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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7451

    司僕寺正河陰申公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사복시정 河陰 申楫(1580~1639)의 행장이다. 신즙의 자는 汝涉이고 호는 河陰이다. 본관은 寧海이며 아버지는 慶男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 등을 지냈으나 광해군의 실정으로 벼슬을 버리고 병자호란 때는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의약, 복서,
    출처 : 유교넷
  • 357452

    司憲府持平鄒川孫公行狀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사헌부 지평 鄒川 孫英濟(1521~1585)의 행장이다. 본관은 密陽으로 아버지는 凝이고 어머니는 함안조씨이다. 자는 德裕이고 호는 鄒川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 정랑, 지평 등을 거쳐 禮安 현감이 되었는데, 이 때 퇴계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강론하고 정치에 관
    출처 : 유교넷
  • 357453

    成均進士沙村安公行狀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沙村 安德麟(1563~1609)의 행장이다. 안덕린은 자는 仁瑞이고 본관은 順興이다. 아버지는 聰이고 어머니는 해평윤씨이다. 유성룡과 정구에게 배웠으며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이황의 향약을 실천하고 향풍의 쇄신에 힘썼다.
    출처 : 유교넷
  • 357454

    軍資監主簿李公行狀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군자감 주부 李芸(1568~1638)의 행장이다. 이운의 자는 汝盛, 馨叔이며 호는 芝山이다. 본관은 永川으로 농암 이현보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應虎이고 어머니는 영양남씨이다. 도산서원 창건시 제반사를 처리하였고 임란 때는 서원의 서적, 제기, 위패 등을 청량산 등지로
    출처 : 유교넷
  • 357455

    孝子海雲亭洪公行狀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海雲亭 洪啓夏(1714~1784)의 행장이다. 홍계하의 자는 土沃이고 호는 해운정이다. 본관은 南陽으로 아버지는 重濂이고 어머니는 강릉김씨이다.
    출처 : 유교넷
  • 357456

    靖國功臣道谷金公行狀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道谷 金漢卿의 행장이다. 김한경의 자는 國寶이고 호는 도곡이다. 본관은 聞韶이며 自中의 아들이다. 중종 초에 국가 변란을 당하여 공을 세우고 정국원종공신이 되었다.
    출처 : 유교넷
  • 357457

    老松亭 李繼陽(1424~1488)의 유사 보유이다. 이계양은 저자에게 11대조가 되며 퇴계 이황의 조부가 된다. 단종 대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봉화현 훈도를 지냈으나 단종 선위 후 벼슬을 버리고 용두산 아래 국망봉에 모옥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는 후일 아들 이우
    출처 : 유교넷
  • 357458

    八代祖軍器寺僉正府君家狀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李寯(1523~1583)의 가장이다. 자는 廷秀이다. 저자에게 8대조가 되며 퇴계 이황의 장자이다. 어머니는 김해허씨이다. 어려서부터 가정의 훈도를 깊이 받았다. 집경전과 연은전 참봉을 지내고 세 읍을 다스렸으며 군기시 첨정을 역임하였는데 모두 청렴함과 근면함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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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59

    七代祖原州牧使贈左承旨東巖公家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東巖 李詠道(1559~1637)의 가장이다. 본관은 眞寶, 자는 希點 또는 聖與, 호는 東巖이다. 저자에게 7대조가 되고 퇴계 이황의 손자이며 寯의 아들이다. 음직으로 군자감참봉, 제용감봉사를 역임하고, 임란 때 안동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웠다. 연원도찰방과
    출처 : 유교넷
  • 357460

    六代祖恭陵參奉守拙堂府君家狀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守拙堂 李岐(1591~1654)의 가장이다. 본관은 眞寶, 자는 士夙, 호는 守拙堂이다. 저자에게 6대조가 되고 퇴계 이황의 증손자이며 詠道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 충재 권벌의 후손이다. 어려서 雲川 金涌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자라서는 풍양조씨 黔澗 趙靖의 사위
    출처 : 유교넷
  • 357461

    五代祖長水道察訪贈吏曹參議府君家狀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李希哲(1622~1693)의 가장이다. 본관은 眞寶, 자는 原明으로 저자에게 5대조가 되고 퇴계 이황의 현손이며 공릉참봉 岐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풍양조씨이다. 동암공의 선무공으로 상서원 직장, 선공감부봉사 등을 거쳐 장수도찰방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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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62

    高祖考贈吏曹參判府君家狀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李櫰(1640~1717)의 가장이다. 본관은 眞寶, 자는 子實이다. 이회는 저자에게 고조부가 되고 퇴계 이황의 5세손이며 장수도찰방 岐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풍천임씨이다. 손자 世師가 지중추부사가 됨으로 인하여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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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63

    曾祖考靖陵參奉贈吏曹判書府君家狀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李守約(1659~1735)의 가장이다. 본관은 眞寶, 자는 若曾이다. 이수약은 저자에게 증조부가 되고 퇴계 이황의 6세손이며 이조참판에 추증된 櫰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광주김씨이다. 선조 동암공의 선무공으로 봉직랑에 제수되었고, 안렴사 오광운의 천거에 의해 정릉참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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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64

    伯祖世子侍講院司書府君家狀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李世震(1680~1735)의 가장이다. 본관은 眞寶, 자는 亨伯이다. 이세진은 저자에게 조부가 되고 퇴계 이황에게는 7세손이 되며 정릉참봉 守約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주강씨이다. 영조 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 시강원사서 등을 역임하였다. 역동서원 원장을 지냈
    출처 : 유교넷
  • 357465

    申烈婦李氏傳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열부 이씨전이다. 이씨의 본관은 眞城으로 퇴계 선생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龜胤이고 어머니는 영해신씨이다. 申氏 집안으로 시집가서 能婦, 賢婦, 孝婦 소리를 들으면서 봉양하였으나 남편이 18세의 나이로 홀연히 세상을 떠나자 스스로 음식을 끊고 24세의 나이로 순절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466

    孝娘傳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이름을 알 수 없는 협천군의 어느 효녀의 전기이다. 아버지도 형제도 없이 편모를 모시고 살았지만 병든 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했다. 자신의 허벅지살을 도려내어 어머니에게 봉양하여 나라에서 정려비를 세워 이를 칭찬하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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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67

    睡聾子傳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柳元慶의 전기이다. 본관은 豊山이고 겸암 유운룡의 손자이며 椅이고 어머니는 문소김씨이다. 서애 유성룡의 집안으로 입양되어 지극한 효성으로 양가를 섬겼으며 병자호란의 굴욕을 당하여 작은 정자를 짓고 스스로 눈멀고 귀멀은 睡聾子로 자처하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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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68

    高明極傳 4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高明極은 강릉부 북쪽 쌍계리의 사람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성미가 괴팍한 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하였으며 학문에도 분발하여 산사를 찾아 각고의 노력으로 공부하였다. 고을 사람들이 그를 반드시 高孝子 혹은 高學人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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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69

    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저자 李野淳의 행장이다. 자는 健之, 호는 廣瀨, 본관은 眞城이다. 퇴계 이황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통덕랑 龜烋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 甁窩 李衡祥(1653∼1733)의 증손이다. 1755년(영조 31) 계상리 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삼종숙부가 되는 緱隱公 龜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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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70

    家狀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저자 李野淳의 가장이다. 재종손 李晩慤(1815∼1874)이 썼다. 이만각의 자는 謹休, 호는 愼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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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71

    墓碣銘(並序)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저자 李野淳의 묘갈명과 서문이다. 柳致明(1777∼1861)이 썼다. 유치명의 자는 誠伯, 호는 定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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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72

    挽詞 2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姜必孝, 柳徽文, 李秉夏, 李秉殷, 李蓍秀, 柳致皓, 族兄 頤淳이 썼다.
    출처 : 유교넷
  • 357473

    誄詞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族姪 仁行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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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74

    祭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야순
    李秉運, 姜橒, 柳鼎文, 琴詩述이 썼다. 이병운은 저자가 대현의 가문에서 태어나 집안에 전해 오던 책을 비로소 깊이 연구한 결과 유학의 본령을 탐구하였으며 속학의 고루함을 타파하였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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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75

    구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구재집(鳩齋集) 鳩齋 金啓光의 문집. 4권 2책. 金啓光 사후 200여년 후 8대손 東鎭이 유고를 수습하여 乾 坤 2책의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金啓光의 생년부터 졸년까지의 자세한 연보가 앞에 실려 있으며, 말미에 柳東濬과 李濟相이 쓴 발문과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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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76

    詩(五言絶句)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採薇, 泮中留別, 換鵝亭贈宗人, 贈李萬里(溟翼), 假直時, 却千里馬, 承露盤, 贈僧. 追和金聖逑(學睦)臨絶贈其弟韻以寓悲抱, 壬子九秋山陰東軒贈主倅鄭弼祥及柳固城仲謙(挺輝), 醉寫李元瑞(天翼)宅, 無家歎, 贈金爾成, 巴嶺途中, 章山途中次巴嶺韻, 贈道澄上人, 上元日到聞韶示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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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77

    詩(七言絶句)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贈新恩(七歲作), 詠鷹, 汾江舟中敬次鶴沙金先生韻, 東巖得李大成寄烏竹杖幷詩次韻奉謝(四絶), 留道淵李(望久)家偶題, 冒雪入內延山敬次舅氏贈行韻示柳從(益輝), 春日書示諸生, 謝金上舍(박)病中寄問, 贈李台瑞, 贈僧, 再遊換鵝亭, 憶申舜卿江亭, 卽事, 憶傅淵, 鑷白髮戲吟, 送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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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78

    請三溪書院賜額疏(165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忠定公 沖齋 權橃(字 仲虛:1478∼1548)을 모신 三溪書院에 賜額해 줄 것을 주청한 상소이다. 삼계서원이 세워진 지 60여년이 되어 가도록 사액을 주청한 일이 없었다는 것은 士林의 부끄러움이라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沖齋와 같은 뛰어난 선현의 학덕을 기리고 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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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79

    冬至賀箋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冬至 賀禮를 맞아 임금에게 올린 글이다. 周易 復卦에서 初九의 陽爻가 여러 陰爻를 뚫고 태동하는 一陽來復의 이치를 통하여 군왕의 선정을 주청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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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80

    答李萬里(1652)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李溟翼(字 萬里, 號 反招堂:1617∼1687)에게 보낸 답신이다. 이명익이 보낸 서간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한 내용이다. 김계광이 앞서 보낸 서간의 일부 표현에 대하여 이명익이 그 진의를 잘못 이해를 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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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81

    與李萬里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李溟翼에게 보낸 서간이다. 이명익의 시를 보고 자신의 생각을 적은 내용이다. 이명익의 시가 전보다 나아졌음을 지적하고, 다만 부분적으로 보이는 俗氣만 없앤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듯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계광 자신의 "拙作"들을 이명익이 襄陽(醴泉) 지역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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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82

    答族叔吏判文谷(壽恒別紙, 1672)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族叔되는 文谷 金壽恒(字 久之:1629∼1689)에게 보낸 답신이다. 先祖의 墓碣文을 받고 감사를 표한 서간이다. 연보를 보면 김계광이 52세 때 선조인 三塘公의 墓碣을 새로 세우면서 글은 金壽恒에게 부탁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일과 관련된 서신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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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83

    上右相文谷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文谷 金壽恒이 우의정에 제수된 것을 敬賀하는 내용의 서간이다.(김수항이 우의정에 제수된 해는 167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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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84

    上外舅佐郞權公(垕)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둘째 부인 安東權氏의 아버지인 장인 權후에게 올린 서간이다. 내용상으로 볼 때, 공무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보낸 서간인 듯하다. 말(馬)이 발을 심하게 절어 낭패를 당하였고, 單騎로 올라가려고 해도 날짜를 기약하지 못할 것 같으며, 만약 파직되면 배를 빌려 타고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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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85

    與李厦卿(惟樟)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行狀에서 道義之交를 맺은 인사들 가운데 하나로 언급된 李惟樟에게 보낸 서간이다. 병에 걸린 사위의 병구완에 힘을 보태지도 못하는 자신의 곤궁한 형편을 답답해 하는 마음과 평소에도 치매기가 심한 딸에 대한 걱정 등이 내용을 이룬다. 전후 맥락으로 볼 때, 김계광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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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86

    答湖西伯南(仲輝, 1672)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湖西의 方伯으로 있는 南仲輝에게 보낸 서간이다. 붓과 먹을 보내주어 고맙기는 하지만 글씨쓰기를 그만둔 처지에 부끄러울 따름이라는 내용과 왕명으로 {李相國集}을 전라도 全州와 경상도 玄風에서 나누어 찍은 인연에 대한 언급, 그리고 보내준 日月碑의 탁본이 비록 훼손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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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87

    與和順倅李(발)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和順의 수령 李발에게 보낸 서간이다. 忠定公 權橃을 모신 三溪書院의 賜額을 주청하는 일로 도성에 들어간 길에 만나 보려 했으나 마침 멀리 호서지방의 수령으로 나가 계시는 관계로 뜻을 이루지 못했음을 애석해 하고 있다. {困知記} 초록을 전달하는 문제에 대한 언급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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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88

    答家兄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형님에게 보낸 답신 서간이다. 집안사람 가운데 鄕試에 붙은 이가 아무도 없음을 개탄하는 한편, 벼슬을 사직한 한 후 한 번 찾아뵈려 하지만 여러 가지 일들로 사정이 여의치 않음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연보에 김계광이 나이 46세 되던 해(166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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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89

    答家兄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형님에게 보낸 답신 서간이다. 먼저 형님의 환후를 묻고, 宣城縣에 기근이 심하며 또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도 힘든 상황이라는 내용을 전한 뒤, 곧 祠宇를 건립하는 役事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도 들리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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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90

    上家兄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형님에게 보낸 서간이다. 京邸吏를 통해 자신의 任職이 교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마 일전에 課製를 제출하지 않았던 일 때문인 듯하다는 내용이다. 앞뒤 정황으로 비추어 볼 때, 1664년 保安道察訪으로 임명되었다가 課製를 미제출한 일로 그만두게 된 사건과 관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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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91

    祭文祭外舅完山李公(榮基)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첫째 부인 完山李氏의 아버지인 장인 李榮基를 위해 지은 제문이다. 연보에는 김계광의 나이 41세(1661년) 때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492

    祭內舅百拙庵柳先生(稷)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외숙 柳稷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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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93

    祭內舅林皐柳公(㮋)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외숙 柳욱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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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94

    祭亡侄世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장조카 世安을 추모한 제문이다. 연보에는 김계광의 나이 41세(1661년) 때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寒微해진 家勢를 일으켜 세울 재목이었던 조부가 28세로 요절한 애통한 家門史를 상기시키면서, 조부가 태어난 해(1575)로부터 정확히 한 甲子되는 해(1635)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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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95

    藏待書院奉安文(梧峯申公敬亭李公合享時)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申之悌(字 順甫, 號 梧峯:1562∼1624)와 李民宬(字 寬甫, 號 敬亭:1570∼1629)을 장대서원에 合享할 때 지은 봉안문이다. 장대서원은 신지제가 義城에 세운 서원인데, 신지제와 이민성은 모두 의성출신이다. 연보에는 김계광의 나이 50세(1670년) 때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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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96

    濟州橘林書院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제주에 있는 橘林書院에 김계광의 스승인 淸陰 金尙憲을 봉향할 때 지은 봉안문이다. 김상헌은 1601년(선조 34)에 제주에 接撫使로 간 적이 있다. 연보에는 김계광의 나이 54세(1674년) 때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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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97

    達川精舍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趙光祖의 맥을 잇는 三賢을 達川精舍에 봉향하면서 지은 봉안문이다. 삼현이 누구이며, 달천정사가 어디에 있던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연보에 김계광의 나이 50세(1670년) 때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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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498

    郁陽書院告由文(1669, 錦溪黃先生從享時)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郁陽書院에 錦溪 黃俊良(字 仲擧:1517∼1563)을 從享하면서 지은 고유문이다. 욱양서원은 退溪를 主享한 곳인데, 김계광이 풍기군수로 있을 때 퇴계의 제자인 금계를 종향하는 문제로 사림의 의견이 분분하자 김계광이 나서서 이를 해결한 바 있다. 퇴계에 대한 고유문과
    출처 : 유교넷
  • 357499

    祭酒禹先生設壇告由文(1665, 代本孫作)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祭酒禹先生"이라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말에 成均祭酒를 지낸 禹倬(1263∼1342)을 祭享하는 제단을 새로 만들면서 지은 고유문으로 추정된다. 언제부터인가 墓誌와 墓碣도 훼손된 채 제향이 끊어진 것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本孫을 대신하여 지은 것
    출처 : 유교넷
  • 357500

    槃泉書院上梁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계광
    金中淸(字 而和, 號 苟全:1567∼1629)을 제향한 봉화의 槃泉書院의 상량문이다. 뒷부분에 동서남북으로 반천서원의 地勢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내용도 보인다. 연보에 김계광의 나이 52세(1672년) 되던 해 9월에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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