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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0301

    祭族叔九山公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九山 金章洛의 제사에 드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0302

    祭族姪佐卿文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族姪 字 佐卿의 제사에 드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0303

    祭櫟巖李丈(元奎)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櫟巖 李元奎의 제사에 드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0304

    祭族弟圓仲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族弟 字 圓仲의 제사에 드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0305

    祭族叔翠石公文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翠石 金柄洛의 제사에 드린 글이다. 그는 秀山의 양자 龍大의 생가 조부였다. 간곡한 감사와 애도를 표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306

    祭族叔處士公(起洛)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族叔 金起洛의 제사에 드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0307

    祭從先祖雲川先生文(遷厝時)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雲川 金涌의 무덤을 臨河 申谷에서 臨東 枝洞으로 이장할 때 드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0308

    祭族姪明會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族姪 金明會의 제사에 드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0309

    祭族姪運仲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族姪 字 運仲의 제사에 드린 글이다.
    출처 : 유교넷
  • 360310

    濠隱南公墓誌銘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同中樞 南興壽의 묘지명이다. 그의 字는 穉猶이며 號는 濠隱이었다. 아버지는 贈戶曹參議 景适, 어머니는 貞夫人 永陽李氏로, 1813년(순조 13) 정월 15일에 태어났다. 총명하여 종형 海山公 箕壽에게 공부하였고, 定齋 柳先生을 찾아뵙기도 했다. 家學과 鄕學의 스승이었
    출처 : 유교넷
  • 360311

    懼齋吳公墓誌銘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吳正敎의 묘지명이다. 그의 字는 重五, 號는 懼齋였다. 아버지는 觀協, 어머니는 載寧李氏로, 1825년(순조 25) 6월 19일에 태어났다. 총명하고 널리 교유하며 戒懼謹篤하여 이름이 있었다. 효성이 독실하였고, 우애가 지극하였다. 73세로 고종하였다. 안동 재산현
    출처 : 유교넷
  • 360312

    柳氏妹恭人壙記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豊山柳氏에게 시집간 누이의 壙記이다. 아버지의 임종을 함께 한 누이가, 시집에 가서 죽었다는 소식이 왔으니 차마 들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靑溪 선생의 후예로 아버지 程洛과 어머니 英陽南氏의 딸로, 열아홉에 柳冑榮에게 시집가서 30세에 죽었다. 아름다운 성품과 덕
    출처 : 유교넷
  • 360313

    族弟眉仲壙記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族弟 金秉年의 壙記이다. 그의 자는 眉仲이며 아버지는 星洛, 어머니는 完山柳氏였다. 1886(고종 23)에 태어나 1906년(광무 10)에 죽으니 겨우 21세였다. 家學을 이어 事親愛敬하고 善述詩禮하여 기대하였는데 그 끝을 못 보았으니 안타깝다.
    출처 : 유교넷
  • 360314

    秀士金君節婦安東權氏合葬壙記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義城 金庭煥과 節婦 安東權氏의 합장 壙記이다. 김정환의 字는 蘭卿이며 아버지는 夏植, 어머니는 固城李氏로 1888년(고종 25)에 태어났다. 16세에 丹丘權氏에게 장가들었다가 초례에서 돌아오면서 병을 얻어 1904년(광무 8)에 죽었다. 절부 권씨는 權相輿와 영양남씨
    출처 : 유교넷
  • 360315

    舅母孺人朴氏壙記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외숙 南澔朝의 부인 錦城朴氏의 壙記이다. 유인의 아버지는 載璜, 어머니는 驪江李氏였다. 아름다운 품성으로 외삼촌의 繼室로 시집 와서 舅姑께 효성스럽고 법도가 있었다. 집안을 다스릴 때는 우애하며 家法을 잘 실천하였고, 40세에 후사를 정하였고, 병오년에 60세로 돌아
    출처 : 유교넷
  • 360316

    悔窩吳公墓誌銘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吳錫耆의 묘지명이다. 그의 자는 應博이며 아버지는 世寧, 어머니는 義城金氏였다. 1862년(철종 13)에 태어나 1909년(순종 3)에 돌아갔다. 그는 謙齋의 조카로 그 家學의 彬彬함을 이어받아 修身行道하였다. 현서 선영에 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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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17

    五土山神道碑(代人作)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高麗 金紫光祿大夫 太子詹事 義城君 휘 龍庇의 신도비명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 그는 경순왕자 휘 錫의 후손으로서, 공훈으로 인하여 조상의 봉호를 이어받았고, 사후 이 산에 장사하였으니 五土山이며, 그 위에 부인 姜氏의 묘가 있다. 공의 높으신 공훈으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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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18

    贈參判金公墓碣銘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증 참판 金堯欽의 묘갈명이다. 그는 1675년(숙종 1)에 태어나 1709년(숙종 35)에 35세로 졸하였다. 아버지는 증 좌승지 遠重, 어머니는 安陵李氏였다. 일찍부터 재능이 있어서, 屛谷, 雨溪, 霽山 등의 선배들이 기대하였다. 枝洞 寓所에서 졸하자 기현 선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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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19

    敎導官戀南齊申公墓碣銘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敎導官 申永錫의 묘갈명이다. 그는 平山申氏로 字를 遠祚, 號를 戀南이라고 했으며, 아버지는 이조참의 藝, 어머니는 金氏였다. 고려가 망하자 罔僕之義를 지켜 스스로 落南하여 남이 알지 못하게 寧海申氏라고 숨겼다. 강계 敎導官으로 있을 때 법도가 있었다. 졸하여 원주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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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20

    贈吏曹參議丹厓李公墓碣銘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贈 吏曹參議 李龜孫의 묘갈명이다. 그는 眞城李氏로 字를 穉成, 號를 丹厓라 하였다. 아버지는 世翕, 어머니는 錦城朴氏이며, 1758년(영조 34)에 태어나 엄정한 학풍과 소슬한 풍류로 평생을 보내고 1833년(순조 33)에 76세로 졸하였다. 집 뒤에 장사하고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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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21

    眉山鄭公墓碣銘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鄭道休의 묘갈명이다. 그는 烏川鄭氏로 字는 聖由, 號는 眉山이었다. 아버지는 夏瓊, 어머니는 慶州金氏로, 1807년(순조 7)에 태어나 1877년(고종 14)에 77세로 졸하였다. 그는 7세에 아버지를 잃었으나 어머니께 독실히 효행하였으며, 東淵公에게 배워 학문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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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22

    處士金公墓碣銘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義城 金命欽의 묘갈명이다. 그의 字는 敬受로, 芝村 선생의 손자이며 承宣 遠重과 載寧李氏의 아들이었다. 1679년(숙종 5)에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지극한 성품으로 가학을 이어받았다. 처음 성산이씨에게 장가가서 처가에서 받은 재산이 많았으나 喪妻하자 그 땅을 다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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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23

    同樞南公墓碣銘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壽 嘉義大夫 同知中樞府事 南之熏의 묘갈명이다. 그는 1678년(숙종 4)에 아버지 旻柱와 어머니 寧海申氏에게서 태어나, 葛庵 선생께 배우고 戊申亂에 倡義하여 맹약문을 지었다. 만년에 壽職으로 가의대부에 승급하였다. 1768년(영조 44)에 91세로 졸하자 愚尾谷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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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24

    素菴鄭公墓碣銘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烏川 鄭信在의 묘갈명이다. 그의 字는 伯輗 號는 素庵이었으며, 1800년(순조 즉위)에 아버지 裕昆과 어머니 安東權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여가에는 독실히 공부하였다. 아우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 깊이 한스러워하였고 자질들을 가르쳐 가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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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25

    扐翁權公墓碣銘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永嘉 權周曄의 묘갈명이다. 그의 자는 晦叟였으며, 아버지와 어머니 務安朴氏의 아들로 1830년(순조 30) 태어났다. 逋庵 周郁의 아우로 鄕試에 급제하고 효성으로 부모를 받들었다. 壽職으로 通政階에 올랐으며 1909년(융희 3)에 80세로 졸하였다. 竹長 墻內에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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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26

    下山鄭公墓碣銘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烏川 鄭鎭憲의 묘갈명이다. 字는 希文이며 本生 아버지 淵在와 어머니 光山金氏의 아들로 1834년(헌종 즉위)에 태어나 1911년에 78세로 졸하였다. 그는 晩悟공에게 글을 배우고 定齋 柳선생께 執贄하였으며, 서울에 과거보러 갔다가 時事가 글러진 것을 보고 학문과 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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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27

    秘書監丞李公墓碣銘 33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驪州 李錫贊의 묘갈명이다. 字는 殷甫로 아버지 蓉久와 어머니 廣州安氏의 3남으로 태어났다. 1874년(고종 11)에 태어나 두 형과 돈독한 우애로 살았으며, 형이 일찍 죽은 뒤 조카를 아들처럼 길렀다. 承訓郞을 거쳐 通政 秘書監丞이 되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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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28

    處士南公墓碣銘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英陽 南景和의 묘갈명이다. 자는 士羲로 아버지 得萬과 어머니 永嘉權氏의 아들이었다. 1768년(영조 44)에 태어나 84세를 살고 1851년(철종 2)에 졸했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백부 勿小窩 澤萬의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학문에 정심하고 가법을 아름답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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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29

    處士南公墓碣銘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英陽 南錫晉의 묘갈명이다. 字는 安仲으로 아버지 明翼과 어머니 綾城具氏에게 태어났다. 1826년(순조 26)에 태어나 11세에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의 빚으로 가난해졌지만 근실히 노력하여 회복하였다. 가법을 확립하여 좋은 소문이 들리게 하였다. 1887년(고종 24)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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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30

    通仕郞行順陵參奉朴公恭人鄭氏墓碣銘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密城 朴定復의 묘갈명이다. 字는 景三, 號는 敬軒이며, 아버지 思裕와 어머니 月城崔氏에게서 1842년(헌종 8)에 태어났다. 일찍이 염정한 도리를 배워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본분에 충실하였다. 順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1923년에 82세로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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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31

    處士南公墓碣銘 39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英陽 南有鏛의 묘갈명이다. 字는 叔庸, 아버지 百悔公 崑壽와 어머니 月城孫氏의 아들로 1827년(순조 27)에 태어났다. 어른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정 일을 잘 돌보았으며, 先公의 상을 篤孝로 치렀다. 어머니를 모시고, 일찍 죽은 伯兄의 아들들을 돌보면서 律身範家에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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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32

    達城 徐必道의 행장이다. 처음 이름은 明洙, 字는 德初, 號는 梧石이었다. 1831년(순조 31) 護軍 錫賢과 貞夫人 月城崔氏에게 태어나 백부 贈戶曹參判 錫遜에게 양자로 갔다. 독실한 효성으로 양가 부모를 섬겼으며, 장릉참봉을 시작으로 부호군, 가선대부 동추, 인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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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33

    朋齋金公行狀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延安 金敬淵의 행장이다. 字는 聖穆, 號는 朋齋로 1856년(철종 7) 통정 鐫과 淑夫人 宣城金氏의 아들로 태어나 伯父 錘의 뒤를 이었다. 어려서부터 어른의 돈독한 가르침을 받았으며, 西山 金先生의 칭상을 받았다. 병술년에 전염병이 돌아 온 가족이 전염되었어도 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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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34

    從曾祖芝廬府君遺事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從曾祖父 芝廬공의 諱는 常壽, 字는 季恒이니 義城金氏이다. 靑溪 선생의 長子 후손으로 瓢隱 선생, 蓴浦공 이후 芝谷 諱 正漢의 玄孫이며 諱 宏運과 安東權氏의 5자 중 막내아들이다. 1819년(순조 19)에 태어나 訂窩 諱 岱鎭에게 배우고 향시에 누차 합격하였으나 省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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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35

    族叔莊菴公遺事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族叔 莊庵公의 諱는 時洛, 字는 國應으로, 1857년(철종 8) 諱 敬鎭과 載寧李氏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諱 鎭敎의 뒤를 이었다. 일찍이 영민하여 家學을 이었으며 經史子集을 정밀히 읽었다. 西山 선생께 학문을 청하였고, 향시에 합격하고 省試에 응하려 하였으나 국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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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36

    遺事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金秉矩가 찬한 유사이다. 내용은 저자소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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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37

    墓碣銘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병종
    權相圭가 찬한 묘갈명이다. 西山 선생께 배운 사람으로 마침내 문한을 이룬 사람이 秀山 金秉宗이다. 일찍이 家學에서 계발되어 스승을 만나 이루었으니 그 견해와 문사가 빛났다. 서산 선생이 돌아가시자 心喪으로 애통하고, 先公의 상을 애통과 예로 치르시고 학문에 잠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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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38

    와은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와은집(臥隱集) 臥隱 金翰東의 문집. 8권 4책. 석인본. 6대 후손인 昌燮의 跋文에 의하면 원래 수십 권이었는데 亂을 만나 거의 다 불에 타 버려 남은 글은 반의반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卷1은 年譜, 卷2는 詩 163수‧書 27편, 卷3은 疏 17편, 卷4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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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39

    年譜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年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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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4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送春, 八角爐成內白外黑表方裏圓眞一奇玩鵲尾睡鴨何足羨哉遂吟一律, 次權如天思溥八角爐韻, 易東書院謹次老先生精一齋韻, 次再從姪公叔熙稷韻, 送公州權秀士歸櫬, 淸心樓次板上韻, 觀海, 採鮑者, 輓崔進士光岳, 三近次申君百煥韻, 次金錫之百朋韻呈如天兄以釋僑寓之愁, 贈錫之惜移寓, 歎小婢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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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41

    答鄭立齋士仰 4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1804년(순조 4) 강원도 歙谷縣 유배지에서 立齋 鄭宗魯(1738~1816)에게 대답한 편지이다. 공의 숙모가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나는 먼 유배지에서 위로의 편지도 보내지 못했으니 부끄럽다. 가을 서늘한 날씨에 상중에 있는 공은 잘 지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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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42

    答鄭士仰 4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1806년(순조 6) 유배지에서 풀려난 뒤 집에 머물면서 정종노에게 대답한 편지이다. 더운 여름철에 잘 지내고 있느냐? 나는 계속 병이 들어 누워 있다. 하지만 가을 서늘한 바람이 들어 병세에 차도가 있으면 한 번 찾아가 그 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寢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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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43

    與鄭士仰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1806년(순조 6) 유배지에서 풀려난 뒤 집에 머물면서 정종노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추위가 심해지는데 잘 지내고 있느냐? 나는 고질병이 더 심해지고 또 독감에 걸려 괴롭기만 하다. 하루 아침에 갑자기 죽을 지도 모르겠다. 부득이 아들을 보내니 先父와 仲父의 묘지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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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44

    與李穉春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1799년(정조 23)에 穉春 李㙖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해 항상 그립다. 동지 추위에 잘 지내고 있느냐? 나는 질병이 항상 끊이지를 않는다. 이번 가을 사신 행차편을 통해 朱子書를 구입했으니 이 책을 보낸다. 영남의 여러 친구들에게도 널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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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45

    與李寢郞穉春 4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1806년(순조 6) 유배지에서 풀려난 뒤 보낸 편지이다. 공과 나와의 거리는 8백 여 리이다. 좋은 자리를 택해서 몸 조심하기를 바란다. 나는 질병이 더욱 심해져 다시 일어날 희망이 없다. 과연 다시 만날 기약이 있겠느냐는 등의 내용이다. 『순조실록』에 18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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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46

    與李穉春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연대는 나와 있지 않지만 편지 내용상 강진현 고금도에 유배중인 치춘 이우에게 보내는 것으로 1806년(순조 6)으로 추측된다. 천리길 바다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공의 아들이 옆에 있으니 그래도 다행한 일이다. 나는 나이가 들어 힘들지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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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47

    與李穉春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앞 편지와 마찬가지로 유배중인 치춘 이우에게 보내는 것으로 1806년(순조 6)으로 추측된다. 일반 평민의 신분으로 유배가게 됨은 참으로 영광스런 일이다. 바닷가의 좋은 경치를 많이 보기를 바란다. 나는 병이 더욱 심해져 회생할 기미가 없다. 형편이 이러하니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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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48

    答李承旨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承旨 李晩秀에게 대답한 편지이다. 1792년(정조 16) 윤4월 27일에 영남 지역에서 10,057명의 사람이 연명하여 상소를 올렸다. 영남 출신인 공으로 하여금 상소의 전말을 보고하라고 하자, 그간의 사정을 승지인 이만수에게 편지로 대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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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49

    答靑鏡書院士林 4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1788년(정조 12)에 靑城書院과 鏡光書院 두 곳의 유생에게 대답한 편지이다. 1728년(영조 4) 戊申亂(李麟佐亂) 이후 60년이 지났다. 당시 우리 영남 지역에서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다. 현재의 임금은 지혜로우시니 우리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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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350

    答崔仁同 4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1798년(정조 22)에 仁同 수령 崔獻重에게 보낸 편지이다. 영남 지역 사림들의 기상이 예전과 같지 못하다. 논의도 하나로 잘 통일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이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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