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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0001

    駟馹山祈雨祭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아주 심한 가뭄이 들어 농사를 지을 수 없고 그로 인해 백성들도 살아갈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駟馹山 산신령에게 비를 내려 주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내용의 기우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02

    祭族叔知非齋公(百運)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부모와 형님처럼 받들고 따르며 가르침을 받았던 족숙 지비공이 별세함에 그 슬픔을 나타낸 제문이다. 지비공은 저자를 자식처럼 대해주어도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지비공과 생전에 지낸 사실을 들어 자신의 슬픔을 아울러 표현하고 있다. 또한 지비공의 죽음이
    출처 : 유교넷
  • 360003

    祭族兄處士公(宜壽)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명문가의 후예로 훌륭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힘써 노력하는 위인이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였고 과거에도 성공하지 못하여 가슴 속에 품은 포부를 펼치지 못하였다. 지금 갑자기 별세하여 후생들이 의지할 바를 잃었기에 더욱 슬프고 친아우처럼 돌보아주는
    출처 : 유교넷
  • 360004

    祭族叔景河(淸運)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훌륭한 품성을 갖추고 선비의 도를 실천하며 자신과 평소 다정하게 지내던 족숙 경하공의 죽음을 애도하고 생전의 이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소회를 적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05

    祭族叔處士公(宏運)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자상한 인품에 군자의 덕을 갖추고 다정하게 대해주던 족숙 처사공을 추모하며 그간의 情理로 그 슬픔을 나타낸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06

    祭族弟大叟(來壽)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拔群의 실력과 刻苦의 노력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빛나게 하고 훌륭한 인격으로 직무를 감당하며 지내다가 먼 객지에서 요절한 족제를 애도하는 내용의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07

    祭族叔處士公(永運)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선비로서 훌륭한 덕망을 갖춘 족숙께서 古稀를 넘겨서 별세 했다. 족숙의 집안과 저자의 집안이 6대로 친하게 지냈으며 생전에 많은 가르침을 주었는데 이제 다시는 뵈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그 비통한 심정을 담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08

    哭亡子鎭泓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장래가 촉망되는 자식의 죽음을 두고 비통한 심정을 구구절절이 담고 있는 제문이다. 비록 아들은 요절했지만 英敏한 손자가 있어서 잘 가르쳐 그의 성장으로 위안을 삼을 것이고 너에게는 이 손자로 인해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로 죽은 아들의 넋을 위로하는 내용을 담고
    출처 : 유교넷
  • 360009

    祭族兄止窩公(道壽)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73세를 사는 동안 40여 년의 가르침을 받으며 지냈던 족형 지와공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훌륭한 인격과 빼어난 학문으로 많은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고 특히 禮說에 밝은 면모를 보였다. 만년에 자연에 은거하여 독서와 自靖으로 일생을 보내니 많은 선비들의 모범이 되
    출처 : 유교넷
  • 360010

    祭族弟孟明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44년간을 이웃에 사는 일가로서 절친하게 지냈던 족제 맹명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이다. 빼어난 자질과 훌륭한 인격을 갖춘 선비로서 篤實한 공부와 확실한 操行으로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堅持했었는데 요절을 겨우 면한 50세의 나이로 별세하니 그간의 情理를 생각하여 비통한
    출처 : 유교넷
  • 360011

    祭族兄(富壽)文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훌륭한 가문에서 병약한 몸으로 태어났으나 신중한 몸가짐으로 세속적 가치를 멀리하며 지냈는데 요절하여 마음 속에 품은 바를 펼치지 못하였고 아들이 없어서 자기 아들을 양자 보냈다. 족형의 죽음에 애통한 심정을 잘 표현한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12

    祭上舍族兄(秉壽)文 33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선비의 가문에서 태어나 이른 나이에 과거 공부를 하여 태학에 들어갔으나 크게 현달하지는 못하였다. 일상생활에서 절친하게 지내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공이 별세함에 이르러 의지할 곳을 잃게 되었는데 생전의 情理를 생각하며 족형의 죽음을 애도하는 내용을 담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13

    祭族兄茂仲(松壽)文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操行이 확실한 선비로서 평생 동안 학문에 힘쓰며 타인과 원만하게 지내는 등 모든 면에서 저자를 능가하였는데 오늘 족형의 大祥을 맞아 지난 40여 년간의 情理를 생각함에 애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는 내용을 담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14

    祭柳景學文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20여 년을 서로 친밀하게 교유하며 지냈는데 도산에서의 이별 후로 영결을 하게 되어 비통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는 내용을 담은 소상 때의 제문이다. 공은 일찍이 과거를 멀리하고 성리학에 종사하여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으나 중도에서 꺾이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해
    출처 : 유교넷
  • 360015

    祭柳來鳳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詩禮의 가문에서 총명한 자질을 가지고 태어나 비록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선비의 操行을 갖추고 학문에 힘썼다. 그러나 과거 공부는 하지 않고 시골에 묻혀 살면서 자신을 더욱 철저하게 지킨 선비로 평소에 친하게 지냈으나 병이 나도 문병도 하지 못하고 초상이 나도 직접 조문
    출처 : 유교넷
  • 360016

    祭權景睦(宗模)文 3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젊은 시절 서울의 과거장에서 만나 평생을 교유하며 절친하게 지냈다. 공은 훌륭한 가문 출신으로 열심히 노력하였으나 과거에는 성공하지 못하였고 노모와 어린 자식을 두고 별세하였는데 이 제문은 공의 大祥에 쓴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17

    祭族叔進士公(憲運)文 38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우리 집안의 傑出한 인물로 78세에 별세한 족숙 진사공의 大祥에 쓴 제문이다. 진사공은 선비의 기본자질을 갖추고 집안과 鄕黨에서 推重을 받고 관직에서 文士로 이름을 날렸으며 집안에서 후생들의 모범이 되었으나 별세함에 그 애통한 심정을 표현한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18

    祭舍弟季實文 40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던 아우가 56세라는 젊은 나이로 죽음에 일생동안 지낸 情理를 갖가지로 기술하며 애틋한 심정을 잘 표현한 제문이다. 아우는 빼어난 자질에다 각고의 노력으로 집안의 大小事를 잘 처리하며 모든 사람의 인정을 받는 모범인물이었으나 수명을 길게 타고 나
    출처 : 유교넷
  • 360019

    祭申伯翰文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빼어난 자질로 일찍이 성균관에 올라가서 공부하다가 돌아와 성리학과 역사에 대한 탐구에 침잠하였고 선비의 본분을 지키며 저자와 깊은 교유관계를 유지하였으나 겨우 육순을 넘긴 나이로 별세함에 애통한 심정을 가눌 길 없어 小祥을 맞아 그 마음을 드러낸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20

    祭族姪汝鞏(鎭基)文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우리 집안에서 촉망을 받던 족질 여공이 겨우 50을 넘긴 나이로 죽음에 평소 지낸 情理가 지극했던 저자가 그 애통한 심정을 나타낸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21

    祭族兄景休(億壽)文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집안의 어른으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저자에게 가르침을 주던 족형이 육순이 넘어 별세했다. 어느덧 大祥이 되어 그간의 지낸 情理를 생각함에 애통한 심정을 가눌 길 없다는 내용을 담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22

    先考處士府君行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부군은 의성김씨의 후예로 眞寶의 어천리에서 출생했다. 어머니 질병에 정성을 다해 치료하였고 어천리에서 靑松의 감연리로 이사하여 경주정씨에게 장가들었다. 당시 집안 사정이 어려웠으나 힘써 노력하여 어버이 섬김에 정성을 다하였다. 부친 별세 후에 집안이 더욱 어려워져 공
    출처 : 유교넷
  • 360023

    先妣孺人慶州鄭氏行略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경주정씨인 先妣가 경술년에 先考에게 시집와서 어려운 가정을 각고의 노력으로 일으켜 세웠으며 특히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체격은 矮小했으나 의지가 굳세어 婢僕들의 도움이 없이 家事를 꾸려 나갔는데 8월 무명이 나오면서 시작하여 섣달 그믐까지 십여 필의 베를 짜기도
    출처 : 유교넷
  • 360024

    南公壽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龜陰公과 평소에 교유한 이력을 바탕으로 龜陰公의 서거를 당해 비통한 심정을 노래한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25

    金岱鎭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조카로서 아저씨와 생전에 잘 지내던 이력과 情理를 조목조목 열거하며 龜陰公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26

    李秀學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龜陰公의 재주가 빼어나 자신이 미쳐갈 수 없음과 家學을 배경으로 공부한 것과 千古의 이별을 앞에 두고 시와 편지를 어루만지며 슬퍼한다는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27

    金養範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訂窩翁과 한 가문에서 빼어난 인품에 실력까지 갖추었으나 落拓不遇하게 일생을 보낸 사실을 슬퍼하는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28

    李敦禹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山中處士로 선조의 遺德을 이어 시례를 익히고 자연 속에 살며 지내는 모습을 표현했다. 빼어난 자질로 조정에서 벼슬할 능력을 지녔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草野에 묻혀 지낸 저자를 애도하는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29

    李相行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빼어난 자질의 龜陰公이 칠십년 생애를 마감함에 자신과의 인연이 다함을 슬퍼한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30

    柳星鎭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歲暮에 龜陰公의 부음이 전해지니 이 세상에 자신만 남은 심경이 쓸쓸함을 표현했다. 생전에 경륜이 탁월하다고 사람들이 말하고 있으나 처사의 상자에 깊이 간직된 것은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생전의 일을 언급하면서 다시 邵康節의 樂命篇을 읽을 것이라는 내용의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31

    趙謙祜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빼어난 자질의 龜陰公이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선비의 명성도 높았다. 五窮을 떨쳐 버리지 못했으나 邵康節의 시는 읊었는데 근래에 文星이 어두워져 그를 슬퍼한다는 내용의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32

    吳世潤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난초 같은 향기와 옥같이 온화한 인격으로 맑은 경지에서 지냈으나 운명의 소치로 별세함에 음덕이 자손에게 미치기를 바라는 내용의 만사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33

    柳致儼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저자의 빼어난 덕성과 문장에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자신이 생전에 많은 가르침을 입었다. 이제 저자가 별세함에 의지할 곳이 없어져 슬프다는 내용의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34

    金常壽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빼어난 자질에 문장까지 갖추어 鄕試에서는 入格이 되었으나 중앙과거에서는 성공하지 못해 자연에 묻혀서 선비 본연의 길을 걸었다. 평소 많은 가르침을 주던 분이었는데 저자가 별세함에 의지할 곳을 잃게 되어 비통한 심정 금할 길 없다는 내용의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35

    金城鎭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남보다 뛰어난 총명과 재주로 각고의 공부를 하여 풍부한 역량을 갖추었으나 시대를 만나지 못해 크게 顯達하지 못하였다. 훌륭한 著作을 남겼고 講席에서 주인공이 되어 후생을 지도하다가 병에 걸려 逝去하니 후생들이 의지할 곳을 잃은 슬픔을 토로한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36

    金鎭道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문학이 대대로 끊임없이 이어져온 훌륭한 가문이었는데 저자에게 이르러 크게 顯達하지 못하였다. 林下에 은거하며 훌륭한 스승에게 나아가 배우고 講席에서 후생들을 지도하였으나 세상의 도가 날로 무너지는 즈음에 訂窩翁과 함께 연이어 별세하니 그 슬픔이 크다는 내용의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37

    金敬鎭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뛰어난 자질에 총명까지 겸한 선비였으나 문사에 힘쓰기보다 선비 본연의 인격함양에 힘쓴 군자였다. 후생지도에 힘써 사문에 큰 공을 이루었으나 별세함에 이르러 생전에 보여준 은혜를 생각하니 슬픔을 이길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제문이다.
    출처 : 유교넷
  • 360038

    遺事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부군은 義城金氏의 후예로 휘는 光壽, 자는 孟實, 호는 龜陰이다. 1801년(순조 1) 4월 15일에 靑松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총명하였는데 살고 있는 곳이 자식을 키울 곳이 못된다고 부친께서 龜山으로 이사하였다. 10세 무렵에 집안의 九峯公과 知非公에게 나아가 배웠
    출처 : 유교넷
  • 360039

    墓誌銘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광수
    저자는 義城金氏의 후예로 휘는 光壽, 자는 孟實, 호는 龜陰이다. 1801년(순조 1) 4월 모일에 출생했다. 어려서 총명하였는데 말을 배울 때에 능히 글자를 분변하였다. 스승에게 나아가 배울 적에 글을 지었는데 특히 뛰어나 方谷 柳洛文이 그의 천재성을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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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040

    수산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수산집(秀山集) 秀山 金秉宗의 문집. 9권 5책. 목판본. 秀山의 제자이며 사위인 李鐸의 序에 의하면, 秀山이 하세하고 그 嗣子 龍大와 제자들이 生時所著 문자들을 수집하여 판각하려 하였다고 했다. 현재 보존된 원본은 판각을 위해 정서한 것이며, 仁義禮智信 9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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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041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乙酉春大父拈韻命賦伏次以上, 丙戌冬族叔莊庵公(時洛)留做臥龍先社秉宗與同輩隨之伏以一詩上大父庭下, 春雪(1888), 盆梅, 賞春感興(1889), 讀唐史有感(1890), 過忠原彈琴臺次前人韻(1891), 壬辰往拜西山先生仍留風雷軒洪丈(在謙)以詩進亟席謹次呈上, 石門亭志感, 追記乙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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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042

    上西山先生(1893)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893년 저자가 23세 때 西山 金興洛에게 보낸 편지이다. 저자는 서산의 문도였으며, 여러 차례 편지를 올려 학문의 순차와 내용에 대해 질의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이 편지에서는 자신이 어른을 모시느라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전에 모시던 시절처럼 배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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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043

    上西山先生(1895)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895년 서산 김흥락에게 보낸 편지이다. 초여름에 뵙고 돌아왔지만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은 없을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어른을 모시고 있으면서, 뜻을 세움이 견고하지 못해서 사물에 유혹되니, 이는 초학자로서의 下手處를 알지 못함이라 했다. 어찌하면 이 병통을 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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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044

    上西山先生(1897)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897년 서산 김흥락에게 보낸 편지이다. 임천에서 모시고 威儀를 뵈온 것이나 문하에서 며칠간 가르침을 받은 것은 크게 감격한 일이라고 했다. 자신은 팔십노인을 모시고 一喜一懼하고 있으며 巨谷의 어른이 돌아가신 것은 슬픈 일이라고 했다. 지난번 대학에 대한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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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045

    上西山先生(1898)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898년 서산 김흥락에게 보낸 편지이다. 선생께서 편찮으시다니 어떤 지, 즉시 달려가 侍湯하지 못해 危懼한 마음을 말하였다. 또한 양자로 나가서 養親의 상을 입은 자가 本生 喪制에 어떤 복을 입어야 하는지, 또 사후양자로 香山承嗣한 자가 본생 상을 입었을 때는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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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046

    上西山先生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서산 김흥락에게 보낸 편지이다. 집안의 여러 우환과 어지러운 마음을 호소하고, 근간에 읽은 내용에 대해 질의하였다. 崔純夫의 兼氣言性之說은 言과 名의 차이가 있지 않은지, 性은 稟受의 이름인데 바로 道와 氣를 겸한다고 하면 理가 재료에 대치되는 것과 같은데 어떤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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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047

    上拓菴先生(1907)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07년 拓菴 金道和에게 보낸 편지이다. 안부를 묻고, 일찍이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고 싶었으나 정성이 부족하여 그리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상을 입었으나 위로받을 곳이 없고 그 遺文字를 撰次하고 친밀한 분에게 銘을 받는 일은 아직 장례에 골몰하여 미처 하지 못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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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048

    別紙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종증조부의 초상에 3년복을 입을 사람이 없습니다. 손부가 살아 있는데, 장증손이 죽었고 장증손부는 살아 있으며, 차증손이 아직 미성인일 경우, 여러 가지 의논이 다릅니다. 초상에 상주가 없을 수 없으니 차증손으로 極服을 입게 하자는 의견과, 장증손이 죽었으나 장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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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049

    上拓菴先生(1910)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10년 척암 김도화에게 보낸 편지이다. 오백년 나라가 망하니 그 쓸쓸함을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부탁드린 문자는 곡진히 허락하시니 감춰진 懿德이 천추에 드러나게 되었으니 감격을 이길 수 없다고 하였다. 訂翁의 속집은 할아버지께서 고심하시던 것이니 刪定을 부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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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050

    與響山李先生(1906)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06년 響山 李晩燾에게 보낸 편지이다. 안부를 묻고, 자신은 노친을 잃으니 의지할 곳이 없어 공허해졌으며 비통하다고 하였다. 종질부로 보낸 아이가 약하고 어리석어서 尊門의 주부된 일을 다하지 못할 것 같아 부끄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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