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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9451

    與柳學淵 28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柳達洙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묵은 병을 안고 사는 도중 갑자기 처를 잃은 벗의 슬픔을 위로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452

    答李儀仲 29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李中鳳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병들지 않아도 파리하며 아무 일 없어도 마음이 흔들려 고인들처럼 終己의 탄식이 있는 저자에게 長公의 편지 가운에 이를 위로하는 말이 있어 기쁘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453

    答李儀仲 29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李中鳳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얼마 전 며느리가 解産 달이 되어 사내아이를 얻었는데, 이 아이의 풍모가 남다르니 애정과 격려를 당부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454

    與李儀仲 30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李中鳳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朱子가 ‘欲知積善 工夫巧’라고 한 말은 오늘 형을 위해 준비한 말이듯이, 장수의 慶事는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은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여 한스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출처 : 유교넷
  • 359455

    答李儀仲 30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李中鳳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名區 勝會에 짓기 시작한 정자가 거의 완성되자, 상량문을 요청해 졸렬함을 잠시 잊고 다만 사모하는 정만 표현해 보낸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9456

    與陶山士林 3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陶山書院의 사림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1901년 陶山書院 尙德祠에 봉안된 퇴계 선생의 位版을 도둑맞고 난 뒤 高宗이 다시 위판을 내려 주자 聖上의 은혜를 감격해하며, 하늘이 斯文을 끝내 땅에 버리지 않았으니 서로 권면하여 함께 돕자고 격려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457

    答李丙彦(壽炳) 3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李壽炳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한결같은 道義로 면면히 전승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 契의 경계할 바이니 자신은 이를 가장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9458

    與李德玄(壽昇) 3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李壽昇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금년 들어 흉년이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浙東이 제일 심각하니 상소를 올려 굶주림을 면하길 바란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9459

    與金大汝(輝遠) 3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金輝遠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지난날 둘러보았던 장소는 형의 안목이 相愛하는 곳이므로 斤正을 꺼리지 않아도 되기에 點化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460

    與金大汝 3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金輝遠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영남에 의병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구차하게 자신만 보전하여 안으로 반성함에 스스로 부끄러움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9461

    答南達夫 3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南孝順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火氣가 添發하는 여름에 한 번 列禦寇처럼 바람을 타고 漁臺竹嶼 사이를 두루 돌고 싶지만 주변의 삶에 막혀 그럴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462

    與南達夫 3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南孝順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낮이 긴 山間에서 睡魔가 벗이 되는데, 表胤君이 방문해 위로가 된다고 했다. 이 아이는 비록 처음 보지만 한 번 보고 크게 쓰일 인재임을 알겠으며, 지난번에 보낸 편지를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몇 마디 적는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9463

    答柳圭範(璋植) 3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柳璋植((1875~1949)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평소 嶺南 斯文의 囑望인 큰 형이 직접 편지를 주니 다시 만나기만을 기다리며, 근래 海外에서 얻은 물건을 약간 보내니 받아주기를 청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464

    與李君伯(宙榮) 35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李宙榮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자신은 비록 衰老하지만 어머니께 昏定晨省의 정성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는 비록 어리지만 며느리는 집안일을 실재로 다 맡아 주관하니 한 번 와서 보기를 청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465

    答宗叔 3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조카가 加弁하니 기쁨이 많으며, 再從叔의 喪 또한 만사가 잘 끝났음을 전달하고 있다. 再從叔이 계시지 않아 후생들을 위로하며 집안의 기강을 바로잡기 어렵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9466

    答李應漢(中濯) 3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李中濯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지난 번 보내 준 『大學或問』 1책은 범범하게 볼 수 없으며, 이미 자신이 완독했음을 알렸다. 또한 『大學』 가운데 ‘敬’을 말한 곳이 2군데인데, 或問에서 이 뜻을 매우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59467

    答金婿(寅奎) 37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둘째 사위 金寅奎에게 답하는 편지이다. 지난날 사돈과 靈山窟에서 산수를 유람한 일과, 院府가 湖中으로 떠나서 어진 스승을 잃어버린 슬픔에 대해 위로하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468

    與金婿 37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둘째 사위 金寅奎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학문에 遊放하지 말고 천천히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469

    寄外孫李祥鎬 38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外孫 李祥鎬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딸의 병환을 근심하는 내용과, 晦翁이 獅子를 그려 손자에게 주면서 그 포효하는 기상을 본받으라 했듯이 외할아버지로서 외손자의 자질이 더욱 발양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470

    四未亭重建韻帖序 38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四未亭 중건 뒤 만든 詩帖에 붙인 序文이다. 사미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 玉川 趙德鄰(1658~1737)이 건립한 亭子이다. 기술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玉川 선생께서 1725년(영조 1) 鍾城으로 유배갔을 때 정자를 지을 결심을 하게 되었으며, 네 개의 未 자를 계기
    출처 : 유교넷
  • 359471

    浪拊遺稿序 39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친척 秉時氏의 권유로 浪拊公의 文集에 쓴 서문이다. 기술 내용은 俊才였지만 時遇를 만나지 못해 거문고 한 대로 울적함을 펴신 浪拊公의 집안 내력과, 孤邁한 우주에 韜晦를 의탁하고 剡溪의 절경 武陵桃源으로 하여금 風窓을 만들어 羲皇帝의 세상을 만들고자 浪拊로 扁額한 사
    출처 : 유교넷
  • 359472

    九玦圖序 4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中國의 역사 가운데 유배가서 더욱 이름을 날린 文人 9명의 傳記와 故事를 그림으로 그리고 난 뒤 그 앞에 쓴 序文이다. 기술 내용은 다음과 같다. 碧鷄年 겨울 영남 유생 10여 인이 絶海로 유배 갔는데, 동생 趙永基는 關西 江界府로 배정되었다. 그러자 지난날 晦齋 선
    출처 : 유교넷
  • 359473

    心溪子關東八景圖屛序 4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心溪子 關東八景圖 屛風의 序文이다. 일찍이 저자는 海東 金剛山과 더불어 關東八景의 빼어난 경치를 유람하고자 했다. 하루는 심계자가 와서 한 번 가보기를 권유했는데, 毘盧峯에서 천지가 넓음을 알고, 三日浦에서 三山의 攀推가 수중에 있음을 알고, 叢石亭 앞에서 四郞의 古
    출처 : 유교넷
  • 359474

    龍山李公壽宴序 4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靑馬年 1월 23일 表兄 龍山 李晩寅(1834∼1897)의 壽宴 후 쓴 序文이다. 이날 선생의 아들 두 명이 丈室 앞에 壽宴을 베풀고 벗들을 초대해 시를 나누었다. 나는 병으로 가지 못하고 편지로 경하했다. 서문에 기록된 내용은 용산공이 어려서부터 俊才임과, 祖父 尙
    출처 : 유교넷
  • 359475

    權君(浚)遊日月山錄序 47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權浚이 日月山을 유람하고 난 뒤에 쓴 기행문의 序文인데, 본문을 저자와 권준의 대화체로 구성하였다. 권준이 일월산을 유람한 뒤 저자에게 求言을 요청하자, 古人들이 遊山을 看書에 비유한 이유를 말해주며 權君은 독서가 가능하면서 뜻을 궁구하므로 무한한 佳境이 눈 앞에 森
    출처 : 유교넷
  • 359476

    送金判書(世基)還鄕序 48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金世基와 이별에 전송하면서 쓴 序文이다. 김세기는 벼슬살이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그의 풍채는 상서로운 난새와 상서로운 기린처럼 전배로 해를 향해 서로 바라보는 듯하다. 정자를 떠나는 날 “賢人이 지나는 땅은 산천초목 모두 精彩하니, 이 叢磧 한 굽이는 상공께서
    출처 : 유교넷
  • 359477

    送姜承宣(濩)之任安東序 49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姜濩가 안동으로 벼슬살이 하러 떠나는 날 전송하면서 쓴 序文이다. 기록된 내용은 한 나라에서 관리의 역할과 책임, 안동은 鄒魯之鄕으로 勤儉質朴한 풍속과 忠信遜弟하는 행실이 오늘에도 이르러 인현도적의 風師들이 있어 嶺南의 最高인 점, 화산 人士의 額手로 바람은 士學을
    출처 : 유교넷
  • 359478

    山水集序 50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평소 친분이 있던 李振伯‧儀仲 형제, 子益 등과 더불어 산수를 유람하고 그 감흥을 적은 시를 모아 『山水集』이라 명명했다. 기록된 내용은 평소의 지닌 歲寒의 약속, 『山水集』이라 명명하게 된 내력과 유람 일정, 이를 바탕으로 歲寒의 약속을 저버리지 말기를 당부하는 것
    출처 : 유교넷
  • 359479

    左海記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左海 李秀榮이 세운 정자인 左海亭의 記文이다. 이름을 左海라 한 것은 靑邱가 赤縣의 왼쪽에 있으며, 嶺南은 또한 靑邱의 왼쪽에 있기 때문이다. 載寧李氏들이 이곳에 산 것은 肅宗朝에 이름난 학자 存齋 李徽逸(1619~ 1672), 葛庵 李玄逸(1627~1704), 恒齋
    출처 : 유교넷
  • 359480

    沂山亭記 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沂山亭은 農山 아래 沂水 가에 있는데 일찍이 日勉齋 趙重復 公께서 공사를 시작했다가 冑孫 燾錫氏에 이르러 완공되었다. 그래서 父親의 遺志를 받들고자 亭子의 扁額을 沂山으로 정했다. 저자에게 記文을 청하자 沂의 의미가 『論語』에서 沂水에서 바람쐬고 舞虞에서 노래부르고
    출처 : 유교넷
  • 359481

    道川精舍記 5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道川은 丹邱 서쪽 30리에 있는데, 이 냇가에 저자의 벗 斯文 朴載萬이 3칸 亭子를 짓고 道川精舍라 편액 했다. 朴斯文은 일찍부터 吾道는 高遠深窅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日用彛倫의 사이에 있음을 알아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으며, 老年에 이 亭子에 의탁해 道의 근본을 탐
    출처 : 유교넷
  • 359482

    桃樊記 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지금은 眞城李氏 樊南宅으로 알려져 있는 李晩胤(1834~?)의 別莊에 대한 記文이다. 기록된 내용은 洛東江 上流 太平村 동쪽 경치 좋은 곳에 李斯文 左山翁이 복숭아 수천 그루를 심고 桃樊이라 칭하며 隱居의 뜻을 밝혔다. 나는 李斯文의 隱居가 끝내 벼슬을 바라는 마음이
    출처 : 유교넷
  • 359483

    逸愚臺記 8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全奎炳(1840∼1905)의 亭子인 逸愚臺 기문이다. 내가 剛州를 지날 무렵 마치 造物主가 藏修의 주인을 기다려 준비해둔 듯 경치 좋은 곳에 글 읽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곳은 이름을 逸愚라 명명한 나의 벗 全奎炳의 講學所였다. 나는 그 이름과 벗의 행실이 부합되지 않
    출처 : 유교넷
  • 359484

    雙溪書堂記 10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雙溪는 天登山 아래 두 갈래 물줄기가 모이는 곳에 있는데, 지난해 마침 族人 寢郞君이 찾아와 良敬公錄勳丹書 한 冊子를 보여 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雙溪에 서당을 건립하여 저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니, 건물의 화려함보다 안으로는 父兄을 섬기고 바깥에
    출처 : 유교넷
  • 359485

    磨巖集跋 1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磨巖集은 玉川 趙德麟의 孫子인 趙進道(1724∼1788) 詩文集이다. 이 책은 1898년 玄孫 秉禧 등이 편집‧간행했으며 저자가 跋文을 썼다. 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磨巖 府君께서는 玉爺 詩禮의 가정에서 태어나 圭璋 特達의 바람을 안고 淬礪를 더하여 旗鼓를 일찍
    출처 : 유교넷
  • 359486

    芹館蘭稧跋 1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芹館은 태학의 別稱이며, 저자와 같이 교유하던 이들이 성균관에서 蘭稧를 결성한 뒤 만든 시집에 쓴 跋文이다. 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泮水의 上下는 곧 嶠南 인사들이 모이는 곳이다. 鷄林의 半月, 上洲의 洛川, 宣城의 丹砂, 花山의 淸凉, 玉山의 天城, 益陽의 月
    출처 : 유교넷
  • 359487

    謹書丫溪金公行狀後 1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조선 후기 소론의 거두 金一鏡(1662∼1724)의 행장에 쓴 後記이다. 김일경의 本貫은 光山, 字는 人鑑이며, 丫溪는 自號이다. 주로 김일경의 행적과 후일의 伸寃 과정, 그리고 행장이 간행된 경위에 대해 서술했는데,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副司直으로 있을
    출처 : 유교넷
  • 359488

    謹題日影臺權公家藏書帖後 15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朝鮮 肅宗朝의 武臣 權鳳章 公의 日影臺에 갈무리 된 書帖의 後記이다. 權鳳章은 字는 致明이며 末銜은 永興長史이다. 공은 저자의 從先祖 玉川 先生과 교유가 있었으며, 先祖 壺峯 부군께서도 당시 霜臺에서 司諫의 직분으로 공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후일 후손들이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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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489

    書水月逸稿後 1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저자의 從先祖 水月公 趙聖擧의 遺稿에 쓴 後記이다. 기록된 내용은 유고를 간행하게 된 경위, 공의 효성과 남한산성 전투, 사후의 표창 과정 등이 주를 이루는데, 이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하루는 우리 종족 彦斌이 찾아와 수월공의 遺文을 겨우 수습해보니 너무
    출처 : 유교넷
  • 359490

    題李君(南羽)海遊錄後 18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內從孫 李南羽가 동해를 유람하고 난 뒤 쓴 『海遊錄』 題號에 대한 後記이다. 李南羽는 어려서부터 龍山 李晩寅으로부터 爲己之學을 익혀 견해가 출중했으며, 저자에게 唐宋八代家의 한 사람인 韓愈의 글을 배웠다. 그러다가 문득 동해를 유람할 뜻을 말하니, 저자는 文勢가 웅건
    출처 : 유교넷
  • 359491

    題張孝子(周浩)行錄後 19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孝子 張周浩의 行錄 題號의 後記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루는 仙槎 張君이 大人 孝子公의 養親 顚末을 가져와 문자로 기려주길 청했다. 그 속에는 다람쥐가 눈 속에서 밤을 모아 온 것, 얼음 속에서 잉어가 스스로 뛰어 나온 것 등 신이한 일들이 많았다. 이는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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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492

    謹題三秀堂古藏玉川先生手墨後 20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三秀堂에 소장된 從先祖 玉川 趙德鄰의 水墨의 題號에 대한 後記이다. 하루는 宗叔 休容氏가 先生의 手書로 記一‧銘一‧書六으로 배접하여 하나의 帖을 완성해 나에게 보여주고 그 첫 면에 제목해 주길 요청했다. 한사코 사양했지만 그 뜻이 尊祖重宗의 의로움에서 나와 후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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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493

    吾山堂重建上樑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오산당은 靑邱 500년의 名敎이신 退溪 선생을 羹墻의 추모를 더하기 위해 吾山堂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이곳을 1896년에 결성된 청량의진이 의병 항쟁의 본거지로 삼자 일본군이 공격하여 불을 질러 버려 1901년 유림에 의하여 다시 중건되고 나서 쓴 上樑文이다. 기록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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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494

    滄洲精舍移建霖山上樑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滄洲精舍는 저자의 從先祖 玉川 趙德鄰이 후학 양성을 위해 召羅에 건립한 서당이다. 이 글은 滄洲精舍를 옮겨 현판을 霖山書堂으로 고치고 난 뒤에 쓴 上樑文이다. 上樑文의 주요 내용은 옥천공의 품행을 서술하고, 英祖朝에 올렸던 乙巳 十條 上疏. 甲寅 上疏의 내용과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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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495

    月潭軒正寢重建上樑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月潭軒은 저자의 傍先祖 沙月 趙任(1573 ~1644)의 軒이며, 이 글은 月潭軒의 正寢을 중건하고 난 뒤 쓴 上樑文이다. 기록된 내용은 壬辰倭亂과 丁卯胡亂에서의 公의 智略, 仁祖 南漢山城 항복 후 고향으로 은거, 월담헌의 풍광과 諸人들의 도움을 받아 월담헌을 건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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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496

    藥泉亭上樑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藥泉亭은 조선 純祖 때의 學者 藥泉 琴熙星(1778~?)의 亭子이며, 이 글은 藥泉亭 중건 이후의 上樑文이다. 약천정은 처음 건립 이후 퇴락한 것을 후손들이 중건했는데, 그 연도는 밝혀져 있지 않다. 기록 내용은 약천정의 위치와 勝景을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했으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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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497

    孝子贈秘書丞仰慕齋金公旌閭閣上樑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효자로 이름났으며 秘書丞에 追贈된 仰慕齋 金公의 旌閭閣 上樑文이다. 金公의 이름과 본관 등은 밝혀져 있지 않으며,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행을 주로 서술했다. 또한 祭祀에는 반드시 魚肉을 갖추었고, 호랑이도 지켜주는 효성이 있어 향리 선비들이 이를 조정에 알리려고 노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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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498

    八代祖考壺峯府君墓所竪碣時告由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8代祖 壺峯 趙德純의 墓에 碣石을 세울 때 告由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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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499

    玉川先生復官爵焚黃時告由文(代本孫作) 3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先祖 玉川 趙德鄰(1658~1737)이 관작을 회복하고 난 뒤 사당 焚黃時 本孫을 대신해서 지은 告由文이다. 玉川公의 행적과 복관되기까지의 전말을 소상하게 서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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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500

    朴丈(致麟)誄辭(幷小序) 3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
    朴致麟이 죽고 난 뒤 쓴 誄文이며, 기록하게 된 경위를 밝힌 序文을 병기했다. 서문에서는 지난 봄 공이 覆試를 위해 산중으로 나를 방문하니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 음식 대접해 보냈다. 數旬이 되지 않아 蘭報가 들렸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柳車가 내 문 앞을 지나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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