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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8051

    祭叔弟翼五(台銖)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네 사람의 형제들이 흩어져 살아서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노년에 魯園에 모여 살아 형제간의 우애를 나누려 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內子가 病苦에 시달리고 한 아들이 먼저 죽어 四窮의 처지가 되었으며 자신마저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에 걸려 갖은 고생을 하다가 사망했다.
    출처 : 유교넷
  • 358052

    祭季弟公搢(珽銖)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淸貧한 家勢에 어려움을 견디면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우애 있게 지냈다. 형보다는 동생이 모든 면에서 우수했는데 長壽의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51세로 사망한 막내 동생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8053

    祭室人陜川李氏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어려운 가정에 시집와서 갖은 고생을 통해 집안이 겨우 살게 되었는데 이 모든 공은 內子의 헌신적 노력 때문이다. 못난 남편을 잘 보좌하여 사람 노릇을 하게 한 것은 전적으로 부인의 힘이었는데 이제 먼저 별세함에 애통한 심정을 피력한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8054

    祭伯姪晉永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剛健한 체력을 타고나서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서도 일을 잘 처리하고 특히 질병이 만연할 때 여러 사람을 간호하여 쾌차시켰다. 내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던 장조카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8055

    祭姪婦眞城李氏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溫溪와 退溪 선생의 旁後孫으로 18세에 시집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죽고 일점 혈육도 없이 艱難辛苦를 무릅쓰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千金을 모았다. 자신은 제대로 돌보지 않고 시어른 섬김에 효성을 다하였으며 조부의 문집 간행을 魯園子에게 부탁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출처 : 유교넷
  • 358056

    祭仲子萊永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총명하기 짝이 없는 가운데 아들 내영이 25년이란 짧은 생애에서 6살에 기이한 병에 걸려 18년을 앉아서 움직이지 못하고 3년을 누워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병중에도 읽지 않은 책이 없고 연구하지 않은 이치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렇게 먼저 가버
    출처 : 유교넷
  • 358057

    誄㗳窩李公(仁浩)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溫溪의 후예로 팔순이 되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었으며 濂溪의 靜坐法을 배워 실천하기도 했다. 비록 집이 가난했으나 개의치 않고 濂洛關閩의 책을 읽고 退溪 선생의 필법을 배우며 매일 새벽에 일어나 사당에 배알했는데 臨終에 임박해서까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부축을
    출처 : 유교넷
  • 358058

    誄苞齋權都正(達準)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三達尊과 五福에 벼슬과 長壽까지 겸한 포재 권도정의 생평과 官歷에 대해 기술하면서 자신의 애도하는 심정을 담은 뇌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8059

    誄南上舍(夔壽)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성균관에서 친밀하게 지내던 사이로 李憲基의 처사에 意氣投合하여 반대하는 행동을 했는데 이제 공의 서거에 애도를 표시하는 뇌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8060

    誄鄭士庚(昌甲)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藥圃의 후손으로 태어나 操行이 대단하였으며 세상에 나가면 크게 쓰일 수 있었고 자연에 숨어서는 經史를 공부하며 지냈는데 魯園子가 귀양 갔을 때 여러 가지로 위로해 주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병들었을 때 문병하지 못하고 초상에도 참석하지 못해 몹시 애통한 심정을 담은
    출처 : 유교넷
  • 358061

    誄鄭穉瑞(龍燁)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관리로 내려갈 때 공을 방문하니 병석에 누워 있었고 돌아올 때 다시 들리니 빈소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삼백 리 밖에서 어버이 초상을 치르느라 과로한 것이 원인이 되어 이런 참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평소에 공과 지낸 緣分과 공의 인격 등을 생각하면서 애통함을 표현한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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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62

    誄族祖處士公(以東)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집안에서는 가장 어른이고 고을에서는 가장 長老였던 족조 처사공의 평소 행적과 자신에게 베풀어준 情誼를 생각하며 애통한 심정을 담은 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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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63

    誄族叔參奉公(在鼎)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효행이 뛰어나고 일가간에 화목을 도모하며 항상 자신을 엄격하게 가지던 족숙 참봉공의 서거에 애통한 심정을 담은 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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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64

    誄族兄晩悔公(建銖)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조정에 벼슬하여 經筵에서 임금의 귀에 거슬리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고 자신의 벼슬로 모친을 영광스럽게도 했던 족형 만회공의 서거에 애통한 심정을 담은 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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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65

    誄族兄上舍公(邁銖)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35세에 司馬試에 등제했으나 벼슬하지 아니하고 가정에서 操行에 힘썼는데 부친이 환갑 전에 돌아가셔서 다른 사람의 환갑연에는 가지 아니했다. 『葛川遺稿』를 간행하려다가 마치지 못했고 만년에 海底村으로 돌아와 여러 일가들과 義庄을 두어 흉년에 대비했다. 詩社를 열어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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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66

    五愼齋李公遺事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공의 휘는 承坤, 자는 允高로 관향은 陜川이다. 부친은 司馬試에 올라 富裕했으나 禮를 좋아하여 4대의 비석을 세우고 형제간에 재산을 공유했던 휘 悌이요, 모친은 通德郞 義謙의 따님이요, 參判 惟聖의 증손인 경주 정씨와 中廟功臣 漢川君 書의 후손이요, 通德郞 東爀의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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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67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는데 大山 이선생을 찾아가 배우고 東巖 柳長源, 百弗菴 崔興遠, 后山 李宗洙 선생에게도 배웠다. 동생의 죽음에 문을 닫아걸고 朱子와 退溪의 책을 공부하였는데 끼니를 이을 수 없어도 태연히 글을 읽었다. 이웃 사람들은 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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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68

    先考通德郞府君遺事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學士公에게 養子를 갔는데 本生考인 文泉公이 奎章學士의 아들로서 지키고 힘써야 할 부분에 대해서 아주 세밀하고도 엄격하게 지시하였다.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냈고 공부도 부지런히 하였는데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도 굶주림을 참아가며 독서에 전념했다. 일가간에 화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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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69

    堂兄通政大夫禮曹參議鶴浦公行狀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빼어난 자질로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했는데 承文院 正字를 시작으로 崇陵參奉, 成均典籍, 司諫院正言, 持平, 弘文修撰, 奉化縣監, 弘文校理, 副修撰, 副校理, 禮安縣監 등을 거치며 많은 治績을 남겼다. 더 이상 벼슬길에 뜻을 두지 않고 물러와 자연을 벗하며 『心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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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70

    西遷時贈遺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아래에 열거하는 여러 사람의 글은 魯園子가 신미년에 書院毁撤令이 내렸을 때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죄를 얻어서 忠淸道 文義縣으로 귀양살이를 떠날 때 遠近 각지에 살고 있는 知舊들과 一家親戚들이 보내준 韻文과 散文의 글이다. 많은 작품 중에는 개인별로 자신의 所懷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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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71

    丁丑以請復院儒疏道會紹修書院時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朴明壽, 權魯淵, 柳道夔, 金碩奎, 李啓魯, 崔溶, 柳基榮, 金養鎭, 李相行, 相箕, 漢榮, 修榮, 進榮, 壽炳, 黃基敬, 權久相, 安處黙 浩淵, 李璧洙, 朴齊崙, 權重淵, 黃建周, 李庭豹, 金樂驪, 權冑煥, 鄭昌甲, 李泰奎, 黃在英, 姜, 權玉淵, 李精浩, 權敦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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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72

    湖西贐章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金益容, 鄭晉黙, 鄭顯恩, 韓始東, 蔡東述, 申佐模, 申聲求, 李獻奎, 申奭求, 申用雨, 李敏用, 申馨求, 申日休, 任岐準, 申光休, 申肯休, 趙元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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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73

    門內贐章 4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族叔在鏞, 族兄燦銖, 族兄基銖, 族兄昌銖, 族叔斗昌, 從兄禹銖, 三從兄稱銖, 族兄萬銖, 族姪耆永, 三從弟魯銖, 族孫泰林, 族姪悳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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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74

    挽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魯園公의 逝去에 평소 가깝게 지내던 知舊들이 공의 생전 업적과 그의 인품, 학문과 경륜 등을 추모하면서 애통한 심정을 나타낸 挽詞이다. 李, 權載璞, 柳止鎬, 金輝鳳, 李炳商, 成發敎, 李載基, 黃肇夏, 權世淵, 睦承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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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75

    權璉夏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빼어난 자질과 올곧은 뜻으로 젊을 때는 科擧工夫에 전념했으나 옛날을 사모하고 마음먹은 뜻을 숭상하는 의미로 世俗의 名利에 超然하였다. 書院毁撤令이 내렸을 때 분연히 일어나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유배생활을 하기도 하였으나 解配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 속에서 悠悠自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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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76

    金輝鑰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開巖 金宇宏과 東岡 金宇顒을 배출한 名門家의 후손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능력을 갖추었고 과거에 올라 成均館에 들어갔다. 그 후에 書院毁撤令이 내렸을 때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죄를 얻어 귀양살이도 하였다. 나라의 恩典으로 解配된 후에 林泉으로 물러와 悠悠自適하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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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77

    李精浩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開巖 金宇宏과 東岡 金宇顒 같은 훌륭한 선조들이 터전을 닦고 丹砂와 素巖 같은 분이 그 뜻을 계승하며 文泉翁과 學士公이 아울러 빛을 발한 名門家에서 태어나 일찍이 家學을 익혔는데 원근에서 名聲과 칭찬이 藉藉하였다. 그 뒤에 成均館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있다가 書院毁撤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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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78

    權相大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옛날 올바른 말을 하다가 귀양살이를 했던 東岡 金宇顒의 風節을 이어받은 魯園公은 누구보다 確固不動한 절개를 지닌 인물이다. 신미년에 書院毁撤令이 내려 吾道가 위협을 받아도 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분연히 일어나서 반대 상소를 올리고 귀향하였다. 그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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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79

    族弟億銖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소원하는 것은 長壽와 五福으로 그중에 하나를 얻는 것도 어려운데 魯園公은 모두 얻었고 선비가 세상에서 숭상하는 것은 義理와 名譽인데 魯園公은 역시 이 두 가지도 다 얻었다. 書院毁撤領으로 우리 儒敎가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는데 반대 상소를 올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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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80

    族姪祖永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行履가 몸에 쌓이고 문학이 넉넉한 것은 의리를 마음에 두어서 風節이 皎然한 때문인데 이것은 조금도 과장이 없는 공의 평생에 대한 평가이다. 행실과 문장, 그리고 학문과 의리로 항목을 나누어서 족숙의 생평을 서술하고 있다. 名利의 구속에서 벗어나 이곳 노원 한 구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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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81

    族姪浩永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名門家의 후손으로 태어나 신미년에 書院毁撤令이 내림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成均館 儒生으로 萬難을 무릅쓰고 결행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이 일로 인해서 죄를 얻어 귀양을 갔다가 풀려난 후 鄕里에 은거하며 어려운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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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82

    遺事輯錄李鍾甲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젊어서 학력 신장에 주력하였고 정묘년에 李憲基의 罪狀을 지적하고 신미년에 書院毁撤令이 내렸는데 반대 상소를 올렸다가 忠淸道 文義縣으로 귀양 갔다. 그 뒤에 다시 明川으로 移配되었다. 이후 解配되어 돌아오는 날 成均館에서 儒巾을 벗어던진 곳에 까치가 무더기로 모여 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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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83

    家狀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철수
    奉化 海底村에서 태어나 3세에 千字文을 배웠는데 한 달이 안 되어 橫頌하고 倒頌해도 한 글자도 틀리지 아니했다. 5세 때 天然痘에 걸렸으나 등불 심지를 볶아 먹고 快差했으며 9세엔 『聞韶世稿』를 간행할 때 僻字도 잘 알았다. 10세 이후에는 經史와 諸子百家書를 通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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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84

    노주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노주집(蘆洲集) 蘆洲 金兌一의 문집. 5권 3책. 10行20字 天 地 人 3冊의 활자본. 序文과 跋文이 없어 구체적으로 누구의 손에 의해 간행되었는지 알 수 없다. 전편은 賦 2편, 시 400여 수, 上疏 8편, 書 2편, 記 9편, 序跋 4편, 銘 1편, 祝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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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8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次牧隱觀魚臺賦, 歷代史略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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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8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偶吟, 京邸夜雨詠滯雨長安夜之句因以一字成五言一首, 與舍兄遊北溪聯句, 次贈申德夫(厚載), 晩景, 以厚陵寒食祭官往開城作, 京邸寄泮中舍弟宗伯(海一), 送權啓卿(迪)之京, 旅夜, 踰鳥嶺, 遊米면寺, 江邨卽事, 春晴(二首), 別宗伯之京, 次權石洲題嚴光畵帖韻, 京邸曉起書懷, 客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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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8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次權得初蓮桂會韻, 酬宗伯, 次贈別宗伯, 次朴茂仲韻, 次洪木齋朴將軍壙石歌, 次鄭金堤輓歌, 次金敎官(泰基)絶句, 李參判(元祿)輓, 次僧軸韻, 次鄭東萊泰齊觀魚臺四十韻寄權得初, 贈別吳通津(始謙)契兄兼呈季難察訪兄, 拙齋柳公(元之)輓, 次權得初韻贈吳上舍泰而, 寄別舍弟宗伯赴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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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88

    辭司諫院獻納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司諫院獻納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무릇 나라에서 臺諫을 두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함인데, 자신은 지난날 논의해야 할 때 논의하지 않아 儒臣들에게 배척당하고,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아 公議에 비난받아 憲職을 더렵혔으니 관직을 맡을 수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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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89

    再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司諫院獻納의 관직을 재차 사양하는 상소이다. 司諫院獻納은 納言의 임무를 담당하며 司諫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함부로 제수받는 직책이 아니니, 자신과 같이 용렬한 사람은 감히 맡을 수 없다고 하였다. 본 상소는 1690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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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90

    辭掌令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司憲府掌令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작년 가을에 병이 들어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힘겹게 지내고 있는 즈음, 자신에게 憲職을 제수하니 聖恩의 隆重함이 粉骨難報이나 상소를 올려 사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兩南 지역의 백성들이 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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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91

    再辭獻納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司諫院獻納의 관직을 재차 사양하는 상소이다. 聖旨를 받자와 병든 몸으로 힘겹게 풍基郡에 도착하였는데, 갑자기 어지럼증이 생겨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곤란하였다. 게다가 아우 府尹公 海一에 任地에서 객사한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장례를 치르느라 관직을 맡기가 어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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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92

    辭司憲府執義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司憲府執義의 관직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司憲府는 風敎의 憲章이 있는 곳으로 매우 중요한 부서이다. 그 중 執義의 직책은 특히 막중하니, 설령 본래부터 風力을 갖춘 자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 있게 되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힘든데, 아물며 자신과 같이 용렬한 사람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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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93

    英陽英山書院請額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英山書院의 賜額을 청하는 상소이다. 英陽의 영산서원은 1653년(효종 4) 文純公 李滉을 主享, 鶴峯 金誠一을 配享으로 하여 세운 서원이다. 海東의 朱熹로 추존되는 이황이 제향된 서원 중 지금까지 사액을 청하여 사액되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이를테면 禮安의 陶山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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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94

    大笑軒趙公請諡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大笑軒 趙宗道의 諡號를 청하는 상소이다. 조종도(1537∼1595)는 壬辰倭亂이 발발하자 격문을 내어 義兵을 모집하고 사재를 털어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을 규휼하는데 힘을 쏟았으며, 丁酉再亂 때 安陰縣監 郭준과 함께 安義의 黃石山城에서 왜적에 맞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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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95

    辨誣黃錦溪(俊良)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錦溪 黃俊良에 대한 誣言을 변명하는 상소이다. 황준량(1517∼1563)은 조선 明宗 때의 문신이며 李滉의 문인이다. 李選이라는 자가 황준량이 文純公 李滉의 廟宇에 從享되는 것은 不可하다고 여기고 상소를 올려 黜享을 요구하자, 수령으로 있을 때 많은 치적을 올렸고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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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96

    擬上眉수許先生書(167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眉수 許穆(1595∼1682)에게 보낸 편지이다. 西厓 柳成龍의 손자인 柳元之가 지은 {尊堯錄}은 그가 만년에 부모상을 당하여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는 요량으로 禮書에 근거하여 지었는데, 愛君憂國의 정성이 담겨있다. 비록 지금 바로 시행할 수 없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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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97

    與申退伯(弼成)書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退伯 申弼成에게 보낸 편지이다. 木齋 洪汝河(1621∼1678) 선생을 尊享하는 일이 公議로 발의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미루고 실행되지 않으니, 이는 斯文의 欠典이요 嶺南 士林의 수치이다. 근자에 조정에서 비록 書院禁令을 내렸지만 그 당시 事目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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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98

    族譜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族譜에 붙힌 서문이다. 친족이 계통을 좇아 列記되는 이유는 세대를 밝히고 자손의 실마리를 잡으며 親疎의 차례를 매기는 데 있다. 나와 同宗의 사람들 중 이 族譜를 펼쳐 보는 이는 반드시 孝悌의 도리에 힘쓰고 親睦의 의리를 돈독히 하여 대대손손 멸하지 않아 서로 남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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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099

    吏郞朴公別廟齋室營建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吏曹正郞 朴公의 別廟 및 齋室에 대한 記文이다. 나의 外先祖 이조정량 朴公은 簪纓巨族으로 공의 형제 다섯 분 모두가 文科에 급제하니, 그 光榮이 當代에 빛났고 은택이 후세에까지 미쳤다. 공은 다섯 분 중 막내였다. 世代가 점차 멀어지니 공의 廟位도 장차 옮기려 한다.
    출처 : 유교넷
  • 358100

    二樂樓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二樂樓에 대한 記文이다. 鼎山書院에는 예로부터 樓臺가 없었다. 1678년(숙종 4) 僉知 金 이 한 고을의 達尊으로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서원의 堂齋가 비좁아 많은 선비들이 모이기도 힘들고 또 쉴 수도 없다고 생각하고는 서원의 東西齋 곁에 누대 하나를 세우자고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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