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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7551

    答南時見(龍燮,180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서울에서 재임시 보낸 답서이다. 관직생활의 어려움과 향리의 그리움 등을 전하고, 「龍岡集」서문을 지어달라고 한 것에 대하여 사양하면서 귀향하여 자세히 설명하겠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52

    答鄭士仰(宗魯,18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손자 편으로 편지를 받은 뒤 일상의 안부, 노경의 괴로움 심사, 鄭宗魯의 가문에서 손부를 맞이하는 기쁨을 표하고 있다. 鄭宗魯(1738∼1816)의 자는 士仰, 호는 立齋·無適翁. 대재학 鄭經世의 6대손으로 李象靖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53

    答內兄南君錫(範龜,1798)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인편으로 편지를 받고 보낸 답서이다. 재임 시에 모종의 부탁을 받고 강하게 거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554

    答內兄南君錫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일상의 안부 편지이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괴로움을 토로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55

    與族君昌汝(啓運)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단양군수로 있으면서 보낸 편지로 보인다. 일상의 안부와 관직생활의 괴로움을 토로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7556

    與李穉春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應旨疏」에 대한 자평, 모종의 일로 영남 유생의 상소를 계획하는 것에 대한 異議 등을 담고 있다. 李㙖(1739~1811)의 자는 穉春, 호는 俛庵, 본관은 한산이다. 小山 光靖의 아들이다. 숙부 李象靖의 遺事를 지었고 문집 발간을 주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57

    與李穉春(179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사헌부 직책에 제수되고서 보낸 편지이다. 한적한 서재에서 수양하는 하는 것을 그리워하면서 관직생활의 고초를 토로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58

    與李穉春(1800)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단양에서 서울로 올라가면서 편지를 보냈는데 답서를 받지 못하여 답답하다는 뜻과 일상을 안부를 전하고 있다. 몸에 걸맞지 않는 관직을 띠고 있어 두렵다는 뜻, 遺集 교정에 관한 일 등을 언급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559

    與李穉春(180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伊川에 재임할 때 보낸 편지로 보인다.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후진 교육을 착실하게 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560

    與李穉春(180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이천에 있으면서 보낸 편지로 보인다. 바쁜 관직 생활 속에서 책을 볼 시간이 없어 지난날 좋을 시절을 허송한 것에 대한 아쉬움,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자주 접하지 못하는 섭섭함. 고을에서 수재들을 모아 강회를 열어도 뜻대로 되지 않은 일 등을 언급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61

    與李穉春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서원에서 선비들이 모여 문회를 열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손들을 좌우에 두고 시문을 낭송하는 즐거움을 부러워하면서, 산촌 농민들과 쟁송하느라 골몰하고 병마에 시달리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내용이다. 말미에 龜潭社의 學制를 일신해주기를 바라는 뜻을 덧붙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62

    與李穉春(18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일상의 안부와, 학봉선생의 묘갈명을 위촉받아 지어놓은 것을 한 번 살펴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63

    答李致道(178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일상의 안부 편지이다. 세사에 골몰하여 착실하게 학문을 하지 못하는 고민을 토로하였다. 말미에 편지에서 은근하게 경계해준 뜻에 감사하는 뜻을 표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64

    答權季周(178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일상의 안부를 전하고, 학문과 벼슬이 둘 다 완전하기 어려운 점에 대하여 논하였다. 말미에 川沙, 蘆浦 등 학자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한탄스럽다는 뜻을 말하였다. 權訪(1740∼1808)의 자는 季周, 호는 鶴林, 본관은 안동이다. 李象靖의 문인이다.
    출처 : 유교넷
  • 357565

    與金翰之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유배에서 풀려난 金翰東(1740∼1811)을 위문하고 근황을 묻는 편지이다. 金翰東의 자는 翰之, 호는 臥隱, 본관은 의성, 감사 聲久의 증손이다.
    출처 : 유교넷
  • 357566

    與金景蘊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일상의 안부와 함께 자제들을 가르치느라 골몰하는 괴로움을 토로하고, 독서 방법에 대한 일설을 덧붙이고 있다. 金宗發(1740~1811)의 자는 景蘊, 호는 容淵, 본관은 안동이다. 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을 역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67

    答金景蘊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편지를 받고 답장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한 뜻과 일상의 안부를 전하면서, 아들[弼秉]을 잃은 뒤의 父情을 토로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568

    與金景蘊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소주에 「心經講錄刊補」라고 표시하였고, 「仲弓問仁章」, 「養心章葉氏說條 按云云」 두 조항으로 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569

    答柳天瑞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외지로 부임한 柳範休(1744∼1823)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안부와 함께 거취에 관한 일, 본인의 관직 제수가 과분한 점 등을 언급하였다. 柳範休의 자는 天瑞. 호는 壺谷, 본관은 전주이다. 참봉 道源의 아들이다. 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70

    與柳天瑞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정조가 서거한 뒤의 슬픔과 곧바로 哭班에 참예한 일 등을 전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7571

    答鄭岐瑞(來成)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상중에 예절을 물어온 편지에 답한 것이다. 鄭來成(1744∼1835)의 자는 岐瑞, 호는 思軒, 본관은 청주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사·장악원주부·종묘서령·병조참판·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72

    答鄭伯恭(必良)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鄭必良이 천리 길에 아들을 보내 전한 편지를 받고 답한 것이다. 모종의 약속을 받고 답하는 뜻도 있다. 鄭必良은 牛川 鄭玉의 장자 參奉 惟簡의 장자이다.
    출처 : 유교넷
  • 357573

    與洪承旨(時濟,18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일상의 안부 편지이다. 말미에 모종의 일로 영남유생의 공론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洪時濟(1758∼?)의 자는 躍汝, 본관은 南陽이다.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지평·우통례를 역임하고, 蔡濟恭의 被誣를 변명하다가 機張縣에 유배되었다. 그 뒤 유배에서 풀려
    출처 : 유교넷
  • 357574

    答族姪文卿(庚燦)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서울에서 재임하면서 받은 편지에 답한 것이다. 편지를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뜻과 虛名을 쫓아 벼슬살이를 하면서 고뇌하는 뜻, 젊을 때에 학문을 게을리 한 후회, 정조의 장례를 마치고 귀향하여 泉石 속에서 소요하겠다는 뜻 등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575

    答李健之(野淳,179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단양군수로 재임시 李野淳(1755∼1831)이 規戒하는 내용의 편지를 접하고 감사의 뜻을 전한 답서이다. 원로들이 세상을 떠나고 후배들은 世事에 골몰하는 것을 걱정하는 뜻, 사문에서 공부할 때의 초지를 저버리고 宦路에서 허송세월하는 고민 등을 토로하였다. 단양이 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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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576

    答族姪南爲(鵬運)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외지에서 金鵬運(1755~1812)의 편지를 받고 답서를 주지 못한 데 대한 점, 선사의 자취가 있는 고산서당 강회에 대한 기대, 멀지 않아 관직을 버리고 돌아가겠다는 뜻, 경학에 전념하는 즐거움을 직접 들을 수 없는 아쉬움 등을 언급하였다. 金鵬運의 자는 南爲, 호
    출처 : 유교넷
  • 357577

    與蔡參議(弘遠,180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이천에 재임할 때 보낸 것으로 보인다. 1801년년(순조 1) 수렴청정하던 대왕대비 貞純王后金氏의 時派에 대한 탄압으로 파직되어, 이듬해 온성으로 유배되었던 蔡弘遠(1762∼?)이 사면되어 돌아와, 안부를 묻고 축하의 뜻으로 보낸 편지이다. 蔡弘遠의 자는 邇叔, 본관
    출처 : 유교넷
  • 357578

    答李佐郞(遂漸)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일상의 안부와 문하에 아들을 보내 누를 끼친 점, 가문에서 보낸 신부의 안부 등을 언급하였다. 李遂漸(1713~1783)의 자는 士鴻, 본관은 성산이다. 조부는 海亮, 부는 좌랑 柱世이다. 1759(영조 35)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공조좌랑·울진현령 등을 역임하
    출처 : 유교넷
  • 357579

    答金聖圭(宗錫)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장편의 시를 보내오고 추중한 것에 대하여 과분하게 여기는 뜻과 일상의 안부를 묻고, 학문에 전념하지 못하고 과거에 몰두하다 젊은 시절을 보낸 것에 대한 후회 등을 언급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80

    答鄭明應(必奎,18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수차례 편지를 받고 보낸 답서이다. 평생을 허송한 자책, 사문의 선진들이 다 세상을 떠나 후배에게 기대한다는 뜻, 학문에 면려하라는 충고 등의 내용이다. 鄭必奎(1760∼1831)의 자는 明應, 호는 魯庵, 본관은 淸州이다. 金江漢에게 수학하여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출처 : 유교넷
  • 357581

    與金公穆(熙周,18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일상의 안부와 함께 師門과 관련된 모종의 일로 도남서원에서 회합이 있다는 소식, 동문 선배들이 다 세상을 떠나 기대가 크다는 등의 내용이다. 金熙周(1760∼1830)의 자는 公穆, 호는 葛川, 본관은 義城이다. 李象靖의 문인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병조참판·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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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582

    與李繼初(保淳)象初(大淳,1808)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상중의 안부를 묻고, 저자에게 아들을 보내 교육을 맡긴 바, 근황을 전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7583

    與李際可(秉運)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단양에 재임 시 편지를 받고 보낸 답서로 보인다. 관직생활의 고초와 함께, 귀향의 뜻을 가졌으나 정조의 상을 당하여 당장 거취를 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형편을 언급하였다. 李秉運(1766~1841)의 자는 際可, 호는 俛齋이다. 李象靖의 손자이다. 순조 때 현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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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7584

    答徐景濂(有洛,180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저자의 자 弼秉의 상중에 위문편지를 받고 보낸 답서이다. 아울러 讀書와 接人 등에 관하여 일설을 언급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85

    答李魯則(鈗)汝揆(鍵)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상중의 안부를 묻고, 말미에 공부에 전념하라는 경계를 덧붙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86

    答安(宅允)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일면식도 없는 처지에 먼 곳에서 아들을 보내 교육을 부탁한 데 대한 답서이다.
    출처 : 유교넷
  • 357587

    答趙仲德(秉相,180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연보」에 의하면, 69세 때인 1807년 겨울에 조병상이 와서 「대학」을 가르쳤다고 하였다. 이 편지는 그가 돌아가서 보낸 편지에 대한 답서로 보인다. 지난번에 만류하지 못한 미안함, 遊學과 取友에 대한 경계, 자신을 지나치게 추중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뜻
    출처 : 유교넷
  • 357588

    答鄭叔顒(象觀,18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신년에 사람을 보내 인사를 한 것에 대한 답서이다. 아울러 道가 실리지 않은 문장의 폐단에 대하여 경계하는 뜻을 덧붙였다. 鄭象觀(1776∼1820)의 호는 谷口園, 본관은 晋陽이다. 經史와 諸子書에 능통하였고,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89

    答李舜擧(彙八,1808)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사람을 보내 편지를 전한 데 대한 답서이다. 일상의 안부와 함께, 用心을 잘 하면 잡념을 금지할 수 있고 공부가 절로 독실해진다는 뜻을 덧붙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90

    答或人問目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體用, 仁, 天理와 人心, 仁義禮智, 至誠 등에 관한 혹자의 질문 6개 항목에 대하여 답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7591

    答裴君(相說)問目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소학」의 ‘先行後知’, 「대학」의 ‘先知後行’, ‘致知格物’ 등 9개 항목의 질문에 대하여 답한 것이다. 裵相說(1759∼1789)의 자는 君弼, 호는 槐潭, 본관은 興海이다. 李象靖의 문인이다.
    출처 : 유교넷
  • 357592

    答族叔行之(光裕,177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1776년에 선산 新谷里로 이사한 후 편지를 받고 답한 것으로 보인다. 이사를 하여 친척과 사우 간에 더욱 소원해지는 것을 걱정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7593

    與再從兄(壎,180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이천에 재임할 때 보낸 것으로 보인다. 지방 행정의 어려운 점과 가족을 떠나 먼 객지 관사에서의 답답한 심경을 적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594

    答舍弟子厚(墩,178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아우의 편지에 대한 답서이다. 일상의 안부, 질의에 대한 답변, 心身·動靜·存養 등의 문제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金墩(1742~1799)은 저자의 아우로서 자는 子厚, 호는 東厓이다. 저자와 함께 李象靖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7595

    答子厚(179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立祠에 대한 상소 문제로 상경하는 아우의 편지를 받고 보낸 답서이다. 도중의 애로, 상소문의 문제, 상소 이후의 전망에 대한 걱정 등을 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596

    答再從弟穉淵(塇)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임지에 있으면서 편지를 받고 보낸 답서이다. 관직생활의 고초를 이야기 하고, 조만간에 귀향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또 대산선생이 서거한 이후 동문 선배들도 세상을 떠나 선행의 영향이 단절된 데 대한 한탄도 덧붙였다. 金塇(1758~1815)의 자는 穉淵, 호는 遯
    출처 : 유교넷
  • 357597

    與穉淵別紙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四七理氣說과 관련한 14개 항목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7598

    答族弟伯春(1788)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서울에 있을 때 편지를 받고 답한 것이다. 일상의 안부와 독서의 필요성, 세월을 허송하지 말라는 경계를 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7599

    答族弟寬夫(土雋)子昻()耕道(墢)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권수의 「목록」에 제목이 설정되어 있으나 내용이 없다.
    출처 : 유교넷
  • 357600

    答族姪魯仲(弼冤,180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굉
    아들 편에 보낸 편지를 받고 답한 것이다. 선영의 石役에 필요한 墓碣陰記는 타인에게 받는 것이 낫지만, 일이 어긋날까 지어 보낸다고 하였다. 그리고 단종 절신인 先祖의 행적에 대하여 문헌에서 증거할 수 없어 선양되지 못하는 점 등에 대하여 빠트리면 안 되므로 직접 지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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