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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澗亭上樑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碧澗亭은 靑山 근처에 집을 지어 살면서 마치 商山의 四皓(중국의 한나라 때 유명한 은둔자들)가 秦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남전산에 들어가 살면서 불렀다는 紫芝歌를 듣는 듯하여 붙인 이름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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枕澗亭重建上樑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枕澗亭은 慵窩 柳升鉉(1680∼1746)이 학문을 가르치던 장소로 세월이 흘러 棟宇가 무너지자 새롭게 중건하면서 지은 상량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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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子仁(宅遠)哀辭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張宅遠에 대한 애사이다. 旅軒 張顯光의 후손이다. 사람됨이 단정하고 빼어나며 마음이 고상하여 깨끗함이 마치 氷玉과 같았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를 모셨는데 효성이 매우 지극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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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李來彦(在泰)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李在泰에 대한 애사이다. 李在泰는 평소에 효우가 독실하고 마음 씀이 넓으면서 대범하여 작은 일에 구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거처할 때나 부모를 봉양할 때에는 정성을 다하고 근검하여 세심한 곳까지 살피는 모습을 보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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弟婦金氏引靈辭 3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弟婦 金氏에 대한 애사이다. 장맛비가 그치고 폭염에 부채를 어지럽게 움직여야 되는 6월 下弦에 弟婦 김씨가 세상을 버렸다. 아버지와 형제들은 이미 歿했고 어머니 혼자 남았는데 의지할 데가 없으니, 오늘의 이 죽음으로 인해 그리운 사람들이 서로 갈라지게 되는 안타까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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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峯祠奉安文(代本孫作) 3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德峯祠에 東溪 趙亨道(1567∼1637)을 비롯하여 三賢을 봉안한다는 내용의 글이다. 常享祝文도 곁들여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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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城伯鄭公墓壇常享祝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고려 때 門下侍中 野城伯에 봉해졌던 鄭松의 墓壇에서 올리는 상향축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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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穆公眞一齋柳先生贈諡告由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眞一齋 柳崇祖(1452~1512) 선생에게 ‘文穆’이라는 시호가 내려짐에 대한 고유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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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皐書院追享問月堂吳公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침입을 막는데 공이 컸던 問月堂 吳月陞을 明皐書院에 追享한다는 내용의 글이다. 常享祝文도 곁들여 있다. 명고서원은 또한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공을 세운 鄭湛(?~1592)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기도 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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沂川景節祠奉安杏亭權公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景節祠에 杏亭公 權烠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올리는 축문이다. 선생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영특하였으며 자라서는 학문에 전심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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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掌隸院判決事權公祠廟常享祝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掌隸院 判決事 權重常에게 올리는 상향축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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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山院祠奉安一庵辛先生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一庵 辛夢參(1648~1711)을 道山院祠에 봉안하며 올리는 축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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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川書社奉安蔚山君李公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永川李氏 가운데 蔚山君派 중시조인 李仲榮을 雲川書社에 봉안하며 올린 글이다. 상향축문도 곁들여 있으며, 處湖亭 李承吉을 배향하는 축문도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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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曾祖三山先生文(改葬時)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東林의 族曾祖인 三山 柳正源(1703~1761)에 대한 제문이다. 자품이 순수하여 잡되지 않았고 마음은 바다와 같이 넓었으며 총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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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定齋先生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定齋 柳致明(1777~1861)에 대한 제문이다. 어려서부터 집안의 분위기에 젖어 학문에 열중하였고 문장에도 조리가 있었으며, 여러 학문 분야에 정통하여 학문적으로도 많은 업적을 남겼고 天壽를 누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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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廣瀨李公文 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廣瀨 李野淳(1755~1831)에 대한 제문이다. 李滉의 9세손이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총명하고 문장에 능했으며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다. ‘瀨石亭’을 세우고 연구와 강습으로 소일하였다. 선생의 학문은 퇴계의 성리학을 계승했고, 특히 예학에 조예가 깊었다. 또한 그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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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大埜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大埜 柳健休(1768~1834)에 대한 제문이다. 大埜는 東巖 柳長源을 좇아 성리학에 전념하면서 과거에 급제해도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고 고향에 내려와서는 집 곁에 大埜亭을 짓고 학문에 침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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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好古窩文 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好古窩 柳徽文(1773~1832)에 대한 제문이다. 항상 예법을 준수하고 세속의 것을 익히지 않았으며, 곤궁하여도 근심하지 않았다. 미천한 사람에게도 정성으로 가르쳤는데, 듣고 이해하지 못해도 근심하지 않고 오직 마음을 다해 옛 것을 끌어다 증명하면서 이해시키는데 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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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壽靜齋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壽靜齋 柳鼎文(1782~1839)에 대한 제문이다. 품성은 맑고 순수하여 빙옥과 같이 깨끗하였으며 난초의 향기가 있었다. 그러나 초년에는 성품이 엄격하고 사나워서 눈 속의 매화, 서리 맞은 대나무와 같이 위풍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柳長源에게 나아가 학업을 익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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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內舅進士金公文 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義城金氏인 외숙에 대한 제문이다. 金公은 평생 근엄하고 의지가 강해 아첨하는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고, 천성이 너그럽고 온후하여 평소 탐내는 마음을 애초부터 지니지 않았다. 외숙은 내가 어렸을 적부터 예뻐하였는데 이제 한 마디의 가르침도 들을 수가 없으니 애통하고 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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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舅李公(舜祥)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장인 李舜祥의 2주기를 맞이하여 쓴 제문이다. 성품이 중후하고 자애롭고 충직하였으며, 온전히 모든 행동에 효성과 우애가 바탕이 되어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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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約夫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李晩博에 대한 제문이다. 현인들의 가르침대로 나가서는 공경하고 들어와서는 효도하였고, 문을 닫아걸고 단정하게 앉아 밤낮으로 부지런히 책을 읽으며 시를 암송하기도 했다. 병이 생겼는데도 모르고 있다가 치료할 방법이 없어 죽었으니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이 제문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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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七代祖處士公諱(褘)文(改葬時) 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東林의 7대조인 柳褘를 改葬할 때 사용했던 제문이다. 평생 근엄하고 너그러운 성품을 지녔다. 평생 저술한 책이며 마음속에 생각들을 적어놓은 글, 뒷사람들에게 주신 가르침 모두 불에 타 사라져 버리고 전하는 것이 없음이 끝없는 한으로 남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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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祖(允休)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東林의 族祖인 柳允休에 대한 제문이다. 공은 기질이 강직하긴 하나 행동은 부드러웠고 좋은 글을 보고 자기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데에 급급해 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는 어리석어 세상일에 서투르다고 자처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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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眉峀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族叔 柳田文에 대한 제문이다. 공은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순수하였으며 행동은 단정하였다. 말은 반드시 정직하여 신의가 있었고 평상시에도 도를 벗어나는 과격함은 없었다. 어려서부터 壺谷 柳範休(1744~1823) 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부지런히 힘써 이해되지 않으출처 : 유교넷 -
358526
祭族姪士宜(家鎭)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族姪 柳家鎭에 대한 제문이다. 한 가문의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 大宗인 士宜가 돌아간 것에 대한 애통한 심정을 담고 있다. 귀하거나 천하거나 어질거나 어리석은 사람 등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더라도 각기 그에 합당하게 대우하였으니, 배고프거나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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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弟必雲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族弟 柳必雲에 대한 제문이다. 必雲이 특별히 나를 좋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로 찾아 못하는 말없이 깊이 서로 이해하고 의지하였는데 갑자기 세상을 버렸으니 슬픔이 크다. 必雲은 儒賢의 집안에서 태어나 천성이 아름답고 효성이 깊고 우애가 있었으며 어질면서도 침착하고출처 : 유교넷 -
358528
祭三從弟魯述(致經)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庚子年(1840) 純陽 초하룻날에 三從弟 魯述 柳致經에 대해 쓴 제문이다. 魯述은 뛰어난 사람으로 서로 보면서 의지하고 살았는데 이제 볼 수가 없으니 슬프다. 3년 상기가 끝나 几筵을 모두 치우면서 종형으로서의 슬픈 마음을 술회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58529
金德淳傳 1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金德淳(1761~1837)은 安東 魯林里 사람으로 고려 太師 宣平의 후예이다. 永錘의 후손. 아버지는 履乙이고 어머니는 朴氏이다. 덕순은 英祖 辛巳年(1761)에 태어났고 기질이 온순하고 효우가 있었다. 아버지가 눈병으로 앞을 못 보게 되자, 밖에 나다니지 않고 밤낮출처 : 유교넷 -
358530
朴忠國傳 1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孝子 朴忠國(생몰년 미상)은 眞寶縣 基谷里 사람이다. 아버지는 得春이고, 백세를 누렸고 어머니는 都氏이다. 忠國은 농가에서 태어나 어려서 詩書를 익히지 않았다. 천성이 효성스러워 양친을 잘 모셨다. 4,5세부터 과일과 어육을 보면 먹지 않고 부모에게 갖다 드렸다. 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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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興君傳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장군 高彦伯(?~1609)은 濟州 사람으로 용감하고 지략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쳐들어오자 명을 받들고 적을 토벌하러 대동강 주변 십여 곳에 진을 치고 풀을 묶어 주둔하며 여러 날 경비가 느슨해지길 기다렸으나 건널 수가 없었다. 정병을 데리고 밤에 배로 능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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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掌隸院判決事權公墓碑銘 20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掌隸院 判決事 權卓(1524~1574)은 안동사람이다. 字는 思遠, 高麗 太師 幸의 후손이다. 용모는 수려하고 힘이 있었다. 中宗 甲申年(1524)에 善山에서 태어났고 駕洛에서 50세로 돌아갔다. 임진왜란 때 포의로서 분기한 것을 후인들이 추모하여 駕洛[김해] 忠烈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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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陰縣監蘆溪先生安公墓誌銘(幷序)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安陰縣監 蘆溪 安遇(1449~1527)의 묘지명이다. 본관은 耽津, 자는 時叔, 호는 蘆溪, 正統 己巳年(1449) 2월 12일 草溪郡 磊方里에서 태어났다. 용모가 단정하고 수려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고 아우와도 우애가 돈독했다. 자라서는 성현들의 경전에 침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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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嘉縣監磊谷先生安公墓誌銘(幷序)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三嘉縣監 磊谷 安克家(1547~1614)의 묘지명이다. 字는 宜之, 自號는 磊谷, 耽津君 文烈 安元璘을 始祖로 한다. 曾祖父는 縣監 호 蘆溪이고, 祖父는 僉知 商卿이고, 아버지는 察訪 沂, 어머니는 宜春南氏 都事 至之의 딸이다. 선생은 丁未年(1547) 9월 7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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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夫宜寧縣監雲嶽先生李公墓誌銘(幷序) 2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宜寧縣監 雲嶽 李涵(1554~1632)의 字는 養源이고, 신라 때 佐命功臣 謁平의 후손이다. 고려 때 門下侍中 禹偁이 載寧君에 봉해지면서 이를 시조로 하고 있다. 증조부는 李孟賢, 조부는 李璦, 아버지는 李殷輔, 어머니는 全義李氏 舜應의 딸이다. 嘉靖 甲寅年(155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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斗巖全公墓誌銘(幷序) 3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斗巖 全(1609~1660)의 본관은 完山, 字는 達甫, 自號는 斗巖이고 고려 禮部尙書 全思敬을 시조로 한다. 증조부는 絪從이고 조부는 濯溪 致遠, 아버지는 雨從, 어머니는 南平曺氏 承仕郞 光緖의 딸이다. 예법을 준수하여 집안을 다스렸고 향당에서도 존경하였다. 집안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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耕厓權公墓碣銘(幷序)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耕厓 權達銓(1714~1782)의 字는 君兼. 안동사람이다. 고려 太師 幸이 시조이다. 증조부는 尙敏, 조부는 稑, 아버지는 得重, 어머니는 月城孫氏 通德郞 汝智의 딸이다. 甲午年(1714) 6월 29일에 태어났는데 천성이 至孝하여 부모의 말을 잘 따랐으며 평소에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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繕工監役感露齋曺公墓碣銘(幷序) 3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繕工監役 感露齋 曺光國(1751~1818)의 묘갈명이다. 公의 字는 士一, 증조부는 振昌으로 文行이 있었고, 조부는 效良이고, 아버지 善長은 葛庵 李玄逸에게 수학했다. 어머니는 苞山 郭氏 處士 泰載의 딸이다. 公은 辛未年(1751) 12월 14일에 태어났으며, 어려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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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室驪州李氏墓銘 3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東林의 아내 驪州李氏(1795~1844)의 묘지명이다. 본관은 驪州이고, 世貞이 비조가 된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舜祥이다. 李氏는 乙卯生(1795)으로 19세에 東林과 혼인하였다. 행실은 어그러짐 없이 옥같이 빛나고 歡樂 없이 꽃다운 나이를 보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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后溪李公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李栐(1670~1735)의 행장이다. 본관은 載寧, 자는 士直, 호는 后溪이다. 祖父는 李時明인데, 조부에게 七子가 있었다. 栐은 七子 가운데 第6子 平齋 李隆逸(1636~1698)의 子이다. 숙부인 存齋 李徽逸과 葛庵 李玄逸에게 도학을 배웠고, 戊寅年(1698)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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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友軒李公行狀 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李弘之(1751~1783)의 행장이다. 본관은 固城, 初諱 弘宇, 자는 大瞻, 호는 尙友軒이다. 時龍의 孫으로 성현의 遺敎에 뜻을 두고 居所를 尙友軒이라 하여 修道하였다. 『中庸』을 읽다가 “隱보다 드러남이 없으며 微보다 나타남이 없으니[莫見乎隱莫顯乎微]”에 이르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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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德郞辛公行狀 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辛翊華(1688~1754)의 행장이다. 본관 寧越, 자는 士弼, 호는 仙庵, 槐坪里에서 태어났다. 시조는 高麗 平章事 鏡, 5대조 乃沃은 퇴계 선생을 따라 배웠으며 鶴峯 金誠一과 松巖 權好文 등과 道義로 사귀면서 출사하지 않았고 도학 공부에 전념하였다. 뒤에 承旨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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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憲府執義東湖邊公行狀 1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邊永淸(1516~1580)의 행장이다. 본관은 原州, 자는 開伯, 호는 東湖이다. 고려 말에 순절한 三重大匡門下贊成事府院君 安烈의 후손이며, 증조부는 寧인데 舒川府院君에 봉해졌고, 조부 希乂는 戊午士禍가 일어나자 종형 希季와 영남으로 내려와 杜門不出하며 살기 시작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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簡齋邊公行狀 1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邊中一(1575~1660)의 행장이다. 본관은 原州, 初名을 仲一, 자는 可純, 호는 簡齋이다. 고려 三重大匡門下贊成事府院君 安烈이 簡齋의 9세조가 된다. 이 세대부터 관직에 나아가기 시작하여 증조부 廣은 成均館 生員이고, 조부 永淸은 司憲府執義를 지냈으며, 아버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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棄翁金公行狀 18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金志帥의 행장이다. 자는 氣伯, 호는 棄翁, 본관은 廣州이다. 증조부는 守垕, 조부는 宗洛, 아버지는 致權이고, 어머니는 咸安趙氏 處士 仲億의 女이다. 雜稗한 책이나 속된 말은 하나라도 듣거나 보지 않으려 하였으며,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의관을 정제하고 家廟에 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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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塢處士趙公行狀 22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趙根復의 행장이다. 자는 晦伯, 호는 松塢, 漢陽人이다. 증조부는 孤山 禔이고, 조부는 龍道로 문학으로 칭송받았으며, 아버지 居辰은 일찍 세상을 버렸다. 어머니는 咸陽吳氏로 守溫의 女이다. 孤山 아래에 살면서 어머니를 봉양하고 독서하며 修養하였다. 집 곁에 늙은 소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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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中樞府事永慕堂郭公行狀 25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郭縝宇(1731~1830)의 행장이다. 자는 國輔, 호는 永慕堂, 본관은 玄風이다. 曾祖父 以道는 軍資監正에 증직되었고, 祖父 天相은 戶曹參議에 증직되었으며, 아버지 鳳弼은 漢城左尹에 증직되었다. 어머니는 安東權氏 五信의 女이다. 山淸縣 黃山里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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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均生員小隱柳公行狀 29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柳致球(1793~1854)의 행장이다. 본관은 全州, 자는 來鳳, 후일에 자를 고쳐서 鳴叟이라 하였고, 호는 小隱이다. 증조부는 世源, 조부는 泰休로 東巖 柳長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生父는 相文이나, 큰아버지 斗文의 계후자가 된다. 용모는 키가 크고 풍채가 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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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古窩先生家狀 34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柳徽文(1773∼1827)의 행장이다.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증조부는 錫龜로 吏曹參判에 증직되었고 조부는 三山 柳正源이며 아버지는 通德郞 萬休이고, 어머니는 義城金氏로 顯東의 딸이다. 증조부는 三山에 집을 지어 살면서 두문불출하고 『周易』을 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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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弟子純遺事 46 / 기록자료>고도서 / 유치호아우 子純(1812~1836)의 遺事이다. 이름은 致碻이다. 자순은 용모가 端潔하고 안광이 뚜렷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침착하고 과묵하여 소용에 닿지 않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일곱 살에 伯兄에게 수학하였는데 처음에는 민첩하지 못하여 둔한 듯하였으나 정밀하게 생각하고 분석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