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통합검색

멀티필터

기본_발신자_성별
더보기 +
기본_발신자_수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기본_수신자_발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 통합검색 / 전체
: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9701

    上定齋先生 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定齋 柳致明에게 올린 편지이다. 權定(1353 ~1411)에 대한 사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가르침을 달라는 내용이다. 權定의 사위인 禹洪鈞은 조선조의 기록에서는 대사헌의 직책을 하지 않았다고 되어 있고, 『栢潭集』에는 조선조에서 벼슬을 역임했다고 현토를 달고 있
    출처 : 유교넷
  • 359702

    上定齋先生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定齋 柳致明에게 올린 편지이다. 어머니의 小祥을 겨우 마쳤는데, 갑자기 嗣子가 夭折했으니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03

    上素隱金丈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素隱 金鎭龜(1779~1851)에게 올린 편지이다. 유생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鏡光書院의 규율에 대해 만족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04

    答江棲李丈 1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江棲 李海膺(1783~1871)에게 답한 편지이다. 두 번씩이나 편지를 보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05

    與朴進士(宗垕)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進士 朴宗垕(1792~1864)에게 보낸 편지이다. 작년 여름 鳳停寺에 모여 次韻한 시를 책으로 엮어 보내니 살펴봐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06

    答鄭箕疇文好(民秉)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鄭民秉(1800~1882)에게 답한 편지이다. 鄭象履(1774∼1848)의 문집인 『制庵集』에 실려 있는 내용을 언급하면서, 깨우쳐 주심에 감사해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07

    李同樞景涵(瓚) 1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同知中樞府事 李瓚에게 답한 편지이다. 보내주신 한 편의 시는 현악기와 관악기를 대신할 만큼 매우 청신하다고 하면서, 野翁 先祖가 지은 ‘贈伴鷗翁’에 차운해서 시를 지어 보내니 살펴봐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08

    與金護軍(鎭林)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護軍 金鎭林에게 보낸 편지이다. 講會 때 지은 시를 보내니 살펴봐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09

    與李肯庵(敦禹)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친구인 肯庵 李敦禹에게 보낸 편지이다. 靑城書院에서의 만남은 매우 흡족했으며, 道溪書院의 일은 臨川書院에서 道會를 개최할 때 정해질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 또 남편이 아내를 위해 小祥을 치르는 것 등에 대해 묻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10

    與頤齋族弟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弟 頤齋 權璉夏에게 보낸 편지이다. 疏에서 爬錄하자는 논의는 지극히 타당하지만 화가 미치게 될까 염려스럽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11

    與頤齋族弟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弟 頤齋 權璉夏에게 보낸 편지이다. 수백 명의 碩學들과 자리를 함께 한 것은 매우 뜻 깊었음을 전하면서 지난번 강회 때 지은 시를 보내니 살펴보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12

    答金贊玉(瓚圭) 1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金瓚圭에게 답한 편지이다. 퇴계 선생의 말을 예로 들어 喪制는 함부로 변화할 수 없으니 입을 다물고 근신하자는 내용이다. 아울러 喪制 때 여러 賢人들이 언급한 부분을 함께 기록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13

    答金贊玉 2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金瓚圭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든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중용』의 ‘費隱’에 대한 설을 잘 분석하고 있음을 칭찬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14

    與朴參判聖源(齊淵)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朴齊淵에게 답한 편지이다. 嫡孫이 죽어 자식이 없으면 次孫이 대신 持重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문답한 편지를 통해 가능하지 않음을 알았지만, 周除한 뒤에 상복을 어떻게 입어야 할 것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어봐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15

    與金西山(興洛) 2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西山 金興洛에게 보낸 편지이다. 瓢陰 權錫揆의 행장을 부탁 받은 지 겨우 몇 해 만에 완성했으니 살펴봐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16

    與金西山 2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金興洛에게 보낸 편지이다. 喪禮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17

    答權士搢(大紳)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權大紳에게 답한 편지이다. 人心道心說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18

    答族叔(必悳)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叔 權必悳에게 답한 편지이다. 송암 권호문의 諡號를 청함에 있어 士林의 의견을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하면 도리어 좋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19

    答族叔(必奎) 2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叔 權必奎에게 답한 편지이다. 질문해온 喪禮에 대해 密菴 李栽와 大山 李象靖이 언급한 부분을 근거로 답변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20

    答族弟(淵浩)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弟 權淵浩에게 답한 편지이다. 청탁받은 글에 대해, 늙고 능력도 없는 처지라서 억지로 지어서 보낸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21

    與張兵使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兵使 張寅植에게 보낸 편지이다. 四端七情과 理氣說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22

    答李章彦(宣燦)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李宣燦에게 답한 편지이다. 편지로만 의견을 주고받을 것이 아니라 직접 만나서 서로의 의견을 講論해 보자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23

    答邊聲仲(應均)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邊應均에게 답한 편지이다. 禫祭를 지냈다고 해서 갑자기 吉冠을 쓰고 吉服을 입는다는 것은 心喪하는 방법에서 지나치다는 말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24

    答族孫(相玉)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孫 權相玉에게 답한 편지이다. 『중용』의 내용을 잘못 이해한 부분을 지적하면서 惟精惟一은 誠意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25

    答邊國衡(台均)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邊台均에게 답한 편지이다. 『중용』의 의심나는 구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곳을 알려 달라는 내용이다. 별지로 『중용』의 ‘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26

    秦參奉(弘智)墓道安石告由文(代本孫作)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秦弘智의 墓道에 돌을 안치할 때 지은 고유문으로, 본손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20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묘도를 마련했으니 편안히 永眠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27

    靑城書院埋位版告由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靑城書院의 位版을 묻으면서 지은 고유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28

    三棄齋鄭公(鍹)墓立石告由文(代本孫作)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鄭鍹(1634~1717)의 무덤에 비석을 세우면서 지은 고유문으로 본손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정선의 본관은 淸州, 자는 器彦, 호는 三棄齋이다. 佺의 손자이며, 基績의 아들이다. 禮書에 매우 밝아 『禮儀補遺』 3책을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359729

    本生十代祖妣宜人墓道安石告由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저자의 10代 祖妣의 墓道에 돌을 安置할 때 지은 고유문이다. 경제력이 미약한 탓에 그동안 행하지 못하다가 30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묘도에 돌을 깔았으니 편안히 永眠하라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30

    祭先祖松巖先生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先祖인 松巖 權好文의 무덤을 이장할 때 지은 제문이다. 무덤을 청성산 아래 鳶魚軒으로 옮기게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31

    祭定齋先生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스승인 정재 유치명의 도학적 연원과 학문의 우월성을 기리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32

    祭鄭箕疇文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箕疇 鄭民秉이 상주 낙동에서 진양정씨의 뿌리를 내려 후학들에게 학문의 근원을 열어 주고 유학을 발전시킨 공덕을 기리기 위한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33

    祭不知翁李丈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不知翁 李時養을 위한 제문이다. 평생 聞達을 구하지 않고 남이 알까봐 황폐한 곳에서 숨어 지내면서 性情에서 우러난 天機詩만 지은 천성적인 재능을 기리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34

    祭李肯庵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肯庵 李敦禹를 위한 제문이다. 대산 이상정의 현손이며 정재 유치명의 제자로서, 가학의 연원을 잇고 학문의 기틀을 마련하여 후학들을 창도한 공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35

    祭金丈(在貞)文 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金在貞을 위한 제문이다. 의성김씨 가문에서 태어나 詩禮로써 학문을 잇고 孝友를 실천한 덕을 기리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36

    祭族叔(玉必)文 4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叔 權玉必이 생전에 자식을 먼저 보낸 애통한 심정을 달래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37

    祭族姪仲心文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侄 權秉淵이 뛰어난 재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일찍 숨을 거둔 것을 안타까워하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38

    祭族叔德祖(夏中)文 4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叔 權夏中을 위한 제문이다. 총명한 재주와 박학한 학문적 역량 때문에 서로 의지하면서 지냈는데, 이제 40의 나이로 세상을 뜨니 매우 안타깝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39

    祭族祖癡窩公(喆孚)文 4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祖 癡窩 權喆孚를 위한 제문이다. 남들과 사귐에 있어 文과 道로써 의심나는 곳을 늘 명쾌하게 해소해주던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40

    祭柳寧老(楨鎭)文 4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全州柳氏 집안을 진작시켰던 柳楨鎭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41

    祭族叔稚穆(載熙)文 4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1886년(고종 23) 11월에 숨을 거둔 族叔 權載熙를 12월 14일에 장사지내면서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42

    祭金君善(章銖)文 4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평소 친하게 지내던 金章銖의 小祥을 맞아 지은 제문이다. 親知들도 다 떠나고 같이 늙어가던 아우마저 금년 봄에 숨을 거두었음을 전하면서, 자신도 머지않아 세상을 뜨게 될 것이니 저승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43

    祭仲弟翼民文 4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동생 權翊夏의 大祥日을 맞아 지은 제문이다.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뜬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44

    祭柳宗老(漢鎭)文 4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친구 柳漢鎭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이다. 총각 때부터 지금까지 道義로써 서로 사귀면서 막역한 사이로 지내던 친구가 떠나감을 슬퍼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45

    祭邊良彦(光翰)文 4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50년을 살다 간 邊光翰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46

    祭金止庵文 4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止庵 金健壽(1804~1866)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이다. 학봉 김성일의 후예이며 竹翁의 손자인 그가 30년 동안 道義之交로 지내다가 세상을 떠나니 너무 애통하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47

    祭舍季正民(端夏)文 4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막내 동생 權端夏의 죽음을 슬퍼한 제문이다. 24년 동안 조부, 형수, 어머니, 아들을 차례로 잃었는데, 이제 동생마저 떠나니 너무 애통하다는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48

    邊棐彦(光翊)哀辭 5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邊光翊이 자식 하나 없이 20살 약관에 숨을 거두게 됨을 슬퍼하는 哀辭이다. 20살 때 龜城에 갔다가 변광익의 큰형 鴻彦(字)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이후 친하게 지냈는데, 1829년(순조 29)에 鴻彦이 세상을 뜨고, 이어 둘째형인 良彦(字)이 숨을 거두고, 얼마
    출처 : 유교넷
  • 359749

    密窩記(1859)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剛州의 남쪽에 ‘龍穴村’이 있었는데 속어로 ‘密陰’이라고 불렀다. 1545년(명종 즉위)에 權見幾가 退休하여 정자를 짓고 ‘影江’이라 편액을 걸고 優遊韜晦하던 곳이다. 그런데 孟善氏가 ‘密窩’라고 이름 지었다. 그 이유는 마을 이름과 비슷하고 또 선정에 가깝기 때문이
    출처 : 유교넷
  • 359750

    陵洞齋舍重修記(1864) 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1864년(고종 1) 4월 하순 陵洞齋舍를 중수하던 상황의 전말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이다. 능동재사는 三太師 중의 한 사람인 權幸의 墓祭를 위한 齋舍이다. 1813년(순조 13)에 화재로 중건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서까래와 지붕이 퇴락하여 주인인 鶴皐 權喆孚의
    출처 : 유교넷
ㆍ페이지 이동: / 12836 go
AI 챗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