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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9751

    推譜記(1884) 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이 기문은 1884년(고종 21) 12월 15일 派譜를 완성하고 지은 것으로, 집안에 전해지는 족보에 대한 전말과 파보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그의 집안에 내려오는 족보는 成化譜를 시작으로 甲午譜가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板本은 훼손
    출처 : 유교넷
  • 359752

    贈訓練院僉正權公事蹟後敍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훈련원 첨정에 증직된 권공의 사적에 대해 기록해둔 跋文이다. 권공은 병자호란 당시 좌막으로 활동하다가 雙嶺에서 전사하였다. 당시 남한산성의 치욕이 있기 전에 雙嶺과 沁都에서의 전투가 먼저 있었다. 권공의 죽음을 접한 그의 장남 權鑑이 부친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애쓰다가
    출처 : 유교넷
  • 359753

    先祖松巖先生年譜小識(1889)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송암 권호문의 10대손인 저자가 권호문의 연보를 엮으면서 지은 跋文이다. 권호문의 원집과 속집 4책은 이미 간행되었으나 판본이 일그러져 重刊하려고 하던 중에 연보가 남아있지 않아 族叔 必奎가 개탄스러워 하자 李晩慤과 함께 누락된 것은 보충하고 번다한 내용은 삭제하여
    출처 : 유교넷
  • 359754

    贈刑曹參議愚軒權公行狀(1870)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이조참의에 증직된 權灦(1634~1695)에 대한 行狀이다. 字는 聖源, 號는 愚軒이다. 부친은 掌樂院正에 증직된 處善이며, 어머니는 淑人으로 全義李氏 鑰의 딸이다. 權灦의 후손인 權羲浩‧權浩運이 불에 타고 남은 시문을 옮겨 적은 뒤 교정을 부탁하였고 또 行狀이 남
    출처 : 유교넷
  • 359755

    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楓林申公行狀(1888)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申虯年(1544~1592)의 행장이다. 字는 德叟, 號는 楓林이다. 부친은 宣略將軍을 지낸 應龍이며, 어머니는 金海許氏 忠良의 딸이다. 임진왜란 때 부산진에서 첨사 鄭橃과 함께 방어하였으며, 이후 兵營으로 돌아가서 李珏과 함께 방어에 힘썼으나 병영마저 함락되자 고향으
    출처 : 유교넷
  • 359756

    臨我堂權公行狀 1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權世楷(1699~1746)의 행장이다. 字는 君式이며, 號는 臨我堂이다. 부친은 泰衡이며, 어머니는 興海裵氏 聖龜의 딸이다. 그의 나이 15세인 1713년(숙종 39)에 부친상을 당했으나 모든 것을 스스로 執喪하였다. 3년 상을 마치고 玄厓 李公을 따라 학문을 배웠다
    출처 : 유교넷
  • 359757

    龍泉處士權公行狀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權鼎鉉(1728~1805)의 행장이다. 字는 台仲, 號는 龍泉이다. 부친은 德烋, 어머니는 寧越辛氏 任曾의 딸이다. 문중 족보를 개보하는 일과 조상들의 무덤에 位土하는 일에 성심을 다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59758

    族祖溪西公行狀 2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權奎度(1782~1852)의 행장이다. 字는 天祥, 號는 溪西이다. 약관에 鶴林 權訪에게 사사하였다. 권방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遺文을 수집하여 출판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만년까지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향리를 위하여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였다. 또 일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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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59

    王考處士府君家狀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저자의 조부 權漢度(1765~1831)의 행장이다. 字는 大休, 부친은 師祖, 어머니는 興海裵氏 綋의 딸이다. 1785년(정조 9) 21살에 부친을 여의고 1793년(정조 17) 29세에 어머니를 잃었다. 평소 남을 비방하지 않았으며 남이 자신을 헐뜯는 것도 싫어하였
    출처 : 유교넷
  • 359760

    先父君言行抄略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부친 權晦中(1787~1842)의 행장이다. 자는 公華, 부친은 漢度, 어머니는 義城金氏 濟運의 딸이다. 1821년(순조 21)에 정시를 치러 길을 나섰다가 외숙부의 상을 접하고 돌아와서는 이후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병간호에 치력하면서 항상 밝은 얼굴로 奴僕들을 대
    출처 : 유교넷
  • 359761

    先妣孺人月城孫氏行略 3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저자의 어머니 월성손씨(1787~1853)의 행장이다. 신라 때 효자로 알려진 孫順孝의 후손으로, 부친은 문학과 행의로 이름난 頤軒 孫思百이며 어머니는 宣城金氏 虎鍊의 딸이다. 1804년(순조 4)에 시집와서 1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시어머니의 병환을 간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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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62

    本生九代祖考順陵參奉梅湖府君遺事 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저자의 9대조 權行可(1553~1623)의 遺事이다. 字는 士遇, 號는 梅湖이다. 부친은 송암 權好文이고, 생부는 權善文, 생모는 巨濟潘氏 淑의 딸이다. 송암 권호문이 廣州安氏 景仁과 晉州柳氏 宗仁의 딸을 아내로 맞았으나 둘 다 모두 자식이 없었다. 이에 伯兄의 세
    출처 : 유교넷
  • 359763

    處士權公遺事 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叔 權載纘의 부탁으로 지은 權仁度(1805 ~1834)의 遺事이다. 字는 元長이다. 부친은 師謙이고, 어머니는 奉化琴氏 以薰의 딸이다. 禮安 浮浦에서 태어난 그는 琴詩述에게 수학하였다. 부포는 금씨의 고향인데 그의 부친이 어려서 이곳에 贅居하였던 것이다. 이에 양친
    출처 : 유교넷
  • 359764

    家世遺事 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저자의 고조에서부터 부친까지 4대에 걸친 가문의 내력을 기록한 것이다. 고조 (1703~1751)의 字는 勉夫이다. 증조 師祖(1731~1785)의 자는 景穆, 호는 蘇軒, 初名은 師沈, 初字는 景黙이다. 조부는 漢度이며, 부친은 晦中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65

    女弟李宜人墓誌銘(幷序) 1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權靖夏의 누이동생 宜人權氏(1816~1854)의 묘지명이다. 그녀는 부모의 뜻을 잘 받들고 조상 제사를 잘 섬기다가 1838년(헌종 4) 나이 23세에 公州李氏 璧洙에게 시집갔다. 이후 20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에게 순종하였으며, 자식을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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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66

    行狀 1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弟 權璉夏가 지은 것으로, 저자 權靖夏의 행장이다. 始祖는 幸이며, 右僕射를 지낸 守洪과 禮儀判書를 지낸 靷, 中郞將을 역임한 厚를 조상으로 두고 있다. 이후 忠定公 冲齋 權橃의 출세로 부친 士彬은 영의정에, 조부 琨은 이조판서에, 증조부 啓經은 이조참판에 각각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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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67

    墓誌銘 18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金興洛이 지은 것으로, 저자 權靖夏의 묘지명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沈重하여 동년배들에게 성을 내지 않았으며 “남에게 욕을 하면 남도 나에게 욕을 한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외조부는 “어린 아이들은 마땅히 이처럼 해야 하지만, 성인들 또한 이것을 경계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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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68

    行略 2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權錫夏가 지은 것으로, 저자 權靖夏의 行略이다. 자녀들 모두 일찍 세상을 떴으며, 宗子 啓淵 또한 1남 2녀만을 남겨 둔 채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부모를 섬길 때는 낯빛을 온화하게 부모의 뜻에 따라 어김이 없었다. 선조들을 받들 때는 정성과 엄숙함으로 제사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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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69

    輓詞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弟 璉夏가 지은 輓詞로 7언 8구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70

    又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從 載璞이 지은 輓詞로 7언 8구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71

    又 29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柳止鎬가 지은 輓詞이다. 5언 8구로 되어 있으며 모두 2수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72

    又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弟 慶夏가 지은 輓詞이다. 7언 8구로 되어 있으며 모두 2수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73

    又 30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妹弟 李璧洙가 지은 輓詞로 5언 40수의 長篇이다. 처남의 높은 학덕을 기리면서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59774

    又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金龍鉉이 지은 輓詞로 7언 8구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75

    又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李集㻁이 지은 輓詞로 7언 8구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76

    又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侄 世淵이 지은 輓詞로 7언 4구로 되어 있으며 모두 4수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77

    又 31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金景洛이 지은 輓詞로 7언 8구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78

    又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柳必永이 지은 輓詞로 7언 8구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79

    又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孫 相大가 지은 輓詞로 7언 4구로 되어 있으며 모두 3수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80

    又 32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邊台均이 지은 輓詞로 7언 42구로 되어 있는 長篇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81

    祭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西山 金興洛이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82

    又 34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族孫 相稷이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83

    又 35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朴泰斗‧朴泰東이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84

    又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寒泉의 儒生 鄭天欽‧李在璇‧鄭象欽‧權世永‧柳周榮‧權國煥이 함께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85

    又 36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德皐의 儒生 張景栻과 權濟寧이 함께 지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59786

    又 37 / 기록자료>고도서 / 권정하
    道溪의 儒生 金承洛‧鄭文逵‧張景杓‧權承浩‧權活淵‧金潤模가 함께 지은 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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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87

    가천집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
    가천집(可川集) 可川 崔正基의 문집. 8권 4책. 목판본. 卷1에는 詩 122수가 실려 있는데, 자연에서의 감흥을 노래한 것도 있고, 七情‧四七渾淪說‧鳶飛魚躍 등 성리학과 관련된 것도 있다. 卷2~4에는 書 109편이 실려 있는데, 학문에 대해 토론한 것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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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88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
    感春, 戊辰暮春與南黎許丈(愈)訪李聖養(正模)於紫陶齋歸路登鳳凰臺聖養以詩贈別因次韻, 遊障瀾巖, 新秋自警, 春日偶題, 辛未重陽南黎丈過余道南書室講湖上實記臨別各賦四絶, 許丈以梅詩贈余曰天香自有難言玅莫把橫斜詑格奇其意蓋余固守兼理氣而力攻心卽理之說故云也然余所守者乃朱退以來相傳旨訣何可遽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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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89

    上西山金先生問目(1877) 1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
    西山 金興洛(1827~1899)에게 질의한 다섯 조목의 問目과 김흥락의 答目이 함께 정리되어 있다. 문목의 내용은 이러하다. ①性과 明德은 一理이지만, 사람이 얻어서 光明한 측면에서 보자면 明德이고, 사람이 품부 받아 純粹한 측면에서 보자면 性인가? ②『中庸』의 ‘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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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90

    上西山先生 3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
    먼저 앞서 보낸 問目에 대해 답변을 보내준 것에 감사한 뒤에, 답변 중에서 鬼神에 대해 氣로 설명한 부분은 자신과 견해가 다르므로 재차 가르쳐 줄 것을 부탁하였다. 말미에는 禮書를 보는 중에 의문점이 들었던 조목을 別紙에 기록해 보내니, 답을 부탁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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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91

    問目 5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
    禮와 관련된 여섯 조목의 問目과 김흥락의 答目이 함께 정리되어 있다. 문목의 내용은 이러하다. ①『家禮』에서는 시신을 목욕시킨 뒤에 肩奠이 있다고 하였고, 『常變通攷』에서는 그것을 皐復의 절차 뒤에 배치하였는데, 그렇다면 襲을 한 뒤에 設奠은 어떻게 하는가? ②握手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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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92

    上西山先生(1880) 7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
    어려서부터 학문에 매진하지 못하여 헤매던 차에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나서 本末과 邇遠을 깨달아 ‘敬’ 공부에 종사하여 厚意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志氣가 확고하지 못하고 자질과 규모가 가볍고 얕아 진전이 없음을 한탄하며, 그런 병통을 고칠 수 있는 가르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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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93

    上西山先生(1881) 8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
    숙모의 상이 났을 때에 집안의 잡다한 일 때문에 공부에 전심하지 못하였는데, 이는 本源이 익숙하지 못하고 主宰가 서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며 자책하였다. 선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적에 배운 내용을 기록한 『日錄』(『就正日錄』)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선생으로부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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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94

    上西山先生(1883) 10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
    定齋 柳致明(1777~1861)의 문인인 絅齋 崔祥純(1814~1865)이 지은 『太極問辨』에 대한 序跋文을 지어줄 것을 거듭 청탁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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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95

    上西山先生 10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
    崔祥純의 『태극문변』에 대한 서발문을 지어줄 것을 다시 한 번 청탁하는 글이다. 최상순은 평생토록 四子와 六經에 전심하였고, 그의 안목과 조예에 대해서는 이미 스승인 유치명이 인정한 바 있다. 그가 가장 고심하여 지은 저술로는 『喪禮要解』와 『태극문변』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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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96

    問目 12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
    두 가지 내용에 대한 問目이다. ① 「西銘」은 『중용』의 이치와 암암리에 서로 부합하는 것으로서 언어의 밖에서 얻은 것이다. ② 말은 길흉화복이 관계된 것으로서 신중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에 대해 오래도록 조심했건만 여전히 다스려지지 않으니, 그 이유는 병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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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97

    上西山先生(1885) 13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잘 되지 않으니 藥이 될 말씀을 해 달라는 것, 海上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이 경악할 만하다는 것, 『就正日錄』 중에서 질문할 내용을 問目으로 만들어 올리니 가르침을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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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798

    問目 14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
    두 가지 내용에 대한 問目과 答目이다. ① 地雷復卦의 初爻는 動이지 靜이라고 할 수 없다. ② 『中庸或問』에서 말하고 있는 靜에 대한 언급은 이해할 수 없다.
    출처 : 유교넷
  • 359799

    上西山先生(1888) 16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
    집의 아이가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걱정스럽다면서 아버지로서의 우려를 말한 뒤에, 心性의 體用 관계에 대해서 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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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9800

    上西山先生問目(1889) 17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
    ① 皐復할 때 사용한 옷을 삼년상을 마친 뒤에 묘소 곁에 묻는 것이 어떠한가. ②초상에 重服을 입는 사람이 지금 시속에서는 모두 網巾을 제거하는데, 비록 古禮는 아니지만 冠은 제거하지 않고 망건만 제거하는 것이 어떠한가. ③橫絞 세 폭으로는 시신을 모두 두르기 어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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