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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8451

    答子純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朱子는 일찍이 學者들에게 독서는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생각하여 구의 맥락을 미루어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요즘 사람들은 한두 글자를 뒤섞어 옛사람들의 생각을 얻으려 하는데, 독서는 모름지기 정밀하게 숙독한 뒤에 다른 책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출처 : 유교넷
  • 358452

    答堂姪健欽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廣林 柳健欽(1825~1891)에게 답한 글이다. 책을 읽었으면 그 뜻을 궁구하여 마땅히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의심이 나는 것은 하나하나 기록하였다가 내가 돌아간 뒤 상세히 논의하면 될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53

    答健欽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책을 읽다가 의심이 생기면 기록해 두는 것이 좋다. 책을 읽고도 의심이 없는 것은 熟讀하지 않았고 정밀하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큰 병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54

    與健欽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너는 평소에 신중하기 때문에 근심이 없지만 만사는 모두 마음에서 정해지는 것이니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항상 마음을 고요하고 평안하게 가져 일에 따라 응수하면 착오가 없을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55

    與兒弘鎭 3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아들 弘鎭에게 보낸 글이다. 弘鎭, 能鎭 형제가 부지런히 학문에 매진하면 자신들에게는 吉한 일이요, 집안으로서는 다행한 일이요, 아버지로서는 기쁜 일이니 근심끼치지 말고 잘 생각해 보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56

    與弘鎭能鎭 3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아들 弘鎭, 能鎭 형제에게 보낸 글이다. 평소 心性에 해로운 일은 경계하여야 하고, 일은 분수에 맞게 응하여야 하며, 책을 읽고는 文義를 궁구하여 그 맛을 얻어야 한다.
    출처 : 유교넷
  • 358457

    與弘鎭能鎭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弘鎭, 能鎭에게 보낸 글이다. 嘉靖 44년 乙丑年(1565)에 있었던 文定王后의 장례에 대해 老親께서 상세히 듣고자 하실까봐 조목조목 설명하여 보낸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58

    思問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깊이 생각했던 내용을 120여 조목으로 정리한 글이다. 道理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여러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임금은 임금의 도리가 있고 신하는 신하의 도리가 있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도리가 있고 자식은 자식의 도리가 있고 군자는 군자의 도리가
    출처 : 유교넷
  • 358459

    心無出入說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마음[心]은 하나인데 맹자는 출입이 있다고 말했고, 정자는 본래 출입이 없다고 했다. 두 선생의 가르침은 다른 듯 하지만 마음은 몸 안에 있고 몸의 주인이면서 모든 사물에 응한다. 이와 같이 心이 출입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大山 李象靖(1
    출처 : 유교넷
  • 358460

    四端七情說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四端은 本然之性에서 발현하고 七情은 氣質之性에서 발현한다’는 말에 ‘性은 大本이 되고 情은 大用이 되니, 이것이 한 개의 性이고 사단칠정 또한 같으니 이것이 情이다’ 라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461

    明明德說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大學』의 강령인 ‘明明德’에 대해 깊이 있게 통찰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仁義禮智의 性이 발현되어 四端七情의 情이 된다. 이것은 하늘에서 부여받은 것인데 光明正大하고 虛靈洞澈하기 때문에 明德이라고 한다.
    출처 : 유교넷
  • 358462

    大學傳九章疑義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몸을 닦으려면 반드시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하니 마음이 정말로 바르면 몸이 닦여지지 않을까 근심하지 않아도 되고, 집이 가지런해지려면 반드시 먼저 몸을 닦아야 하니 몸이 정말로 닦여지면 집이 가지런해지지 않을까 근심하지 않아도 되고, 나라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집안
    출처 : 유교넷
  • 358463

    讀心經敬義章附註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心經』 敬義章 附註를 읽고 敬以直內의 부주 말미에 실린 程子와 朱子, 그리고 胡氏의 설에 대해 논변하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64

    讀李畏庵主靜說 3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성호사설』에 畏庵 李敬叔이 南軒 張栻의 主靜說을 흠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 한 것에 대해 자신의 생각은 다름을 논변하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65

    論氣化形化 3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乾道는 남성을 만드니 이것이 陽의 굳셈이며 아버지의 道이고, 坤道는 여성을 만드니 이것이 음의 순함이며 어머니의 道이다. 여기서 男女는 남성, 여성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 두 기운이 교감하여 化生하면 만물이 氣化되고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
    출처 : 유교넷
  • 358466

    屋漏說 3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屋漏는 방의 서북쪽 모퉁이로 햇빛이 스며들어 오는 곳이다. 『禮記』「曾子問」에서 공자가 “陰厭이 있고 陽厭이 있다”라 했다. 제사 지낼 때에는 방의 밝은 곳에서 거행하는데 이것을 양염이라고 한다. 옛사람들의 방문이 동남쪽에 있어서 그쪽으로 출입한다면 서북쪽 모퉁이는
    출처 : 유교넷
  • 358467

    錦浦記聞 3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程子冠과 幅巾, 玄冠 등 고대의 복식제도, 宮廟, 士祭에 生魚肉을 사용하는 문제, 牲體의 머리를 사용하는 문제, 서원의 제물· 제기, 혼례 및 樂律과 악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468

    三慕錄序 4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6권 3책인 『三慕錄』의 서문이다. 『三慕錄』이란 友人 金聖涵이 엮은 책으로, 시조부터 선인에 이르기까지 본받을 만한 일을 기록한 『永慕錄』, 堯舜부터 李象靖에 이르기까지 도학의 연원과 종지가 될 만한 내용을 기록한 『尊慕錄』, 그리고 『敬慕錄』을 가리킨다.
    출처 : 유교넷
  • 358469

    易說攷異序 4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琴易堂 裵龍吉의 『易說攷異』에 대한 서문이다. 琴易堂이 몰한 뒤 그 후손이 이 책을 간행하면서 서문을 청하여 적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70

    聞韶金氏兩世實紀序 4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聞韶金氏 兩世實紀의 서문이다. 고려조의 인물인 石圃 金路와 조선조에서 지중추부사를 지낸 증손 道谷 金漢卿의 이야기이다. 후손들이 道谷 金漢卿의 遺墟에 사당을 세우고 告祝을 하면서 兩世實紀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도곡공의 廉退한 행적과 세속의 것을 탐하지 않는 등의 이야
    출처 : 유교넷
  • 358471

    溪湖學的序 4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퇴계의 道와 德이 그 문인 제자들에게 授受되어 오다가 大山 李象靖에게 이어졌다. 大埜 柳健休가 어렸을 때 東巖 柳長源을 스승삼아 공부하였는데, 湖上의 뜻을 듣고 백발이 되도록 경전을 궁리하고 성리학에 침잠하며 퇴계와 湖上의 전서를 숙독하였다. 마침내 그 요체를 얻어
    출처 : 유교넷
  • 358472

    濯溪全公逸稿序 4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조선 중기의 의병장 濯溪 全致遠의 시문집 서문이다. 평소에 鶴峯 선생의 遺集을 읽다가 濯溪 선생이 倡義하여 적을 토벌한 일을 보았었는데 탁계 선생이 저술한 것들을 전쟁 중에 잃어버렸다. 후손들이 수습하여 한 권으로 만들고, 후손 全中極이 찾아와 서문을 청하기에 탁계
    출처 : 유교넷
  • 358473

    梅軒李公遺卷序 4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梅軒 李殼의 遺集 서문이다. 淸香堂 李源은 李滉·曺植과 道義로써 교유했고, 그의 從子 竹閣公 李光友은 曺植의 문하에서 東岡 金宇顒, 寒岡 鄭逑, 守愚堂 崔永慶 등과 講磨하였다. 梅軒은 청향당과 죽각공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謙齋, 台溪, 虛凌 등 諸賢들과 교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474

    贈李德鎭(壽崈)序 4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安陵(載寧) 李德鎭이 자신에게 와서 수개월 머물다가 돌아갈 때 한 마디 청하기에 써준 글이다. 학문과 인격 수양에 관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75

    遊梅溪記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梅溪는 眞寶縣에서 동쪽 30리에 있으며 높고 낮은 바위들과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가 어울려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이곳에서 벗들과 노닐면서 시 2수와 함께 그 뛰어난 경치에 대해 적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76

    東林記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東林이 林居하면서 ‘東林堂’이라 편액하고 그 곳에서 독서하고 수양하는 일에 대해 적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77

    巖臺夜遊記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癸卯年(1843) 1월 6일 눈이 온 밤에 잠이 오지 않아 홀로 앉았다가 溪上에 있는 巖臺에 올랐더니 마음 속에 한 점 티끌조차 사라지는 듯했던 소회를 적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78

    陶皐書齋記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梅山 崔君이 일찍이 학문에 뜻이 있어 仙槎의 攬秀山 아래에 집을 짓고 ‘陶皐書齋’라 편액하였다. 梅山이 세상을 버린 뒤 아들 龍壽가 유지를 받들고자 하여 글을 청하여 적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79

    雲南書巢記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雲南書巢는 申儒伯이 騰雲山의 남쪽 美谷村에 작은 재실 두 칸을 짓고, 주변에 松竹과 화훼를 심고 가꾸며 독서하고 수양하는 곳이다. 이곳을 ‘雲南書巢’라 하고, 雲谷 金羲壽(1760~1848)가 편액을 썼다.
    출처 : 유교넷
  • 358480

    愚拙堂記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愚拙堂’은 龍山에 있으며, 愚拙 白曦汝가 독서하면서 꽃과 대나무를 심어 즐기던 곳이다. 사람들은 ‘愚拙’이라는 말에 대해 오해를 하는데, 지금의 ‘愚’라는 것은 옛날의 ‘智’이고 지금의 ‘拙’라는 것은 옛날의 ‘工’이라고 설명을 하고, 그러므로 ‘愚拙’이라는 두 글
    출처 : 유교넷
  • 358481

    宜寧高山書堂重修記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高山書堂’은 安公이 세 칸 집을 지었다가 다시 열 개의 楹을 더하여 지으면서 붙인 이름이다. 여름과 겨울에 一門의 자제들을 모아 講習하였고, 寒梅와 翠竹, 盤松, 垂柳 등을 심어 감상하였다. 安公이 돌아가자 아들 宜庵公이 수천 권의 책을 모아두고 文人韻士들이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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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482

    友于軒記 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星湖 李先生은 星湖가에 작은 집 二架를 지어 형제가 40여 년을 같이 살았다. 형님이 사망한 뒤 아우에게 우애 있게 대했던 마음을 추념하며 ‘友于軒’이라 이름했다.(‘友于’는 『논어』 「爲政」 21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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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483

    菊溪尙烈祠記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靑松府 菊溪에 ‘尙烈祠’가 있다. 丙子胡亂 때 僉正 尹忠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丙子胡亂이 있은 지 170년 뒤, 戊辰年(1808)에 이 祠宇를 세웠고 公의 傍孫 斗衡이 이것을 새롭게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484

    籠潭亭重修記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處士 申公이 정자를 짓고 ‘籠潭’이라 편액하고 가난한 가운데서도 독서하며 지냈다. 公이 사망하고 30년의 세월이 흐르자 亭子가 퇴락하여 볼 수 없게 되자 公의 손자 壃과 문인들이 의논을 모아 重修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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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485

    易解參攷跋 1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三山 柳正源(1703∼1761)이 지은 『易解參攷』에 대한 발문이다. 『역해참고』는 『周易』에 관한 제가의 설을 수집하여 『周易』의 이해를 돕게 한 책으로 17권으로 이루어졌다. 玄孫 衡鎭이 간행하였다. 古今에 『주역』을 연구한 많은 책들은 많으나 이것들 가운데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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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486

    槐堂李公文集跋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조선 중기의 의병인 槐堂 李曼勝의 유고를 7세손 賢俊, 賢坤 등이 문집을 간행하고자 수집하여 柳致皜에게 발문을 청해 적은 것이다. 槐堂은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청나라와 和議가 이루어짐을 애통해 하며 號召兩使에게 보낸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487

    守庵鄭公文集跋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守庵 鄭四震(?∼1616)의 문집에 붙인 발문이다. 일찍이 張顯光의 문하에서 학덕이 높은 사람들과 강학하고 도를 논하며 교유하였고 과거공부를 폐하고 종신토록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공부가 정밀하고 孝友가 돈독하며 예법에도 밝아 몸가짐이 독실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488

    大疎權公遺集跋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大疎 權公의 아들인 權冑煥과 柳致皜가 遺稿들을 정리하고 刪定하여 遺集을 만들고 뒤에 붙인 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89

    墨溪實紀跋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柳致皜의 선조 墨溪 柳復立(1558~1593)에 대한 實紀이다. 外叔인 金誠一의 문인이었고, 蔭職으로 宗簿寺主簿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에 慶尙右監司 김성일의 휘하에서 參謀로 晋州城을 공격해 온 적과 싸워 여러 번 전공을 세웠다. 김성일이 전사하자
    출처 : 유교넷
  • 358490

    書學蔀通辨辨疑後 1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명나라 때 사람인 陳建(1522∼1566)은 朱子와 陸象山의 성리학을 비교 연구한 후, 佛學과 陸象山의 성리학은 正學을 그르치는 학문이라는 내용의 『學蔀通辨』을 완성하였다. 이 책이 조선에 들어와 많은 학자들에게 읽혀졌고, 南仲元도 그 중에 한 사람으로 『學蔀通辨辨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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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491

    書五宜軒趙公遺卷後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오의헌의 후손 基平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유고를 모아 간행한 『五宜軒文集』의 발문이다. 오의헌은 병자호란에 창의한 東溪 趙亨道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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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492

    書方壺趙公遺卷後 1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方壺 趙遵道(1576∼1665)의 『方壺文集』에 쓴 발문이다. 그의 후손들이 편집·간행하였고 柳致皜가 교열과 발문을 썼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에는 이미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향리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할 만큼 忠義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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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493

    書睡足堂全公遺稿後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濯溪 全致遠의 아들 全雨(1548~1616)의 『睡足堂文集』에 있는 발문이다. 8대손 中極이 편집·간행하였다. 원래는 저술이 많았으나 화재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어 현재는 문집 속의 글만 전한다. 시는 10수만 남았고, 임진왜란 때 전황을 일기로 쓴 「壬癸日記」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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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494

    洗心齋銘 2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옛 사람들을 본으로 삼아 날마다 새롭게 하며 마음 닦는 수양을 하기 위해 지은 銘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95

    書几銘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至道는 日星과 같이 밝은 것이다. 古人들이 이 지극한 이치를 궁구하려고 노력하였듯이 자신도 이 글을 적어 경계로 삼은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96

    空囊銘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빈 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것을 보고 族叔인 爾龍이 웃자 재미삼아 지은 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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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497

    壁銘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항상 ‘敬’을 마음에 두고 ‘敬’ 공부를 하고자 자신에게 勉勵하기 위해 지은 銘이다.
    출처 : 유교넷
  • 358498

    三一堂銘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朴上舍 宗垕를 위하여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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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499

    族弟仲思字辭 2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族弟인 萬山 柳致儼(1810~1876)에게 ‘仲思’라는 字를 지어주면서 준 글이다. 마음을 방자하게 가지지 말며 몸을 게을리 하지 말며 기대어 비뚤어지게 서지 말며 음란한 것을 보지 말라는 등 九容을 다시 한 번 더 새겨주고 항상 의젓하고 공손한 몸가짐을 할 것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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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500

    岐陽書堂重建上樑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
    會軒 柳義孫(1398∼1450) 선생과 岐峯 柳復起(1555∼1617)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는 곳이다. 처음에는 기봉 선생이 서재를 건립하여 강학하면서 후손들의 수학과 자신의 유식처로 사용하던 곳이었는데, 후에 후손들이 서재를 서당으로 중창하였고 祠宇를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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