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59901
答族祖景九(1873) 33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老泉 蘇洵이 28세에 비로소 발분하여 독서한 결과, 그의 문장이 고금의 으뜸이 되었다. 내 나이도 이제 28세이니, 용감하게 학문에 매진하고자 한다.출처 : 유교넷 -
359902
答族叔周老(埰淳) 33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선조의 行狀을 지어준 부분에서 實德과 懿行에 대해 빠진 부분이 있기에 망령되이 내 뜻을 첨가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903
與族祖聖七(圭鎭,1868) 34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산속으로 글을 읽으러 가면서 자신의 마음가짐을 언급하였다. 자기 마음을 스승으로 삼으면 쉽게 무너지지 않고, 책 속의 성현 말씀을 조석으로 대하면 師友가 없음을 근심할 필요가 없다. 또 고금의 사실이나 名物度數, 문자의 출처 등을 자기 견해로 알 수 없을 때에는 별도출처 : 유교넷 -
359904
答族弟純夫(正愚,1901) 34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絅齋集』을 교감하다 보니 絅齋가 禮說과 經旨에 대해 깊은 조예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후손이 쇠락하여 저술한 것이 태반이나 누락되었고, 남아있는 것도 와전된 것이 많다. 慶林修稧는 景立 金應植이 간절히 부탁한 것인데, 아무래도 여의치 않을 듯하니 중지하는출처 : 유교넷 -
359905
答族弟純夫 35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나이가 아직 젊으니 사업이 없다는 탄식은 걱정할 필요가 없고, 동지들에게 고한 몇 마디 말을 통해 스스로를 엄중히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출처 : 유교넷 -
359906
答族祖汝敬(東翼) 36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崔東翼(1868~1912)에게 답한 편지이다. 南冥 曺植의 「神明舍圖」와 『대학』의 明德과 正心에 대해 질의한 내용에 답변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59907
與族祖汝敬 37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내가 엮은 「聖學總要」는 대략 두서를 갖추었지만, 다시 살펴보니 소략하고 탈락된 곳이 너무 많으므로 族祖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출처 : 유교넷 -
359908
答族祖汝敬 37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근래에 『논어』가 經書 중 가장 읽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논어』의 말이 평이하고 명백하여 처음 보면 쉬울 듯한데,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그 평이함과 명백함 가운데 또 高遠한 뜻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출처 : 유교넷 -
359909
答族叔勉夫(道燮,1884) 38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崔道燮(1868~1933)에게 답한 편지이다. 定齋가 찬술한 『童子問』을 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 책은 『或問』을 본 뒤에 봐도 늦지 않다.출처 : 유교넷 -
359910
答族叔勉夫 39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공부하다가 의문 나는 점이 있으면 스승에게 물어야 하는데, 채찍질하고 독려해 줄 사람이 곁에 없는 族叔으로서는 자신의 마음을 엄한 스승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59911
答族叔勉夫(1885) 40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先人의 원고를 한 번 살펴봤는데, 가장 어렸을 때 남을 대신해서 지었다는 작품에 대해서 재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圈點을 그려 돌려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사이의 자세한 곡절을 알 수 없는 입장인지라 보류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912
別紙 40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上天之載 無聲無臭’에서 ‘상천지재’는 無極을 가리키는지, 그리고 太極과 動靜의 관계에 대해 묻고 답하였다.출처 : 유교넷 -
359913
答族叔勉夫(1887) 41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의리가 마음을 기쁘게 함이 芻豢이 입을 기쁘게 함과 같도록 노력한다면, 사특함과 망령됨이 그 사이를 범할 수 없다.출처 : 유교넷 -
359914
答族叔勉夫(1889) 41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氣之精爽은 理로 말할 것은 아니지만 또한 오로지 氣로만 볼 것도 아니다. 動靜은 陰陽이 생겨나는 기틀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출처 : 유교넷 -
359915
別紙 42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①心과 性은 一物이 아니니, 만약 渾然하여 분별이 없다면 程子의 말과 어긋난다. ②정자는 理와 心은 하나이지만 사람이 하나로 모을 수 없다고 하였다. ③朱子의 ‘靈處是心’이란 말에서, 靈은 오로지 理를 말함이지 氣를 말함이 아니며, 또한 理氣의 合으로 볼 수 없다.출처 : 유교넷 -
359916
答族弟謹夫(正慤)問目 44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①氣化를 왜 道라 하는가? ②形而上과 形而下를 形而前과 形而後로 봄은 어떤가? ③不善을 따르는 것은 氣質之性인가? ④性에 本然과 氣質이 있음은 情에 四端과 七情이 있음과 같은가?출처 : 유교넷 -
359917
答族叔克夫(在燮)問目 45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再從兄이 靈座 곁에 靈床을 따로 설치하면서 널의 동쪽에 두는 제도를 본뜨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359918
答族叔進夫(憲燮)問目 45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①喪次에 술을 갖추어 객을 대접하는 잘못을 논한 陳安卿의 설을 듣고 싶다. ②忌日에 앞서 묘소를 살핌은 정성을 다한다는 뜻인가? ③致齊하는 날 출입하는 것은 禮의 뜻에 어떠한가?출처 : 유교넷 -
359919
寄兒子命熙(1885) 46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時文은 末技이기는 하지만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威儀를 굳게 지킬 것이며, 절대로 장난하지 말기 바란다.출처 : 유교넷 -
359920
寄兒子(1889) 46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맹자』는 반복해서 읽어서 자세하게 이해해야 하지만, 너는 잠심할 겨를이 없으니 탄식할 일이다. 의심나는 조목은 적어 두었다가 내가 가거든 물어 보거라.출처 : 유교넷 -
359921
寄兒子 47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廣巖의 聖七氏 아들이 한양으로 간다고 하니 잘 보살펴 주거라.출처 : 유교넷 -
359922
案頭隨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독서와 사색을 통해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 기록으로, 모두 12조목이 기재되어 있다. 대체적인 내용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 자포자기 하지 말며, 私慾에 이끌리지 말며, 성인의 말씀이 담긴 서책을 통해 수양하며, 老佛의 설에 미혹되지 말며, 성현이 말씀한 仁‧心‧敬 등출처 : 유교넷 -
359923
就正日錄(1880) 3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당시의 宗師로 일컬어지던 金興洛을 찾아가는 여정과 배알한 뒤에 질의 응답한 내용, 돌아오는 길에 碩儒 또는 지인들을 만나 토론을 했던 일정을 일기체로 정리한 기록이다. 海平‧軍威‧比安‧一直 등을 거쳐서 李象靖이 강학하던 高山에 이르렀을 때는 흠모의 정을 십분 드러내고출처 : 유교넷 -
359924
讀禪石寺問答 16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四未軒 張福樞와 寒洲 李震相이 禪石寺에서 강회를 열고 『중용』을 가지고 토론을 벌일 때 李種杞‧郭鍾錫‧金鎭祜 등이 함께 참여하여 응답한 적이 있었다. 이 글은 바로 강회에 참석했던 김진호가 저자에게 강회 기록을 보내온 바, 저자는 선석사에서 오고갔던 견해 중에 의심나출처 : 유교넷 -
359925
心說攷證 28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心에 대해 논하는 이들이 主理 또는 主氣라는 편중된 시각으로 보고 있음을 비판하며 心은 理氣의 合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글이다. 心卽氣說은 理를 氣로 보는 것이고, 心卽理說은 氣를 理로 보는 것으로서, 그 병통은 동일하지만 그 害는 심즉리설이 심즉기설보다 심출처 : 유교넷 -
359926
龜陰齋會話 38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心은 바로 理가 아니라 理氣의 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지로, 后山 許愈와 문답하는 형식으로 짜인 글이다. 1899년 臘月에 허유가 쓴 小識에 의하면, 龜陰齋에서 비 때문에 며칠 동안 머물면서 토론한 내용 중에 四七異同에 관한 설이 많았는데, 자신은 70세에 가출처 : 유교넷 -
359927
講義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先院이 훼철되면서 講會마저 중단된 현실을 탄식하던 차에, 族叔 崔道燮이 예전의 講規를 바탕으로 論定한 講儀書를 보여주자, 그에 동의를 표하면서 지은 글이다. 강의서는 藍田鄕約과 白鹿洞規를 근본으로 하고 伊山院規와 泗濱契儀를 참조하여 도식으로 만든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59928
聾啞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安陵人 李孝祥이 산림에 자취를 감추고 農畝에 몸을 의탁하여 黃冠野服으로 自樂하면서, 時事에 대해 말하는 이가 있으면 듣지 않고, 묻는 이가 있으면 말하지 않고는 ‘聾啞’라고 自號한 것에 대해 써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359929
李禹言(昌來)甲宴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廣陵人 李昌來의 회갑연에 축하의 글로 쓴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59930
贈李子剛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李正模(1846~1875)의 族人인 李泰植(1875~1951)이 川上으로 자신을 찾아와 며칠 동안 머무르며 心學을 토론했는데, 이별에 임해서 한 말씀을 청하기에 지어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359931
鄭致學謾錄序 4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竹醒 鄭致學이 아는 사람들에게 詩를 지어달라고 하여 詩軸을 만들었고, 이에 대해서 서문을 청하기에 지어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359932
洛瑞齋記 5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東城郡 萬竹山 아래에 龜巖 李楨(1512~1571)이 거처하던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崔氏의 소유가 되었고, 마을 곁에는 이정을 모신 서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훼철되었다. 父老들이 옛 터의 동쪽에 집을 짓고 낙서재라 명명했다.출처 : 유교넷 -
359933
是隱記 6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完山의 墓閣에서 族人이 모였을 때, 杜陵에 사는 崔漢孝라는 이가 참석했는데, 그가 사는 마을이 羅是였으므로 ‘是隱’이라 自號하고 지은 시를 보여주면서 記文을 청했다.출처 : 유교넷 -
359934
族譜跋 7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같은 조상 아래에서 분파된 우리 후손들은 지금 각처에 살면서 좀처럼 서로 만나기가 어려운 실정이지만, 이번 족보 편찬을 통해 아무개의 字와 이름과 행실과 거처와 나이 등등을 자세하게 기록했으므로, 오랜 세월이 지나더라도 同族임을 알게 될 것이다.출처 : 유교넷 -
359935
喪禮要解跋 8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1901년에 쓰인 발문이다. 『상례요해』의 편자인 崔祥純이 사망한 지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고을 사람들 사이에서 문집을 간행하자는 논의가 일었는데, 그 중에서 『상례요해』가 가장 晩年에 나온 것이고 간략하면서도 상세한 바, 가장 먼저 간행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의가출처 : 유교넷 -
359936
藍圃鄭公實記跋 9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임진왜란에 倡義했던 鐵城 출신의 鄭藍圃의 행적을 모아 만든 實記에 대한 발문으로, 그의 후손인 鄭泰植이 판각을 앞두고 부탁했다.출처 : 유교넷 -
359937
書畜菴李公主靜銘後 10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李畜菴이 저술한 『養病心鑑』을 보다가 말미에 「主靜銘」이 있음을 보았다. 이는 周濂溪와 程子‧退溪의 요지를 계승한 것으로서 경모하는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던 차에, 李泰植이 그 글에 대해 발문을 지어달라고 요청했다.출처 : 유교넷 -
359938
謹書先朝蘇湖先生遺墨後 12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蘇湖 崔均이 쓴 유묵에 대한 발문이다. 최균은 안빈낙도하며 林泉에 은거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사천, 고성 등지에서 왜적을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시호는 義敏이다.출처 : 유교넷 -
359939
書朱夫子答魏應中書後 12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絅齋 崔祥純이 朱子가 魏應中에게 준 200여 자의 편지 한 통을 직접 베껴 써서 저자에게 주었다. 저자가 한참 뒤에 상자 속에서 발견하여 다시 음미하니, 그 속에 담긴 덕성 함양이나 독서법 등의 말은 『朱子大全』에 실린 다른 어떤 말보다도 으뜸이었다.출처 : 유교넷 -
359940
金羲道(象淳)誄文 13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金象淳(1847~?)을 추도하는 뇌문이다.출처 : 유교넷 -
359941
孺人綾州具氏誄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綾城具氏를 추도하는 뇌문으로, 崔東翼(1868~1912)의 行錄을 바탕으로 썼다.출처 : 유교넷 -
359942
龜巖精舍重建開基祝文(1901) 16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萬竹山 서남쪽에 龜巖 李楨이 학문을 강론하던 정사를 중건하기 위해, 터를 살펴보고 난 뒤에 지은 축문이다.출처 : 유교넷 -
359943
望仙峯民堡開基祝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望仙峯에 民堡를 쌓기 위해 터를 살펴보고 난 뒤에 지은 축문이다.출처 : 유교넷 -
359944
絅齋先生文集告成文(爲本家作) 16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絅齋 崔祥純의 문집 6권과 『상례요해』 2책의 간행을 마치고 고한 축문이다.출처 : 유교넷 -
359945
祭西山先生文(1900) 17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西山 金興洛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359946
再祭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西山 金興洛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359947
祭寒洲李公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寒洲 李震相(1818~1886)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359948
祭遯菴李公(鉉玉)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遯菴 李鉉玉을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359949
祭四未張公文(1900) 22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四未軒 張福樞(1815~1900)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
359950
祭李聖養文(1876) 22 / 기록자료>고도서 / 최정기李正模(1848~1915)를 추도하는 제문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