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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0401

    雲巖祠記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고려 말에 절개를 지킨 충신으로는 圃隱 鄭夢周와 冶隱 吉再가 가장 뛰어났다. 그리고 雲巖 車原頫(1320~?)도 이들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내가 1794년(정조 18) 順天都護府使로 순천에 머물고 있을 때 하루는 선생의 후손인 錫周와 圭鎭이 찾아와 선생을 모시는 사
    출처 : 유교넷
  • 360402

    及時洞墳菴記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안동부 才山縣 及時洞에 墳菴(무덤을 지키기 위하여 무덤 근처에 지은 집)을 지었다. 조상들의 무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후손이 각자 제수를 마련하여 짓지만 사고가 생기거나 혹은 가난하여 제수를 올리지 못할 경우가 있다. 같은 산 안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合享하자고
    출처 : 유교넷
  • 360403

    七峯集卷後識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1804년(순조 4) 강원도 歙谷縣 유배지에서 七峯 金希參(1497~?)의 『七峯集』에 쓴 발문이다. 선생께서 남기신 글은 난리통에 이리저리 흩어지고 없는데 다행히 남아 있는 시문 약간을 모아 문집으로 간행하였다. 선생의 아드님인 東岡 金宇顒(1540~1603)이 편
    출처 : 유교넷
  • 360404

    荷塘集卷後識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1810년(순조 10)에 荷塘 權斗寅(1643~1719)의 『荷塘集』에 쓴 발문이다. 총 10권 5책으로 元集 8권 4책, 續集 2권 1책이다. 서문은 訥隱 李光庭(1674~1756)이 썼으며, 1810년에 간행되었다. 금년 여름에 하당 선생의 후손이 와서 책을 간행
    출처 : 유교넷
  • 360405

    槐潭子卷後識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나의 사촌형인 素巖 金鎭東은 항상 槐潭 裵相說이 학문이 뛰어나고 행실이 독실하다고 칭찬하였다. 1789년(정조 13) 봄에 나를 찾아와 만나 보았는데 과연 그러하였다. 그가 돌아간 지 며칠 후 잘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그의 아들 顯
    출처 : 유교넷
  • 360406

    續資治通鑑綱目跋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東岡 金宇顒(1540~1603)이 저술한 『續資治通鑑』에 7대 후손이 되는 저자가 1808년(순조 8)에 발문을 쓴 것이다. 『續資治通鑑』은 1590년(선조 23)에 완성된 이후, 寒岡 鄭逑‧旅軒 張顯光‧眉叟 許穆 같은 분도 뛰어난 저작이라고 많은 칭찬을 하였다. 1
    출처 : 유교넷
  • 360407

    訥隱集卷後識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訥隱 李光庭(1674~1756)의 『訥隱集』에 저자가 1808년(순조 8)에 쓴 발문이다. 눌은 선생이 돌아가신 지 어언 53년이 되었다. 마을 어른들이 선생이 남긴 글을 오래 전하게 하고자 하여 문집을 간행하게 되었다. 간행된 뒤에 선생의 후손인 師勛이 찾아와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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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08

    書金孝子行錄後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효자 金潛은 자가 而昭, 본관은 宣城이다. 조선 초의 명신 金淡(1416~1464)의 10대 후손으로 매우 훌륭한 효자이다. 그의 아들인 金鈺이 아버지의 행적을 두루 기록하여 글을 지어주기를 부탁하므로 삼가 짓는다는 내용으로, 1808년(순조 8)에 지었다
    출처 : 유교넷
  • 360409

    故星州牧使諸末事蹟識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한 諸末(1567~1593) 장군의 행적에 관한 글이다. 鄭儒는 학식이 있는 선비이다. 1736년(영조 12)에 星州에서 성주목사의 아들과 함께 과거공부를 하였다. 정월 14일 달 밝은 밤에 대숲을 혼자 산책하니 갑자기 신장 8척의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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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10

    順天東門樓上樑文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1795년(정조 19)에 順天都護府使로 있을 때 東門樓를 완성하고 지은 상량문이다. 순천은 남쪽 지역의 요충지이고 물자가 풍부하다. 城 동문의 누각이 비가 새고 무너져서 새로 지으니 唐나라의 滕王閣에 뒤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360411

    文山書院移建上樑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경상북도 奉化郡 文殊山 杜谷(현재 봉화군 鳳城面 桐陽里)에 은거한 杜谷 洪宇定(1593~1694)을 모시는 문산서원 상량문이다. 두곡 선생은 형조판서를 지낸 洪可臣(1541~1615)의 손자이다. 병자호란 때 난리를 피해 두곡에 들어와서 절개를 지키며 한 평생을 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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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12

    臥隱菴上樑文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몇 년을 지은 끝에 눈앞에 우뚝 서 있다. 앞으로는 鶴山, 좌측으로는 虯巖을 끼고 있어 경치도 좋다. 가끔 취해서 자기도 하니 酒仙이라 불러도 좋고, 臥仙이라 불러도 좋다. 와은암은 저자인 김한동이 머무는 곳으로, 56세 때인 1795년(정조 19)에 건물을 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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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13

    柏麓里社靜觀樓上樑文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柏麓里社와 靜觀樓 상량문이다. 몇 년을 걸쳐서 완성하지 못하다가 금년에 완성되었다. 백록리사는 사당이지만 또한 유생들이 공부하는 장소이기도 하다는 내용이다. 백록리사에는 李宗準‧李弘準‧鄭惟一‧洪俊亨을 모시고 있다. 저자가 71세 때인 1810년(순조 10)에 이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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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14

    北遷時顚末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63세 때인 1802년(순조 2)에 함경북도 明川으로 유배가게 된 전말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1802년 10월에 持平 鄭彦仁이 상소를 올리기를 “前承旨 金翰東은 李家煥의 영향을 받아 邪術(천주교를 말함)을 옹호하였습니다. 1800년에 정조대왕이 승하하였을 때 국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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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15

    조선조 開國原從功臣 嘉義大夫 湖南兵馬節制使를 역임한 조상 金用超(?~1406)를 위해 지은 碑碣文으로 61세 때인 1800년(정조 24)에 지었다. 돌아가신 지 어언 4백년이 되었다. 구체적인 관직 이력과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다. 『고려사』에 근거하면 1353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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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16

    訥齋先生墓碑陰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訥齋 李弘準의 묘비 陰記이다. 묘비가 오래되어 글자를 읽기 힘들어 외가쪽 후손인 成宗魯‧權思訥 등이 새로 비석을 세웠다. 선생의 자는 君式, 본관은 경주, 1486년(성종 17)에 司馬試에 합격하였으며, 慵齋 李宗準(?~ 1499)의 동생이다. 무오사화 이후로 두문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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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17

    製進七陵文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51세 때인 1790년(정조 14)에 홍문관 수찬으로 있으면서 일곱 개의 왕릉에 대해 지은 축문이다. 健元陵(太祖)‧顯陵(文宗)‧穆陵(宣祖)‧徽陵(仁祖繼妃莊烈王后)‧崇陵(顯宗)‧懿陵(景宗)‧惠陵(景宗妃端懿王后)이며, 이들 능은 모두 경기도 구리시 東九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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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18

    製進弘陵告由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弘陵(英祖妃 貞聖王后)의 기와가 허물어져서 좋은 날을 택하여 수리한다고 하였다. 53세 때인 1792년(정조 16)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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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19

    製進祥宮‧懿昭墓‧文禧墓文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가을 한가위 때 毓祥宮(영조 생모인 淑嬪 崔氏)‧懿昭墓(英祖 世孫인 莊祖, 3세 사망)‧文禧墓(정조 후궁인 宜嬪成氏 소생) 세 분의 무덤에 올리는 축문이다. 좋은 길일에 사모하는 마음을 올린다고 하였다. 51세 때인 1790년(정조 14)에 홍문관 수찬으로 있을 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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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20

    邊孝子焚黃時告由祝文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도적이 밤에 들어와 부친을 해치려 하자 자신의 몸으로 부친을 감싸고 상처를 입었다는 변효자에 대한 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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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21

    仁溪書院移建奉安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인계서원을 이전하면서 桑村 申欽(1566~1628)과 芝山 曺好益(1545~1609)를 모시면서 올린 봉안문이다. 좋은 날을 가려 모시고자 하니 영령들은 흠향하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봉안문은 神主나 畵像을 받들어 모실 때 올리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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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22

    文陽里社奉安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두 분 雙溪‧茅山 선생을 문양리 사당에 모시고서 올린 봉안문이다. 세상의 명리를 끊고, 밝은 창가에 앉아서 학문에 전심하면서 깊은 이치를 연구하였다. 지금 후손들이 합동으로 제사를 올리니 영령은 편안히 지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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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23

    龜山里社奉安文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경북 奉化郡 物野面 龜山里에 사당을 짓고 竹窓 琴梧(1486~1573)와 三棄堂 琴是養(1598~1663)을 모시면서 올린 봉안문이다. 氷肌玉骨같은 자태에 松柏같은 지조를 가졌다. 지금 사당을 지어 제사를 올리니 영혼은 내려오시어 흠양하시고 우리 후손들을 편안히 이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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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24

    文山書院奉安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소나무처럼 곧고 올바른 지조와 뛰어난 문장, 세상을 벗어난 탈속한 모습을 가져 세상의 부귀영화에는 뜻이 없었다. 병자호란의 난리를 피해 절개를 지키며 살았으니 秦나라 때 은거한 商山四皓와 비슷하다. 경상북도 奉化郡 文殊山 杜谷(현재 봉화군 鳳城面 桐陽里)에 은거한 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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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25

    製進贈贊成李墓致祭文(李卽宣禧宮父)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찬성으로 추증된 李某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이모의 이름은 당시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한데,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暎嬪 李氏의 아버지이다. 즉 정조가 자신의 외증조할아버지를 찬성으로 추증하면서 김한동에게 제문을 지으라고 한 것이다. 저자가 53세 때인 1792년(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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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26

    製進忠原林將軍(慶業)祠致祭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지금 林慶業(1594~1646)의 후손을 보니 장군의 훌륭한 풍모가 생각난다. 예관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니 장군의 영혼이 내려오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저자가 1792년(정조 16)에 홍문관 교리로 있을 때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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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27

    祈雨祭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순천의 社稷‧南山‧北山‧龍浦‧沙川‧后土에서 기우제를 지내며 올린 제문이다. 기도를 드리면 응함이 있고, 소원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준다. 지금 한 달 내내 가뭄이 들어 쇳덩이도 녹일 정도이며 땅이 바싹 말랐다. 그렇지만 때를 맞추어 비가 내린다면 큰 풍년이 드니 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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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28

    祭樊巖蔡相國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樊巖 蔡濟恭(1720~1799)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관직생활 50년을 하면서 재상의 지위에 올랐다. 선생의 명성은 세상을 떨치고, 남기신 가르침은 세상에 널리 사용되었다. 나도 항상 선생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노력하였음을 선생의 영혼은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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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29

    祭朴元擧(漢翼)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朴漢翼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인간에게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 그대와 나는 어릴 적부터 함께 지냈다. 노년에는 헤어진 날이 많았고 만나는 날이 드물었다. 지금 그대가 세상을 떠났으니 누구와 회포를 푼단 말인가? 아아! 슬프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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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30

    祭內舅鄭公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나의 외삼촌 鄭公이 세상을 떠나 삼년상도 끝났는데 나는 아직 찾아가서 곡하지 못하였다. 순박한 모습과 너그럽고 관대한 성품을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의 애통함을 어디서 풀 수 있겠는가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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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31

    祭外姑淑人南陽洪氏文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장모인 남양홍씨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장모덕분으로 집안이 화목하였으며, 노복들도 법도가 있게 통제하여 모두들 기뻐하였다. 지난 가을에 인사를 하고 왔는데 어찌하여 갑자기 세상을 떠났단 말인가? 향을 피우고 술잔을 올리니 영령은 내려오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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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32

    祭姊兄酉陽權公(思浩)文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자형인 權思浩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자형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남의 급한 사정을 항상 도와주고 남의 즐거운 일은 함께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오직 자형을 의지하며 성장하여 정이 더욱 두터웠다. 세상을 떠났으니 그리움이 그치지를 않는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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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33

    祭仲父西坡府君文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중부는 西坡公 金景澈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뛰어난 재주와 학식을 가지고서도 나라에 크게 쓰이지 못하였다. 만년에 蔭官으로 시골 마을을 잠시 다스렸으나 자신이 가진 재주 만분의 일도 발휘하지 못하였다. 임종시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들과 함께 우리 집안을 일으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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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34

    祭從兄素巖公(鎭東)文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평소 친하게 지낸 사촌 형 素巖 金鎭東(1727~1807)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형이 있음으로 우리 집안과 우리 친족이 의지할 곳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니 우리들은 누구를 의지한단 말인가? 독서를 하면 항상 經書를 위주로 하였으며 속된 문장을 짓지는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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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35

    祭再從姪學士熙洛文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저자의 再從姪인 金熙洛(1761~1803)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하늘이 사람을 태어나게 했을 때는 어찌 의미가 없겠는가? 그대는 자애로운 성품에 청수한 기질의 사람이다. 1792년(정조 16)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규장각에 뽑혀 들어가는 영광도 가졌다. 18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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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36

    祭長子熙益文(返柩時)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장남 熙益(1773~1809)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저자가 70세 때인 1809년(순조 9)에 장남이 객지에서 전염병에 걸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운구가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지만 자신도 병이 위독하여 운구를 맞이해서 곡하지 못하겠다. 그렇지만 술 한 잔을 올려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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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37

    祭季子婦恭人延安李氏文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시집온 지 5년 만에 사망한 둘째 며느리 恭人 延安李氏에게 올리는 제문이다. 내가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하느라 너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였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내가 너를 보지도 못한 채 네가 세상을 떠났다. 너로 하여금 안타까운 한을 품게 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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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38

    輓詞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鄭宗魯가 저자를 위해 지은 만사이다. 명현의 후손이라 임금께서 뽑으셨네, 나라 안팎에 이름을 떨침도 모두 특별한 은혜이다. 평생토록 알기를 원하였는데, 오늘은 흰머리 늙은이인 내가 슬퍼서 애달프다는 글을 짓는다. 정종로 이하 金㙆‧李鎭東‧成彦根‧尹東壽‧黃龍漢‧鄭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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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39

    祭文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李鎭東이 저자를 위해 지은 제문이다. 아아! 슬프다. 깊은 산에 호랑이가 떠났다. 대들보가 꺾이고 산이 무너졌다. 공은 우리 영남의 우뚝하신 분인데 이제 없으니 영남이 텅 비었다고 하면서 슬퍼하는 내용이다. 이진동 이하 金是瓚‧李敬儒‧趙居信‧李彙寧‧李熙澤(再從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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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40

    行狀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절친한 친구인 鄭宗魯가 지은 행장이다. 저자의 이름은 翰東, 자는 翰之, 본관은 義城이다. 신라 敬順王의 아들인 錫이 시조이다. 조선 개국공신 用初, 중기의 宇宏(동생이 宇顒) 등이 직계조상이다. 아버지 景泌은 병조좌랑을 역임하였으며, 어머니는 淸州鄭氏이다.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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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41

    墓碣銘(幷序)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定齋 柳致明(1777~1861)이 지은 묘갈명이다. 저자의 이름은 翰東, 자는 翰之, 호는 臥隱이다. 신라 敬順王의 아들인 錫이 시조이다. 조선 중기에 부제학을 지낸 開巖 宇宏은 文貞公 東岡 宇顒의 형이다. 아버지 景泌은 병조좌랑을 역임하였으며, 어머니는 淸州鄭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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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42

    跋 49 / 기록자료>고도서 / 김한동
    1977년 11월에 6대손 昌燮이 지은 발문이다. 나의 6대조인 臥隱公이 남긴 글은 원래 수십 권이다. 근래 6.25 動亂을 만나 거의 다 불에 타 버렸다. 다시 원고를 수습하여 모으니 반에 반도 되지 않았다. 여러 친척들과 함께 경비를 마련하여 石印本으로 간행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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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43

    정암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양정
    정암집(定菴集) 定菴 金養楨의 문집. 9권 4책. 목판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자세한 간행 경위는 알기 어렵다. 이 문집의 구성은 일반적인 문집과 같은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詩를 唱酬篇, 輓詞를 悼傷篇, 書를 寒喧篇, 世系와 事略을 永慕錄으로 표현하는 식으로 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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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44

    직재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직재집(直齋集) 直齋 金翊東의 문집. 6권 3책. 목판본. 문집 마지막에 拓菴 金道和가 지은 발문이 있다. 발문의 내용에 따르면 손자인 金羲敎가 조카인 金聖魯와 金聖浩 등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남겨진 글을 엮어 편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卷1~2는 1책으로 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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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4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抱琴厓詩歌七章(並序),成琴詩小歌仍賦琴詞五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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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4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鹿門洞賦, 觀海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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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4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灑掃吟, 赴南省到壯川吟, 過松坡口占, 輓權楊口(以中), 送族叔大如(鼎夏)之晉陽, 居泮日贈尹佐郞(效覺), 泮中與李古溪(彚寧)權景命(度)李聖揆(彚正), 成而簡(永默)沈季鷹(東翼)韓孟英(光雋)李季陽(正煥)柳紀仲(光漢)拈韻共賦, 送李聖揆還鄕, 贈李古溪李聖揆, 與柳紀仲南歸共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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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4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老隱精舍雜詠(並記), 精舍, 龜淵亭, 樂玩齋, 留行臺, 鳶魚臺, 抱琴臺, 風詠臺, 敬庵臺, 俗隱峽, 畏厓, 漁梁, 漁艇, 漁磯, 江鷗, 水鶴, 江閣敬次退陶先生山居四時吟, 六月江閣謝鄭侯(游)來訪, 裵乃休見訪江舍, 贈別鄭侯, 哀慶吟(並序), 吟示亭中諸君, 哀慕吟, 輓朴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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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49

    上定齋先生(1845)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스승인 정재 유치명에게 보낸 편지이다. 어리석은 자질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스승의 문하에 들어 배울 때 『대학』의 취지에 대해 얻어 들은 적이 있었음을 말하고, 당시엔 학문에 진보가 있는 듯 했지만 물러나 돌아온 후엔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죄송스러워 하면서 四端七情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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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450

    別紙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앞의 편지의 별지로서 理發과 氣發 문제와 格物이라고 할 때의 格의 의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고 스승인 정재 유치명의 가르침을 청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먼저 이발기발의 문제와 관련해 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氣이고 발하게 하는 것은 理이기에, 기가 없으면 발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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