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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검색 / 전체
: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865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洪進이 쓴 挽詞이다.
    출처 : 유교넷
  • 35865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柳根李이 쓴 挽詞이다. 형제의 의로 15년을 사귄 이안도의 죽음을 슬퍼했다.
    출처 : 유교넷
  • 35865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崔聃齡이 쓴 挽詞이다. 약관 이전에 학문에 뜻을 두고 스승과 벗을 찾다 이안도를 만나 道義로 사귀는 벗이 된 이래 서로 扶植해주고 권면하며 지내왔음을 말했다
    출처 : 유교넷
  • 35865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洪仁祉가 쓴 挽詞이다. 이안도가 가업으로 心學을 전수받았고 평생 禮와 詩를 강습했음을 말했다.
    출처 : 유교넷
  • 35865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李應進이 쓴 挽詞이다. 자신은 서울 사람으로 남쪽의 이안도를 師門에서 만나 깊은 정을 나누었음을 말했다.
    출처 : 유교넷
  • 35865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趙廷芝가 쓴 挽詞이다.
    출처 : 유교넷
  • 35865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趙宗道가 쓴 挽詞이다.
    출처 : 유교넷
  • 35865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李慶郁이 쓴 挽詞이다. 이안도의 죽음으로 도산이 더욱 적막해질 것이라며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65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金堈이 쓴 挽詞이다.
    출처 : 유교넷
  • 35866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金敏善이 쓴 挽詞이다. 도산의 봉황이 사라지니 낙동강에 차가운 연기만 있다며 이안도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66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鄭淑男이 쓴 挽詞이다.
    출처 : 유교넷
  • 35866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沈友勝이 쓴 挽詞이다. 陶山의 도덕이 높은 것은 퇴계 선생에게 이안도와 같은 손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866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金允明이 쓴 挽詞이다.
    출처 : 유교넷
  • 358664

    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趙穆이 쓴 제문이다. 예전 무술년 겨울에 처음 퇴계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이래 퇴계를 스승이자 부형처럼 모셨고 이안도의 부친인 李寯과는 형제처럼 지냈기에 이안도를 조카와 다름없이 친애하고 아꼈다고 했다. 또한 때로는 退溪의 논두렁에서 때로는 陶山의 남쪽에서
    출처 : 유교넷
  • 35866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琴應夾이 쓴 외삼촌이자 師門의 동학으로서 이안도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866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鄭琢, 柳成龍, 金就礪, 閔應祺, 琴蘭秀, 崔聃齡 등이 공동명의로 보내온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866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金誠一이 쓴 제문이다. 스승인 퇴계가 돌아가신지 10년이 되었는데, 아직 그 도통을 전하지 못했고 남긴 저작들이 다 정리되지 못했는데 그 책임을 맡은 이안도가 죽었으니 누가 그것을 마칠 것인지를 한탄하고 애도했다.
    출처 : 유교넷
  • 35866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柳雲龍이 쓴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866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權春蘭이 쓴 제문으로, 어릴적부터 친형처럼 지낸 이안도의 죽음을 애도했다.
    출처 : 유교넷
  • 358670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琴應壎이 쓴 제문이다. 12살 차이 나는 외삼촌과 조카 사이지만 어릴적부터 단짝 친구로 어울려 지냈고 자라서 같이 師門에서 수학을 했음을 말하고, 積善之家로 마땅히 복을 누려야 할 터인데도 이안도 형제에게 연달아 닥친 죽음에 하늘의 뜻을 헤아릴 길 없다고 애도하고 있
    출처 : 유교넷
  • 358671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李德弘이 쓴 제문으로, 장례일 장지에 오지 못하고 조카를 대신 보내 술을 올리고 곡을 하게 하면서 보내온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8672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禹性傳이 쓴 제문으로, 이안도의 어진 마음과 충성스럽고 두터운 자질은 家庭의 가르침에 부끄럽지 않고 神明이 의지할 만하여 마땅히 하늘의 복을 받아야 할 터인데도 어떻게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는지 묻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673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金隆이 쓴 제문으로, 20년 사이에 孝子와 慈孫이 연달아 세상을 떠남에 대해 하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圖書의 舊業과 도산의 옛 집을 누가 지킬 것인지 염려했다.
    출처 : 유교넷
  • 358674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許篈이 쓴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8675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權宇가 쓴 제문으로 이안도가 세상을 떠난 지 15년 되는 해에 올린 것이다. 이안도가 전한 道를 받들어 믿는 자가 적어 세상이 드러나지 않고 그 후사가 끊어짐을 한탄하며 하늘의 뜻을 묻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676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權伯麟 외 22인의 공동명의로 보낸 제문이다. 퇴계 선생이 죽은 이후 문집 원고의 수정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이안도를 데려가니 하늘의 뜻은 이해되지 않는 바가 있으며, 이안도의 죽음은 斯道와 斯文의 큰 아픔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8677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趙宗道가 쓴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8678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兪大脩가 쓴 제문으로, 덕성이 조화롭고 순수하며 언행이 참되고 순후했다고 기리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67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金涌이 쓴 제문으로, 이안도의 죽음을 요절한 안회에 비겼다.
    출처 : 유교넷
  • 358680

    又(1599)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鄭崑壽가 이안도 사후 16년 만에 묘를 찾아 곡을 하고 올린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8681

    遺事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유사의 내용 역시 퇴계와 관련된 일들이 주를 이룬다. 우선 퇴계로부터 성학을 전수받았음을 적고 있다. 예컨대 25세(1565년)에 퇴계가 [사물잠] 및 북송대 성리학자들이 지은 시와 銘 등 수십 편을 손수 써서 주면서 "학문함의 요체가 여기에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힘
    출처 : 유교넷
  • 358682

    墓碣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조선 중기의 문신인 柳根(西坰:1549∼1627)이 지었다. 이안도의 사람됨에 대해 천품이 醇厚했으며, 배우기를 즐기고 선을 좋아했으며 의를 행함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비록 과거를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추구한 바는 위기지학이었다고 평했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는 비
    출처 : 유교넷
  • 358683

    墓誌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퇴계에게서 『心經』을 전수 받았으며 이안도의 친한 벗이었던 鄭崑壽(栢谷:1538∼1602)이 지은 묘지명이다. 주로 이안도의 가계와 딸만 셋을 두고 아들이 없었던 이안도의 立後와 관련된 사실을 적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684

    常享祝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李光靖이 지은 축문으로 가정에서 祖父의 학문을 계승한 공로가 영원할 것임을 말했다.
    출처 : 유교넷
  • 358685

    東溪書院奉安文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타고난 천품이 道에 가까웠고 바탕에서 올바름을 길렀으며, 학문에 뜻을 두어 이미 聖人의 학문에 이르는 길을 얻었고, 수양실천의 노력을 기울이고 정미하게 사려하여 그침 없이 진보를 이루어 갔다고 평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8686

    附恭人權氏墓誌銘 / 기록자료>고도서 / 이안도
    부인 권씨 묘지명인데, 앞의 이안도 묘지명 다음에 같이 와야할 글이 잘못 실린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 유교넷
  • 358687

    무송헌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담
    무송헌집(撫松軒集) 撫松軒 金淡의 문집. 6권 3책. 木版本. 初刊本은 1646년(인조 24) 玄孫 金玏이 詩 몇 편과 遺文 등을 모아 逸稿로 발간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지나치게 소략하여 8대손 金萬柱와 外孫 權斗寅 등이 주도하여 散逸된 글들을 찾아내 1707년
    출처 : 유교넷
  • 358688

    / 기록자료>고도서 / 김담
    題桃園圖 次茂朱寒風樓韻(見東文選) 送咸鏡監司 送崔直提學(德之)退歸靈巖 慶州東軒題詠(見輿地勝覽) 贈人(見金鶴沙應祖榮州誌) 送別巨濟鎭武討評事李(好誠)
    출처 : 유교넷
  • 358689

    營洛邑頌 / 기록자료>고도서 / 김담
    帝王이 建都할 때의 조건은 山河의 이점을 고려한 地都, 人心의 안위를 살핀 人都, 유교의 흥성을 내다본 道都의 세 가지 단계가 있으며 이러한 조건이 모두 갖추어질 때 비로소 中和의 극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조선의 수도를 漢陽으로 결정한 것은 거기에 가장
    출처 : 유교넷
  • 358690

    謝恩榮宴(1435.4.25. 文武科合箋) / 기록자료>고도서 / 김담
    學術이 천박하여 六經의 精微함을 궁구하지 못했고 武藝가 소루하여 八陣의 奇襲과 正攻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文武科에 합격한 은총을 입어 관직에 제수된 것은 오직 百王의 규모와 三代의 가르침에 힘입은 것으로 이 같은 영광을 준 조정의 무궁한 발전을 축수한다는 내용의
    출처 : 유교넷
  • 358691

    가뭄이 극심한 상황에서 왕이 興天寺塔에 瑞氣가 어린다는 僧徒들의 현혹된 말을 믿고 近臣 및 中官들에게 낡은 塔을 철거하고 신축하라 명령한 처사의 부당함을 지적한 내용의 상소이다. 降雨는 왕의 修身과 至誠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지 한갓 말라비틀어진 뼛가루에 의존할 바가
    출처 : 유교넷
  • 358692

    倭의 使臣이 바친 石雄黃과 硫黃에 대한 回賜의 값을 잘못 산정하여 국고를 축낸 혐의로 戶曹判書 安純과 禮曹參判 權蹈 등을 체포한 義禁府에서 그들을 석방하는 대신 倍로 갚는 조치로 懲罰할 것을 건의한데 대해 왕이 허락한 처사의 잘못을 지적한 내용의 상소이다. 교역물품의
    출처 : 유교넷
  • 358693

    국가가 進士試를 復立하면서 古賦와 排律十韻詩를 취한 것은 詩學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만, 詩의 경우 十韻으로 제한하게 되면 자유로운 詩作이 불가능하여 획일화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개선을 촉구한 내용의 상소이다. 그 대안으로 出題는 『春秋』 등의 賦詩에
    출처 : 유교넷
  • 358694

    李迹이 아버지를 욕보인 사실을 알려주는 죽은 아버지의 글이 벽에서 나왔고 동생 및 조카가 그것을 증언한 것을 토대로 絞殺刑이 결정되자 여기에 의혹을 제기하며 再審을 요구한 내용의 상소이다. 父子간 오간 편지에는 그것을 추측할 만한 단서가 없는 점, 부자가 상봉한 뒤
    출처 : 유교넷
  • 358695

    흉년을 당한 어려운 상황임에도 四民의 밖에서 四民의 먹을 것을 도둑질하는 僧徒들이 횡행하여 백성의 어려움이 더한 실정을 전하며 民弊를 유발하는 각종 佛事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 내용의 상소이다. 帝王의 통치는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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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696

    辭起復疏(1449.5.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담
    父親喪을 당해 廬墓한 지 5개월 만에 왕이 米豆 등을 하사하며 起復의 命을 내리자 引見한 뒤 사직을 청한 상소이다. 15여 년 동안 부모가 계신 榮川(榮州)를 떠나 관직생활로 세월을 보낸 탓에 부모를 봉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병이 들어서도 처방조차 제대로 못한 채
    출처 : 유교넷
  • 358697

    辭起復再疏(1449.5.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담
    집안에 액운이 겹쳐 伯父, 妹, 父, 女息이 수개월 사이에 잇달아 사망한데다 母親조차 병마에 시달리며 차도를 보이지 않는 상황임을 전하며 향리에 돌아가 3년 상을 마치고 老母를 간병하며 부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재차 청한 상소이다.(不允)
    출처 : 유교넷
  • 358698

    辭起復三疏(1449.7.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담
    두 차례에 걸친 사직요청에도 허락을 얻지 못하고 있는 데다 단지 曆法 한 가지 일에만 종사하고 그것도 빠뜨린 것을 考閱하는 것에 불과한 일만 담당하고 있는 자신에게 다시 護軍의 벼슬을 내린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동료들 보기에도 부끄러운 일이니 爵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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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699

    辭起復四疏(1449.7.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담
    자신의 직함은 오로지 曆法만 담당하는 것으로 집에서도 考閱이 가능해 고향을 왕래하면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으나, 다시 관직을 除授함으로써 晝夜로 公務를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服喪이 어렵게 되었으니 職任이 없는 상태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청한 상
    출처 : 유교넷
  • 358700

    辭起復五疏(1449.7.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담
    왕이 신하들에게 "喪事를 방해하지도 않고 직임을 없애지도 않는 것을 通例로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음을 환기시키며 자신의 爵秩을 환수하고 喪事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청한 상소이다.(不報)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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