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9801
上西山先生別紙 20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深衣의 衽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로 분분했는데, 丘濬의 合縫覆縫의 논의가 있은 뒤로 그의 설을 따라서 많이들 행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經文의 본뜻과 합치하지 않는 듯하다.출처 : 유교넷 -
359802
上李肯菴(1880) 20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李敦禹(1807~1884)에게 올리는 편지로, 時論이 크게 잘못되었고 海上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사람을 경악하게 하고 있음을 탄식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803
上李肯菴(1881) 21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일상적인 안부 편지로서, 봄 초에 숙모 상을 당하였고 또 집안에 병환까지 있게 되어 그간의 심경이 안온하지 못했다고 하였고, 말미에서는 조정에 疏를 올리는 일에 대해서 언급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804
上張四未軒(1882) 22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암담한 상황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과거의 광영을 되돌릴 수 있으려면 四未軒 張福樞(1815~1900) 당신이 그 책임을 맡아야 할 것이며, 정력을 쏟아 편찬하신 『夙夜箴集說』을 한 번 보여주어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면 고맙겠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359805
答李寒洲(1875) 23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心과 性情의 관계와 理氣說에 대해 언급한 寒洲 李震相(1818~1886)의 학설에 대해서, 退溪와 大山 등의 설을 인용하면서 조목조목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806
上李寒洲(1877) 25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中庸』의 達道에 관해 앞서 이진상이 언급한 내용 중에서 자신이 생각할 때 의심을 떨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회답을 청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59807
答李寒洲(1881) 26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疏를 올리는 일에 관한 내용이다. 邪와 正은 마치 물과 불, 얼음과 숯불처럼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 相存할 수 없는 것이 마땅한데, 戚叔인 尹永燁의 글 가운데 보이는 ‘好樣措處’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분개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808
答張游軒(錫龍) 27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장석룡(1823∼1907)에게 답한 일상적인 안부 내용을 담은 편지이다. 書齋의 記文을 지어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말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809
上柳石坡(道性,1900) 28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유도성(1823~1906)에게 보낸 편지이다. 우리 영남을 鄒魯之鄕으로 일컫게 된 것은 安東에서 儒賢이 배출된 데서 연유하는데, 근래에 들어 벌어지는 屛虎是非를 보자니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각파마다 의론을 내세워 서로를 배척하고 있는 것이 예전에 벌어졌던 東西分黨보출처 : 유교넷 -
359810
上金拓菴(道和,1901) 29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김도화(1825~1912)에게 보낸 편지로, 絅齋 崔祥純의 문집 序文에 관한 수정 요청이다. 최상순은 柳致明의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經禮를 논하고 奧旨를 발명하였으며,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후학들을 이끌어 남쪽 고을의 師表가 되었다. 그리하여 후학들은 湖上의 학문이 陶山출처 : 유교넷 -
359811
答金拓菴 30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中庸』의 ‘誠’ 자가 氣를 가리킨다고 말씀하신 것을 들었고, 이에 앞서 坪上에서도 이에 대해 가르침을 들은 바 있다. 그런데 『중용』은 理를 밝힌 책이고, 또 이 책의 핵심이 되는 사항이니 만큼 理를 놔두고 氣만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을 수 없다.출처 : 유교넷 -
359812
上朴晩醒(致馥) 31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박치복(1824~1894)에게 보낸 편지로, 이른바 ‘八則陽生’의 설은 그 의미를 河圖洛書에서 취한 것이며 八이 陽生의 방위가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되는데, 자신할 수가 없으니 가르침을 달라고 부탁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813
答朴晩醒 32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박치복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건강이 좋지 못함을 걱정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59814
答柳洗山(止鎬) 32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유치명의 아들인 유지호(1825~1904)에게 답한 편지이다. 身病이 점점 심각해지고 志氣가 쇠해지고 있음을 탄식하였으며, 『語類』를 간행하는 일과 金溪 스승의 원고를 정리하는 일에 대해 언급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815
答李參奉(驥相)丈(1900) 33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일상적인 안부에, 書室의 記文을 지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59816
答許后山退而(1894) 34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許愈(1833~1904)가 汝敬 崔東翼에게 답한 明德說을 보여주자, 이에 대해 허유가 理의 측면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한다며 그 폐해를 지적하였다. 그리고 우리 동방의 도학이 周나라나 宋나라에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밝게 빛났건만 말세에 와서 천 갈래 만 갈래로 분열되는출처 : 유교넷 -
359817
答許后山(1895) 35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明德을 氣의 측면은 내버려둔 채 理의 측면에서만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먼저 지적하였다. 또 佛家에서는 虛靈을 性이라 하고 儒家에서는 허령을 心이라 하여 다른 점이 있는데, 이를 形氣心과 義理心으로 두 허령을 나누었으니, 과연 그 허령이란 것이 차이가 있는지 이해할출처 : 유교넷 -
359818
答許后山 37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인간의 方寸 사이에는 다만 性과 心이 있을 뿐이니, 明德은 성과 심이 아니며 또한 心性 밖에 있는 사물도 아님이 명백하다. 대개 그것의 情狀이 심이고 그것의 實理가 성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明德은 오로지 理를 가리킨다고 하는 말은 명덕이 성이고 성이 명덕이란 말인가출처 : 유교넷 -
359819
答許后山(1899) 38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理氣性命의 깊은 이치에 대해서 논하는 학자들이 그 꺼풀만을 살펴보고는 자기의 생각만 옳다고 단정을 하여 ‘내가 千古不傳의 학문을 깨달았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는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출처 : 유교넷 -
359820
與許后山(1900) 39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禮記』 「禮運」에서 말하는 七情에 대해서 分開로 보는 것은 本意가 아니다. 그 문장을 상세하게 살펴보면 ‘何謂人情’으로 시작하여 ‘不學而能’으로 끝났으니, 이 역시도 渾淪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中庸」‧「樂記」‧「好學論」 등과 동일한 어법이다.출처 : 유교넷 -
359821
與許后山(1901) 41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신이 長幼의 예를 잘못하고 辭氣가 너무 지나친 면이 있었음을 사과하고, 이는 간절하게 사랑하고 우러르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지 다름이 아니라고 해명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822
答柳修齋元直(廷鎬,1905) 1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유정호(1837∼1907)에게 답한 편지이다. 伏冷을 앓은 지 수십 년 이래로, 조용한 곳에서 병을 조리하면서 노년을 보낼 계획이었지만, 마을의 수재들이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는지라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하였다. 스승의 원고를 누차 교감을 한출처 : 유교넷 -
359823
與李晩求器汝(種杞,1900) 1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이종기(1837~1902)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스승 김흥락과 장복추를 비롯한 宗師‧宿儒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있는 상황을 슬퍼한 뒤에, 하늘이 命한 性은 人과 物이 각각 다르다는 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824
答李器汝 2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先人의 墓道文字를 간곡하게 청탁하는 내용과 人性과 物性의 同異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59825
與金士欽(承洛,1900) 3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김승락의 伯氏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59826
答李響山觀必(晩燾,1900) 4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이만도(1842~1910)에게 답한 편지이다. 『寒岡續集』에 보이는 九條辨 중 제4조의 내용은 退溪의 설과 상반되고, 또한 거기에 보이는 ‘퇴계의 설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말은 한강의 말투가 아니다. 이에 대해 이만도가 논박한 말이 참으로 옳으니, 모르는 자들이출처 : 유교넷 -
359827
答李觀必(1901) 5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실제보다 과장되게 자신의 학문을 높이 평가한 것에 대해 겸양한 뒤, 스승이 돌아가신 뒤 깊은 밤 어둠 속에서 빠져 헤매고 있는 우리 儒林을 부지하고 이끌어줄 임무를 맡아달라는 염원을 표시했다.출처 : 유교넷 -
359828
與李觀必 6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陶山書院의 사당에서 일어난 변고는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슬픔이 아닐 수 없다. 絅齋 崔祥純의 墓碣은 이루어졌지만, 그의 높은 조예와 柳致明의 高足이라는 데 대해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서 남쪽 선비들이 개탄하고 있으므로, 그 점을 發揚시켜주면 다행이겠다.출처 : 유교넷 -
359829
與李觀必(1905) 6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한적한 곳에서 졸렬함을 기르고 병을 다스리려고 했지만, 후생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번잡하게 되었다. 스승의 원고를 정돈하는 일은 빨리 마무리 짓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밀하게 교정을 한 뒤에 판각해서 유감이 없도록 하는데 유의해야 한다.출처 : 유교넷 -
359830
與許道若(傅,1900) 7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선조 두 분의 墓道文字를 評訂해 달라는 부탁은 받아들일 수 없다. 靑谷刊事가 지금 중지되어 수치가 아닐 수 없으니, 乃熙 李相敦형과 상의해서 다시 조처해야 한다.출처 : 유교넷 -
359831
與柳景深(淵博,1900) 8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柳淵博(1844~1924)에게 보낸 편지로, 문집을 간행하는 일과 莊獻世子典禮에 관한 일로 처분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832
與柳景深(1905) 8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師門의 遺稿를 여러 차례 校勘하여 조만간 淨本을 완성하려는 모양인데, 이 일에 있어서는 빨리 마무리 짓는 게 최선이 아니라 정밀하고 또 정밀하게 살피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출처 : 유교넷 -
359833
答李乃熙(相敦,1900) 9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景慕宮典禮에 관한 일은 우리 영남에서 백 년 동안 적체되었던 大義이다. 『山海集』을 간행하는 일이 현재 지지부진한 상태인데, 이대로 끝나버려 문집이 간행되지 못하면 斯文과 儒林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출처 : 유교넷 -
359834
與柳喜七(畯睦) 10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오래도록 만나지 못한 점이 아쉬워 한 번 찾아가 만나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음을 알린 뒤에, 四書와 『心經釋疑』, 『近思錄釋疑』를 빌려주면 고맙겠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835
答李繼亨(重明,1901) 10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선생의 시호를 받고 못 받는 일은 그리 급한 일이 아니다. 선생이 편찬한 『理氣彙編』과 『語類節要』를 아직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한스러운데, 그것들이 간행되기를 기다리자니 긴 세월이 걸릴 것이므로, 혹 베껴놓은 것이 있으면 빌려 달라고 부탁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836
答李繼亨(重明,1905) 11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어려서는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고, 지금은 늙고 병에 걸려 위축되어 있는 상황이다. 겨울에 흙집 한 칸을 매입하여 조용히 療養하려고 했더니, 후학들이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는 바람에 요란하기만 하다.출처 : 유교넷 -
359837
答張羲伯(升澤) 12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장승택(1838~1916)에게 답한 편지이다. 張福樞의 죽음과 李種杞의 병환을 탄식한 뒤에, 오랫동안 병에 시달리고 무료하던 여가에 그동안 자신이 해 왔던 것을 점검해보니, 소득도 없고 성취한 것도 없는 바, 이는 敬공부에 흠이 있어서였다고 평가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838
別紙 13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장승택이 郭兄과 서신을 왕복하면서 理發氣發‧人心道心‧四端七情 등에 관해 논하였는데, 그것을 보고 난 뒤에 의심나는 부분을 조목별로 구별하여 질의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59839
答李聖養(正模,1868) 15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이정모(1846~1875)에게 답한 편지로, 知行에 관해 언급하였다. 아는 것은 행하기 위한 것이니, 알기만 하고 행하지 못한다면 이는 진짜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은 행하는 것보다 앞서고, 행하는 것은 아는 것보다 중하다.출처 : 유교넷 -
359840
與李聖養(1871) 16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이정모가 厚允, 鳴遠, 자기와 함께 四禮를 강론하고자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적극 동참의 의사를 표시하였다. 다만 禮에는 예로부터 疑禮나 變禮가 많아 어려운 점이 있어 왔으므로, 강론할 때에 여러 사람의 설을 두루 참고하여 煩亂한 것을 제거하며, 常禮에 의거하여 變禮출처 : 유교넷 -
359841
與李聖養 17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許丈이 주장하는 心卽理說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고, 星山에 갈 때 동행하지 못해서 아쉬웠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842
答李聖養(1873) 17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이정모가 보내온 글에서 胡五峯의 설을 인용해서 心卽理의 오류를 증명하려고 했는데, 이는 온당하지 못한 관점이다.출처 : 유교넷 -
359843
答尹孝一(永燁,1875) 18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자식을 얻고 얻지 못하는 것은 하늘에 달린 것이니,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다.출처 : 유교넷 -
359844
答趙遠之(鏞祐,1892) 19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지난 2월 17일 酉時에 손자를 얻었는데, 아직 백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웃는 모양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德山의 白雲文會에 갔던 아이는 보름쯤에 돌아올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59845
與趙遠之(1893) 19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지난해 걸린 감기로 인해 새해가 되었는데도 고생하고 있다. 5~6개월 된 손자를 위안삼아 지내고 있다.출처 : 유교넷 -
359846
答尹內兄士權(衡東,1873) 20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일상적인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359847
與郭鳴遠(鍾錫,1875) 20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곽종석(1846~1919)에게 보낸 편지이다. 許丈의 편지를 통해 山天齋에서 修契하는 일이 있는 줄 알았지만, 참석하지 못해 한스럽다.출처 : 유교넷 -
359848
答郭鳴遠別紙 21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나라와 가정은 君과 臣이 합하고 夫와 婦가 짝해야 이루어지는 것인데, 군주와 남편이 나라와 가정의 主가 된다고 해서 ‘國卽君’ 또는 ‘家卽夫’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心卽理’라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59849
與柳景達(必永,1903) 22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유필영(1842~1924)에게 보낸 편지이다. 書室을 지어 ‘비록 누추하지만 휴식할 정도는 되네(衡門之下 可以棲遲)’라는 『詩經』의 뜻을 취해서 명명했다. 현판 글씨를 부탁한다.출처 : 유교넷 -
359850
與趙應章(昺奎) 23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조병규(1849~?)에게 보낸 편지이다. 方丈山 유람에 참석하지 못해서 한스럽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