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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君(思永)哀辭 3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權思永의 죽음에 대한 哀辭이다. 서문에 따르면 龍山 李公의 권유로 같은 고을에 사는 晦谷 權先生은 後名이 思永이고, 字는 誠彦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지취가 넓어 장차 登途할 형상이 있었는데, 湖西에서 錦江 鷄龍山을 오르내리며 지취를 넓혔고, 고인의 책읽기를 늘 열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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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君(錫耆)哀辭 35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吳錫耆의 죽음을 追悼하는 哀辭이다. 오석기는 고을의 秀才인데, 나는 그 백부 謙齋翁과 더불어 좋은 친구였다. 늘 鄕社에서 考藝하는 자리엔 그 진취가 평범하지 않음을 알았으니, 그 행동은 법도 있는 집안의 儀則이었다. 時文을 읽게 하면 소리가 낭랑했으며, 집안에서는 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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族弟鉉老(奎乙)哀辭 3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族弟 奎乙의 죽음을 추도하는 哀辭이다. 족제는 재주와 식견이 우리들 중 白眉여서 一家 門戶의 囑望만은 아니었다. 나를 따라 時文의 露脈을 물으니, 한 단서를 알려주면 推類함이 무궁했다. 어려서 孤兒였기에 成就에 방해가 되었으나 그러나 맹렬히 自省했다. 하지만 40살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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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雲山李先生文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 영남의 유학자이자 退溪의 10世孫인 雲山 李彙載(1795~1875)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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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耻庵金公文 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 耻庵 金碩奎(1826∼1883)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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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肯庵李公(敦禹)文(代人作) 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이자 大山 李象靖(1711∼1781)의 손자인 肯庵 李敦禹(1807~1884)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대신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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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謙庵柳先生文(遷厝時) 5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중기 유학자이며 西厓 柳成龍(1542~ 1607)의 伯兄인 謙菴 柳雲龍(1539~1601)의 무덤을 移葬하고 난 뒤에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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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左海李先生 5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 載寧李氏를 대표하는 유학자 左海 李秀榮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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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溪堂柳先生文 7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이자 저자의 스승인 溪堂 柳疇睦(1813∼1872)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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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三山柳先生文(遷厝時) 8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三山 柳正源(1703 ~1761)의 무덤을 移葬하고 난 뒤에 지은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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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柳姨兄(元植)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이자 저자의 姨從兄 柳元植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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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沂墅金公(驥善)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 沂墅 金驥善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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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吳穉淵(世潤)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이자 저자의 石右 穉淵 吳世潤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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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表從弟金學汝(元鍾)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이자 저자의 表從弟 金元鍾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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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表兄龍山李公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이자 저자의 表兄인 龍山 李晩寅(1834∼1897)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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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權修撰(載喆)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이자 大拙齋 權斗應(1656 ~l732)의 후손인 致雲 權載喆(1826~1884)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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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伯舅李公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후기의 학자이며 丈人인 眞城 李彙明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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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外舅通德郞金公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外祖父인 通德郞 金輝京(1806∼1874)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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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黃臬李公(彙廷)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 黃臬 李彙廷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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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吳丈(正敎)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 吳正敎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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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表從叔李公(進榮)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이자 定齋 柳致明(1777 ~1861)의 문인인 墨囈 李進榮(1827∼1902)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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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參奉(中慶)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이자 退溪의 후손인 李中慶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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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應粹(圭鍾)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 李圭鍾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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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李婿(中學)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이자 사위인 李中學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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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吳穉陽(世益)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인 吳世益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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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季舅進士李公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이자 외삼촌인 李公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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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大父木澗公(淵復)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族大父인 趙淵復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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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進士族祖(秉碩)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族祖인 趙秉碩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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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祖(秉衡)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族祖인 趙秉衡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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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祖霖崗公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族祖인 霖崗公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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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再從大父處士公(秉重)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저자의 再從大父인 趙秉重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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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族叔通政公(垕容)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族叔인 趙垕容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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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再從叔(蓍容)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再從叔인 趙蓍容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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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再從叔(寅容)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再從叔인 趙寅容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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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亡女金氏婦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金寅奎에게 시집간 둘째 딸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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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仲弟(命基)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조선 말기의 학자이자 저자의 둘째 동생인 趙命基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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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姑母李恭人文 40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李氏에게 시집간 王姑母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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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舍妹李孺人文 4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막내 여동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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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亡女李氏婦文 42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李中學에게 시집간 長女의 죽음을 애도하는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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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政大夫僉知中樞府事趙公墓碣銘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저자의 族祖인 趙廷瑞의 墓碣銘이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趙公은 父兄을 근본으로 하고, 水月翁의 충효와 靈隱公의 학행을 본받아 손수 天倫과 知己의 사이에 실천했다. 公의 諱는 廷瑞, 初諱는 廷瑜, 字는 美叔이며 漢陽趙氏로 系出되었다. 高祖의 諱는 亨琬으로 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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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士趙公墓碣銘 3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趙星臣의 墓碣銘이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趙公은 諱가 星臣, 字가 宗鎭, 號는 恬窩이며 漢陽人이다. 이하 始祖 諱 之壽부터 高祖父 諱 까지의 略史를 서술했다. 曾祖의 諱는 是璧이며 號는 三巖이다. 祖의 諱 謙圭로 文望이 있었다. 考의 諱는 尙純이며 어머니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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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德郞姜公壙記 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통덕랑을 지낸 姜鶴元의 壙記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52세로 죽은 공은 필시 化翁에게 有感이 있었을 것이다. 죽은 지 다음 달에 尺谷 甲坐之原에 장례지냈다. 尊父 承宣公께서 나에게 편지를 보내 그 원한을 위로하고 아버지의 實行을 알게 하고자 했다. 나는 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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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石說 7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學述이 笑石으로 自號하고 나에게 博笑로 권유하자 이에 대한 연유와 내력을 문답 형식으로 기록한 글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벗이 笑로 自號했지만 반드시 石을 둔 이유를 묻자, 바위에 한 번 올라 바라보면 이른바 可懼한 것은 怡然히 내려가고 可怒한 것은 煥然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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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君用賓(國炳)字叙 9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南用賓의 字에 쓴 叙文이다. 南君은 나라의 기강이 되고자 자를 國炳으로 정하고 난 뒤 한 마디를 요청하니 다음과 같이 말해 주었다. 사람이 이름을 아름답게 함에 다만 이름만 아름답게 責實할 수 없으면 이 이름은 사람을 아름답게 할 수 없다. 그러니 반드시 쌓기를 덕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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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遊錄 9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己亥年(1899년) 4월 14일부터 5월 27일까지 저자와 벗 數人이 함께 영남의 靑松‧慶州‧浦項 등지를 유람하고 난 뒤에 적은 기행문이다. 주 내용은 해당 고을에서 만났던 사람, 고을의 승경과 史蹟, 감상과 詩作 활동 등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조선 말기 영남 북동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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輓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金鎭麒, 柳蘭榮, 安昌烈, 柳膺睦, 金世洛, 朴永熹, 金鎬相, 李晩煃, 金, 李壽嵒, 李壽岳, 李中轍, 柳淵楫, 李善求, 金益洛, 柳晦植, 金紹洛, 洪洛鍾, 柳廣鎬, 李中洙, 李國鎬, 金翊奎, 安澮, 柳東濬, 權翰模, 吳承敎, 申相箕, 南鎭元, 金鳳錫, 鄭胤永, 吳錫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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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姜濩, 柳必永, 金魯憲, 李壽馨, 姜澮, 南孝順, 李中洙, 金輝遠, 李忠鎬, 柳轍薰, 朴鎬九, 女婿 姜輔昌, 女婿 金寅奎, 外孫 李祥鎬, 族從 秉禧, 族從 萬容, 族從 振容, 再從叔 鎭容, 三從弟 相基 등이 저자의 죽음을 애도하여 쓴 祭文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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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事 35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아들 趙寅錫이 쓴 저자의 행적을 기록한 遺事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府君의 姓은 趙氏, 諱는 承基, 字는 國賢, 號는 南洲, 漢陽人이다. 이후 始祖 諱 之壽부터 佐命으로 右相에 제수된 涓에 이르는 家系를 서술했다. 저자의 曾祖는 彦儒, 號는 心齋이며, 祖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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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40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外孫 眞城 李祥鎬가 쓴 行狀이다. 내용은 趙寅錫의 遺事와 大同小異하므로 특징적인 면만 기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저자의 諱는 承基, 字는 國賢, 號는 南洲, 漢陽趙氏이다. 저자는 일찍 車業에 뜻을 두었지만 세도와 맞지 않아 결국 다시는 영달에 뜻을 두지 않았다. 先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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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 46 / 기록자료>고도서 / 조승기義城 金衡七(1874∼1959)이 쓴 墓碣과 銘文이다. 내용은 李祥鎬가 쓴 行狀과 대동소이하므로 특징적인 기술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저자의 諱는 承基, 字는 國賢, 號는 南洲, 漢陽趙氏이다. 저자는 根天의 性品이 독실하여 戊辰年 先公과 저자가 함께 병이 들자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