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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검색 / 전체
: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9301

    上趙左相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좌상 趙顯命(1690~1752)에게 올린 글로, 저자의 선조인 충재 권벌의 증작을 청하는 내용이다. 조현명은 이인좌의 난이 발생하자 四路都巡撫使 吳命恒의 종사관으로 종군, 난이 진압된 뒤 그 공으로 분무공신 3등에 녹훈, 풍원군에 책봉되었다. 1730년(영조 6) 경
    출처 : 유교넷
  • 359302

    上趙左相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좌상 趙顯命에게 올린 글로, 성상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이광정을 훈장으로 삼아 서원에서『근사록』을 강독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03

    上趙左相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좌상 趙顯命에게 올린 글로, 부임지의 사정을 열거하면서 封山 등 민폐에 대해 진술한 장문의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04

    上趙左相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좌상 趙顯命에게 올린 글로, 재차 부임지의 민폐에 대해 서술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305

    上句管堂上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비변사의 당상관인 제주에게 올린 글로, 부임지인 양산의 민폐를 논하면서 이에 대한 조치를 강구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06

    上南方伯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상을 당해 이임하는 方伯 南泰良에게 올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07

    與通信正使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통신사의 임무를 수행하고 오는 정사에게 보낸 글로, 고을의 민폐에 대해 보고해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08

    答申延日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연일현감으로 있는 신유한에게 답한 편지로, 砥石을 보내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礪石歌」12운을 지어 보내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09

    上叔父晴沙公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해남에 유배된 숙부 晴沙 權斗紀(1659~1722)에게 올린 편지이다. 夷險에 흔들림 없이 『근사록』과 「자경편」을 읽으면서 潛心對越할 것을 당부 드리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310

    與族姪子誠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족질되는 權正忱에게 보낸 편지로,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心學을 공부할 것을 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311

    與族姪通卿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족질되는 通卿에게 보낸 편지로, 感君恩‧與民樂 등의 거문고 곡조를 배우고 있으며, 한 번 들러서 文生의 거문고를 듣고 싶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12

    寄從姪正宅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寢郞에 제수된 정택에게 보낸 편지로, 너무 엄해도 일을 만들 우려가 있고, 너무 관대해도 陵官의 도리가 아님을 들어, 신중하게 처신할 것을 권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9313

    寄子正容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예안 현감의 사위로 예안 관아에 있는 아들 정용에게 보낸 편지로, 처신에 유의하고 독서에 힘쓸 것을 주문하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14

    寄正容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정용에게 보낸 편지로, 천전에 가서 표은의 유허비를 돌아보고 감발할 것을 기대하는 글이다. 심신을 다스려서 독서와 이치 탐구를 해야만 실질적인 공부가 됨을 역설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9315

    送李汝達序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조정에서 임진난에 공을 세운 두서 이공에게 증직과 정려를 내리자, 두서의 현손되는 이여달(정일)이 해부에 고첩을 받으러 가면서, 저자를 방문하여 경대부와 서로 응접하는 예절에 대해 질문한 것과 이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16

    送鄭子成奉僉樞公之官保寧序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추은으로 당상의 품계를 받은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 보령 현감으로 가는 정자성을 전송하는 글로, 첨추공의 축수를 기원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317

    稽古篇序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저자의 족형인 정묵재공이 편찬한 『계고편』8책에 대한 서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글 가운데 비문‧행장‧기설‧소장에서 세교와 관계되는 좋은 말과 훌륭한 행적을 발췌하여 기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9318

    譯解聲䪨考正序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역해성운고정』에 대한 서문으로, 『역어류해』‧『오거운서』‧『사성통해』등을 참고하여 『노걸대』‧『박통사』 등의 역해의 잘못을 고증한 글이다. 「범례」가 붙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319

    金成仲山水齋記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저자의 친구 김성중이 산수재라는 서재를 짓고 기문을 부탁하기에 지어준 글이다. 김성중은 산수에 취미가 있어 주왕산‧내연산‧방장산‧속리산‧월출산‧무등산‧섬진강‧한강‧형산강‧금강 등을 기행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9320

    鶩齋記 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상사 박태제가 서재를 지어 黙齋라고 했는데, 저자가 목재로 바꿀 것을 청하고 지어준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21

    李陰厓先生年譜後跋 3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陰厓 李耔(1480~1533)의 연보 뒤에 쓴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22

    書鄭文莊公所製請復登州舊路奏文後 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문장공 정모가 지은 「請復登州舊路奏文」 뒤에 쓴 글이다. 등주 해로는 요양 땅이 막혀 있을 때 중국에 조공하러 가던 노선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23

    畏齋先生文集跋 4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畏齋 李厚慶(1558~1630)의 문집 뒤에 쓴 글이다. 저자는 외재 후손의 부탁을 받고 『외재집』을 교감했으며, 후에는 덕봉서원에 봉안된 외재‧복재의 묘갈명과 『외재집』 서문을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359324

    書李景文篆冊後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대산 이상정이 저자에게 『서경』의 「칠월무일」편의 글씨를 청하기에 篆字로 983자를 써 주고 그 책의 끝에 써준 글이다. 저자의 古文[篆字]에 대한 해박한 식견을 볼 수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325

    書丙丁榜目謄本後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홍치 병진해의 『사마방목』과 정덕 정묘해의 『문과방목』 뒤에 쓴 글이다. 영산 신공과 저자의 선조 충재 권벌은 같은 해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과시험에 급제했는데 이를 기념해서 썼다.
    출처 : 유교넷
  • 359326

    題眉老大篆匪懈堂筆帖 4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巖居 李士會 소장의 미수 허목(1595~1682)의 大篆筆帖과 안평대군의 匪懈堂筆帖에 대해 쓴 글이다. 미수의 8자 글씨에 대해서는 ‘蒼古俊偉’하다고 평하였으며, 안평대군의 20자 글씨에 대해서는 ‘淋漓活大’ 하고 ‘변화가 귀신같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9327

    題李士會家藏篆帖 4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李士會의 집에 소장된 篆書體 필첩에 대해 쓴 글이다. 파곡 이충간공이 유문충공에게 준 6언 93자의 시와, 학계 심의헌공이 헌릉에 바친 70자의 표문을 미수 허목이 전서로 써서 파공의 후손 능주공에게 준 것이다. 저자는 기사년 6월에 이 글을 작성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9328

    題熊淵石文跋後 4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熊淵石文은 미수의 현손되는 허지가 임모한 글씨로, 매우 기괴해서 전자‧주문‧비백도 아닌 글씨체였다. 미수는 선천문자에 가까운 글씨라고 일렀는데 저자가 이 글씨를 보고 간단하게 평한 것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29

    南延年傳 4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이인좌의 난 때 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죽은 무인 南延年에 대한 전기이다. ‘태사씨왈’로 시작되는 저자의 사평이 붙어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330

    大朴子傳 4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안동 금계 사람 李址에 대한 전기문으로, 이지는 士人 이달시의 서형이었다. 이지는 용재 이공의 형인 숭준의 5세손인데, 아버지가 죽은 뒤, 가사를 맡아 어린 달시를 잘 길러 후사를 잇게 했다.
    출처 : 유교넷
  • 359331

    金生琴背銘 4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웅이산의 북쪽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던 김생의 거문고 배면에 써준 글로 거문고를 통해 성령을 기르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32

    取人銘 47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어리석은 사람에게도 한 가지 취할 것이 있다는 옛사람의 말을 인용하면서, 저자가 매사에 본인의 주장을 강하게 하는 병폐에 대해 반성하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33

    世子嘉禮頌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1727년(영조 3) 9월 29일에 있었던 왕세자의 嘉禮를 칭송하는 글로 里鄕의 가요체로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359334

    進近思錄箋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저자가 통훈대부 병조정랑으로 재임 시 왕의 명령으로 충재 권벌 소장의 『近思錄』을 왕에게 올릴 때 지은 글이다. 충재의 후손인 저자는 이책을 올리면서 왕에게 학문을 권장하는 뜻을 서문에 부쳤다.
    출처 : 유교넷
  • 359335

    通信使到界狀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通信使가 영내에 당도하자 올린 글로, 변려체의 문투를 구사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9336

    方伯到界狀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方伯이 영내에 당도하자 올린 글로, 변려체의 문투로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359337

    倡義時檄道內文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저자는 1728년(영조 4) 봄, 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柳升鉉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는데, 이 글은 당시 副帥로 추대되어 도내에 보낸 檄文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38

    奉諭講學諸君文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유곡의 안동권씨 일문과 동중의 여러 학생에게 학문을 권장하는 글로 저자의 백부인 창설재의 뜻을 계승해서 더욱 면학하자는 내용이다. 주자의 예를 들어 상중에 있더라도 강학을 폐하는 것을 금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9339

    戒四弟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四弟를 경계하는 글로 친족간에 화목하게 지낼 것을 당부하는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40

    李甥世學名解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저자의 생질되는 이세학의 이름을 풀이한 글이다. 이세학은 이황의 후손으로 ‘대대로 이황의 학문을 계승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341

    易說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1744년(영조 20)에 「하도」와 「낙서도」 등을 보고, 『주역』의 오묘한 뜻을 이해한 저자가, 『고문역』에 의거해서 동국의 음독이 傳義와 서로 어긋난 것과 飜解하는 사이에 그 본지를 잃은 것에 대해 저자의 견해를 밝힌 글이다. 40쪽에 달하는 장문으로 卦名說‧彖上
    출처 : 유교넷
  • 359342

    太極上圈淸濁辨 5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저자의 스승인 눌은 이광정의 太極 上圈의 淸濁에 대한 견해를 정리한 글이다. 수암 권상하가 상권에 청탁의 구분이 있음을 주장한데 대해, 눌은은 청탁의 이치가 있음을 주장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9343

    字母說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107운과 12,652자를 구성하는 39개의 자모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5음과 청탁에 따른 자모의 순서와 우리나라 성음의 訛誤에 대해 서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9344

    鬱鬯說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주례』 춘관에 나오는 鬱鬯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鬱은 풀로 鬱林에서 생산되며, 鬯은 풀 이름이 아니라, 술 이름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9345

    叔姪說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숙질의 명칭에 대해 논한 글로, 자제들이 아비의 도리로써 諸父를 섬기지 않고, 부형이 자식의 도리로써 자제를 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346

    妙香僧說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를 기록한 글로, 묘향산에서 「이소경」을 읽으며 통곡하는 기이한 승려에 대해 서술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9347

    洪範策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왕에게 올린 것으로 국가 경영에 대한 견해를 밝힌 글이다. 『서경』의 홍범구주에 근거하여 교육의 진작, 붕당의 폐해를 논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글은 저자의 글상자에 들어 있던 것으로, 1746년(영조 22) 과거 응시에서 제출하려 했던 미완성의 원고이
    출처 : 유교넷
  • 359348

    丹溪書院講堂移建上樑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死六臣의 한 분인 河緯地(1387~1456)를 제사지내는 丹溪書院의 강당을 이건할 때 지은 상량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49

    河丹溪先生祠宇上樑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死六臣의 한 분인 丹溪 河緯地 선생의 祠宇를 세울 때 지은 상량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350

    伴鷗亭上樑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만
    안동에 있는 고성이씨 소유의 伴鷗亭을 세울 때 지은 상량문이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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