦甚感歎而作, 謹次紫霞山詩帖韻(並序), 憑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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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9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謹次先祖林居詠用玉山韻,挽柳壺谷(範休), 挽李弼聖(時獻), 挽鄭嘉山(蓍○癸酉, 1813), 挽金承旨(翰東), 贈琴亨之(養蒙), 謹次大山集次金五友堂(近)笙潭韻, 盆梅詠和東坡韻, 挽金南爲(鵬運)二首, 挽金時彦(夏儒), 挽金友直(相溫), 挽南持平(景羲), 偶次琴丈聖玉唱酬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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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94

    上川沙先生(1788)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川沙 金宗德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종덕이 퇴계문집에 포함되어 있는 오자를 지적한 데 대해, 이것은 후일 다시 간행을 할 때 반영하겠다고 하면서 사문에 큰 보탬이 되었다고 고마워했다. 그것은 趙月川에게 답하는 편지에 道心을 人心이라 한 것, 정문봉에게 답하는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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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95

    上川沙先生(1790)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심경부주』에 나오는 「心學圖」의 작자 문제에 관해 언급하였다. 저자는 「심학도」의 작자가 林隱 程復心이라는 사실을 임은본서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고 하면서, 퇴계 당시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했다. 또한 「심학도」 후면에 정씨 운운, 按자 운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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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96

    上川沙先生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퇴계문집에 내포된 心法의 宗旨에 관해 김종덕이 자세히 언급하였고, 저자는 본래 깊이 논의하려는 계획이 아니었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저자는 심법 종지가 요순 이래로 전승되어 온 것이며 맹자의 養浩, 주렴계의 主靜, 二程의 正中 등이 모두 심법의 종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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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97

    上川沙先生稟目(1791)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저자가 선조의 묘를 이장할 계획을 세우고 묘를 팔 때와 하관할 때 입어야 할 상복에 관해 질의하였다. 계묘 때는 재최복을 입는데 개장을 할 때는 이미 재최복을 입는 기한이 끝난 이후라서 어떤 복으로 입어야 하는지를 물었던 것이다. 문목이라 한 것으로 보아 질의가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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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98

    上川沙先生(1793)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감사와 공부의 어려움을 말했다. 『심경부주』는 읽는 것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아무런 실익이 되지 않는다고 하고, 퇴계도 문하의 제자들이 그 맛을 깊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한탄했다고 썼다. 성학의 가르침은 평이명백한 것을 일상생활 가운데 실천하고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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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199

    上川沙先生(1794)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당시 김종덕이 저술하고 있던 『주서강록간보』를 열람한 소감과 발문을 쓰라는 명에 대해 답변하였다. 간보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으며, 추보 1조목은 과연 말씀대로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발문을 쓰는 일은 지위가 없는 사람이 쓰면 경솔하고, 문장이 없는 사람이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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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200

    上川沙先生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이상정의 「高山記」를 읽고 유가의 학문이 무릇 이러함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저자는 약관 때부터 이상정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으나 나이 삼십이 되도록 성취함이 없었고, 세상의 공명은 망령되게 구할 것이 못됨을 조금 알게 되었다고 했다. 비로소 선조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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