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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360501

    答巽齋族兄(1833) 3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족형은 자신에게서 군자를 기대하는데 자신은 촌부일 뿐이라면서 자신에게 실린 큰 여망과 기대에 겸손한 태도를 밝혔다
    출처 : 유교넷
  • 360502

    答族孫啓文(1827) 4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상례에 관한 가르침의 내용을 담은 편지이다. 양자가 들어간 사람이 본생의 부모형제의 상에 대하여 규정된 것보다 두터이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속설을 배척하면서, 본생부모의 상에 대해 삼년상을 치르지 않는 것은 예의 큰 규정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0503

    答啓文(1834) 4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근래 『근사록』을 보고 있다면서, 책을 넘겨볼 때에는 스스로를 경계하고 반성하는 효과가 있는데 책을 덮고 나면 결국은 남는 것이 별로 없으니 자신의 정신이 많이 쇠약해진 것 같다며 한탄했다
    출처 : 유교넷
  • 360504

    答宗人希仲(1837) 4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鳳村 崔象龍(1786∼1849)의 ‘經書八圖’는 그의 궁구하는 노력과 독자적인 체회의 오묘함이 담긴 것이라면서 높이 평가하고, 다만 그 가운데 경서들 사이의 관계를 고정적인 配對관계로 설정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0505

    答族孫國明(1842)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그대의 타고난 기질이 溫雅하고 性行이 剛方하니 자신이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십년 동안 공부에 큰 성과는 없었지만 다만 마음으로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를 희망하며, 이것이 근래 스스로 경계로 삼고 반성하는 바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0506

    與國明(1843)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학문에는 내외와 경중의 구분이 있음을 살펴서 문장과 시문의 공부보다 자신의 인격을 향상시키는 공부에 힘쓸 것을 권유했다
    출처 : 유교넷
  • 360507

    答國明(1846) 4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삼대의 묘갈명을 새롭게 정비한 것은 진실된 힘이 아니면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평하고, 國明이 지은 同樞公 비문 뒷면의 글은 대체적으로 잘 되었지만 일부 수정할 만한 곳이 있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0508

    答國明(1853) 4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근래 어떤 책을 보고 있으며 어떤 의리를 체득했는지를 묻고, 자신은 理氣 문제에 뜻을 두고 있음을 밝혔다. 이어서 『小學』을 읽으면서 도리어 明倫의 도리를 외면하고 元亨利貞의 이치를 알고자 하거나, 『논어』를 읽으면서 도리어 인을 추구하는 뜻을 외면하고 一貫의 오묘한
    출처 : 유교넷
  • 360509

    與金甥季陽(振九)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깊이 사색하고 의심하는 것이 없는 것이 초학자들의 병폐임을 지적하고, 의심이 없는 곳에서 의심을 일으키고 반복해서 사색을 하면 저절로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0510

    與兒悳健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자식에게 올바른 독서의 방법을 일러주는 편지이다. 거듭 읽어서 익숙하게 되면 자연히 뜻이 이해된다고 했고, 이어서 悳健이 진득하게 오래 책을 읽지도 못하고 혹 오래 읽는다 해도 견강부회함을 면치 못하는데 이것은 마음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올바른 독서방법은
    출처 : 유교넷
  • 360511

    與健兒 4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금년으로 약관의 나이에 접어든 아들에게 과거시험 길에서의 처신과 과장에 이르러 해야 할 일 등 과거시험과 관련된 구체적인 조언을 한 편지이다
    출처 : 유교넷
  • 360512

    與健兒 4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농사는 자신의 집안에서 전해오는 가업이고, 경서를 읽는 것은 옛 성현이 밝힌 사람 되는 방법이므로, 농사에 힘을 기울이면 입고 먹기에 넉넉하고 공부를 독실하게 하면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부귀는 하늘에 달린 것으로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닌 반면, 의
    출처 : 유교넷
  • 360513

    心性情圖,人心道心圖,大學圖,明明德圖,中庸圖,九經圖,附柳仲思學庸圖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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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14

    拜門錄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宗人인 金希仲 및 제자 배극소와 함께 정재 유치명에게 배우기 위해 大坪을 다녀온 과정을 기록한 글이다. 을묘년 3월 9일에 출발해 4월 6일 집으로 돌아왔다. 15일에 대평에 도착했으나 정재 유치명이 출타중이어서 만나지 못했고, 19일에 유치명이 집으로 돌아오자 인사
    출처 : 유교넷
  • 360515

    湖南紀行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1855년(철종 6) 스승인 정재 유치명이 사도세자의 복원을 청하는 상소를 올린 사건으로 4월 智島에 유배를 당했는데, 이때 유치명의 나이가 79세이고 김익동의 나이는 60이었다. 이 글은 이 당시 자신이 이미 쇠약해져 가고 있어서 더 늦기 전에 스승을 뵙고 올 것을
    출처 : 유교넷
  • 360516

    家居警辭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가정내 일상사에서 실천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자손들을 훈계하는 글이다. 아침에 일어나 의관을 단정히 하고 집안을 청소하는 것에서부터 저녁에 부모의 잠자리를 살피는 것에 이르기까지 행해야 할 일을 비롯해 부부‧형제‧친구간의 도리, 사위와
    출처 : 유교넷
  • 360517

    居家儀節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앞의 글 ‘家居警辭’의 구체적인 절목을 제시한 글이다. 총 26가지 주제로 나누어서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각각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夙興夜寐, 讀書課農, 事親, 奉先, 夫婦, 兄弟, 訓子弟, 處宗族, 冠昏, 喪葬, 待賓客, 御婢僕, 節財用, 取友, 閨
    출처 : 유교넷
  • 360518

    童子儀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어린 아이들이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절목을 제시한 글이다. 夙興, 晨省, 灑掃, 讀書, 寫字, 言語, 坐立步趨, 拜揖, 飮食, 衣服, 出入交接, 昏定, 夜寐 등 모두 13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0519

    三庫約條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三庫는 각각 奉先庫‧義庫‧學庫로서 선조를 받들어 모시고 불우한 일가 사람을 도우며 인재를 길러내는 데 필요한 자금을 비축하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 일종의 기금 혹은 금고이다. 삼고를 설치하는 취지와 운영방법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김익동의 실용적이고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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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20

    詩筒說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옛날 以長公과 함께 호수와 바다를 여행하면서 좋은 경치를 만나면 시를 읊자고 약속하고 그가 직접 시를 간직할 통을 만들어 놓은 것을, 그가 죽고 난 후 집안의 젊은이가 대신 전해옴에 그에 대한 감회를 이 시통설에 담아 짓는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0521

    棄翁說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許亨玉이 스스로 호를 棄翁이라 짓고 설을 지어줄 것을 청해 옴에 지은 설이다. 허형옥은 別試에 합격해 장차 벼슬길에 나아가 큰 포부를 펼치려 하다 정변이 일어나자 벼슬에의 뜻을 포기하고 은거해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지내려고 스스로 버림받음을 자처하고 호를 기옹이라
    출처 : 유교넷
  • 360522

    崔秀崐字說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최씨 청년이 관례를 치르고서 字를 秀崐이라 짓고서 그에 관한 설을 지어달라고 부탁함에 지은 글이다. 세상에서 유명한 崐岡 지역의 玉은 타고난 천질을 바탕으로 가공하는 사람의 노력이 보태져서 탄생한다면서 그러한 옥을 본받아 수양의 노력을 소홀히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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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23

    李甥元錫亨錫字辭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元은 仁을 의미하고 형은 禮를 의미함을 밝히고, 이어서 원이라 이름한 것은 인을 확충하라는 뜻이고 형이라 한 것은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0524

    健兒三加日戒辭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관례를 치르고 健이라는 자를 받은 아들에게 훈계하는 글이다. 健이라 이름한 것은 天行의 강건함을 닮아서 자신의 완성을 향한 노력을 쉬지 말고 부지런히 행하라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0525

    社山亭禊約序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사는 곳이 각기 다르고 나이도 다른 사람들이 社山 西軒에 모여서 修禊하는 것은 지향하는 바가 다 같이 옛사람을 본받고자 하는 데 있기 때문이라며 契會의 취지를 밝히고 구체적인 실천 강령으로 業德相勸, 過失相規, 禮俗相交, 患難相䘏을 제시했다
    출처 : 유교넷
  • 360526

    澗月精舍重修記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팔공산 남쪽 澗月洞이 있고 그 동쪽 끝에 작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곧 五柳亭 許公이 독서하던 곳이다. 공의 사후 13년에 공의 자제들이 언덕 가운데로 정자를 옮겨 지으면서 기문을 부탁해 옴으로 예전에 공과 교유했던 자신이 중수기를 짓는다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0527

    社陽精舍記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사양정사는 원래 洞契를 열던 곳이었는데 계가 파하고 나서 그 장소도 사라졌다가, 甲辰年 봄에 社山에 건축할 곳을 정하고 나서 80일 만에 정사가 완공되었다. 이 집은 산수의 빼어난 경치를 즐기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 아니라, 오로지 동네 어른들의 계회와 젊은 인재들의
    출처 : 유교넷
  • 360528

    五柳洞記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청도 운문산에 골짜기가 하나 있으니 梧柳이다. 일찍이 이곳의 산수를 좋아하여 드나들곤 하다 壬寅年 봄 이곳에 와서 골짜기 이름을 五柳라고 고쳤는데, 도연명의 호에서 따온 것으로서 梧柳와 五柳가 五聲으로서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출처 : 유교넷
  • 360529

    遊雲門山記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청도에 있는 운문산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제목과 달리 유람의 전말을 적은 전형적인 遊記 형식의 글은 아니고, 운문산의 역사적 유래와 자연지리적 조건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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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30

    遊八公山記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영남좌도의 명산인 팔공산 유산기이다. 1825년(순조 25) 둘째 동생과 함께 琴湖에서 環城에 도착해 그 다음날 산을 잘 오르는 사람을 앞세워 서쪽에서부터 올라서 남쪽으로 내려오기까지 보고 느낀 산수에 대해 자세히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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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31

    遊伽倻山記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김익동 자신의 집에서 180여리 떨어진 곳에 있지만, 서쪽 창문 옆에 있어 아침 저녁으로 마치 서로 만나보듯 하던 가야산 遊山을 적은 기록이다. 해인사와 장판각에 관한 내용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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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32

    遊淸凉山記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1829년(순조 29) 가을 청량산을 노닐던 기록이다. 청량산 12 봉우리와 19 암자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청량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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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33

    書千思庵實記後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명나라 원군의 兵嶺糧의 직책으로 이여송을 따라 참전해 평양성을 수복하고 전공을 세운 후 아들과 함께 귀국하지 않고 귀화한 전말을 적고 있다
    출처 : 유교넷
  • 360534

    書洪訓導遺事後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팔공산 북쪽 缶溪縣 栗里는 고려 말 문신인 敬齋 洪魯가 살던 곳인데, 訓導公 洪彦孝는 선생의 후예이다. 학문과 행적으로 이름이 나서 수차례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산림에 은거해 유유자적하며 지냈고, 고요한 달밤이면 단정히 앉아 ‘귀거래사’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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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35

    書李稼亭(師顔)遺集後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처사 이공은 어려서는 효행이 독실했고 자라서는 학문에 뜻을 두고서 사우를 좇아 강론하고 질의하여 늙도록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연에 머물면서 자신을 닦는 것을 평생의 즐거움으로 삼았다
    출처 : 유교넷
  • 360536

    書植松公鄕約帖後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7대조인 植松公이 결성한 계회첩에 부친 글이다. 식송공은 陽村에서 洛山으로 옮겨온 11년 후 향리 사람들과 여씨향약을 실행했다. 공은 일찍부터 한강 정구 선생, 여헌 장현광 선생과 교유했다. 그의 저작들은 모두 실전되어 남아있지 않고 다행히 향약관련 글이 남아서 식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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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37

    書李楸厓(曦蘭)藁後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姊兄인 楸厓 李曦蘭이 세상을 떠난 지 8년이 되던 해 아들 元錫이 아버지의 원고를 가져와 울면서 보여주면서 내가 그의 돌아가신 아버지 모든 것을 잘 아는 사람이므로 글을 써줄 것을 부탁했다. 李曦蘭은 나와는 同學으로 재주가 뛰어나 책을 한번 보면 금세 외우고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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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38

    喪祭儀輯錄小識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1851년(철종 2) 가을, 벗인 배극소와 社亭에 모여서 『喪祭儀』을 편찬했는데, 한결같이 『주자가례』의 내용을 토대로 삼았다. 여러 학자들의 설을 모아서 『가례』 본문 아래에 주로 달았고, 나중에 의문이 있거나 변화가 생긴 것은 별도의 조항으로 붙여서 考據에 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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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39

    書武夷九曲圖屛後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일찍이 「무이구곡가」를 읽고서 자신도 실제의 경치를 모사해 묘사해 보기로 생각해 왔던 차에, 어느 날 화공이 손님으로 왔기에 무이구곡의 경치를 그려주기를 부탁했다. 며칠 만에 그림이 완성되자 병풍으로 만들었다.
    출처 : 유교넷
  • 360540

    書龍田山圖後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용전산은 불교의 산으로 천여 년 동안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다가 유학자 측에서 그림으로써 기이한 경관이 드러나게 되었으니 산으로서는 다행스런 일이다. 산 스스로는 자신이 奇勝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지 않으니 산을 둘러본 사람이 기승을 찬탄하면 기승의 이름이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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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41

    直齋箴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하늘이 사람을 냄에 그 부여한 理는 본래 곧은 것이니 그것을 일러 秉彛라고 하는데 이는 성인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다 같이 얻어 지닌 것이다. 그러나 氣와 欲에 의해 사로잡히고 가려져 본래의 성을 해치게 된다. 이에 敬으로써 내면을 바르게 하면 온갖 사사로운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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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42

    自警三箴(並序)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군자가 군자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기질의 치우침을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도 기질의 치우침이 있으면서도 스스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데 소홀히 한 것을 반성하고 容貌와 顔色, 辭氣에 관한 세 가지 箴을 지어서 밤낮으로 기질의 치우침을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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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43

    孝思臺銘(並序)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청도 金谷 골짜기에 효자 李周榦이 廬墓살이를 하던 孝思臺가 있는데, 그 자식이 찾아와서 銘을 청하기에 서문을 쓰고 명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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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44

    刀銘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칼이란 단호하게 자르는 것이니, 이에 의지해 스스로 이익과 의리를 분명하게 구분해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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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45

    鳳潭祠上樑文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江左의 隱逸이자 영남의 큰 학자인 小學亭 裵公의 사당인 鳳潭祠 상량문이다. 배공의 학문의 핵심이 修身齊家治國의 도에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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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46

    龜淵亭六偉文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김익동이 후진 교육을 위해 세운 龜淵亭의 六偉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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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47

    社山亭開基告由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社山亭 터를 닦으면서 地神에 告由하는 글이다. 社稷峰에 터를 잡아 강회의 장소를 마련하고 백록동서원 원규에 따라 학문에 매진해 날로 성취를 이루고자 하니 地靈이 묵묵히 도움을 주기를 청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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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48

    到天山祈雨文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하늘의 이치는 만물을 내고 기르는 것이지만, 양의 기운이 지나치게 성할 경우 때로 가혹한 가뭄을 일으키기도 한다. 봄여름부터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은 타들어가고 저수지는 다 말라 버렸으며 작물들은 시들어가고 있으니 乾坤이 화합하고 우레와 바람이 화합하여 비를 내려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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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49

    祭許公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허공은 타고난 성품이 진실되고 사물을 대함에 너그러우며 일을 처리하는 것이 상세하고도 치밀했으며, 뜻을 세움이 굳었고 문장은 더욱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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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0550

    祭朴公(明德)文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
    공은 평생 『詩經』과 『禮記』에 담긴 도리와 충효의 가르침을 따랐으며 유순함의 도리로써 어버이를 섬겼고 일가들을 대함에 있어서는 두터웠다. 평생을 욕심 없이 살았고 참된 본성을 기르고 가난한 생활에서도 근심하지 않았다. 70 평생을 편안하게 지내니 자식들은 효성스럽고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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