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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紹修書院道會士林 4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806년(순조 6)에 소수서원에서 회합을 하고 있는 영남의 儒林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번 모임은 실로 중요하다. 위로는 조정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아래로는 몇 년 동안 쌓인 정성을 헛되이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원근의 사람들이 同席하였으니 道를 밝히는 좋은 결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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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佐郞其天權進士孟曄 4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792년(정조 16) 佐郞 權其天과 進士 權孟曄에게 보낸 편지이다. 우리 영남 사림들의 기상이 끊어지지 않았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공급해야 할 음식은 조금도 늦출 수가 없으니, 속히 도모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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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孟曄 4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795년(정조 19)에 권맹엽에게 보낸 편지이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는가? 나는 고질병이 요즈음에는 조금 차도가 있는데 대개 賑事(백성를 구휼하는 일)가 끝났고, 백성들의 근심이 조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언제 관직을 벗어던질 수 있겠는가라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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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權孟曄 4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관청의 하인이 돌아와 대개 소식은 들었다. 이곳의 경치는 무척 아름다운데 친구들과 같이 모이지 못함이 항상 안타깝다. 좋은 누대와 강산이 있지만 혼자 즐기니 도리어 우습기만 하다. 한 번 이곳으로 와서 좋은 모임을 만드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하였다. 1797년(정조 2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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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權孟曄 4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804년(순조 4) 유배지인 강원도 歙谷縣에서 보낸 편지이다. 장마로 소식이 끊겼는데 보내준 서신을 보니 참으로 위로된다. 이곳의 고생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다. 설사로 몸 안의 힘이 다 빠졌다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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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李監察際可 5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806년(순조 6) 監察을 지낸 際可 李秉運(1766~1841)이 유배를 가자 위로로 보낸 편지이다. 오늘 조카의 편지를 받고 공께서 配所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군자는 평소에 교양이 있고 마음의 안정이 있으면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근심하는 일이 없다. 천 리 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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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輝國 5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몇 개월 동안 소식이 끊겼다. 근래 좋은 산수에서 정자를 짓고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형께서 노년에 그런 즐거움을 혼자 누린단 말인가? 나는 지금 이가 다 빠지고 머리카락도 하얗게 변했다. 어느 날인가 만난다면 한 번 웃을 것이다. 마침 崔兄이 그쪽으로 간다고 하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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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鄭甥始如 5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796년(정조 20)에 맏사위 始如 鄭燧에게 보낸 편지이다. 일전에 바빠서 편지 한 통 보내지 못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늦더위에 잘 지내고 있느냐? 엊그제 入侍하였을 때 鄭宗魯에게 別提를 내린다고 하였다. 柳尋春(1762~1834)은 어제 관직이 갈렸다. 새벽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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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疏廳書 5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806년(순조 6)에 疏廳에 보내는 편지이다. 소청은 상소하기 위하여 선비들이 모여서 의논하는 집을 말한다. 지금은 임자년(1792년 윤4월 27일에 영남지역에서 10,057명의 사람이 연명하여 상소한 일)의 상황과 다르다. 후회가 없도록 충분히 의견을 수렴해야 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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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成叔晦 5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806년(순조 6)에 叔晦 成彦根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내 준 편지를 받고 감기가 들었음을 알았다. 나는 병세가 하루하루 더욱 심하여 침상에 누워 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疏廳의 소식은 근래 들었는가? 지금은 일단 정지하고 관망할 때이다. 際可 李秉運의 의견도 나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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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金公輔 5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804년(순조 4) 配所인 강원도 歙谷縣에서 公輔 金東弼에게 답장으로 보내는 편지이다. 유배중인 자신에게 김동필이 편지를 보내자 답장으로 보낸 것이다. 이곳 바닷가로 온 지 이미 3년이 되었다. 生死禍福은 조물주의 처분에 있다. 유배가 풀릴 기약이 없는데 쇠약한 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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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內從 5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799년(정조 23)에 사촌 鄭必濟에게 답장으로 보내는 편지이다. 근래 부모님 모시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하니 더욱 위로된다는 등의 안부를 묻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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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素巖從兄 5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사촌형 素巖 金鎭東에게 답장으로 보내는 편지이다. 하인이 와서 보내준 편지를 받고 건강이 좋지 않음을 알았다. 나는 지금 객지에 나와 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음식과 거처가 모두 맞지 않는다. 先考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道內 여러 곳으로 글을 모으고 있는데 마음대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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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素巖從兄 5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보내준 편지를 받고 근래 추운 날씨에 건강이 좋지 않음을 알았다. 빨리 집에 가서 몸조리를 함이 어떠하겠느냐? 나도 건강이 좋지 않아 사직서를 올렸는데 허락이 나지 않았으며, 1월에는 世子侍講院 弼善으로 임명되었다는 등의 내용으로 1800년(정조 24)에 보낸 편지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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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益兒 5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장남 熙益에게 1794년(정조 18)에 보낸 것이다. 하인이 돌아와서 편지를 보았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네가 토지를 구입했다니 가소로운 일이다. 앞으로는 그런 일 하지 마라는 등의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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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益復兩兒 5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장남 熙益과 차남 熙復에게 1797년(정조 21)에 보낸 것이다. 인편이 돌아와 보내준 편지를 보았다.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나는 이곳[호남관찰사]에 부임한 이후 처음에는 고생하였으나 점차로 상황이 좋아지니 다행이다. 이곳의 경치가 무척 뛰어나 때때로 감상하지만 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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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兩兒 5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장남 熙益과 차남 熙復에게 보낸 것이다. 한 달 넘어 소식을 받지 못해 매우 우울하다. 시간 낭비는 하지 않고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느냐는 등의 내용으로 발신 연도는 1797년(정조 21)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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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復兒 5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차남 熙復에게 보낸 것이다. 너의 병이 완쾌되지 않았다니 매우 걱정이다. 약을 복용한 후에 효험이 있느냐? 나는 요즈음 몸이 굉장히 좋지 않다. 너의 형이 여러모로 고생하고 있다. 그렇지만 편안히 운명에 맡길 뿐이라는 내용으로 配所인 강원도 歙谷縣에서 1804년(순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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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副校理疏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790년(정조 14) 6월 13일에 홍문관 부교리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겠다고 올린 사직소이다. 하늘이 우리나라를 도우시어 王世子가 태어났으며 나라의 기틀도 잡혔습니다. 저는 궁벽한 시골의 하찮은 서생입니다. 저를 특별히 부교리에 임명하셨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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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堂聯名箚子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思悼世子의 동생인 鄭妻[和緩翁主]의 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당시 임금인 正祖와 신하들의 의견이 대립되었다. 臺臣들이 처벌해야 한다는 쪽으로 강력히 나오자 정조는 그들을 교체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러한 때에 홍문관 관료들은 정조의 조치가 지나치다고 판단하여 교체 명령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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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堂聯名疏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王世子가 태어난 지 100일 지났으니 나라의 경사이다. 일전에 三司(司憲府‧司諫院‧弘文館)에서 합동으로 상소를 하여 사헌부와 사간원 관리들은 교체하라는 명을 내렸다. 우리 홍문관 신하도 같이 참여하였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다. 우리 홍문관 신하들의 직책도 없애주기를 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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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獻納疏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저는 먼 시골 출생이고 재주도 없습니다. 우둔한 제가 어찌 이런 직책을 감당하겠습니까? 황송하여 몸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고질병이 있어 항상 병석에 있습니다. 임금께서는 저의 이러한 사정을 헤아려 저에게 내리신 직책을 거두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등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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請捧入儒疏疏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柳星漢 등에게 벌을 내려야 한다는 영남 유생들이 상소를 올렸다. 그 상소문은 통로가 막히어 임금님께 들어가지 않았다. 영남 유생들의 상소를 받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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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修撰疏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53세 때인 1792년(정조 16)에 弘文館 修撰으로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겠다고 올린 사직소이다. 영남 유생들이 올린 상소가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나 혼자만 관직에 있음은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임금께서는 저의 입장을 잘 살피고, 저에게 죄를 내려주시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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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副應敎疏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국법을 무시하고 임금의 은혜를 저버린 李柱國의 처벌이 너무 가볍다. 사도세자를 무함한 柳星漢과 景宗을 능멸한 尹九宗에게는 빨리 벌을 내려야 한다. 臣은 평소 고질병이 있어 중책을 감당하지 못한다. 신에게 내려준 弘文館 副應敎라는 직책을 거두어 주기를 바란다고 올린 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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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副承旨時論嶺査疏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벌을 주어야 할 사람에게 벌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총애하고 있으니 영남 사림들이 울분에 차 있다. 臣도 國祿을 먹는 자리에 있고 싶지 않으니 신의 직책을 없애주기를 바란다는 등의 내용이다. 承政院 同副承旨로 있을 때인 1792년(정조 16)에 올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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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副承旨時論未徹疏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과거시험 부정의 元兇인 尹永僖를 모든 원로대신과 三司에서 벌을 내리고자 한다. 임금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옹호하고 있는가? 조정의 기강이 무너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承政院 同副承旨로 있을 때인 1792년(정조 16)에 올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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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副承旨時論尹永僖白放疏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과거시험 부정의 원흉인 尹永僖를 죄가 없다고 인정하여 석방시켰다. 아아 원통하다. 모든 사람들이 울분에 차 있다. 앞으로 亂逆이 일어날까 걱정이 된다는 등의 내용으로 1792년(정조 16)에 올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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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副承旨時徑出疏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당시 좌의정으로 있던 金鍾秀가 1792년(정조 16) 윤4월 27일에 영남 유림들이 올린 영남만인소와 영의정 蔡濟恭이 올린 상소문을 싸잡아 트집을 잡았다. 당시 동부승지로 재직 중에 있으면서 분개하여 올린 상소이다. 임금의 비답도 듣지 않고 곧장 궐 밖으로 나갔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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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大司諫疏(1796)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57세 때인 1796년(정조 20)에 司諫院 大司諫으로 임명되자 올린 사직소이다. 諫官이란 직책은 임금이 잘못이 있으면 올바른 말로 충고를 하는 직책이다. 그런데 臣은 영남의 볼 품 없는 선비로 학식이 없고 재주도 없으며 하나도 취할 바가 없는 사람이다. 이런 직책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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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大司諫疏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3월 11일에 저를 대사간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예전에도 이 직책을 역임하였지만 다만 웃음거리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해 겨울에 심한 질병에 걸려 4달이나 크게 앓았기 때문에 온 몸의 힘이 다 빠진 상태입니다. 이런 병으로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으니 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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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大司諫疏 3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저를 사간원 대사간에 또 임명하였습니다. 저는 근래 온 몸에 병이 들어 꼼짝도 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저의 이러한 형편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작고한 文肅公 蔡濟恭의 충성은 온 나라 백성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朴吉源은 문숙공을 비방하였으니, 그를 먼 곳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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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右承旨疏 4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60세 때인 1799년(정조 23)에 우승지에 임명되자 사직하겠다고 올린 사직소이다. 사대부가 세상에 나아가서 벼슬할 때가 있고, 은거할 때가 있는데 오직 義理에 따라서 할 뿐입니다. 저는 봄 이후 병으로 고생하며 아직 회복이 되지 않았으니 직책을 감당할 수 없다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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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敦寧都正疏 4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승정원의 좌승지로 임명된 지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敦寧府 都正으로 임명되었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현재 질병이 너무 심해 조정에 들어갈 희망이 없고 헛되이 직책만 가질 뿐이니 해당 관청으로 하여금 전례를 잘 살펴서 직책을 바꾸어 달라고 하는 내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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嶺査後伸辨疏 4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지난 1728년(영조 4)에 戊申亂(李麟佐亂)이 일어난 지 60년이 흘렀습니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면 백성은 충성심을 보여야 당연합니다. 당시에는 영남의 모든 백성들이 함께 반란을 진압하는데 참여했지, 한두 고을만이 참여한 것이 아닙니다. 임금께서는 당시 반란 진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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召對講義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홍문관 부교리로 재직시 51세 때인 1790년(정조 14) 7월 8일에 召對에 참여하였을 때의 召對講義로 당시 교재는 『貞觀政要』이다. 참여한 사람은 李敬五‧鄭大容‧許鞏‧白慶楷‧趙台榮‧李殷模이다. 내용은 634년(貞觀 8년)에 李大亮이 당 태종에게 諫言을 하자 태종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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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筵講義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世子侍講院 弼善으로 재직시 61세 때인 1800년(순조 즉위) 書筵에 참가하여 강의한 기록이다. 3월 19일부터 6월 12일까지 총 10차례 참여하였다. 왕세자인 純祖는 당시 11세이며, 강의 교재는 『孟子』이다. 3월19일세자시강원 필선으로 入直하다. 3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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疏行日錄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53세 때인 1792년(정조 16)에 홍문관 修撰으로 근무하면서 올린 상소문과 관련하여 엮은 기록이다. 사도세자를 비방하는 상소를 3월 18일에 柳星漢이 올렸다. 그러자 영남지역에서 윤4월 27일에 영남지역에서 10,057명의 사람이 연명하여 유성한에게 벌을 내려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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仕行日錄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관직생활을 한 이후 관직에 임명이 된 날짜와 중요한 사건을 기록하였다. 기록 시기는 敬陵參奉으로 임명된 1781년(정조 5, 42세)부터 벼슬을 그만 둔 1802년(순조 2, 63세)까지로, 총 22년간의 관직생활 기록이다. 1802년에 正言 鄭彦仁의 誣告로 함경북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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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遊日錄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함경도와 강원도 일대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엮은 기행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이 목적이 아니고 1791년(정조 15) 함경북도 鍾城에서 실시하는 지방시 시험관으로 임명되어, 시험감독을 마친 후에 강원도 금강산 일대를 둘러보고 온 것이다. 8월 1일 서울을 출발하여 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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鼠猫說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고양이처럼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 같은 쥐에 대한 이야기이다. 항아리 안에서 찍찍거리는 소리가 있어 가 보았더니 며칠 굶은 쥐가 있었다. 쥐떼가 있는 곳으로 풀어 주었더니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동료 쥐를 잡아먹었다.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짐승들이 자기 동료를 서로 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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犬猫說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개와 고양이는 서로 다른 종족이다. 서로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고 원수처럼 지낸다. 그렇지만 雲巖公의 개와 고양이는 사이좋게 지낸다. 이것은 화목한 운암공의 가풍을 짐승이 본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마음이 온화하면 기질이 온화하게 되고, 기질이 온화하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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捕鵲說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803년(순조 3) 봄, 내가 64세가 되던 해 함경북도 유배지에서 강원도 歙谷縣으로 배소를 옮겼다. 거주지 주변에 버드나무가 두 그루가 있었으며 그 위에 까치집이 있었다. 까치가 새끼를 낳아 먹이를 먹이면서 화목하게 살았다. 하루는 까치 떼가 모여서 깍깍 울부짖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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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遊錄序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791년(정조 15) 8월 19일에 함경도 鍾城에서 실시되는 地方試 감독관으로 임명되었다. 서울에서 종성을 오고가면서 느낀 일에 대한 서문이다. 원문은 권5에 「北遊日錄」이란 제목으로 되어 있다. 8월 1일 서울을 출발하여 10월 10일 돌아왔다. 오고가면서 보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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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李學士鼎運赴燕序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784년(정조 8) 12월에 李鼎運(1743~?)이 서장관으로 연경에 가게 되자 전송하면서 지은 글이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중국, 詩書禮樂도 모두 중국이다. 그런데 중국에 가보지를 못했다. 그런데 그대가 가게 되었으니 영광이라고 하였다. 당시 정사는 朴明源, 부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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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州柳潗妻李氏孝烈旌閭記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열녀 이씨는 선비 柳潗의 아내이다. 8살에 『소학』을 읽었다. 시집가서는 남편과 시부모를 잘 섬겼다. 남편이 학질에 걸려 1792년(정조 16)에 사망하였는데 당시 남편은 27세, 이씨는 25세였다. 시어머니도 학질에 걸리자 정성스런 간호로 다행히 시어머니는 병세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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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子韓碩乃旌閭碑陰記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효자 韓碩乃을 위해 세운 정려비의 음기(陰記: 비석 뒤에 새긴 글)이다. 한석내는 평소에도 효성이 지극하였다. 1791년(정조 15)에 6월 17일에 아버지가 풍어제를 지내기 위해 물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폭우가 내려 물에 휩쓸려갔다. 한석내가 아버지를 구하러 물에 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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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讓堂記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옛적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뽕나무 활에 쑥 화살 6개를 쏘아 천하를 경영하겠다는 포부를 나타내었다. 근래에는 활 쏘는 풍습이 많이 사라졌다. 衛將을 지낸 金精允이 활을 쏠 수 있는 경양당을 만들었으므로 이 글을 쓴다고 하였다. 1797년(정조 21)에 지은 글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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歇惺樓坐遊記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1791년(정조 15) 8월 19일에 함경북도 鍾城에서 실시된 지방시험에 감독관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인 10월 2일에 금강산 正陽寺 歇惺樓를 보고 느낀 점을 쓰는 기록이다. 헐성루는 산 정상에 있으며 금강산 1만 2천 봉우리가 뚜렷하게 눈에 가득히 들어온다고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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臥隱菴記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이곳은 뛰어난 경치가 없지만 술에 취하고 나의 집에서 편히 누워지내기에는 넉넉하다. 꽃과 대나무를 심고 짚신에 지팡이를 짚고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을 불기도 한다. 가끔은 제갈공명의 「出師表」를 읽으면서 臥龍이 산중에 있음을 상상하여 본다. 글을 읽기를 마치면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