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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8201

    答李文吉(迪裕)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迪裕에게 보낸 답장이다. 선배들의 기풍이 멀어져 학문의 풍토가 침체되어 연소한 학자들이 窮格의 공부가 부족한 지금 젊은 나이에 능히 경전을 연구하여 道를 구하는 데 진력하고 있는 점에 대하여 치하하고 그의 학문적 진보에 대한 기대를 적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202

    答申永祚(胤錫)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학문의 방법을 물은 申胤錫에게 보낸 답장이다. 학문의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라 먼저 日用 상의 動靜에서 공부를 시작한다고 하였다. 이어 程子가 靜坐工夫를 하는 제자를 보고서 공부를 잘 한다고 칭찬한 말을 인용한 다음, 날마다 일찍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부모님께 문안
    출처 : 유교넷
  • 358203

    答李山叟(喬相)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喬相에게 보낸 답장이다. 이치를 본 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사물을 보아도 이치를 볼 수 없으며 이치를 본 것이 분명하면 이치만 보이고 사물은 보이지 않는 것이니, 이치를 보지 못하였으므로 마음이 사물에 가려져 앎이 지극하지 못하고 사물을 보지 않으므로 앎이 가려진 바
    출처 : 유교넷
  • 358204

    答舒川權生 2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舒川에 거주하는 선비 權生에게 보낸 답장이다. 權生이 보낸 편지에서 논한 『中庸』과 『大學』, 太極 등의 논의에 대하여 질병과 바쁜 관료생활로 말미암아 상세히 살피지 못한 점을 먼저 사례하고 있다. 그리고는 권생이 이치를 실지로 깨닫지 못했다면 이러한 논의가 가능하였
    출처 : 유교넷
  • 358205

    答臨川書堂會中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臨川書堂에 보낸 답장이다. 임천서당의 흥폐는 모두 집사 여러분들 손에 달렸는데 임천에 서당을 열어 학문을 흥기하는 운세를 열었으니 자신도 참가하여 축하하고 싶지만 관직생활로 인하여 참여하지 못해 아쉽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8206

    答松谷書院儒生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松谷書院의 儒生들에게 보낸 답장이다. 두 분 선생의 遺集을 간행하게 된 일이 송곡서원 여러분의 부지런한 마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칭송한 후 서문을 부탁받은 점에 대하여 자신은 학문상에 이렇다 할 성취가 없는 사람이라면서 정중히 서문 제작을 사양하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8207

    答柳下族兄 3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작년에 개성의 만월대에 올라 두루 살펴보며 시간을 보내자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 것은 옛 도움을 아쉬워하는 마음뿐만이 아니라 저자의 조상과 동시대의 여러 선비들이 묻혀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그 중에서도 유독 조상의 묘소가 황폐하여 사적이 민멸되었기에
    출처 : 유교넷
  • 358208

    答從弟春伯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집안 아우 春伯에게 보낸 답장이다. 천리를 멀다 않고 편지와 시를 보내온 점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고 중구일에 登高하여 시를 지었지만 급히 편지를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하여 미안하다고 하였고, 관료생활 중에 朱子의 편지글을 읽는데 자못 재미가 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209

    與春伯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집안 아우 춘백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 번 보낸 편지는 급히 쓴 탓에 속에 있는 마음을 타 펴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고 하였고, 근래의 현황이 절에 사는 중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고서 자신이 지은 「履銘」을 적어 보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210

    與春伯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집안 아우 춘백에게 보낸 편지이다. 출발할 때 바빠서 다시 한 번 만나지 못한 점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피력하고 난 후, 관직을 그만두고 임진강을 건너 고향으로 내려오는 상황을 정감 있게 서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211

    與族弟幼禎(宗休)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집안 아우 宗休에게 보낸 편지이다. 벼슬살이로 인하여 오래도록 안부를 묻지 못한 점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난 후, 평상시에 마을의 학생들과 四書를 강론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자신의 몸을 닦고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四書가 요긴하니 사서에서 얻은 바가 있은 후
    출처 : 유교넷
  • 358212

    答族姪秉秀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집안 조카 秉秀에게 보낸 답장이다. 보내준 편지의 내용이 다정하여 마치 직접 본 듯하다면서 편지를 받은 감회를 서술하고 난 후 벼슬살이 하는 자신의 상황을 자조 섞인 목소리로 술회하고 있다. 벼슬살이가 내키지는 않지만 관직을 맡고 있는 한 응분의 책무가 있으므로 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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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13

    答族姪蓍秀 3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집안 조카 蓍秀에게 보낸 답장이다. 타향에서 지내는 벼슬살이의 어려움을 서술하고 난 다음, 집에 있으면서 『周易』을 연구하고 아는 사람들이 부탁한 문장을 지으며 여러 손자들을 가르치는 여가에 자네와 의리를 강론하는 것이 소원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여 아쉽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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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14

    與舍弟穉京兼示兒輩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동생과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국가에 慶科가 있을 것이니 힘써 공부하여 학업을 완성하기 바란다고 하면서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학문을 진보시키는 데에는 행실을 닦는 것 만한 것이 없고 행실을 닦는 데에는 居敬만한 것이 없으니, 居敬하면 지식이 진
    출처 : 유교넷
  • 358215

    寄兒梓秀敬秀應秀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타향에서 벼슬살이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다음, 家廟 지키는 일을 아들들에게 맡기고 있는 현 상황이 古人들의 의리에 비추어 봤을 때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원은 立身하여 조상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인데 전후에
    출처 : 유교넷
  • 358216

    寄應秀 3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아들 應秀에게 보낸 편지이다. 얼마 안 되는 박봉에 얽매여 자신의 참된 성품도 함양하지 못하고 자식들의 공부도 그르친 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먼저 전하였다. 이어 사람이 금수와 다른 것은 예의가 있기 때문이니, 예의를 아는 방법은 학문에 있으며 학문의 방법은 格致誠
    출처 : 유교넷
  • 358217

    寄從子進秀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아들 進秀에게 보낸 편지이다. 모름지기 일찍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말을 삼가며 어른을 공경하고 교유를 삼가 제멋대로 하지 말며 손님으로서의 절도를 안 뒤라야 비로소 학업을 청하여 진보되기를 구할 수 있음을 일깨우고서, 이것이 늙은 아비가 바라는 것이니 소홀히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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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18

    示諸孫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손자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여러 손자들의 편지를 받아보고 그 글씨와 내용은 졸렬하지만 마치 직접 얼굴을 대한 듯하여 기쁨이 대단하다고 한 후, 학문은 立志가 중요하며 道는 修身에 있으니 일시의 飢寒은 신경 쓸 것이 없다면서 손자들에게 학문을 하는 기본자세를 자상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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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19

    禮州鄕飮酒禮詩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禮州에 부임한 金熙周가 임술년에 거행한 향음주례에 참여한 사람들이 지은 시집에 붙인 서문이다. 먼저 향음주례가 폐지된 지 오래되었는데 이제 예주에서 향음주례를 거행한 점에 대하여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현한 후, 정조가 즉위한 후 교화가 크게 시행되었는데 邪學이 서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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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20

    固城李氏族譜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固城李氏 족보의 서문이다. 固城李氏는 동방의 大姓으로서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名公과 巨卿이 줄지어 나온 명문가이지만 8·900년 동안 완전한 족보가 없어 그것을 징험할 만한 문헌이 없었다. 다행히 丙午年 李燮의 손에서 초록한 족보가 나왔으나 유감스럽게도 條例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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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21

    東谷山齋詩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저자의 族祖인 山齋의 시집에 붙인 서문이다. 山齋는 소시 적에 과거시험에 전념하여 명성이 대단하였지만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東谷에서 일생을 보내어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다고 하면서, 靑泉 申維翰이 평가한 말을 인용함으로써 산재의 시적 성가를 간접적으로 칭송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222

    泰齋柳先生文集重刊序 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泰齋 柳方善의 문집을 重刊할 때 붙인 서문이다. 태재 유방선의 교유 인물과 그의 학문적 수준을 상당한 편폭에서 서술하고 난 후, 유방선의 후손인 柳天植의 요청으로 서문을 지었음을 밝혔다. 유방선은 소시 적에 『詩經』에 침잠하였고 만년에는 陰陽과 象數의 本原을 연구하였
    출처 : 유교넷
  • 358223

    大田李先生遺事序 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大田 李甫欽은 본관은 永川이며, 자는 敬夫, 호는 大田이다. 1429년(세종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430년(세종 12)에 東部訓導官으로서 貢法의 논의에 참여하여 田制와 세법을 상론하였다. 1434년(세종 16)에는 司正으로서 禹孝剛·金淳 등의 문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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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24

    藤巖先生權公遺集序 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藤巖은 세조시대에 兵馬評事로서 이시애의 난 때 文川에서 兇鋒을 만났지만 담소하며 목숨을 바친 인물임을 밝히고, 그의 이 같은 충절은 평소 학문과 操存省察의 공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칭송하였다. 이어 그동안 등암의 그런 공적에 합당한 대우가 없었던 점에 아쉬움을 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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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25

    歸來亭世稿小序 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歸來亭世稿』는 이주정의 從先祖 洛浦公 이하 7·8대 후손들의 시들을 모아 엮은 시집이다. 이 글에서 이주정은 먼저 자신의 집안이 詩學으로서 東方에 이름났다며 가문의 긍지를 피력한 다음, 병란을 거친 후 遺稿들이 사라진 점에 대하여 아쉬운 마음을 표하였다. 그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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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26

    送李騎郞還鄕序 1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李騎郞은 蔚州 사람으로서 정조 연간에 진사에 급제하여 순조 연간에 兵曹에서 복무하였는데 성품이 강직하여 上官과 관계가 불편해지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음을 밝히고, 이어 이기랑의 출신 배경과 官歷을 서술한 다음, 그의 문장은 세상에 쓰일 만하고 학술은 道에 나아갈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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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27

    送李生歸覲序 1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歸覲하는 李挺仁에게 준 送序이다. 杆城에서 안동으로 자신을 찾아와 유학을 배우려는 이정인에게 학문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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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28

    韓蒼淵詩集序 1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權克念이 보여 준 『韓蒼淵詩集』에 붙인 서문이다. 蒼淵은 西都의 어진 선비로서, 훌륭한 문장력을 갖고서도 당세에 명성을 날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하였다. 그는 뛰어난 재주를 갖고서 山水 간에서 노닐며 분수에 만족한 사람으로, 마음속에 보존한 것이 근본이 있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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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29

    送許營將使日本詩序 1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營將 許乘實이 일본으로 使行갈 때 지은 시집에 붙인 서문이다. 외국으로 奉使를 나가 임금의 명을 욕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하고서 일본 사행 길은 파도가 일고 언어가 통하지 않으며 풍속이 전혀 다른 곳이니 마땅히 맡은 바 임무를 삼가지 않을 수 없다는 당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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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30

    珍島金氏追遠錄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金鼎五의 家乘인 『珍島金氏追遠錄』에 붙인 서문이다. 진도김씨는 병란을 겪은 후 譜牒을 잃어버린 것이 유감이었는데 외가인 이씨 집안에서 『珍島金氏追遠錄』을 얻게 된 감격스러운 마음을 피력하고 난 후, 譜冊 한 권이 나옴으로 인하여 지난날 선조들의 충절이 다 드러나게 되
    출처 : 유교넷
  • 358231

    顧我巢記 1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顧我巢라는 집을 지은 尹眉伯에게 써 준 기문이다. 먼저 윤미백의 효성을 칭송한 다음, 하늘에서 받은 것이 性이고 性에서 발로된 것은 情이며 性과 情을 兼統한 것은 心이니, 理 하나가 나에게 모두 갖추어져 있는데 자신이 돌아보지 않는 탓에 나에게 있는 소중한 것을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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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32

    洛江亭記 1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洛江亭은 磨厓 권예가 벼슬길에서 물러나 살던 곳으로 낙동강 가에 있다. 그는 중종과 인종·명종 三朝를 섬겼는데, 그 업적이 백대 후의 사람들에까지 영향을 미칠만하여 퇴계 이황으로부터도 은거한 현인이라 칭송을 받았을 정도로 名節에 완전한 분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권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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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33

    張太師墓祭壇記 1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張太師의 墓祭壇의 내력을 기록한 기문이다. 견훤의 세력이 왕성한 시절에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太師 張貞弼의 행적을 칭송하였으며, 그 분의 묘소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다가 후손들이 장태사의 墓祭壇을 설치하게 된 경위를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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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34

    武學堂重修記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안동 남쪽에 있는 武學堂을 중수한 내력을 기록한 기문이다. 태평한 시절이 오래 되어 군사 일에 신경쓰지 않는 것이 현 상황이지만 나라에는 文武가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하고서, 武力에 힘써 배운 바를 잃지 말라는 당부를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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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35

    西都南門重修記 1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개성의 남문을 중수하게 된 내력을 적은 기문이다. 남문은 洪武 계유년(1393)에 세운 것으로 天啓 원년(1621)에 任吉後가 중수하였다고 하였으며, 그 후 金銑이 西都에 부임한 지 1년 만에 정치적 성과가 훌륭하고 백성들이 교화되자 자신의 녹봉을 들여서 이 누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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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36

    鐵城聯芳集後識 2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鐵城聯芳集』에 붙인 跋文이다. 이 책에 수록된 시들을 보고서 후생들이 그 시를 외우고 그 시를 쓴 사람들을 생각하여 先世의 풍류와 절개를 만에 하나라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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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37

    書先考處士府君遺詩後 2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이주정의 부친이 남긴 시들을 엮어 만든 책에 붙인 발문이다. 집안에 있던 부친의 시 1책은 부친이 약관 시절에 지은 것으로 시간이 오래되어 손상된 점이 많았다고 하였고, 부친이 문장을 잘한다는 평을 받지 못하였지만 풍격이 옛스럽고 우아하니 더욱 더 노력하였다면 명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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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38

    一峯趙公遺集跋 2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一峯 趙公의 遺集에 붙인 발문이다. 일봉의 사손 秉相이 공이 운명한 지 10년이 지난 신유년(1801)에 유고를 모아 놓고서 저자에게 발문을 부탁하고 교정을 부탁한 경위를 서술하고서 일봉의 문학적 성취를 서술하였다. 서간문은 평이하고 간단하면서도 알맞으며 상소문은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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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39

    書忠毅公白村金先生遺事後 2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사육신과 함께 단종에 대한 의리를 위해 죽은 白村 金文起의 생애를 정리한 遺事에 대하여 그 편찬 경위와 의미를 상세히 서술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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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40

    書磨厓權先生己卯史草後 2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磨厓 권예가 초록한 己卯史草에 붙인 발문이다. 기묘사화의 경위에 대하여 상세히 서술하였고 사화의 문제성을 비판하고 있으며 퇴계 이황의 시를 인용하여 이 글의 가치를 칭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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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41

    鄕校菁莪樓上樑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鄕校菁莪樓上樑文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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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42

    永嘉館上樑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안동의 객사를 지을 때 쓴 상량문이다. 백성들의 안녕과 함께 이 건물이 오래도록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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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43

    旗山精舍上樑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旗山精舍를 지을 때 지은 상량문이다. 유학의 풍토를 진작시키고 文敎가 성대해지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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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44

    唐安廉使新羅金英毅公碑閣上樑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唐安廉使新羅金英毅公의 碑閣을 세울 때 지은 상량문이다. 이 비각을 통하여 김영의 공의 風度를 상상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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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45

    孝子慵訥齋李公旌閭閣上樑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孝子 慵訥齋 李公의 旌閭閣을 세울 때 지은 상량문이다. 정려각을 신령이 보우하기를 바란다고 하였고,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기풍을 진작하고 용눌재 이공에 대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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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46

    貞敬夫人高靈朴氏旌閭門上樑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貞敬夫人인 高靈朴氏의 旌閭門에 붙인 상량문이다. 귀신이 수호하고 문호가 번창할 것과 禮樂과 詩書를 講磨하고 香火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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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47

    敎鍊廳上樑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敎鍊廳에 붙인 상량문이다. 隊長은 병졸을 사랑하고 병졸은 상관을 모시는 정성을 다할 것과 훈련을 잘하여 옛날의 훌륭한 무관들의 용기에 무색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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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48

    旅居十銘 3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객지 생활을 하는 동안 소용된 물건인 이불, 소반, 두건, 관, 허리띠, 거울, 신발, 칼, 잔, 벼루 등 10가지에 대해 적은 銘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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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249

    社稷壇祈雨祭祝文(宰結城時) 3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社稷壇에서 祈雨祭를 지낼 때 올린 제문이다. 근래에 한발이 들어 고생스러운 상황을 쓰고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8250

    又(洪州兼任時) 4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주정
    社稷壇에서 祈雨祭를 지낼 때 올린 제문이다. 한발의 피해를 서술하고 난 후 사직의 신령이 百穀을 위해 비를 내려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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