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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0201

    與椒隱族兄(宇秉)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椒隱 金宇秉에게 보낸 편지이다. 근간에 자주 만나지 못해 안타깝다고 하면서, 자신은 온 천지의 풍우로 死傷憂慽이 많으나 하늘이 주시는 단련으로 받아들이고 제배들과 모여 서로 연마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02

    答椒隱族兄(1928)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28년 초은에게 보낸 답장이다. 보내신 글을 읽으니 간절하신 말씀에 시원한 감동이 있었다고 하고, 추위에 어떠하신 지 안부를 물었다. 俛宇의 圖說에서 道心之不得其正의 의미에 대해 더 상세히 가르쳐 주실 것을 청하면서, 道心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면 그 道心이 約
    출처 : 유교넷
  • 360203

    與族兄敬孟(獻周)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金獻周에게 보낸 편지이다. 뵙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사이에 이미 한 해가 지났으니 그간 어떠신지 안부를 묻고, 先王考 문집을 이미 판각하기 시작했다니 얼마나 되었는지, 자신은 일가의 도리를 못한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04

    答族兄聖則(世東,1919)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19년 金世東에게 답한 편지이다. 上皇께서 돌아가신 슬픔을 말하고, 먼저 長牋을 보여 주시니 답서를 보내지만 부끄럽다고 했다. 안부를 묻고, 자신은 십여 년 노심초사하던 양자의 일이 조상의 적덕에 힘입어 큰 계획이 이루어졌으니 봄바람이 부는 것 같다고 했다. 더욱
    출처 : 유교넷
  • 360205

    答聖則兄(1927)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27년 金世東에게 답한 편지이다. 안부를 묻고, 아들은 농사일에 관여하고 있지만 금년 가뭄이 전에 없던 일이라서 한탄하고 웃을 뿐이라고 하였다. 족보에 대한 일은, 장차 어떻게 수단할지 걱정이라고 하면서 北靑의 족인들은 그 시대로 보아 의문이 없을 수 없지만, 이
    출처 : 유교넷
  • 360206

    與聖則兄(1928)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28년 禮制가 유한하여 이미 담제의 기한이 지나갔는데 참례하지 못하고 먼저 편지를 받으니 통한을 이길 수 없다고 하고, 의성에 갔던 일로 건강을 상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자신은 지난번에 출행한 것이 형과 함께 하지 못해 한스럽지만 흥겨웠다고 하고, 새로 난 아기가
    출처 : 유교넷
  • 360207

    與族姪舜執(衡萬,1898)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898년 金衡萬에게 보낸 편지이다. 안부를 묻고 자신은 어른의 교훈을 받고자 하나 사물의 유혹을 받아 빼앗기는 병폐가 있다고 하였다. 예의를 폐한지 오래되어 의복과 예절이 달라졌으니 하물며 도의가 그간에 있겠으며 하물며 진리가 드러나겠는가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08

    與族弟善應(樞秉,1931)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31년 金樞秉에게 보낸 편지이다. 초가을 며칠간 만났던 것은 참으로 좋은 인연이었다고 하면서 안부를 물은 뒤 椒隱형이 종당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 모범을 볼 수 있게 되니 우러러 탄식한다고 하였다. 자신은 일전에 達亭의 현판을 다는 일로 한번 나아가려 하였으나
    출처 : 유교넷
  • 360209

    與族弟見五(秉燦,1915)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15년 金秉燦에게 보낸 편지이다. 일전에 보낸 편지의 답장을 곧바로 하지 못하여 안쓰럽다고 하였다. 어르신을 뵈었더니 후진의 우러러보임이 되셨다고 하였다. 자신은 여름 가을에 고생하고 聖齊가 북으로 간다는 데 추운 날에 먼 길을 가니 걱정이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10

    答宗君聖齊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川前宗孫 金衡七에게 답한 편지이다. 안부를 묻고 자신은 감기로 고생한다고 하면서 川上의 의논에 酉谷일이 廬江書院의 문자와 합한다 하니 이것은 갑자기 도모할 일은 아닌 듯하다고 했다. 세전에 편지를 한 번 보내보면 어떨까라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11

    答族弟方仲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金方仲(字)에게 답한 편지이다. 물을 격하고 살면서, 자신에게 의문나는 곳을 질문하니 감사하나, 어두운 사람에게 물으니 어쩔까라고 하였다. 洪範의 彛倫의 의미에 대하여, 五子之歌와 帝舜作歌之歌의 차이에 대하여, 禹貢 篇首의 의도에 대하여 각 治水구역의 획정에 대하여
    출처 : 유교넷
  • 360212

    答族弟佐衝(佑東,1928)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28년 金佑東에게 답한 편지이다. 상복을 벗은 후 위문하지 못함을 사과하고 안부를 물은 뒤, 자신은 일전에 경주에서 손자를 무릎에 안았으니 일생에 가장 득의한 일이었다고 했다. 일전에 금강산 온정촌에서 옷 보따리가 왔던데 돌아올 기약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물었다.
    출처 : 유교넷
  • 360213

    答族弟楗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金楗에게 답한 편지이다. 그가 보내 온 시고를 보고 이렇게 가정이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문한에 힘쓰니 江右의 儒風이 훌륭하다고 했다. 자신은 가정과 시대의 일로 마음이 어지러운데 헛된 이름이 널리 퍼져서 칭송을 듣기도 하니 부끄러워 땀이 난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0214

    答族弟致伯(和植)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金和植에게 답한 편지이다. 검제 인편에 편지를 받았다면서 안부를 묻고, 사위 보는 것을 축하하였다. 『星湖集』을 빌려 읽으면서 그 총명과 역량이 세상에 다 쓰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곧 돌려줘야겠지만 한 번 더 읽고 싶어 머물러 두겠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15

    與族弟而晦(佑林)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金佑林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를 받으니 寡陋에 대해 표현한 부분이 있었는데, 初學처럼 자처하지만 내용에 깊은 사색이 있으므로 그 표현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요사이 『東岡文集』 한 질을 구해 읽고 感發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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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16

    答族姪應魯(1916)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16년 金應魯에게 답한 편지이다. 편지를 받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알겠는데, 寡陋에 대해 말하되 너무 장황하고 실질이 없으니 친구들에게도 直諒해야 하는데 친족간에 그러면 안 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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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17

    答族孫時龍(1919)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19년 金時龍에게 답한 편지이다. 검제에서 온 편지에, 자리에 누울 질환이 있다 하니 너무 약에만 마음 쓰지 말고 治心養氣에 마음을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세상의 변화에 意氣가 흔들리는 것은 모두 私心이라고 했으니 우리가 힘쓸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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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18

    與再從弟宇植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재종제 김우식에게 보낸 편지이다. 타국으로 이별한 후의 그리움을 간절하게 말하고, 아우의 안부를 물은 뒤, 가내 제절의 안부, 禹洪 舜明 등의 안부를 간절히 물었다. 빗골 족숙의 상사에 대해 간곡히 안타까워 하고, 나라를 떠나 이역에서 만난 부형의 상사에 대해 극진히
    출처 : 유교넷
  • 360219

    答族姪重煥(1925)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25년 金重煥에게 답한 편지이다. 丹溪󰡕의 로 스승을 찾아 공부하러 간 데 대해 격려하고, 몇 년간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당부하였다. 다만 時諱를 조심할 것도 당부하였다. 『중용』 性道敎의 뜻에 대해 보내온 설명에 대한 의견을 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20

    與族孫時佑(1927)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27년 金時佑에게 보낸 편지이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 중에서 재주가 過人한 사람은 두려울 것 없지만,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사람은 두려울 만하니, 마음을 쓰라고 하였다. 자신은 쇠약한데다 초하루 보름의 講會는 무익하지 않겠지만 헛 이름이 먼저 퍼지는 것이 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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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21

    寄兒龍大(1923)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23년 아들 龍大에게 보낸 편지이다. 천리 밖에 장가간 아들에게, 그 댁은 文元공의 옛 집이니 매사를 조심하고 신중히 하여 집안에서의 가르침을 유념하라고 하였다. 곧 돌아올 날짜를 재촉하여 돌아오되, 오는 길을 조심하라고 간곡히 당부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22

    答龍兒(1924)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24년 아들에게 답한 편지이다. 아들을 보내고 다음날 날씨가 매우 궂어서 걱정했더니 아들 또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편지를 보냈으니, 네가 내 마음으로 네 마음을 삼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혹시 거기 있는 것이 實效가 있으면 晨昏을 궐하는 것을 채울 수 있으니,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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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23

    寄龍兒(1931)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31년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이 여행한 지 십여 일에 마음은 아직도 집에 있으니 너와 내 마음이 같다고 하였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 대한 안부를 간절히 묻고, 춘궁기를 당했으니 마을의 집집마다 연기가 나는가를 살펴 힘껏 구조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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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24

    寄龍兒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매화리에서 보낸 편지를 보았느냐고 묻고, 자신은 점점 집에서 멀어지면서 山海의 경치를 보고 있지만 집안 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行程이 반도 못되어 일행이 발이 부르텄으나, 배를 타려고 해도 바람이 순하지 않고 차를 타려고 해도 바닷가 길이
    출처 : 유교넷
  • 360225

    寄龍兒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高城읍에 머물 때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일행에 큰 질병이 없으니 다행이라고 하고, 거의 한 달 만에 도착했는데, 어려웠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고 하였다. 어린 아이들을 잘 돌볼 것과 농사시기를 놓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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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26

    寄龍兒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울진‧삼척‧고성에서 보낸 편지를 받았는지, 그간 집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온 가족이 무사한지, 아이들은 잘 크는지, 농사철은 놓치지 않았는지 등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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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27

    聖學續圖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丁巳년(1917년, 저자 58세)에 退溪의 『聖學十圖』에 대응하여 이를 저자 자신의 학문적 깨달음과 연관하여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聖人의 誠敬과 危微에 대한 말씀이 退溪 『聖學十圖』에 와서 크게 이루어졌으니, 자신은 이를 사모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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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28

    大學衍義箚錄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眞西山이 朱子를 私淑하여 후대 학자로 하여금 濂洛洙泗의 근원에 소급하게 하였으니 위대한 일이다. 그가 찬술한 『心經』은 만세 군자에게 귀감이 되며, 『대학』의 3강령과 8조목을 설명하였고, 역대 治亂의 자취를 기록하였다. 癸亥년에 申必熙에게서 全帙을 빌려 여러 번 읽
    출처 : 유교넷
  • 360229

    讀書漫錄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저자가 독서한 책들에서 부연하고 설명할 부분을 정리하여 전거를 찾고 대조 주해한 글이다. 『書傳』: 歸格于藝祖, 帝庸作歌臯陶賡歌 등의 조목에 대해 『春秋』와 『論語』 등을 대조 주해 하였다. 『詩傳』: 淸廟章章下乾豆, 素冠章註縞黑經白緯 등에 대해 『春秋』와
    출처 : 유교넷
  • 360230

    北遊錄 46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일찍이 금강을 유력하려 하여 芝川, 蘭汀叔과 벗들과 서로 계획하였으나 여러 가지 일로 이루지 못했더니, 금년에 회갑을 맞으니 亡國의 恨과 孤露의 痛歎이 더하여, 지금 가지 않으면 더 늙어 가지 못할 것이라 하였지만, 처음 계획하던 분들은 이미 늙어 가지 못할 지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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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31

    古山申公壽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14년 3월 古山 申公의 회갑잔치를 축하하는 序이다. 그가 斯文의 추중을 받음과 자제들이 성실하게 장성하고 있음을 축하했다. 壽와 福을 누리기를 기원하고 시로 칭송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32

    久峯南公遺稿序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久峯 南萬喆의 문집에 쓴 서문이다. 그는 뛰어난 재주로 東坡 朴耆萬의 제자가 되어 크게 진보하였으나 나라가 기울자 은거하여 가난하게 살았다. 절조 높은 高士로 久峯이라 自扁하였다. 그 손자 潤洙가 글을 청하기에 사양하다가 글을 보고 감복하여 이렇게 쓴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33

    禹夫人金氏傳後敍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丹陽 禹在益의 어머니 金氏의 사적을 기록한 발문이다. 지극히 가난한 집에 시집 와서 집안이 보전되게 하였으며, 홀로 奉祭祀 敦親戚에 노고하였다. 시집이 禹倬 선생의 후손이었는데, 그 여열이 남은 듯하였다. 이를 禮義之邦에 천양함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34

    警菴記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01년 저자의 종증조부 芝廬공이 내려 준 警懦 두 글자에서 자신의 호를 警庵이라 하면서 쓴 기문이다. 자신이 이를 크게 써서 늘 보고 있었는데 或客이 물어 와서 問答한 형태로 자신의 의지를 적었다.
    출처 : 유교넷
  • 360235

    詠歸亭重建記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悔齋 先生의 良佐村 詠歸亭을 중건하는 데 쓴 기문이다. 선생의 가르침과 道學淵源이 해와 달처럼 빛나는데 이 정자만 황폐하여 斯文의 흠결이더니 이제 그 후예들이 중건하여 선생의 책을 읽고 선생의 도를 배우니 자신이 사양하지 못하고 기문을 쓴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36

    吾老亭記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죽장 立巖 吾老亭의 기문이다. 東窩 선생의 정자를 그 후손 權丙洛씨가 지은 오로정을 중건하면서 부탁한 글을 지으면서, 東峯을 잇고 旅軒을 배운 그 연원을 설명하고, 정자의 경관을 그려 보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37

    永慕齋記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23년에 지은 義城 金得器의 산소 재사인 永慕齋의 기문이다. 임진왜란에 공이 순국한 뒤에 조정에서 포상하고 사림이 제사하는데, 산소에 墳庵이 없어서 흠이었는데, 이제 집을 지으면서 자신에게 기문을 청하였다고 하였다. 공의 義烈과 殉國을 설명하고 이 집에서 그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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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38

    咸聚亭重修記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31년 襄陽 望月面의 咸聚亭을 중수한 기문이다. 權梅堂은 冲齋의 從孫이며 鶴峯의 高弟였는데, 임진왜란에 창의하여 그 충렬이 뚜렷한 분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자연으로 돌아와 高士들과 사귀었다. 이 정자는 두 번 중수하였는데, 이번에 중수하면서 자신에게 기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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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39

    汎菴記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汎翁 柳公이 벽에 汎菴 두 글자를 썼기에 자신이 방문하여 그 의미를 물었다고 하면서, 둘의 문답형식을 기록하였다. 그러면서 이를 기문으로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아 愛汎博學의 뜻을 받들어 쓴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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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40

    方谷記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巖居丈人 權公이 벽 위에 方谷 두 글자를 써 놓았기에 그 뜻을 문답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方자의 의미를 깊이 문답하고 이를 기문으로 쓴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41

    鶴皐亭記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李鍾瀅의 鶴皐亭에 쓴 기문이다. 비학산 남쪽에 정자를 짓고 손님을 응대하면서 자신에게 기문을 부탁하기에 시를 인용하여 짓는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42

    勿問記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雪蒼山 勿字峯 아래 李氏의 어떤 사람이 勿問으로 방 이름을 지었더니 過客이 묻기를, 알고 안 묻는 것과 모르고 안 묻는 것과, 의문이 없어서 안 묻는 것과 의문이 있으면서 안 묻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옳은가를 물어서 문답했다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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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43

    愚堂記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眞城 李岱運이라는 사람이 愚堂이라고 집 이름을 지었기에, 자신이 그 愚字에 대해 논하고 주인이 마침내 어리석음으로 마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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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44

    止窩記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南毅伯과 가까이 지내서 그 인품과 학문을 좋아했는데, 그가 止窩記를 청하길래 무슨 뜻인가를 묻고 그 止字와 止至善의 의미에 대해 논의하여 드렸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0245

    槿菴記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18년 金萬植의 부탁으로 쓴 기문이다. 우리 조선이 무궁화를 심어 日月의 精華를 삼았더니 국운이 바뀌어 하루아침에 비바람을 맞았다. 그러나 白下翁의 조카 萬植씨는 이를 강개하여 나에게 槿菴記를 청하였다. 집은 아직 짓지 않았으나 민족이 각자 마음속에 하나씩의 槿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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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246

    退湖亭重建記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金慶男의 정자 退湖亭의 遺址에 그 후손들이 협력하여 정자를 중건하면서 자신에게 기문을 청하였으니, 그분의 世系와 學脈을 들면서 그 중건을 축하하면서 축원하였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0247

    有蔚齋記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琴韶村에 있는 蔚珍林氏의 입향조 이하 3세의 재실인 有蔚齋의 기문으로, 연유와 경승을 말하고, 孝悌禮樂의 門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48

    謹書鶴峯先生基題柒原東軒詩後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28년 9월, 鶴峯 선생이 柒原의 동헌에 제한 시를 읽고 이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학봉 선생은 선조 원사공이 집현전 학사로 계시다가 칠원 현감으로 왔던 일을 기념하여 동헌에 시를 지어 주었었다.
    출처 : 유교넷
  • 360249

    謹書家藏禮記膽本後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1927년, 7대조 汾江공이 썼다고 전해지는 예기 등본을 구하여 보고 감회와 교훈을 쓴 글이다. 芝谷공의 기문을 인용하여 전심 독서로 성취하여야 함을 이야기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250

    謹書蒼狗日錄後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密庵 선생이 葛庵 선생을 모시고 귀양 다니던 시절의 일기를 모은 「蒼狗日錄」을 읽고, 그 당시의 정황을 보며 賜還 후에 금양에서 강도하던 사적까지 기록되었다고 하였다. 그 뒤 霽山 金선생이 유배되자 그 아들 九思공이 따라간 기록을 耽羅志畧이라 하였다고 1906년에 쓴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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