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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7351

    靜存齋箴圖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퇴계가 급문제자 靜存 李湛을 위해 지어준 『靜存齋箴』에 근거하여 저자가 그린 그림이다.
    출처 : 유교넷
  • 357352

    自修銘圖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중국 명나라의 유학자 草廬 吳澄의 「自修銘」에 근거하여 저자가 그림을 그리고 그 의미를 풀어서 설명했다.
    출처 : 유교넷
  • 357353

    小學題辭圖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주자의 「小學題辭」를 바탕으로 저자가 그린 그림이다. 저자는 소학과 대학의 의미를 연결시켜서 하나로 그리되 「숙흥야매잠도」의 모양을 모방하였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7354

    大學綱條用處緊要圖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대학의 각 조목에 있어 긴요한 점에 관해 언급한 퇴계의 글을 저자가 그림으로 표시하여 소학도에 대응하게 하였다. 덕성을 기르고 근본을 세우는 것은 소학에 달렸고, 규모를 넓히고 방면을 통달케 하는 것은 대학에 달렸다는 요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7355

    玉山講義圖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주자의 「옥산강의」에 근거하여 그린 것이다. 본래 대산 이상정이 후도를 그렸는데, 저자가 일부 내용을 바꾸어서 그린 것이라 했다.
    출처 : 유교넷
  • 357356

    心統性情圖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중국 명대의 학자 程林隱의 「심통성정도설」에 근거하여 그린 그림이다. 본래 퇴계가 중하도를 보태서 그린 것이 있는데 저자가 나름대로 다시 그린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7357

    讀心經講錄刊補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심경강록간보』를 읽고 난 소감이다. 이 책은 본래 경의장 이전까지는 대산 이상정이 정리하였고 그 이후로는 문인 川沙 金宗德 형제가 이어받아서 완성한 것이다. 당초에는 宗敬이 맡도록 되어 있었으나 죽는 바람에 宗德과 동생 宗燮이 맡아서 완성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358

    禮疑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여러 가지 예설상의 의문을 정리한 글이다. 예컨대 장자가 죽고 장손이 승중을 할 경우 어떤 사람은 승중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승중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등이다.
    출처 : 유교넷
  • 357359

    童蒙齋記疑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퇴계언행록과 鄭士誠의 행장에 나오는 동몽재라는 재실의 명칭에 관한 의문을 적었다. 퇴계언행록 가운데 정사성이 기록한 조목과 정사성의 행장에 정사성의 부친이 아들의 학업을 위하여 도산서원 내에 동몽재를 지었다고 되어 있는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몽재는
    출처 : 유교넷
  • 357360

    圃隱集辨疑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포은집 부록에 나오는 「용비어천가」라는 제목의 글에 있는 문장상의 의문점을 지적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361

    舜跖圖說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范蘭溪의 「舜跖圖」에 대한 저자의 평설이다. 범란계의 「순척도」는 순임금의 마음과 도척의 마음을 지나치게 이분화하여 설명한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하였다. 순심과 척심이 무시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하고 순척의 구분은 고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생
    출처 : 유교넷
  • 357362

    『퇴계선생서절요』의 권수에 편찬자인 대산 이상정이 천사 김종덕에게 답한 편지글 한 통을 붙인데 대해 쓴 글이다. 『퇴계선생서절요』는 대산이 쓴 것으로 10권 5책인데 오직 이 책에만 서문을 쓰지 않았으므로, 퇴계가 이중구에게 답한 편지를 『주자서절요』에 붙였듯이 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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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63

    溪山禮說類編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퇴계 이황이 조카인 遠巖公 에게 보낸 예설을 모아서 편찬한 『계산예설유편』에 대한 서문이다. 퇴계는 만년에 예학 연구에 힘을 기울여 예서에 관해 토론하고 시의를 참작하여 배우는 사람들에게 가르쳤으나 책을 만들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 책은 주례는 너무 번잡하고 의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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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64

    鄭淸風子先生文集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淸風子 鄭允穆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정윤목은 인조반정 후 알운봉 아래에 은거하였는데, 저자는 청풍자 선생의 풍도를 듣고 나서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저자는 청풍자의 풍도를 도연명이 북창에 기대어 시부를 짓는 것과 고죽군이 수양산에서 굶어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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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65

    權桐溪先生遺集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桐溪 權達手(1469∼1504)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권달수는 본관이 안동이며 자는 通之이다. 성종 23년 과거 급제하고 정언, 이조좌랑을 역임하였으나 연산군 때 폐비 윤씨를 종묘에 모시려 하자, 그 부당함을 주장하다가 의금부에서 국문을 받던 중 옥사하였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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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66

    北厓金先生文集序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北厓 金圻(1547∼1603)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그는 본관은 光山, 자는 止叔으로 임란 때 金垓와 함께 창의하였다. 퇴계가 죽고 난 후 1년 동안 소식과 소의를 행하였으며 난리가 나자 오직 선생의 글이 산실될 것을 우려하였다. 고을의 의론이 공을 도산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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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67

    震峯逸稿序 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震峯 權宏(1575∼1652)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그의 자는 仁甫, 본관은 안동이다. 병자호란 때 원종공신이 되었으나 청나라의 강화 후 벼슬을 버리고 학문에 전심했다. 주역에서 진괘는 화를 피하여 스스로를 지키는 것인데, 저자는 권굉의 생애가 그러하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7368

    龍山逸稿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龍山 李晩寅(1834∼1897)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자는 君宅, 본관은 眞城이다. 기개가 대쪽같고 풍도가 표쇄하여 생존 당시에 교유하던 인물들은 모두 당대의 문인들이었다고 했다. 일찍이 과거를 포기하고 자연에 은거하였는데, 고답한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요 시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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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69

    玉溪遺稿序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玉溪 姜鳳文(1735~1815)의 문집에 대한 서문이다. 자는 周瑞, 본관은 晋州이다. 선대가 안동 북쪽 玉泉에 우거하였다. 빈천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고 명예를 위하여 굽히지 않았으며, 옥천 밖으로도 거의 나가지 않고 독실한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저자는 퇴계가 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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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70

    桂園世稿序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權基道는 桂谷書堂의 주인이다. 그 선조 가운데 草堂과 玉里가 있다. 초당은 桂園草堂을 짓고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옥리는 그 증손으로 조상의 업을 더욱 확충하였다. 양세의 글이 유문과 만사, 묘갈 등이 많지는 않지만 그것이 민멸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저자에게 서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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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71

    寧海申氏族譜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영해신씨 족보에 대한 서문이다. 영해신씨는 본래 평산신씨에서 나왔으나 文貞公에 이르러 영해에 봉해지면서 군내의 명문 가문이 되었다. 이로부터 대대로 충효와 절의와 덕업과 문장이 찬란하게 빛나면서 수많은 명사를 배출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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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72

    高孝婦權氏旌閭碑陰記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고조모인 효부 안동권씨의 정려각에 음각으로 새긴 기문이다. 안동권씨는 아버지 錢과 어머니 옥천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얌전하고 정숙하며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하다가 고조부에게 시집왔는데 부녀자의 법도를 갖추어 향당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고조부가 일찍 죽어서 과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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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73

    松桂館記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權景龍 집안의 書館인 송계서관에 대한 기문이다. 송계서관은 巖山에 세거해 온 권경룡의 증조 斗景과 그의 족자 達和가 지은 것으로, 창건한 것은 영조 병술년(1766)이고 중수한 것은 정조 병진년(1796)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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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74

    玉書鎭記事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옥으로 만든 서진에 관한 기사이다. 이 서진은 퇴계가 글을 쓸 때 끝을 눌러두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후에 저자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입수하여 간직해 왔다고 했다. 퇴계 역책 이후 일시 다른 곳에 소장되어 있다가 당시에는 李海宗이 주인이었는데, 이해종은 이것이 선생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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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75

    沙禽洞立石日記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영주 사금동에 저자의 선조들의 묘갈을 세울 때 쓴 일기이다. 저자 문중에서 묘비 대신 묘갈을 세우는 것은 퇴계 이래의 가법이라고 했다. 또 퇴계 이후로는 묘갈도 미비한 것이 많았는데, 현령을 지낸 龜應이 문중에 협의하여 임인년 봄에 8대조 첨정공의 묘갈을 세우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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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76

    圖屛識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퇴계가 성리학 이론을 그림으로 표시한 각종 도설 14개를 모아서 만든 병풍에 대한 기록이다. 내용은 성학십도, 천명신구도 2도, 인심도심정일집중도 2도이다. 저자는 이 일을 계축년(1793) 가을에 金元禮, 金鼎會 두 사람과 함께 계획하여 그림을 옮겨 그리는 작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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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77

    題古鏡重磨方上面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저자가 「고경중마방」을 새롭게 편집하고 나서 쓴 글이다. 「고경중마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지침이 되는 말을 퇴계의 글 가운데서 뽑아 앞뒤로 배치하였다. 앞면에는 퇴계가 鄭文峯에게 답한 편지에서 따온 글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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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78

    題古鏡重磨方下面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뒷면에는 퇴계가 조카에게 보낸 「自警屛銘」과 이평숙에게 답한 편지에서 따온 글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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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79

    紫霞山詩帖後識(1794)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퇴계가 자하산을 유람하면서 지은 시를 묶어 첩으로 만든 후 붙인 글이다. 자하산은 저자가 吾家山이라 부를 정도로 퇴계가 사랑하였던 산이었다. 틈이 나는 대로 올라갔으며 기이하고 수려한 절경을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지은 시문과 글이 한 두가지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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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80

    書先祖退溪先生年譜補遺後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퇴계연보보유에 대한 後書이다. 퇴계연보는 본래 서애 유성룡이 썼는데, 저자 당시에 종손 志淳이 퇴계의 출처거취와 입조언론은 어느 것 하나 후세를 위하여 교훈이 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연보에는 많은 부분이 누락되었다고 주장하여 보유를 작성하게 되었다고 했다. 정묘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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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81

    書溪山雜詠後(1813)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계산잡영에 대한 後書이다. 계산잡영은 퇴계잡영 및 도산잡영과 구분되는 것으로, 저자는 퇴계잡영과 관계되는 138수와 도산잡영과 관계되는 116수를 합하여 계산잡영으로 정의하고, 저자의 집안에 가전되어 온 것을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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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82

    題溪山禮說類編別集後 3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계산예설분류별집에 대한 後書이다. 이 책은 가례에 관한 강록으로서 勿巖 金隆이 퇴계에게 질의하고 그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는 이미 계산예설류편을 저술한 바 있으므로 별집이라 명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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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83

    書柳器卿(道文)家藏文純公遺墨帖後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퇴계의 필첩에 대한 후서이다. 柳道文이 소장하고 있던 필첩으로 내용은 주자의 시와 서이다. 퇴계는 강학하는 여가에 서예를 연마하여 자획이 단정 엄중하고 강건하여 이 필적을 소장한 사람은 그것을 귀한 보배처럼 여겼다. 퇴계 당시 누구에게 써 주었는지, 어떤 경로로 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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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84

    謹書先祖答李雲長書後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퇴계가 이운장에게 답한 편지에 대한 後書이다. 내용은 퇴계가 청려장을 얻게 된 경위를 이 편지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계해년에 천연대와 운영대 사이에서 직접 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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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85

    書光州金氏烏川世系圖後(附圖)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광산김씨 오천세계도를 그린 후에 지은 글이다. 雲巖 金緣, 濯淸 金綏 이하로 세상에 드러난 인물만 25인으로 한 집안에 이처럼 번성한 집안도 없다고 했다. 그림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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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86

    近始齋金先生行狀後識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近始齋 金垓의 행장에 대해 지은 글이다. 저자는 근시재가 생존 시기나 가정환경 그리고 본인의 학문적 열성을 고려할 때 퇴계에게 급문하였을 것으로 보는데, 대산 이상정이 쓴 행장에는 급문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있는 것에 대해 여러 자료를 제시하면서 의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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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87

    洪杜谷先生文集跋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杜谷集에 대한 발문이다. 시문집으로 시 약간과 문 약간 그리고 부록 약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글 자체는 많지 않지만 문자 사이사이에 드러나는 강한 의지와 기개가 가상하며, 특히 시가 볼 만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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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88

    書桐溪鄭先生年譜後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桐溪 鄭蘊(1569~1641) 연보에 대한 후서이다. 이 글에는 동계연보에 있어 표현상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하고 있다. 정온은 鄭仁弘의 문인으로 영창대군을 살해한 강화부사 정항의 처벌을 주장했다가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병자호란 때 이조참판으로서 척화를 주장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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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89

    觀感錄東都復城辨證跋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관감록』에서 특히 변증 부분을 읽고 이에 관해 쓴 발문이다. 『관감록』은 임진왜란 당시 경주 지역에서 왜군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무장 朴毅長(1555∼1615)의 행적과 공훈을 기록한 책으로, 이 가운데 후손들이 선조 박의장의 공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음을 변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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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90

    辭縣校致膰識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향교에서 제사를 지내고 음복을 저자에게 보내오는 것을 사양하면서 지은 글이다. 저자는 당시까지 혼자 특이하다는 혐의를 받을까 보아 음복을 받아왔지만, 겸암 유운룡과 한강 정구가 같은 경우에 사양하였던 사례를 알고 나서 사양하는 뜻을 밝힌 것이다. 양현의 편지글을 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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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91

    李義士士龍傳後敘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活齋 李榘(1613~1654)가 쓴 의사 李士龍의 전기를 읽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요컨대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사룡은 명나라 장수에 대해 헛총질을 한 것은 명나라를 부모의 나라로 보았기 때문인데, 넘어져서 화약을 잃어버렸다고 진술했다는 것 등을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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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92

    書方壺趙公日錄後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方壺 趙遵의 일록을 읽고 쓴 글이다. 조준은 생육신 趙旅의 5대손으로서 천거에 의해 주부 벼슬에 제수되었으며, 정묘호란 때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서울로 올라가는 도중에 남한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대둔산 자하동으로 들어가 두문불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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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93

    題金孝子行錄後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北厓 金圻(1547~1603)가 쓴 김효자의 행록을 읽고 쓴 짧은 글이다. 김효자의 효행은 시묘살이에서 드러났다고 전제하고, 호표와 교룡이 출몰하는 산소에서 6년이나 시묘를 한 김효자를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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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94

    書案銘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예안의 守拙堂에 있는 책상에 관한 명문이다. 서안은 넓이가 4척 3촌 5분이고 길이가 2척 5분이 넘으며 높이가 1척 5촌 2분이 안되는 것으로, 저자는 이것을 퇴계가 일찍이 사용하던 것이 아닌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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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95

    丌銘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저자의 조부 목옹부군께서 저자를 위해 만들어준 책상에 대한 명문이다. 저자의 조부께서는 상계마을의 김동지라는 사람을 시켜 책상 하나를 만들어 남겨주었는데, 이것이 화려하지 않고 투박하게 생겨 후손들이 모르고 함부로 할까 염려하여 명을 새겨 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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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96

    丹藜杖銘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붉은 색의 藜杖을 기념하여 지은 명문이다. 붉은 藜草는 예로부터 사람사는 세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골짜기에 자라는 귀한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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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97

    習書石銘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저자의 족숙 龜紹의 부탁으로 지은 習書石에 대한 명문이다. 족숙은 진기하게 생긴 돌을 하나 얻어 자제를 위한 習書石으로 사용케 하고 저자에게 명문을 부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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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98

    忠孝堂銘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李侍郞 댁의 당호인 충효당에 대한 명문이다. 효성을 미루어 나라에 충선한 그의 공로는 읍지에도 나타나 있고 근거가 있으므로 향당에서는 마땅히 현판을 달고 제사를 모셔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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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399

    上溪祠宇上樑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퇴계 이황을 모신 상계의 사우를 중건할 때 지은 상량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7400

    養眞庵上樑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양진암을 중건할 때의 상량문이다. 양진암은 퇴계 이황이 46세 때 낙향의 결심을 굳히면서 지은 집이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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