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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商兒 4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어린나이에 객지에 나가서 공부하는 어려움을 말하면서 공부란 철저하게 해야 하고 글자도 수시로 익히며 조금도 태만한 기색이 없이 해야 함을 역설하는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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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商兒輩 4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선비의 本分이란 뜻을 굳게 세워 공부에 邁進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凡人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면서 아들에게 勉勵할 것을 권하는 내용의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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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商兒 4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객지에서 지역을 이동할 때 조심해야 함과 초연하게 처신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精氣를 마음속에 항상 가져서 자신을 지키고 일을 해야 함을 아울러 강조하는 내용의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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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輩 4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글자를 쓸 때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역설한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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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廣兒 4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자기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글씨쓰기와 독서에 항상 奮發하고 힘쓰기를 父兄의 곁에 있는 것처럼 하여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는 내용의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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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廣兒 4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날마다 부지런히 독서하고 깊이 사색하면서 조금도 마음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아무 소용이 없는 時文의 작성에 조금도 마음을 쓰지 말라는 당부를 담은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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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 4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무엇보다 소중한 자신의 몸을 잘 관리해야 함과 先君의 부탁을 잘 받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자신을 본받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라는 당부를 담은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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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 4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정성이 부족하면서 억지로 무슨 일을 하게 되면 병이 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는 편지 내용에 대해 曾子가 7일간 음식을 먹지 않은 사실과 從兄 弘庵의 省墓 고사를 인용하여 誠心과 志氣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자신의 견해를 분석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한 편지이다. 아들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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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兒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마음에 분발함이 있으면 기운이 강해지고 분발함이 없으면 기운이 나태해지니 항상 분발하여 聖人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만약 實心을 가지고 분발하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이룩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점을 철저히 자신에게 살펴야 한다고 당부하는 내용의 편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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起思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天地의 德이 생겨남과 계승에 대한 이론 기술 ∙生理와 良心에 관해 기술 ∙命과 情에 대한 기술 ∙心과 氣質에 관한 기술 ∙朱子의 感興詩에 대한 기술 ∙氣와 情과 中節에 대해 기술 ∙氣에 대한 언급 ∙心과 氣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 ∙心의 存亡과 氣의 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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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信說贈趙學仲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忠信에 대해 상세하게 논의하여 조학중에게 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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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穉琢(璧)字辭 2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趙友 洛應이 그 아들에게 璧이라 이름을 지어 주고 字를 穉琢이라 했는데 玉이 가진 속성을 말하면서 옥을 다듬어야 옥의 진가가 드러나기 때문에 穉琢이라 字를 짓고 穉琢에게 힘쓸 것을 당부하는 字辭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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衡兒冠日書示 2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사람의 일은 천만가지이나 한마디로 요약하면 孝悌忠順이고 이것을 실행하는 것은 德이다. 옛날 商나라의 阿衡이 一德으로 임금에게 고하였다. 그러므로 너에게 衡美라 이름을 지으니 그 뜻이 阿衡에게 아름다움을 모은다는 뜻이다. 이점을 염두에 두고 一心으로 여러 가지 일을 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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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誄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浩然하게 살다가 浩然하게 돌아간다. 生涯는 두어 칸 가난한 집이요 心事는 萬里의 푸른 하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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涑水書堂記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운봉 남쪽 40리 속수촌에 있는 속수서당은 친구 柳景範을 위해 月城 李光彦 甫가 同社者를 唱導하여 지은 서당이다. 이 서당은 송나라 司馬光을 사모하여 지었는데 비록 그 사람을 볼 수가 없고 그 땅을 볼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정성이다. 정성은 古今과 遠近을 초월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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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鶴書社記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大遯山 아래에 平海 黃在瓚이 자질들의 공부할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집 뒤의 땅에 3칸의 집을 짓고 동쪽의 鶴巢峯과 서쪽의 靑雲峯 이름을 따서 雲鶴書社라 이름을 지었다.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無心이고 九霄에 소리가 통하게 하는 것은 自然이니 無心하기 때문에 은택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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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貞平公鶴巖徐先生遺錄後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나무의 기운은 열매에 전해지고 사람의 기운은 손자에게 전해지듯이 훌륭한 조상의 후예에서는 훌륭한 자손이 나온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능히 항거하는 상소를 올리고 이로 인해 십여 년간 유배를 가기도 했던 貞平公 鶴巖 徐先生의 생전 기록을 공의 14세손 活이 遺錄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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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誠集覽小識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先考가 저자에게 冠禮를 행할 때 손수 그려준 그림이 있는데 右圖에 仁을 따로 부치고 左圖에 道를 따로 부치고 또 下學明誠圖를 演繹하여 조목을 만드니 明善과 誠身과 立志와 存養과 言學이다. 여기에 聖謨와 賢訓을 합쳐 7가지 조목으로 편집하여 2책으로 만들고 매편 아래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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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書外王考手書晦庵疏柬卷末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外王考의 팔순 후반에 쓴 遺墨과 외삼촌의 필적이 담긴 책에 쓴 발문으로 책의 내용과 발간 경위 등이 나타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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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徐淸如永慕錄後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내 벗인 徐淸如가 일찍이 고아가 되어 평소 가정에서 보고 들은 약간의 내용을 책으로 묶어 「永慕錄」이라 하고 다른 날에 조상을 사모하는 것으로 삼으려 했다. 그런데 사람이 사모하는 것에는 어려서는 부모를, 장성해서는 미녀를, 늙어서는 얻는 것을 사모하는 등 세 가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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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祖僉樞公所藏心經卷末識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天官郞 金士純이 준 『心經』한 질은 저자의 선조 僉樞公이 자손에게 물려준 책이다. 僉樞公의 자손이 된 사람들은 鶴峯 선생이 준 의미를 저버리지 말고 잘 기억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적은 발문이다. 아울러 이 책에 쓰인 필적이 僉樞公의 필적과 같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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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府君遺集後識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先考가 돌아가시고 斯文 徐爾亮이 저자의 子姪들에게 선조를 잘 받들기 위해서 기록을 보존해야한다고 역설하였다. 그 재종질 涑이 그 뜻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었다. 이에 집안에 보존된 수백 판의 문자를 수습하고 여러 가지 글을 덧붙여 4권 8편으로 책을 만들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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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大山李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선생의 도덕과 선생의 학문이 위대함을 말하고 저자의 선고가 明誠冊을 편집할 때 도움을 준 사실을 아울러 표현함으로써 선생을 애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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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金川沙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저자 자신과 사적 인연이 있는 川沙 선생은 淸粹한 자질과 灑落한 운치로 젊어서는 배움을 좋아하였고 늙어서는 순수하고 노숙했다. 斯文의 맥락을 잇고 吾黨의 법식이 되었다. 생전에 배우지도 못했고 초상에 문상도 못하였다. 선생의 서거로 우리 儒道의 한 가닥 희망이 사라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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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趙晩谷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玉川의 손자로 훌륭한 자질을 타고 났으며 문사에 특히 뛰어났다. 형제간에 부지런히 노력하여 집안 전통을 잘 계승했다. 효우가 뛰어나고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냈다. 만년에 자연에 은거하며 세속적 가치를 꾀하지 아니하고 性情을 陶冶하며 天機를 보존하였다. 저자도 공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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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柳丈(世源) 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이주한 안동의 터전에 대대로 인물을 배출한 유씨 가문에서 淸粹한 자질을 타고난 어르신이 생전에 저자의 선고와 교분이 두터웠는데 이제 별세함에 이르러 애통한 심정을 담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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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徐舜輔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우리 先考에게 배우러 온 달성의 명문가의 후예로 뛰어난 풍모에 일찍 詞華가 盛大하였다. 공이 선고를 부친처럼 여김에 저자도 또한 공을 형으로 섬기었다. 이렇게 잘 지낸 공이었는데 별세함에 애통한 심정을 담은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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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申大遠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완벽하고 淸粹한 자질에다 端雅하고 정성스러운 형상과 순후하고 민첩한 성품을 지닌 法士風의 인물로 梧溪의 문하에서 배웠다. 문장은 濂洛關閩의 遺響을 나타내었고 학업은 鄕黨의 師範이 되었다. 55년을 살면서 한 번도 어버이 마음을 어김이 없었고 한 번도 鄕黨에서 지탄받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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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徐伯溫(涑)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명문가의 후예로 빼어난 자질을 지녔으며 훌륭한 교육을 받아 젊어서 出衆했으나 중년에 참혹한 재앙을 당하고 어버이의 병환에 侍病을 하다가 병까지 얻어서 별세한 10세 연하의 서백온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나타낸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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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甥姪李善長(元祥)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뛰어난 능력으로 명문가에서 태어난 생질이 살아 있었다면 크게는 국왕을 보좌할 것이고 다음으로 鄕黨의 領袖도 될 수 있었다. 朝野의 명망을 한 몸에 받고 先正의 어진 자손이 될 수 있으며 一動一靜이 법도에 맞았고 一語一黙이 義利에 분명했다. 그러나 운명은 어찌할 수 없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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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柳景範 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저자보다 26세나 어리지만 造詣는 결코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으며 나에게 듣지 못한 바를 듣게 해주고 힘쓰지 못한 바를 힘쓰게 해준 方谷의 柳景範은 생전에 백련암 절에서 학문적 토론을 통한 교유를 하면서 친하게 지냈으나 이제 그의 죽음을 맞아 가눌 길 없는 애통한 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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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黃生㶅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비록 출신은 微賤하나 마음을 가짐과 制行은 옛날 군자나 士大夫가 능히 미칠 바가 못 될 정도로 훌륭했다. 학문에 힘써서 우리 선고와 川沙 선생에게 배웠고 후생 가운데 가장 촉망받는 柳洛文과 종유하며 학문적으로 많은 성취를 이루었고 저자와도 깊은 교유관계를 가졌다. 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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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從兄弦庵公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종형의 죽음에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을 몇 가지 항목으로 상세하게 열거하고 생전에 학문에 힘쓴 사실을 아울러 말하고 있다. 특히 湖上에서 배울 때 朱子의 책 가운데 자기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말을 편집해서 ‘勿失編’을 만들기도 하였다. 노인 모시기에 몸소 최선을 다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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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兒絅美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우리 가문을 번성케 할 운명을 지고 있던 아들 絅美가 애비의 인자하지 못함으로 인해 병이 나도 미리 손을 쓰지 못하여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自責感이 잘 드러난 제문이다. 그러나 아들은 생전에 鬪病生活을 하면서도 손에 책을 들고 눈에서 책을 떼지 않았으며 일상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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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葬日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溫恭한 자질로 한 번도 부모의 마음을 어기지 아니하고 여러 번 아파도 아픈 기색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 8‧9세 때에 물가에 놀러 나갔다가 모친의 호된 꾸지람을 받았으나 의연하게 대처하였다. 공부를 할 때에 재주가 뛰어나지는 않았으나 열심히 노력하여 성취한 바가 많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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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兒商美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훌륭한 자질과 준수한 용모로 부모를 수고롭게 하지 않고 학문에 힘써 문예를 성취하고 선비의 본분에도 충실하였다. 손수 「延平問答」과 「南塘夙夜箴」을 베끼고 『周易』의 繫辭 상하의 大原을 탐구하고 『篁墩附註』의 節度를 준수하였으며 과거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아니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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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兒畢庚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총명한 자질과 비범한 步武로 頭角을 나타내며 大義를 탐구하려는 의지를 지녔으나 병든 지 이미 3‧4년이 되었다. 그렇지만 손에서 붓을 놓지 않고 지은 文辭가 보통이 아니었으며 글씨도 잘 썼는데 특히 趙學士가 쓴 赤壁賦를 묘사한 것은 絶筆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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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靈縣監鄭公墓碣銘 1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東萊 鄭載坤이 그의 族大父 舜綱이 쓴 편지를 가지고 와서 부탁한 묘갈명은 휘 길의 묘갈명이다. 공은 1408년(태종 8)에 문과에 올라 고령현감을 지냈고 배위는 청주한씨로 묘소는 현의 남쪽 백자동에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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僉知中樞府事南山徐公行狀 1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공의 휘는 昌이요, 자는 永叔이며, 호는 南山이니 고려 판도판서 휘 진이 곧 그의 시조이다. 공의 조부 때에 처음으로 靑松으로 이주하였고 1526년(중종 21)에 安德縣 世第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고아가 되었지만 부지런히 배워 문사가 성대하였으나 有司에게 뜻을 얻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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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父僉樞菊軒府君遺事 1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종백씨 弦庵公이 정미년에 별세하고 무신년에 백부 부군이 또 별세하시고 이미 26년이 지난 어느 날 종질 恒美가 저자에게 와서 자기 王考의 事蹟이 湮滅되게 둘 수 없다고 강력하게 이치에 맞도록 말하기에 백부의 遺事를 쓰게 되었다. 부군의 휘는 淳이요, 자는 汝和요, 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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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成均生員府君遺事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부군의 휘는 濂이요, 자는 希元이요, 호는 厚庵이며, 또 다른 호는 蕉皤로 1701년(숙종 27) 10월 23일에 安德縣 明堂村에서 출생하여 1733년(영조 9)에 國子에 선발되었고 1781년(정조 5) 3월 26일에 청송부 동쪽 上坪里 慕洞의 寓居에서 향년 81세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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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저자의 휘는 以復이요, 자는 无悔며, 성은 권씨요, 호는 晩洲이다. 저자는 1740년(영조 16) 5월 초하루에 安德里 世第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총명함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서 선공이 자제를 가르침에 儒學을 독실하게 하라고 함에 저자가 삼가 그 가르침을 굳게 지켰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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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3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이복蘇湖의 晩修齋에서 선생을 뵈었는데 그때 이미 노인이었지만 용모와 거지는 한결같이 법도를 따르고 언어는 가볍게 발설한 것이 아니며 손과 발은 가볍게 움직이지 아니하여 잠깐 보니 마치 3일 전에 시집온 신부 모양과 같았으나 굳세고 방정하며 곧고 개결한 모습이 겉으로 나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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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고집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송고집(松臯集) 松臯 權靖夏의 시문집. 4권 2책. 목판본. 이 문집은 송고의 조카 權景淵과 문인 權錫夏 등이 권정하의 유고가 간행되지 못한 채 유실되어 가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유문을 수습‧정리하여 1900년(고종 38)에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卷1에는 詩 73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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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重陽日伏次松巖先祖集中韻, 病中謾詠, 過山城有感, 陵齋月夜吟示聯槧諸益二首, 閑中記事, 野翁亭敬次退溪先生韻, 靑院會日金應一(驪洛)贈韻和呈, 次張兵使寅植俯索韻, 次李聖從(吾周)林居韻, 又, 至日吟示朴纘卿(承祖), 北洞書堂次立春日講席韻, 甲午立春日書懷, 養眞庵伏次退溪先生韻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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請復河監司(澹)本職上言(代本孫作)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死六臣의 한 사람인 河緯地의 부친 河澹의 본직을 회복시켜 주기를 청하는 상소문으로 하위지의 本孫을 대신하여 지은 글이다. 계유정난 당시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킨 하위지로 인해 부친 河澹를 비롯하여 형제 3명(河綱地‧河紹地‧河紀地)과 두 아들(河琥‧河珀)이 죽음을 당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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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定齋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定齋 柳致明에게 올린 편지이다. 공부하는 순서는 이미 가르침을 받아 터득했으나 독서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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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定齋先生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定齋 柳致明에게 올린 편지이다. 상례나 제사 등 의심나는 몇 가지 問目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달라는 내용이다. 물음에 대한 유치명의 답변도 함께 실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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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定齋先生 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定齋 柳致明에게 올린 편지이다. 모친의 小祥日이 다가오는데, 국상을 당하였으니 소상을 치러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이에 유치명은 因山日이 지나고 나서 소상을 치르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답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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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定齋先生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定齋 柳致明에게 올린 편지이다. 絞帶를 착용할 때 남편이 葛을 입으면 아내가 布를 입어도 되는지를 묻고 있다. 이에 유치명은 합당하다고 답하였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