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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密庵李公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密庵 李栽에게 올린 편지로, 전에 부탁한 저자의 백부 시고의 교감에 대해 묻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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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密庵李公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密庵 李栽에게 올린 편지로, 모산옹의 장례에 만사를 지어 보내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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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密庵李公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密庵 李栽에게 올린 편지로, 장악원에 제수된 것과 병곡 권구가 방환된 것에 대해 기뻐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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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密庵李公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密庵 李栽에게 올린 편지로, 부탁했던 백부의 묘갈명의 내용에 대해 이견을 제시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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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密庵李公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密庵 李栽에게 올린 편지로, 「언행록」 발간에 대해 저자의 견해를 드러낸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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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茅山李公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茅山 李棟完(1651~1726)에게 답한 편지로,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 준엄하지 못함을 자성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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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顧齋李公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顧齋 李槾(1669~1734)에게 답한 편지로, 가난으로 인해 석포로 이사한 사정을 서술했다. 집에 소장된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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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玉川趙公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玉川 趙德鄰(1658~1736)에게 올린 편지로, 귀양길에 있는 옥천의 안부를 걱정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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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訥隱李公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訥隱 李光庭(1674~1752)에게 올린 편지로, 녹문으로 이거하려는 눌은의 뜻을 지지하면서, 문장과 예악제도에 대해 서술하였다. 눌은은 안동지방의 도훈장을 지낼 정도로 문장과 학문으로 명망이 높았고 평생을 산림에 묻혀 생도들을 가르치면서 보낸 인물이었다. 눌은이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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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訥隱李公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訥隱 李光庭에게 올린 편지로, 눌은이 뜻을 굽혀 출사할 것을 권유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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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振伯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霽山 金聖鐸(1684~1747)에게 보낸 편지로, 밀암이 벼슬에 임명된 것과 권구가 특사된 것을 축하하면서, 밀암에게 백부의 원고도 찾을 겸 천전을 방문하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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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振伯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霽山 金聖鐸에게 보낸 편지로, 행장의 초고에 대한 김성탁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이의를 제기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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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振伯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霽山 金聖鐸에게 보낸 편지로, 『밀암집』 교감에 대해 눌은이 致力하고 있음을 변론하고 있다. 또한 「퇴계언행록」에 서애와 학봉이 서술한 부분을 후배들이 마음대로 산삭한 데 대해 개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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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振伯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霽山 金聖鐸에게 보낸 편지로, 섬에는 전염병이 없느냐고 묻고, 미처 약제를 마련하지 못하고 砂糖과 辰砂를 보내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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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振伯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霽山 金聖鐸에게 답한 편지로, 제주도에서 다른 곳으로 옮긴 귀양지의 사정에 대해 묻고, 방환되기를 기대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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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振伯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霽山 金聖鐸에게 보낸 편지로, 귀양 중에 음영을 폐하는 것은 좋지 않으니, 원망의 뜻이 없다면, 시름을 잊는 데에 작시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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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振伯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霽山 金聖鐸에게 답한 편지로, 유배지의 고생스런 생활을 위로하면서, 방환의 기약이 요원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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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振伯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霽山 金聖鐸에게 답한 편지로, 전에 이상정에게 보낸 글에 대한 해명이다. 강좌는 문장이 번거롭게 되는 폐단을 막기 위해서, 먼저 六經과 四子에 힘을 쏟아 그 근기를 확립한 후에 洛閩家의 여러 책들을 봐서 그 귀취를 통달하게 하려 하였다. 강좌는 학문의 길도 역시 반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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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振伯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霽山 金聖鐸에게 답한 편지로, 강좌는 일관되게 먼저 육경을 읽을 것을 강조하고, 경전을 해석할 때에 정주자의 주석에 의지하지 말고 자기의 생각으로 반복 궁구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강좌는 이러한 자기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중용』공부를 예로 들고 있다. 『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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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振伯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霽山 金聖鐸에게 답한 편지로, 자신에게 보낸 제산의 편지 내용을 이상정의 간절한 요청에 의해 보내 주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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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振伯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霽山 金聖鐸에게 답한 편지로, 『주역』의 陽生說에 대한 눌은과 대산의 견해를 제시하고, 이에 대해 질정을 구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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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振伯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霽山 金聖鐸에게 보낸 편지로, 先祖의 10년 일기를 등사해서 눌은의 교감을 거쳤다는 것과, 『성리군서』‧『대학연의』‧『주자대전』‧『춘추호전좌전』 등의 의심난 곳을 고증하였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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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塤叟箎叟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塤叟 鄭萬陽(1664~1730)과 箎叟 鄭葵陽(1667~1732) 형제에게 보낸 편지로, 家弟의 교육을 당부하는 글이다. 정만양은 영천출신으로 종조부 時衍과 李玄逸의 문하에서 아우 葵陽과 함께 수학하였는데, 경사는 물론, 성리학·예학·천문·지리·역학·경제·정치·율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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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允卿用賓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용와 유승현(1680~1746)과 양파 유관현(1692~1764)에게 보낸 편지로, 64괘도의 배치를 증거로 陽生說에 대해 논하고 있다. 允卿은 유승현의 자, 用賓은 유관현의 자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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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姜淸甫久之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雪竹堂 姜再淑(1677~1758)과 立齋 姜再恒(1689~1756)에게 답한 편지로, 杜谷 洪宇定(1593~1654)의 비문에 대해 논술하고 있다. 淸甫는 강재숙의 자, 久之는 강재항의 자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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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姜公望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강공망에게 보낸 편지로, 油荏을 보내 줄 것을 청하는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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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仲綏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김중유에게 답한 편지로, 전에 부탁받은 시를 지어 보낸다는 것과, 저자가 편술한 『성운고정』은 字學에 도움이 될테니, 등서할 수권의 종이를 보내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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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仲綏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김중유에게 보낸 편지로, 이상정과 왕복한 내용에 대해 해명하는 글이다. 강좌는 從源達派의 논리를 주장하여, 배우는 자는 먼저 육경을 읽고나서, 뒤에 『朱書』를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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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朴見卿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朴龍相에게 답한 편지로, 가을에 영해에 있는 관어대로 놀러 가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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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子成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牛川 鄭玉(1694~1760)에게 보낸 편지로, 부모 봉양을 위해 내직에 있다가 보령현령으로 나가는 우천을 축하하는 글이다. 子成은 정옥의 자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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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退甫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九思堂 金樂行(1708~1766)에게 보낸 편지로 더욱 노력할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 退甫는 김낙행의 자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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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退甫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九思堂 金樂行에게 답한 편지로, 용연의 유람에 참석할 수 있는지 묻고, 근래 지은 시를 첨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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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退甫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九思堂 金樂行에게 답한 편지로, 衆體를 구비하기 위해서는 도학 공부와 겸해서 문장에도 힘쓸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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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退甫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九思堂 金樂行에게 답한 편지로, 유배로 고생하는 제산을 위로하면서, 군자의 처신에 대한 것과, 대산과 관련된 문장 논쟁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서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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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景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大山 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강좌는 『주서』를 읽기 전에 먼저 경서를 볼 것을 강조했는데, 왜냐하면 경서는 본이고 원이며, 주서는 말이고 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강좌는 학문에 뜻을 둔 선비들은 먼저 삼경과 사서를 잡고 난만히 숙독한 뒤에 그 가운데 의심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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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景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大山 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먼저 육경을 공부하고 그런 다음에 『주서』를 공부해야 할 것에 대한 해명의 글이다. 『주서』를 폄하하고 낮추려는 의도가 없음을 밝히면서 이상정의 ‘中毒連累’ 등의 비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다. 이상정에게 『시경』‧『서경』‧『논어』를 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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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景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大山 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자신의 편지내용에는 『주서』를 폄하하려는 뜻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고 변호하면서, 자기가 보낸 편지의 부본을 등사해 놓지 않은 것이 한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강좌는 육경과 주서를 선후로 나누어 말했을 뿐이지, 『주서』를 비판한 것이 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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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景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大山 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이상정의 전후 서간과 제산‧구사당 부자의 서간을 첩으로 만들어 觀省의 자료로 삼고 있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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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景文 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大山 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문장과 도학에 대한 저자의 일관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대산이 문장은 배울 것이 못 된다라고 말한 것은 감정이 격해서 한 말이라 생각한 강좌는, 문장은 또한 작은 일이 아니어서 성인이 아니면 대개 제대로 발언성장하기가 힘들며, 이에 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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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鄭道翁 4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梅山 鄭重器(1685~1757)에게 답한 편지로, 연전에 ‘육경은 根本이고 주서는 末派’라는 설로 이상정과 논변한 것을 언급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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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欽甫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李猷遠에게 보낸 편지로, 이현일의 『홍범연의』의 전체 내용을 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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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君式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李象遠에게 보낸 편지로, 『홍범연의』와 『갈암집』은 경우가 다르다면서 『홍범연의』를 공개할 것을 권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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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休彦 4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李萬容에게 보낸 편지로, 府伯이 어제시를 손수 써서 서원에 건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것과, 이참에 特旨를 모각해서 청암정에 게판한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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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辛元夫 4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辛性中에게 답한 편지로, 상량문은 써 주겠으나 기문은 거절한다는 것과, 『망우집』의 체제가 잘못되었으니 개정할 것을 바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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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善有 4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金必慶에게 보낸 편지로, 충암 김정의 항소 사건을 기념하는 시를 청하자, 운자로 지정된 ‘疏’자의 평측에 대해 논한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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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鼎甫 4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金夏九에게 보낸 편지로, 김하구가 가지고 있는 거문고를 빌려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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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孟路季路 4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김맹로와 김계로에게 보낸 편지로, 이사안 등과 상의해서 향교에서 강학을 실시할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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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金禮安 4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예안현감으로 있는 金光遂에게 보낸 편지로, 향교의 진흥을 치하하는 한편, 서원에도 관심 갖기를 바라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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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領議政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영의정에게 올린 글로, 1728년(영조 4) 李麟佐의 난에 연루되어 무고당한데 대해 해명하는 글이다. 강좌는 이때 국문을 자청하였으나, 영조가 억울함을 알고 안심하고 下鄕하게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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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吳參議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참의 吳命臣에게 보낸 글로, 李麟佐의 난에 연루된 자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강좌의 이름이 거론되었으나 영조가 무고함을 알고 안심하고 하향하게 했다. 이 글은 하향하기 전, 왕의 덕을 칭송하면서 감사를 표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