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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趙鶴坡奎應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鶴坡 趙奎應을 애도하면서 지은 誄辭이다. 1830년(순조 30)에 학파공이 질병으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나와는 평소 교분이 깊었으므로 한 줄 글을 지어서 고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대는 온화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나는 조만간에 그대의 두 아들과 함께 손을 잡고 鶴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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誄柳伯孝(致孝)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伯孝 柳致孝를 애도하면서 지은 誄辭이다. 백효는 부모에게 효도하였으며 사람을 대할 때는 온화하고 공손하였다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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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巖叟哀辭 37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李巖叟를 애도하면서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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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夫行弘文館校理兼經筵侍讀官春秋 館記注官約窩李公墓地銘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約窩 李顯靖(1721~1789)을 위해서 琴詩述이 지은 묘지명이다. 이현정의 본관은 韓山, 자는 孟休, 호는 約窩. 고려 말의 名臣인 牧隱 李穡의 후손이다. 대사간을 지낸 允蕃의 9세 후손이며, 고조부는 현감을 지낸 弘祚이다. 홍조는 西厓 柳成龍의 외손자로 홍조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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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尙左道兵馬節度使山南金先生行狀 6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金富仁(1512~1584)의 행장으로 琴詩述이 지었다. 金富仁의 본관은 光州, 자는 伯榮, 호는 山南이다. 新羅 憲康王의 아들인 興光이 시조이다. 1512년 10월 26일에 烏川里에서 태어났다. 伯父는 관찰사를 역임한 雲巖 金緣이다. 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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勉進齋琴先生行略 14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勉進齋 琴應壎(1540~1616)의 일생을 간략히 요약한 글로 琴詩述이 지었다. 금응훈의 본관은 奉化, 자는 壎之, 호는 勉進齋이다. 고려시대에 金紫光祿大夫太學士를 지낸 儀 원대 祖上이다. 여러 대를 지나 琴遇에 이르러 奉化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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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仕郞九峯金公行略 16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金㙉(1538~1575)의 일생을 간략히 요약한 글로 琴詩述이 지었다. 본관은 光州, 자는 子厚, 호는 九峯이다. 아버지는 경상좌도병마절도사를 지낸 金富仁, 어머니는 永川李氏로 聾巖 李賢輔의 따님이다. 공은 천품적인 자질이 뛰어났다. 성장하면서 많은 서적을 두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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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軒李公行錄 19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李廷實(1600~1668)의 일생을 기록한 글로 琴詩述이 지었다. 이정실의 자는 德讓, 호는 梅軒이다. 아버지는 李琛, 어머니는 密陽朴氏이다. 집안이 몹시 곤궁하였는데 직접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잡거나 맛있는 산나물을 캐어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예법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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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澗堂金公行狀 21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金鼎元(1655~1735)의 행장으로 琴詩述이 지었다. 김정원의 본관은 禮安, 자는 亨叔이다. 예안김씨는 고려조에 시작되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세종조에 집현전 학사를 지낸 金淡이 있다. 공의 고조부인 金玏은 柏巖 先生이란 명칭으로 유명하며 이조참판을 역임하였고 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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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訓大夫掌樂院主簿廣瀨先生李公行狀 24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李野淳(1755~1831)의 行狀으로 琴詩述이 지었다. 이야순의 본관은 眞城, 자는 健之, 호는 廣瀨이다. 眞城李氏는 고려조에 시작하였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繼陽이 禮安의 溫惠村에 살기 시작하여 대대로 살았다. 退溪 李滉 선생은 공의 9대조이다. 아버지는 龜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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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공의 성은 琴, 이름은 詩述, 자는 繼聞, 본관은 奉化이다. 시조는 고려시대에 平章事를 지낸 琴儀이다. 처음 貫鄕은 金浦였으나 琴遇가 奉化에서 살기 시작한 후에 봉화를 본관으로 하였다. 退溪 李滉의 제자인 惺齋 琴蘭秀는 士林의 기대를 한 몸에 모은 뛰어난 인물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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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9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琴詩述(1783~1851)의 일생을 살아온 일을 기록한 行狀으로 金興洛이 지었다. 공의 이름은 詩述, 자는 繼聞, 성은 琴氏이다. 시조는 琴儀이다. 아버지는 汝玉, 어머니는 宣城金氏이다. 後溪 李頤淳, 俛庵 李堣, 廣瀨 李野淳 등 여러 선생님을 모시고서 공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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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並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定齋 柳致明이 공을 위해서 지은 묘갈명이다. 琴公은 사람이 맑고 온화한 성품이다. 먼 조상은 儀, 중시조는 惺齋 蘭秀요, 아버지는 汝玉, 어머니는 宣城金氏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학문이 높아 경전의 의미를 환하게 알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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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誌銘(並序) 15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李秉殷이 琴詩述을 위해서 지은 묘지명이다. 공이 세상을 떠난 지 이듬해 봄에, 동생 季欽 琴書述이 편지를 보내어 부탁하였다. 내가 글을 지을 줄은 모르지만 공을 가장 깊이 알고 있다고 여겨서이다. 옛적 내가 공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다가 시국을 탄식하며 비분강개한 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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挽詞 18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定齋 柳致明이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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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18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李漢膺이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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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18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李秉夏가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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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19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金鎭宇가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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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19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李晩翊이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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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19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金岱鎭이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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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0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柳致皜가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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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0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權璉夏가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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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0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李晩慤이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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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0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族子 翼文이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만사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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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李彙寧이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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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2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李秉殷이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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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3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李五秀가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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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4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李晩浩가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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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 25 / 기록자료>고도서 / 금시술동생 書述이 공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쓴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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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산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만산집(晩山集) 晩山 金永銖의 시문집. 4권 2책. 필사본. 권1에 詩 171수, 권2에 䟽 1편, 呈文 4편, 書 41편, 권3에 雜著 3편, 序 3편, 記 4편, 告由文 4편, 祭文 11편, 丘墓文 4편, 遺事 1편 등이 실려 있고, 권4는 附錄으로서 輓詞,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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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立春, 冬至會話, 夜話, 內舅權公(寅浩)輓, 謹次主倅柳星齋(台衡)壽宴韻, 謹次崔臺巖先生碑左詩, 送徐國賓(載典)赴洛, 次李司庸(鳳和)韻, 送禹夔和(東軾)歸鄕, 留別李司庸, 迫歲歸鄕次金龍岡(學奎)崔季鷹(廷翰)宋聖三(泰欽)具士洪(達書)曹國日(喜宇)徐致孝(錫東)贈別韻, 南(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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請收警務使流免詔勅䟽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이 글은 警務使에게 내려진 流免 詔勅을 거두어 달라고 요청한 上䟽文이다. 흉악범 두 사람이 목매어 자살한 뒤에 보고했다는 책임을 물어 警務使를 비롯한 平理院 裁判長署理 등에게 내려진 流免 혹은 減俸 조치가 부당함을 上奏한 내용이다. 이들에게 내려진 詔勅은 法條文에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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呈掌禮院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掌禮院에 貫鄕을 禮安으로 쓰는 김씨가 실제로는 義城 김씨의 一派라는 것을 알리는 내용이다. 始祖인 諱 錫仕가 고려 때 義城君에 봉해져서 貫鄕을 義城으로 삼게 되었다. 後孫인 平章事 諱 椿께서 國運이 다함을 보고 가족을 이끌고 禮安縣 沙川으로 移住하자 그 자손들이 世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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呈京畿觀察李(載克)狀(1900.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京畿道 觀察使 李載克에게 小學校로 사용하고 있는 ‘采露軒’이란 집을 되돌려 달라고 올린 글이다. ‘采露軒’은 樊巖 蔡濟恭께서 正祖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집으로, 御書 堂號를 받아 門楣에 걸어 둔 것을 후손들이 보존하지 못하고 남에게 賃貸하였으며, 지금은 소학교 학생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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呈學部大臣金(奎弘)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學部大臣 金奎弘에게 聯名으로 올린 글이다. 樊巖 蔡濟恭께서 正祖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집과 御書인 ‘采露軒’이란 堂號를 士林에서 尊仰하였는데, 보존되지 못하고 소학교로 사용되고 있으니 이를 다시 되돌려 달라고 하였다. 官立學校는 學部 所管으로 학부의 허락이 있어야만 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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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呈觀察使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觀察使 李載克에게 再次 올린 글이다. 지난번에 樊巖 蔡公의 ‘采露軒’ 還退의 일이 府에서 전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일이라 하기에 학부에 가서 하소연하였는데, 學部에서는 공립학교가 있는 해당 부에서 전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반드시 本部의 지휘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반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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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西山金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西山선생에게 안부를 물은 뒤에, 자신은 우연히 樂育齋 儒生으로 선발되어 수재들과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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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性齋許先生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성재선생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선생께 「四書」·「諸子」·「心經」·「近思錄」등 여러 책을 배우는 것에 대하여 말할 수 없이 感悅함을 나타내었다. 近況을 물은 뒤에, 자신은 樂育齋 儒生으로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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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牧息金相公(明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牧息 金明鎭에게 자신이 지은 몇 편의 글을 보아 달라고 올린 편지이다. 만난지 삼 개월이나 되어 그리운 정이 더욱 간절하다는 말과 함께 선생의 안부를 물었다. 견문한 것이 적은 자신의 글 몇 편을 올린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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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朴參判(鳳彬)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參判 朴鳳彬에게 올린 안부편지이다. 지난 해 가을에 뵙고 일년 만에 보낸다는 내용과 함께 참판공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지난해 겨울 시험에 실패하였지만, 다행히 樂育齋 儒生으로 선발되어 공부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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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星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여름에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는데 오지 않으니,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걱정하며 보낸 편지이다. 洪喬가 편지를 물에 던져버린 고사를 연상하며, 혹여 편지를 중간에 잃어버리고 받아보지 못할까 염려하고, 자신은 옛날과 같이 공부하고 있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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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主倅徐(丙壽)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고을 원님 서병수에게 올린 안부편지이다. 자신은 化中 사람으로 평소 主倅를 흠모하고 있으며, 營下에서 拜謁하기를 매일같이 희망한다는 말을 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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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性茂)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유성무에게 조만간에 만나 그간 쌓인 회포를 풀자고 한 편지이다. 자신은 남쪽에 머물며 課業이 바뀔 때가 되었고, 客苦가 있어 짐을 꾸려 돌아가려고 하지만, 신관 사또의 지나친 사랑과 만류 때문에 어찌할 수 없으니 한번 다녀가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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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川李丈(晩煃)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유천 이만규에게 보낸 안부 답장이다. 지난 섣달에 있었던 柳川어른의 季父 喪事에 대하여 위로하고 건강을 물은 뒤, 자신의 공부 상태와 안부를 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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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啓八(昌植)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柳啓八로부터 여러 번 긴 편지를 받고 감사의 내용을 담은 답장이다. 안부를 묻고 나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전하였다. 그리고 왜구에 대한 風聞이 점점 가까이 이르러 서쪽까지 이르렀다는 소문이 있으니 갈수록 한심하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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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陶山書院會中(1911.1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도산서원에서 紙牌는 봉안했다 하더라도, 次第와 儀節에 대해서는 朝家의 處分을 기다리자고 한 내용이다. 上營에서 疏를 지어 掌禮院, 議政府, 成均館 등에 稟報하고 난 뒤, 지휘를 기다려 봉행 하자고 주장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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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田園柳丈(道獻)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田園 柳道獻에게 보낸 답장이다. 지난번 도산서원에서 만난 이후 편지를 받고 보니 무척 감격스럽다고 하였다. 允 舍兄이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遞職됨을 탄식하고, 자신도 업무에 시달리고 비방을 받기에 산림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上司가 허락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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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文顯(世洛)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오랜만에 珍重한 편지를 받고 감격하여 보낸 답장이다. 안부를 물은 뒤에, 자신은 淺薄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함부로 世路에 나왔으나, 분수가 아님을 알기에 조만간에 산림으로 돌아가 舊業에 힘쓸 계획이라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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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進士(勝振)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박진사의 季兄이 旅館에 찾아와 소매에서 내준 편지를 읽고 답장한 내용이다. 관직에서의 처신이 어려움을 토로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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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德允(鳳熙)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뜻밖에 심부름꾼 편으로 보내온 편지를 받고 보낸 답장이다. 자신이 머무는 여관으로 편지를 보내 왔기에 읽어보니 은근한 정이 가득하였다. 병든 자신에게는 마치 좋은 약 한 頓을 복용하는 것과 같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