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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815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丁惟愼이 쓴 제문이다. 經學에 뜻을 두고 문장 또한 저명하였으며,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諫官을 두루 지냈다. 그 淸淨함을 담아 臺閣에 떨치니, 論議가 공평하고도 바르며 進退榮辱이 태연하여 여유가 있었다. 宗族과 鄕黨에서 모두 孝悌로 칭송하였다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15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金孝基가 쓴 제문이다. 끊임없이 자손에게 이어지니 바로 詩禮의 家風이다. 아득히 文節을 잇고 곁으로는 柏翁을 거슬러 올라간다. 篤厚함을 타고 나니 그릇이 깊고도 위대하다. 총명하고 재주가 넘쳐 무리 가운데 우뚝 빼어나니, 대저 經籍에서 유래하였다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15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洪大龜가 쓴 제문이다. 공은 어질면서도 공손함을 더한 까닭에 고귀하니 일찍이 다른 사람에게 교만하지 않았다. 또한 검소하면서도 청렴함을 지킨 까닭에 빈한하니 일찍이 견지한 바를 바꾸지 않았다. 말은 무리에서 다르기를 구하지 않았고, 행동은 세속에서 고상하기를 얻지 않
    출처 : 유교넷
  • 35815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洪相民이 쓴 제문이다. 공의 나이 耳順인데도 기운이 왕성하고 정신이 맑아 항상 말하기를 "斯文이 병들었도다. 해가 오고 달이 가며, 추위와 더위가 다시 바뀌는데도 德儀의 아름다운 자태가 아득하구나. 경전을 부여잡고 무릎 꿇으며 묻는 자를 보기 어려우니, 다시 얻을 수
    출처 : 유교넷
  • 35815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門生 朴鳳儀 등이 쓴 제문이다. 나아가 임금을 섬김에 충성과 공경을 다하였고, 들어와 어버이를 섬김에 얼굴빛을 살펴 공양함에 어그러짐이 없었다. 자상함으로 백성에게 다가가고 和順함으로 사람들을 대하였다. 鄕黨에서는 그의 信義에 감복하여 감동받았으며, 士林에서는 宗匠으
    출처 : 유교넷
  • 35815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태일
    鄭碩耉가 쓴 제문이다. 공의 家學은 연원에 그 유래가 있다. 멀리는 文節의 遺緖를 계승하였고, 곁으로는 柏爺의 餘韻을 잡았으니, 여섯 형제 가운데 셋이 仕籍에 오르고 한 명은 府尹의 명예를 누려 찬란한 빛이 서로를 비추었다. 다섯 아들 역시 모두 빼어나 문장이 세상에
    출처 : 유교넷
  • 358157

    대계집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조선 후기의 학자인 大溪 李周禎의 문집. 6권 3책. 목판본. 이 책은 서문과 발문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문집의 간행 경위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 수 없다. (朴元在)
    출처 : 유교넷
  • 35815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偶吟, 武夷見盆梅作乞梅詩, 旋洞, 永思菴, 過泗濱, 宣靖陵動駕, 漢陽歸路遇雪, 雨中宿宛在亭, 過咸昌呈主倅立齋鄭丈(宗魯), 歸來亭次板上韻, 瑛湖樓次板上韻, 戱呈李府伯(集斗), 疲馬歎, 漢城歸路有感, 聞舍弟(周城)讀書聲喜而賦之, 詠螢火, 卽景, 觀野, 中秋夜坐, 塔洞夜景
    출처 : 유교넷
  • 35815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族父臥雪公輓, 大山先生輓, 樊巖蔡相公輓,輓李承旨象汝(鼎德), 輓川沙金公(宗德), 輓后山李公(宗洙), 輓金五一(始建), 輓族叔(弘能), 輓一峯趙令公(錫晦), 輓斗巖金令公(若鍊), 輓晩谷趙公(述道), 輓申正言(完), 輓趙丈(錫範), 輓兪酇卿(漢人), 輓權鶴林, 輓梧竹齋趙
    출처 : 유교넷
  • 358160

    辭司憲府持平疏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사헌부지평을 사양하는 상소이다. 어릴 때부터 부형과 스승을 통하여 직언으로써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들은 바 있었다고 하고서, 그 요체는 임금을 堯舜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오늘날이 바로 동방의 성대한 시절이니 임금께서는 동방의 聖主라고 칭송한 다음 堯舜
    출처 : 유교넷
  • 358161

    擬請先師餟享疏 3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스승인 大山 李象靖의 餟享을 주장하며 올리려던 상소이다. 이상정은 정조 시대에 활약한 인물로서 행실이 돈독하고 성실하였으며 조예가 정밀하고 깊었으므로 영남의 선비들이 모두 退溪 李滉 이후에 학문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한다고 하였다. 이어 이상정의 도학과 수신의 실질을
    출처 : 유교넷
  • 358162

    上韓上國(用龜)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韓用龜에게 보낸 편지이다. 한용구는 1747년(영조 23)에 태어나 1828년(순조 28)에 운명한 인물이다. 본관은 淸州이며, 초명은 用九, 자는 季亨, 호는 晩悟이다. 1772년(영조 48) 성균관 재학 시 黃柑製에서 장원급제하고,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
    출처 : 유교넷
  • 358163

    與吳侍郞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侍郞의 직위에 있던 吳氏 성을 가진 인물에게 보낸 편지이다. 평상시에 모시고 싶은 마음을 가진 지 오래였다가 올 가을에 만나 본 다음 돌아오는 길에 시를 지어 주었던 점에 대하여 사례하고 난 후, 지상에서 신선을 만난 듯 감회가 새롭다고 하면서 요즘의 근황에 대해 설
    출처 : 유교넷
  • 358164

    答韓尙書(致應)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韓致應에게 보낸 답장이다. 한치응은 1760년(영조 36)에 태어나 1824년(순조 24)에 운명하였다. 본관은 淸州이며, 자는 혜보이고, 호는 屛山이다. 1784년(정조 8)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하고, 바로 抄啓文臣으로 뽑힌 뒤 1792년(정조 16) 弘文錄·都堂錄에
    출처 : 유교넷
  • 358165

    上朴方伯(崙壽)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朴崙壽에게 올린 편지이다. 박윤수는 1753(영조 29)에 태어나 1824(순조 24)에 운명하였다. 본관은 潘南이며, 자는 德汝이다. 1786년(정조 10) 성균관 유생으로 있을 때 柑製에서 수석하여 直赴殿試의 포상을 받았으며, 1789년(정조 13) 式年文科에 을
    출처 : 유교넷
  • 358166

    上鄭方伯(晩錫) 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鄭晩錫에게 보낸 편지이다. 정만석은 1758년(영조 34)에 태어나 1834(순조 34)에 운명하였다. 본관은 溫陽이며, 자는 成甫, 호는 過齋이다. 1783년(정조 7) 생원시에 합격하고, 그 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5년(정조 9) 성균관전적·병조참
    출처 : 유교넷
  • 358167

    與金臥隱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臥隱 金翰東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한동은 1740년(영조 16)에 태어나 1811년(순조 11)에 운명하였다. 본관은 의성이며, 자는 翰之, 호는 臥隱이다. 1763년(영조 39) 진사가 되고, 1781년(정조 5) 경릉참봉이 되었으며 1787년(정조 11) 大輪次에
    출처 : 유교넷
  • 358168

    與權鶴林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權鶴林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근래에 일이 많아 서책을 가까이 하지 못해 梧竹翁의 輓詞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하였고, 可知記의 문장을 고쳐준 부분은 한 글자 당 천금의 가치가 있다고 하고서 수정한 부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169

    與金龜窩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龜窩 金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굉은 1739년(영조 15)에 태어나 1816(순조 16)에 운명하였다. 본관은 의성이며, 자는 子野, 호는 龜窩이다. 1773년(영조 49) 사마시를 거쳐 1777년(정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1년(정조 5)에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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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70

    答李俛庵(㙖)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俛庵 李㙖에 보낸 답장으로 궁벽에 사는 일상이 절에 사는 중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였고, 꽃 피고 버들잎 피는 계절에 안부가 어떠한 지 묻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171

    與柳壺谷(範休)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壺谷 柳範休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해 高山의 講會에서 사람의 나쁜 생각이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유범휴의 의견에 대한 반박을 회상하고, 程子와 朱子의 이론을 대거 인용하고 난 후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172

    答柳壺谷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유범휴에게 보낸 답장이다. 먼저 초봄에 관직에 나가게 된 정황을 서술하고 난 후 오래도록 벼슬을 하는 자신의 처지가 황송하다고 하였고, 지난번 보낸 편지에서 논한 心에 대한 유범휴와의 의견 차이를 설명하였다. 의리는 다함이 없고 말을 아는 것이 더욱 쉽지 않은데 오직
    출처 : 유교넷
  • 358173

    與鄭立齋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立齋 鄭宗魯에게 보낸 편지이다. 정종로는 鄭經世의 6대손으로, 咸昌의 외가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외가에서 살다가 9세 때 본가인 상주로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가학을 전수받고, 중년에 李象靖의 문하에 나가서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벼슬길에 나가려 하지 않고 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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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74

    與鄭立齋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鄭宗魯에게 보낸 편지이다. 더운 날씨에 服中의 안부가 어떠한 지 물은 후, 고인들이 촌음을 아껴 공부를 한 경계를 저버리고 사는 자신의 일상을 자책하였다. 이어 『大山集節要』를 엮는 일이 착수되었는지 여부를 묻고서, 만약 이 책이 완성된다면 후학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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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75

    與李鳳山(鼎揆)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鼎揆에게 보낸 편지이다. 鳳山에 부임가는 이정규에게 당부하는 내용이다. 봉산은 西道 중에서도 아름다운 고을로 湖山의 아름다운 경치와 歌舞의 즐거움이 있는 곳이라서 마음을 보존하여 경외하여 王事에 전념하지 않으면 마음이 방탕해지는 곳이라고 하면서, 하지만 이정규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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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76

    答李久之(祥發)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祥發에게 보낸 답장이다.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편지를 보낸 점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전하고서, 西都에서 미관말직에 봉직하는 자신의 처지를 서술하였다. 임진강에 배를 띄우고 太平館에 말을 메어 두기도 하고 선죽교에서 배회하면서 정몽주의 유풍을 생각하고 만월대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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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77

    與李侍郞(龍秀)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龍秀에게 보낸 편지이다. 근래에 아름다운 산수에서 노닐면서 그윽한 정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자질이 둔하여 끝을 내지 못하였다고 하고서, 고생 끝에 시편을 완성하였지만 풍취와 맛이 심원하지 못한데다가 性情을 함양하는 데에 있어서도 부족하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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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78

    答崔慶州(獻重)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崔獻重에게 보낸 답장이다. 이주정 본인은 최헌중의 문중과 관계가 긴밀한데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한 아쉬움을 먼저 피력하고, 그러던 차에 먼저 최헌중이 뜻밖의 편지를 보내 준 점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덧붙여 군자의 교제는 믿음과 의리를 우선시하고 顔面은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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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79

    與金晦彦(顯運)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金顯運에게 보낸 편지이다. 사람의 나쁜 생각이 마음에서 근원한 것이라는 유범휴의 주장에 김현운이 같은 생각을 한 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8180

    答金晦彦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金顯運에게 보낸 답장이다. 김현운이 전후로 편지를 보내왔는데, 詞理가 완비되고 식견이 매우 높지만 사람의 나쁜 생각이 마음에서 근원하였다고 주장한 점은 문제가 있다며 반박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8181

    答金晦彦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金顯運에게 보낸 답장이다. 靑城에서 있었던 講會에서 여러 선비들과 함께 『大學』을 강론한 점에 대하여 매우 감격스러웠던 마음을 피력하였다. “性”이라는 한 글자는 理氣를 겸하여 보지 않을 수 없는 의견에 찬동하지만, 이 때문에 善을 행하고 惡을 행하는 이치라고 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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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82

    與魏典籍(光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魏光肇에게 보낸 편지이다. 위광조는 북방 사람인데 저자와 동갑이자 동료로서 생활했던 사람이다. 먼저 그를 알게 된 점에 대하여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현하고, 이어 북방은 풍기가 강경하여 무예를 숭상하고 유학이 진흥되지 않은 곳인데 위광조를 통하여 남방과 일반으로 유학이
    출처 : 유교넷
  • 358183

    與金公穆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金公穆에게 보낸 편지이다. 북쪽으로 부임되어 떠나는 김공목에게 당부의 뜻을 표현하고 있는 글로서, 7언시를 적어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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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84

    與金公穆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金公穆에게 보낸 편지이다. 세모에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먼저 묻고서 成川令이 인생 만년에 황량한 객지에서 귀양살이 하는 것을 애도하며 멀지 않아 풀려나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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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85

    與李休吉(基慶) 1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基慶에게 보낸 편지이다. 전야에서 살면서 늙은 지 오래라고 하면서, 하늘의 도움을 받아 병이나 얻지 않는다면 모든 일들을 다 정리하고 책이나 보면서 학문이 진보되기를 바라는 것이 숙원이지만 처지가 여의치 않다고 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186

    與蔡邇叔(弘遠)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蔡弘遠에게 보낸 편지이다. 채홍원은 1762년(영조 38)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平康, 자는 邇叔이다. 청하현감 敏恭의 아들이며,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濟恭에게 입양되었다. 1792년(정조 1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가 되고, 이어 이조참의·승정원승
    출처 : 유교넷
  • 358187

    答金士吉(相虎)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金相虎에게 보낸 답장이다. 敬堂 張興孝의 續集을 간행하는 일에 대해 本孫의 정성과 효성이 매우 대단하고 김상호가 그 일을 주선하게 된 점에 대하여 매우 감탄스럽다고 하였으며, 외람되게도 교감하는 일을 부탁받은 점에 대해 황송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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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88

    答鄭雲山(元善)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雲山으로 부임하는 鄭元善에게 보낸 답장이다. 정원선이 운산에 부임하게 된 것은 사직과 인민을 다스리는 책임을 맡은 것이니 사군자가 배운 것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것이라 하였고, 운산의 풍속은 위정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효험이 빠르게 나타나는 곳이라면서 정원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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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89

    與柳象遠(尋春) 2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柳尋春에게 보낸 편지이다. 유심춘의 본관은 豊山이며, 자는 象元, 호는 江皐이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世子翊衛司 翊贊을 거쳐 翊衛에 올랐다. 1800년(정조 24) 경연을 열어야 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린 바 있다. 1830년(순조 30) 왕의 하교로 3대가 과거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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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90

    與李伯庸(漢籌)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漢籌에게 보낸 편지이다.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즈음에 보낸 편지로 추측된다. 비록 난군이 다섯 개의 성을 함락했다고 하지만 이는 하찮은 민란으로 기근 때문에 관을 습격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친구들이 이 점을 과도하게 염려하지만 왜적과 호적이 일으킨 변란과는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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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91

    與李伯庸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漢籌에게 보낸 편지이다. 근래에 연소배들이 進取하는 데에 급하여 製述에 전력하고 한 질의 서적도 난숙하게 읽으려 하지 않는 것이 근래의 큰 폐단이라고 하였고, 긴 비가 내린 후 서늘한 바람이 불어 글을 읽기 좋으니 四書 등 義理와 관계된 글들을 흉중에 젖도록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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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92

    答李聖容(章瑀)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章瑀에게 보낸 답장이다. 벼슬살이를 하면서 학문에 힘쓰지 못하는 자신의 근황을 한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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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93

    與李際可(秉運)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秉運에게 보낸 편지이다. 쌓였던 눈이 녹고 봄이 다가오는데 안부가 어떠한 지 묻고서 돌아가신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 가르침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제자로서의 미안한 마음을 피력하였다. 이어 이병운이 선생의 아들로서 견해가 훌륭하다고 하고서 벗으로서의 당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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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94

    與趙仲德(秉相)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趙秉相이 부탁한 墓碣文에 대하여 의견을 피력한 편지이다. 묘갈문은 요약되고 문사가 간략한 뒤에 의리가 정밀해지고 의리가 정밀한 후에 문장이 진실된 것인데 요즘에는 墓主에게 아부하는 것이 유행이 되어 글이 지루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글은 간략하여 짧지만 후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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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95

    答權君重(載華)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權載華에게 보낸 답장이다. 보내온 軸에 지어진 글을 보니 문체와 서법이 한결같이 단정하고 반듯하다고 평가하면서, 程文 외에 여러분들이 지은 것이 비록 讀力은 적은 것 같지만 능히 소통하고 두루 넓어서 말들이 다 이치에 맞으니 그 재주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였다.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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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96

    答李益夫(禎輔)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禎輔에게 보낸 답장이다. 후배에 대한 당부를 적고 있다. 학자는 모름지기 義理文字를 흉중에 담고서 고금의 사람들이 지은 글들을 보고 大義를 궁구하여 의사가 활달하고 안목이 높아진 다음에 이른바 時文에 종사한다면 本末이 서로 힘을 입고 아름다움과 실질이 겸비되어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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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97

    答李進士(健運)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健運에게 보낸 답장이다. 赤壁에서 놀았던 추억을 회상하고서 안부를 물은 후 보내온 편지에 곡식을 빌려달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속세의 말이라서 神仙과는 거리가 멀다고 농담으로 하며 자신의 근황을 간단히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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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98

    答李愼可(秉遠)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秉遠에게 보낸 답장이다. 본인은 원래 사람들에게 재물을 독촉하는 성격이 아닌데, 몇 달간 公私의 부채를 독촉하는 벼슬살이를 하고 있노라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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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199

    與李愼可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秉遠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무리 작은 고을이라 하더라도 사직과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이 배운 바를 시험해 보아 節用과 愛民을 기준으로 삼아 시종 힘쓰라고 하였고, 평소 周房, 內延, 玉溪를 구경하고 싶었는데 내년 봄에는 한 번 구경 가고 싶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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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00

    答柳彛好(懿睦)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柳懿睦에게 보낸 답장이다. 노년에 뜻하지 않게도 臺諫의 임무를 맡게 된 자신의 정황을 서술하고 난 후 詩敎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詩는 학자가 感發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지만 風雅가 없어진 후 오언시와 칠언시가 나왔고 오언시와 칠언시가 변하여 律詩가 나온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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