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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1795)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김종덕이 도산문집에 誤字, 落字, 剩字 혹은 민망스러운 부분이 많다고 하고 급문제현들이 전심전력으로 교정을 했는데도 이러하다고 하면서 탄식했음을 말했다. 저자는 ‘이제 영남의 장로들이 모두 병들고 늙어서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면서, 더 이상 조정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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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저자의 스승인 김종덕에게 가르침에 대한 감사의 말을 하고 예설에 관한 몇 가지 문목을 별지로 덧붙였다. 문목의 내용은 대체로 가례의 小殮 조항, 大小殮 때의 손님맞이, 성복일의 제례 방식, 장례 때 토지제를 지낼 때의 축문, 축문의 표현, 가묘의 설치에 관한 한강 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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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김종덕의 손자의 사람됨과 문하의 형편 등에 관해 물었다. 지금 문하에 와서 배우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강독하고 있는 책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權秀才는 탈상을 하면 틀림없이 찾아와서 배우고자 청할 것인데, 재주나 인품이 혹 가망이 있는지 물었다. 저자는 작년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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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심경강록간보』는 초봄부터 계속 읽고 있는데 비로소 그 맛을 깨닫게 되었으며, 대산선생의 심경에 관한 시에서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저자는 이 책의 간행이 이미 늦었다고 하고, 갈고 닦아서 털끝만한 흠도 없게 하여 사방의 학자들이 즐겨 찾고 돌려보게 한다면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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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講錄刊補論稟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위의 편지에 일종의 별폭으로 붙인 문목과 저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내용은 대체로 저술 내용의 오류, 고증과 해석의 문제이다. 序의 體用條, 涵養條, 贊에서 惟理無形條, 人心道心章 虛靈知覺條, 閑邪存誠章 尹和靖條 등으로 약 30면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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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川沙先生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심경강록강보』 교감 작업을 재차 끝냈다고 하니 매우 다행스럽고, 특히 저자 등의 의견이 채택되었다고 하니 분에 넘치는 영광이라고 했다. 이 책은 오랫동안 교정을 거쳤고 열심히 다듬었기 때문에 당시처럼 서양문화가 날로 창대해 가는 시점에서는 사계에 공헌하는 바가 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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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1796)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저자의 족형인 李觀燮의 죽음과 그의 저서인 『正學綱要通編』에 관해 말했다. 이관섭은 나이차를 뛰어넘어 저자와 허교하는 관계였는데 갑자기 죽음을 당하여 마음놓고 대화할 상대를 잃었다고 하였다. 그는 『정학강요통편』을 지어 저자에게 교감을 부탁하면서 보냈는데 연이어 부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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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5, 6일간 여행하면서 세 번 선생을 뵈었는데 신관이 여전하여 위로되는 바가 많았다고 했다. 저자는 돌아오는 길에 后山丈에게 붙잡혀 하룻밤 유숙하였는데 학력이 능히 병을 극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예설에 관해 한두 가지 질문을 하고 巖翁의 의견은 어떠한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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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물이 불어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아서 노년이 되니 의리는 무궁한데 광음은 쉬 흘러간다는 구절이 과연 의미가 있다고 했다. 나이가 드니 크게 병통이 있는 것은 아닌데도 수렴하는 공부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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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성학십도」 가운데 인심도심과 태극에 관해 질의를 했는데 답변이 없자 재차 답변을 촉구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다시 피력한 글이다. 저자는 도설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분개와 혼륜의 입장이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관계로 전개되어 있음이 명백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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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 3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앞서 질의한 내용과 스승 김종덕의 답변에 관해 언급하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이 편지에서 주로 언급한 것은 靜의 개념이다. 이 편지에서는 주로 靜을 無欲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무욕할 때 비로소 고요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본다면, 이것은 학자의 일이지 성인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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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 3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역시 主靜의 문제에 관해 토의하였다. 성인의 차원에서는 공부의 의미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주렴계가 처음 主靜을 말할 때는 공부의 의미로 한 것이 아니었고 정자의 단계에 와서 정좌를 말하면서 비로소 공부의 의미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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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지난번 질의에 자세히 답변해 주신데 대해 감사하고 군자의 행동은 자고로 무거워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동의하였다. 근자에 영주에 갔다가 열흘 머물다가 돌아왔다고 하면서, 裵相說이라는 사람과 그의 저술에 대해 언급했다. 배상열은 젊은 나이에 죽은 아까운 인물이라 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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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1797)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정자의 기문을 짓는 문제와 월란암 중건에 관해 서술하였다. 정자의 기문을 지으라고 하신 명은 받들기 어렵다는 의사를 간절히 표현하였다. 월란암의 중건에 관련된 논의는 있었으나 서원의 여력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한바탕 선문답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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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 4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저자가 정리한 혼례 홀기에 관해 말했다. 저자는 혼례 홀기를 정리하였는데, 김종덕은 이것이 퇴계가 정리한 것인지 물었던 모양이다. 저자는 퇴계설에 의거하고 속의를 참고하여 정리한 것으로 집안에서 쓰고자 하는 것인데, 김종덕이 그것에 준거해서 예를 시행해도 좋겠다고 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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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 4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저자의 질의에 대해 스승이 깊이 장려하는 한편 질책하는 것에 대해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식으로 이해하면서 복응할 뜻을 다졌다. 성리설에 관해 질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함양본원’은 실로 유가의 제일의 종지이지만, 다만 함양이라는 말에는 여전히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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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 4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스승인 김종덕의 가르침에 대한 감사와 학문에의 결의를 담고 있다. 김종덕은 저자의 학문에 대해 이것을 희열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을 희열이라고 하겠는가 라고 했지만, 저자는 만약 그렇다면 자신이 어찌 나이 마흔이 넘도록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겠는가 하였다. 깨달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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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川沙先生 4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퇴계의 글은 매일 탐구하고 있지만 심오한 의리에 있어서는 감히 먹칠을 할 수 없으니, 선생께서 가르침을 주시어 잘못 해석하지 않게 된다면 큰 다행이라고 했다. 저자가 퇴계집에 대한 다양한 저술을 함에 있어 김종덕의 지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업을 함에 있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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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晩谷(述道)別紙(1810)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예제에 관해 질의하였다. 저자의 족조가 되는 사람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아들이 죽자 종손이 되는 사람으로 하여금 承重을 하게 하였는데, 이 경우 그 종손은 아버지의 상과 할아버지의 상에서 복제를 어떻게 해야 하며, 절차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이 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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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晩谷別紙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수양부모에 대한 복제에 관한 질의를 담고 있다. 저자의 족제 彦淳은 태어나서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젖을 먹을 수가 없어서 집안 형수되는 김씨에게 맡겨졌는데, 김씨는 처음에는 노비 가운데 젖이 나오는 사람을 시켜 젖을 먹였으나 노비의 젖이 마르자 자신의 젖을 물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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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晩谷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편지와 霞帖跋 및 10여 편의 시를 보내준데 감사했다. 양식이 부족한 근심을 토로한데 대해 그것은 흉년에 누구나 갖는 근심이라고 하며, 이곳 자하산에서 나는 황량조차 구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서생이 박복한 것은 언제나 그랬던 분수이며 한번 웃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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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趙晩谷(1801)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역시 趙述道에게 보낸 편지로 가묘 신주의 改題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였다. 저자의 집에 누세에 걸쳐 전래된 감실이 있는데, 아버지 초상이 끝나는 날 曾祖考妣를 당연히 高祖考妣로 개제해야 하는데 경황 중에 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예법에 어긋나지 않게 고칠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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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晩谷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지난번에 질의했던 원조의 신주를 조묘에로 옮기고 개제하는 문제는 저자의 억견에서 나온 것이나 자신할 수 없어 조술도의 의견이 이러함을 알고 이에 근거하여 통고했음을 말했다. 또한 아버지의 상과 承重의 상을 동시에 당했을 때의 선후 절차와 순서에 관해서도 향인의 경우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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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臨汝齋()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臨汝齋 유규가 도산서원을 제관으로 방문하기로 한데 대해 감사와 환영의 뜻을 담고 있다. 제사 때 오시게 되어 미안하고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비록 어수선하지만 저자는 서원과 산수를 안내하며 모시게 되어 지금까지 듣지 못한 새로운 것을 들을 수 있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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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晹谷(述靖)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李述靖에게 보낸 편지이다. 근자에 서양에서 들어온 악한 기운이 가득하다고 하면서, 이에 대해 저자는 다만 자기 자리를 잘 지킬 뿐 달리 번잡하게 일을 벌일 것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술정의 시에 대해 저자가 화답하고 晩谷 趙述道가 다시 시를 지어 보내왔으니, 이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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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弦窩(應度)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權應度에게 보낸 편지이다. 초가을에 방문해 주신 것은 큰 행운이었을 뿐 아니라 소장하고 있던 고첩과 허다한 서책을 보여주신데 대해, 저자가 아직 보지 못한 서적으로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옛말에 새로운 사람은 보지 못해도 새로운 책은 보아야 한다고 했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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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屛村(泰春)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柳泰春에게 보낸 편지이다. 東巖선조의 「행록」을 보내드린다고 하고 지난번 만났을 때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장」 중에는 난삽한 문구가 많을 터이니 문제점을 지적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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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龜窩(㙆)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단양군수로 간 金㙆에게 보낸 편지이다. 공무를 보는 중간에 三潭과 二巖의 경승지를 둘러 보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러움을 표현하였다. 옛날 금계 황준량이 단양군수가 되었을 때 퇴계가 자연을 사랑하며 살던 사람이 관리로 나아가면 곧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된다고 한 고사를 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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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俛庵()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문집을 간행하는 일을 늦추지 말 것을 말했다. 문집은 금년 봄에 간행하는 줄 알았는데 내년으로 연기되었다고 하니 불행한 일이라고 했다. 대저 일을 시작해서 인쇄를 하지 않았거나 인쇄를 했는데 다하지 못한 것은, 어느 쪽이든 미안한 일로서 관계하는 제현들이 미리 확실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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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黃稺見(龍漢)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한석봉의 퇴계급문 사실에 관한 문제와 천자문을 찾아내었다는 내용을 적었다. 선조의 천자문 1첩을 찾아내었는데 수백 년이 된 것으로 이것은 후손들의 행운이라고 했다. 황룡한이 먼저 한석봉이 퇴계에게 급문했다는 말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감히 그렇지 않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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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左尹(來成)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鄭來成이 당시 도산서원 동주를 맡았던 것으로 보이며, 저자는 정래성에게 도산서원 각 건물의 편액을 다는 문제를 상의하였다. 저자는 당시 亦樂齋에 편액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몹시 개탄했다. 저자는 볼일이 있어 서원에서 책판을 점검하다가 先墨刻本 4자를 발견하고 마치 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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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尹方伯(光顔)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경상도관찰사 尹光顔이 선물을 보낸데 대한 감사의 글이다. 지위가 높으면서 뜻은 아래로 향하고 덕이 세상에 자자한데 예는 더욱 공손하다고 하고, 영남의 백성이 태평한 것은 모두 합하의 인품의 결과라고 칭송하였다. 선물을 받자니 의리가 없고 돌려보내자니 불공하여, 불공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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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方伯(存秀)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경상도관찰사 李存秀에게 보낸 편지이다. 관찰사가 지난 가을에 도산서원에 금전을 보내와서 서원 운영에 보태게 했으므로 이에 감사의 편지를 쓴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주자가 백록동서원에 전답을 지급하여 학업을 돕게 한 뜻과 같다고 하면서, 고을 사림들과 논의하여 유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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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黃州(其應,1801)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황주부사를 지낸 金其應에게 보낸 편지이다. 과거 황주로 발령받아 갈 때 김기응이 저자에게 편지를 보내 정을 표하였고, 이후 자주 편지를 보냈는데 저자가 답을 하지 못한데 대해 이유를 설명하였다. 한번은 인편을 구하지 못했고 또 한번은 편지가 중간에서 돌아다니는 것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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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黃州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최근 자신의 정자를 경치 좋은 곳으로 옮기고 노년의 세월을 보내고자 하는데 뜻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하고, 무엇보다 김기응을 모시고 풍류를 즐기지 못하는 것이 한이라고 했다. 정자의 왼쪽에 축대를 쌓고 覽得臺라 명명했으며, 오른쪽 바위를 搜異臺로 이름 붙였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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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侯(邁源)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湖北지방에 부임하게 된 洪邁源에게 독서를 권장하며 보낸 편지이다. 호북지방은 벽지이고 일이 적은 곳으로 독서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 했다. 독서방법에 관해서는 지난번 편지에 자세히 설명했다고 하면서, 수령이 독서하면 백성들이 그 치적을 보게 될 것이라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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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日章(慶進)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이웃 사람이 지나면서 편지를 전해 주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필세가 강건하여 병든 몸에서 나온 글씨가 아님을 알겠고, 다음으로 선생의 체력이 건강하여 아무 걱정거리가 없음을 알겠다고 했다. 대산선생이 어떤 사람에게 기증한 시에 나오는 인간사에 있어 이별은 언제나 있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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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黃中(是瓚,1813)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가정 의절에 관해 논의하였다. 家先儀節은 원근의 예학자에게 널리 물어서 따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지난번 질의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김시찬이 편지지에 가득하게 상세한 설명을 보내 왔으므로 가슴이 시원하게 풀리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소산옹이 인용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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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黃中(1814)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金是瓚에게 보낸 편지이다. 위패에 관직명을 쓸 때 증직을 먼저 쓰는지 임직을 먼저 쓰는지에 관해 기술했다. 文貞公의 위패에 증직이 먼저 쓴데 대해, 김시찬은 설월당 김부륜이 퇴계선생에게 질의한 내용에 의거하여 그렇게 했다고 했으나 저자는 이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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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明應(必奎)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同齋遺集이 아직 간행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언급했다. 행장을 짓는 일에 관해 정필규는 저자로 하여금 金臺翁에게 위촉하기를 바라지만, 저자는 금옹은 이 일을 남의 집안 일로 생각지 않고 있음을 들어 정필규가 직접 부탁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또한 금옹 한 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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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公穆(熙周,1818)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金熙周에게 답한 편지이다. 호계서원이 다른 서원과 말썽이 생겨 몸과 마음이 피곤할 것이라 위로했다. 그러나 일이 닥쳤을 때 자연스럽게 응하면 비록 부산한 움직임 속에서도 마음은 고요할 것이니, 어찌 반드시 두문불출하고 정양에만 힘쓰는 것이 능사겠는가 라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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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公穆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김희주가 저자에게 深衣 한 벌을 보내준데 대해 감사와 사양의 뜻을 담았다. 심의를 보냈을 때 한 마디로 사양하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다고 하면서, 물건도 사람의 분수에 따라야 함을 어긴 것으로 받는 사람은 참람하고 보낸 사람은 남에게 기롱을 받을 것이니 어찌 받고도 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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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望道(鼎儼)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李鼎儼에게 답한 편지이다. 시 3수와 편지를 보내 주신데 대해 감사함을 표시하고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일상사로 늘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잠시라도 고요한 생활을 하고자 하나 그것이 어려움을 한탄하였다. 흉년의 벼쭉정이에 관한 이정엄의 비유는 족히 훌륭한 시의 소재가 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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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南元大(漢普)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南山翁의 죽음과 이에 따른 사림의 쇠퇴를 걱정하였다. 桐溪遺集은 그 남은 원고가 매우 영쇄하나 간행되어 후세에 전해진다면 사림에게 큰 다행일 것이라 했다. 서문을 써 달라는 청은 도저히 들을 수 없다고 했다. 이웃 고을 친우들의 청을 거절한 것이 엊그제인데 지금 다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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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仲順(必孝,1798)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강필효라는 사람이 혼자 독학하면서 저자에게 가르침을 구한데 대한 답변이다. 보내주신 편지를 보고 근본이 이미 섰고 푹 젖어서 학문에 절박함이 없음을 알겠다고 하면서도 혼자서 터득하는 학문의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또 저자에게 배움을 청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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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姜仲順(1804)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저자가 질의한 내용에 대해 강필효가 잘못 대답한 문제를 지적하였다. 저자는 강필효에게 陳·汪·劉 세 사람의 행적에 관해 질의했는데, 강필효는 다른 내용을 가지고 답변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자신이 질의한 것은 세 사람의 전기나 실록 기사 등이었다고 했다. 저자는 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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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姜仲順(1807)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낙동강의 원류를 답사하기 위해 떠났다가 되돌아 온 사연을 적었다. 저자는 낙동강의 원류를 알아보기 위해 출발했으나 道淵에 이르러 悅卿 김시습의 충고 한 마디를 듣고서는 일정을 파하고 되돌아 왔으니, 이는 훌륭한 벗이 穿川이나 潢池를 탐사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을 깨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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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士溫(鼎基)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기수와 낙수의 근원을 탐사하고자 한 계획은 결국 호수에서 끝났으니, 강산은 제일의 풍류객도 받아들이지 않는데 하물며 저자와 같은 사람에게 자신을 허여할 것인가 라고 탄식했다. 청량산에 한번 오르는 일도 노년에는 용이하지 않으니, 따뜻한 봄이 오면 서울에 있는 여러 벗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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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際可(秉運,1800)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벼슬살이의 고달픔과 이로 인한 학문의 절폐를 논했다. 이병운은 4년간의 벼슬살이를 하는 동안의 괴로움을 토로한 것으로 보이는데, 저자는 학문의 뜻을 지켜 외물에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마음을 다잡으면 무슨 걱정인가 라고 했다. 퇴계가 편찬한 절요서에서 하찮은 관직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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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際可(1814)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李秉運으로부터 8폭의 그림을 받고 답장을 한 것이다. 이 高山圖는 골짜기에 따라 나누어지다가 다시 합쳐져서 하나의 진기한 풍경을 형성하였으니, 동네에서 밥 짓는 연기와 당일의 흔적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마치 노 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저자가 벽촌에서 늙고 있음을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