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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8901

    答安舜華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지난달에 花府에서 하루 저녁 토론한 드문 인연으로 보내온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먼저 안부를 물은 뒤에, 자신은 근래 병이 들어 여관에서 웅크려 신음하고 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02

    答李(鍾旭,長鬐人)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長鬐 사람인 이종욱에게 보낸 답장이다. 때때로 도연명의 「歸去來辭」를 읽으며, 山林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살기를 원했으나, 세상과 어긋나 탄식한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8903

    與內從兄權乃立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내종형 권내립에게 보낸 안부편지이다. 길이 불과 백리 남짓한데도 수년간 서로 인사도 나누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내종형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요즘 견비통과 가슴앓이로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과 집안의 대소사를 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04

    與金啓熙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편지를 주고받은 지 일년 만에 金啓熙 季氏의 朞祥에 보낸 위문편지이다. 생각이 간절하다는 인사를 한 후, 자신은 금년에 苦海無津이라 할 만큼 어렵다고 하였다. 초상으로 가정이 大破하고, 자식마저 공부를 싫어하니 모든 일을 접고 산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05

    與永川梨洞族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영천 梨洞에 사는 친족에게 平章事 先祖의 祭壇이 완공되어 제사를 지낸다고 알리는 편지로서, 영천 문중에 있는 몇 사람의 宗員이라도 제사에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8906

    與權慶州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權慶州에게 안부인사 겸 자신이 지은 自警詩 2수에 대하여 質正을 구한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8907

    與李應八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한해를 보내면서 안부 인사를 전한 편지이다. 자신은 현재 병든 몸으로 궁벽한 곳에서 생활하며 단지 나이만 더하여져 60세가 되지만, 이제껏 살아온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음과 아울러, 지난 날의 삶에 대한 悔恨을 나타낸 편지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8908

    與金致範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새해를 맞이하여 안부를 전한 편지이다. 문득 61살이 되어 버린 지금, 지난 날을 회고하고, 金致範의 자식이 학교에 종사하고 싶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러한가라는 내용과 아울러, 이는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8909

    答權聖執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권성집에게 문안 인사와 함께 자신이 지은 100여 수의 한시를 살펴봐 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8910

    與徐求禮(宅煥)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지난 해 5월에 보낸 편지는 잘 받았는지에 대한 궁금함을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한 편지이다. 永銖 자신은 落傷하여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자식들도 사방을 흩어져 홀로 궁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11

    答金九敍(肅鎭)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소식이 끊어졌다가 4년 만에 편지를 받고 기뻐하며 보낸 답장이다. 안부를 묻고, 서로 白首가 된 늘그막에 만나, 얘기조차 나누기가 쉽지 않음을 토로하였다. 또한, 봄이 되니 그대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12

    與權聖健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새봄이 되어 知友에게 안부를 묻고, 老境에 접어든 자신의 근황과 무료한 心事를 전한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8913

    與李壻源植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사위인 이원식에게 허송세월하지 말고 공부에 매진할 것을 당부하는 편지이다. 목차에는 편지제목이 ‘與女婿李源植’으로 되어 있다.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下村에 사는 龜尾어른께 나아가 공부하면, 그대에게 소홀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14

    與宗君聖邦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장례시 哭에 관하여 논의한 것을 다시 생각하고 敷衍 說明하여 보낸 내용이다. 禮의 개념과 실행방법을 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15

    與金聖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가을비가 지루하게 내리는 가운데 族譜 일과 石物 일이 궁금하여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大同譜를 만들기 위해 더위를 무릅쓰고 各派에게 巡廻하느라 고생한 이야기를 하며, 이번 일에 심혈을 기울이라고 격려한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8916

    答族弟允緝(成鎬)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義城 金氏 大同譜 편집에 관하여 族弟에게 보낸 편지이다. 대동보의 규모와 진척상황을 이야기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17

    與族弟應元(泰鍾)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族弟집의 壽宴에 참석하여 祝壽詩를 짓고 돌아와 고마움을 전한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8918

    與叔弟文一(道銖)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추운 겨울에 열흘 걸려 皇城에 다다른 얘기며, 西倉에서 李友善을 만난 이야기 등 서울에서 있었던 일을 전한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58919

    與文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안부를 묻고, 집안일 하는 여가에 自力으로 誠敬篇을 공부한다니 기대가 된다고 격려한 편지이다. 아울러 선비가 출세하는 일은 조급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20

    與文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오랜만에 문일에게 보낸 近況 편지이다. 나라에 근심이 많은데, 소위 義和團 사건으로 중국이 우리나라에도 送兵해 줄 것을 요청한 일과 아울러 萬人疏 제작에 소임을 맡은 일도 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21

    答文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자신이 관찰사와 동행하여 이동한 행선지를 자세하게 설명한 답장이다. 그리고 문일에게 鵝川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까닭을 물었다.
    출처 : 유교넷
  • 358922

    與文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자신의 근황을 알린 편지이다. 그저께 밤에 예천에 다다르고, 어제 아침에 도산서원에 나아가 复主儀節을 議定하고 오늘 새벽에 올라온 일과 公人이기에 先君 忌日에 참석하지 못함을 애석해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23

    與文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춘궁기를 맞아 窮塞한 이웃과 貧寒한 친척이 없도록 잘 돌보아 줄 것을 당부하는 편지이다. 梧山형님의 장례 문제와 집안 대소사 등을 질문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24

    答文一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자신의 근황과 함께 변화하는 시국에 관하여 이야기한 편지이다. 梧山선생의 禫祭에 불참하게 되어 미안함을 나타내었다.
    출처 : 유교넷
  • 358925

    寄姪悳源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조카 悳源에게 安否와 집안의 대소사에 대하여 자세하게 질문한 편지이다. 아울러 자신의 행선지를 알리고, 조카가 그간 읽은 책을 점검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26

    答悳源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조카의 안부 편지를 받고 안심이 된다는 말과, 河東縣監을 相對하여 여러 곳을 동행한 근황을 자세하게 알린 편지이다. 그리고 족보에 관한 제반 사항을 질문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27

    答悳源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편지를 받고서 두 곳의 제사에 참석하느라 바빠서 卽答하지 못했다하고, 재차 편지를 받고 집안이 두루 무사하다니 다행이며, 대동보에 들어갈 派譜의 여러 내용을 잘 처리하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8928

    宗宅正寢上樑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1913년(癸丑) 8월에 쓴 것으로 1911년(辛亥)에 화재로 소실된 宗宅을 복원하면서 지었다. 校贊 金乙邦 先祖가 遁煩草堂을 지은 내력과 화재로 소실된 종택을 세운 일과, 종택이 완성되고 나서의 감개를 서술하였다. 이후에 神靈이 후손을 보살펴 친척의 情話가 오랫동안
    출처 : 유교넷
  • 358929

    賀巡相牧息金公移設樂育齋告成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牧息 金明鎭 선생이 樂育齋를 移設하면서 晩山 선생에게 쓰게 한 것이다. 牧息公의 好學으로 말미암아 興學의 기반이 다져졌음을 서술하였다. 또한 樂育齋의 분위기와 이곳에서 修學하고픈 선비들의 모습, 선생에게 이 글을 쓰게 된 경위 등을 적은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8930

    書安(鎔濩)書帖後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安鎔濩가 엮은 書帖의 뒤에 쓴 글이다. 서두에는 鬐州에 있을 때 安鎔濩를 文學과 世德으로 서로 許心하였던 일을 서술하고 있다. 또한 서첩에 글을 쓰게 된 배경을 서술하고, 退溪선생의 「山居四時 16絶」을 써준 것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31

    鷄林契會續帖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鷄林契會 續帖의 序文이다. 鷄林 李季英이 선생을 찾아와 자신의 가계내력을 말하고, 계림계회가 만들어지고 泯沒된 배경, 續契를 논의하고 帖을 짓게 되어 그 首에 선생의 글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오랫동안 契를 지켜온 일을 높여 范·張에 비유하며 李氏의 문중을 칭찬한 일,
    출처 : 유교넷
  • 358932

    派譜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1922년 大同合譜를 의논하고 詹事 선조의 神道碑와 碑銘을 찬술하고, 派譜의 序를 지었다. 서두에는 순자의 ‘春秋必返’을 인용하여 선생의 친족을 이야기하고, 義城이 관향이 된 유래와 大同譜를 편찬하게 된 경위를 기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33

    四美書堂講所契帖序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四美書堂 講學所 契帖의 序文이다. 先正·先賢의 遺風과 餘韻이 남아있음을 이야기하고, 族弟 金鏺과 李戚鍾이 野城에서 찾아와 世道의 頹靡함을 진작코자 四美書堂을 지은 일, 또한 堂內에 講學所를 설치하고 계첩을 만들어 이에 서문을 청한 일, 契會에 참여한 여러 군자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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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934

    樂育齋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達城에 있는 樂育齋 記文이다. 樂育齋에서 郡縣의 儒生 15인을 뽑아 修學케하여 이름난 선비를 많이 배출한 일과 粤晩齋 金文貞公의 업적, 牧息公 金明鎭의 업적, 堂宇를 넓힌 일들을 기록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35

    觀善堂修葺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樂育齋의 翼室인 觀善堂을 修葺한 記文이다. 관선당내의 藏書閣에 대하여 설명하고 風雨에 頹漏하여 壬寅년 봄에 小雲 趙夔가 2百金을 내고, 李龍洛, 楊在淇, 李柄泰 등이 감독하여 완성한 일 등을 기록하였다. 또한 선생이 이 일의 顚末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쓰게 되었다는 내
    출처 : 유교넷
  • 358936

    晋陽樂育學校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晋陽의 樂育學校에 대한 記文이다. 鄒魯之鄕으로 불리던 嶺南이 차츰 頹靡해져 이를 바로잡고자 뜻있는 선비들이 學校를 설립한 의의를 기록하였다. 또한 刺使 李根澔에게 알리고 李公이 임금께 陳言하여 임금께서 詔書를 내린 일, 敎官 安宅重, 寢郞 盧相旭이 諸友와 더불어 學校
    출처 : 유교넷
  • 358937

    長鬐明倫堂新設講習記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長鬐의 明倫堂에 새로이 講習所를 세운 것에 대한 記文이다. 서두에서는 예로부터 지켜지던 三代의 遺風이 차츰 頹廢해지고, 風敎가 해이해졌음을 말하였다. 또한 유학의 원리와 處宜에 대하여 예와 지금이 다르지 않음을 서술하고, 明倫堂에 강습소를 세운 履歷과 강습소의 구조를
    출처 : 유교넷
  • 358938

    外先祖耻堂金公(諱値秋)墓所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外先祖인 耻堂 金値秋의 墓所告由文으로 1900년에 지은 것이다. 서두에서는 堂名을 ‘耻’라고 편액한 이유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또한 外祖와 吾祖의 관계가 매우 친밀했으며, 꿈에 현신한 일 등을 적었다.
    출처 : 유교넷
  • 358939

    先祖平章事府君設壇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高麗朝에서 平章事를 지내셨던 金椿의 壇을 설치한 告由文으로 1919년에 쓴 것이다. 沙川一曲이 물러나기에 좋은 곳이라는 설명과 아울러 후손 寢郞의 文은 있지만 壇이 없기에 차츰 泯滅함을 안타깝게 여겨 壇을 설치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설치한 장소를 기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40

    先祖詹事府君神道碑開基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선조인 高麗太子詹事義城君 金龍庇의 神道碑에 기초를 닦은 것에 대한 告由文이다. 神道碑를 세우게 된 경과를 기록하고 神靈의 도움을 비는 내용을 서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41

    門祖判決事公(諱欽祖)墓道安石告由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判決事 金欽祖의 墓에 安石을 설치하는 것에 대한 告由文이다. 서두에서는 先代의 家系와 婦德, 자손들의 혁혁한 모습을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天道의 무심함으로 자식이 없음을 슬퍼한 일과 外裔의 도움으로 代를 이을 수 있었던 일, 또한 그 孫이 정성을 다한 일을 기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8942

    祭判書牧息金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이 글은 判書를 지낸 牧息 金明鎭의 제문이다. 문장의 형식은 4언으로 이루어졌으며, 문인들과 聯名하였다. 山林處士로서 독실하게 儒學을 공부하였으며, 제자들을 잘 이끌어 주신 분이라고 推仰하였다.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道를 행하는 선비로서의 모습과 언행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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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943

    祭朴景任(勝重)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朴景任의 祭文이다. 서두에서는 故人을 찾아 헤매었으나 故人이 없는 슬픔을 표현하였으며, 이후 景任의 인물됨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또한 景任이 죽기 전에 함께 하룻밤을 보내면서 대화한 일과, 선생이 景任을 다시 찾았을 때는 이미 장례를 지낸 후라서 그 죽음을 함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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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944

    祭李記注文老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記注 李文老의 祭文이다. 서두에서는 李文老의 뛰어남을 이야기하고, 이어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지내는 생활과 아울러 가계를 꾸려나감에 頭緖가 있음을 서술하였다. 또한 선생이 낙향하여 李文老의 이웃으로 절친하게 지낸 일을 적었다. 이후 선생이 鬐州에서 3년을 지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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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945

    祭拓庵金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拓庵 金道和 선생의 祭文이다. 선생의 성품과 기상, 학식, 문장이 매우 뛰어남을 이야기하였으며, 또한 拓庵 선생의 의리정신을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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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946

    祭雲圃李公(中麟)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雲圃 李中麟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 서두에서는 李公의 家系와 자질, 용모, 詩·禮·文章이 家風의 영향을 받았음을 기술하였다. 또한 功名을 가벼이 함과 아울러 유랑하다 타향에서 죽음을 맞이한 내용을 서술하였다. 公과의 情을 다하지 못함을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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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947

    祭寢郞李公(中稙)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寢郞 李中稙의 祭文이다. 서두에는 공의 자질이 맑고 곧음을 서술하였다. 또한 그의 죽음에 대하여 종당과 사림이 매우 슬퍼하고 있음을 기록하였으며, 선생도 이공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슬퍼하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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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948

    祭表從兄二山朴公(斗陽)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晩山선생의 從兄인 朴斗陽의 祭文이다. 종형이 평소에 “60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 일과, 晩年에 두 아들을 두었으나 부인을 잃고, 부인 없이 아이를 키운 일 등 가족의 고통을 이야기하였다. 또한 종형의 군자다운 모습을 기술하였으며, 고모의 화를 누그러뜨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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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949

    祭族叔訒菴公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이 글은 스승이자, 族叔인 訒庵公의 제문이다. 글 전체가 4언으로 이루어졌으며, 문인들과 聯名하였다. 山林處士로서 독실하게 儒學을 공부하고, 제자들을 잘 이끌어 주신 분이라고 推仰하였다.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道를 행하는 선비로서의 모습과 언행을 떠올리며, 고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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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8950

    祭仁山公(道源)文 / 기록자료>고도서 / 김영수
    仁山公 道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祭文이다. 서두에서는 선생의 儀貌의 淸雅함, 性度의 堅確함, 孝誠으로 어버이를 봉양한 일, 학문에 전념한 일, 慈義로써 자식을 가르친 일과 鄕里에 거처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모습, 雲山 李公의 문하에서 修學한 일 등을 기록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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