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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裵士中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향기로웠던 인품과 옛사람을 닮은 듯 어눌했던 말투를 회상하면서, 마치 하나의 짝처럼 어울려 어릴 적부터 늙도록 오래 사귀다 생사의 갈림에서 헤어져 아득히 멀어져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슬픔을 담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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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宗人士振(相發)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이웃에 살면서 나이도 비슷한 처지였다고 했고, 아들 하나를 먼저 보내고 유명을 달리해 이별하니 아는 이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음을 말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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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縮庵族兄文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자신과 더불어 선인들의 경지를 추구했고 서로 마음이 맞아서 잘 어울렸다고 회고하면서 덕을 지닌 음성이 마치 어제처럼 귓가에 들린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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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啓文文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中庸』과 『대학』에 담긴 의의를 밝혀 내었고, 河圖와 洛書의 數를 궁구했으며 천문과 律曆의 글 및 兵家에 이르기까지 두루 통달해 정통한 通儒였다고 평가하고,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것을 아쉬워했다. 또한 자신이 약관의 나이 때부터 가까이 사귀면서 함께 天人관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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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孝子(鳴振)哀辭 2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김효자의 효성을 기리는 애사이다. 효성스러움으로 부부가 화목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늙으신 어머니를 기쁜 마음으로 받들어 모심에 진실된 마음을 다하고 맛난 음식을 갖추었다고 했다. 그러한 효성스러움과 우애로 인해 일족이 모두 화목할 수 있었음을 말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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曺周賓(觀國)哀辭 2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타고난 기질의 뛰어남이 남들과 달라서 어려서부터 돈후하고 신중하며 너그러웠던 망자의 인품을 말했다. 이어서 자신에게 배움에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을 기대했는데, 丁巳年 가을에 29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했다고 했다. 그러한 아름다운 자질을 가졌으니 만약 오래 살았다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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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妣孺人朴氏墓誌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祖妣 孺人朴氏는 밀양박씨로 증조부는 朴命吉이고 조부는 朴承泰이며 부친은 元根이다. 남편 되시는 道州金氏 金聲重은 효행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조비인 박씨 역시 자애롭고도 엄정하여 아내의 덕을 잘 갖추어 시부모를 정성스럽고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모셨기에 효자와 효부의 칭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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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弟子韋壙記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동생인 金應東을 기리는 글이다. 1827년(순조 27)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사를 맡으면서 형인 자신에게는 공부에 전념하도록 당부한 후 농사에 힘써 10년 만에 살림이 윤택해졌다고 했다. 성품이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었으며 술을 좋아해 형에게 술에 관한 箴을 지어달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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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室孺人柳氏墓誌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아내인 柳氏 묘지명이다. 문화유씨 柳成潯의 따님으로 22살에 자신에게 시집와서 30년을 해로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생전에 아내의 도리를 잘 지켰으며 시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고 자신의 형제자매를 잘 보살펴 시집장가 보냈다고 했다. 성품이 검약해 화려한 것을 좋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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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祖考處士府君墓碣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저자의 증조부 金世寶의 묘갈명이다. 타고난 성품이 바르고 깨끗했고 제사 때마다 7일 동안 재계를 하며 참되고 깨끗한 자세를 지키며 선조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한 전답과 소나무 숲을 마련하는 등 조상을 모시는 데 정성을 다했음을 말했다. 향년 80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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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武功臣訓鍊院正雲溪裵公遺事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雲溪 裵應男은 본관이 慶州로 1575년(선조 8)에 태어났다. 원래 풍채가 뛰어나고 담력이 남달랐는데 經史를 익히고 무예도 겸하여 배웠다. 백부가 장차 큰 그릇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특별히 아꼈으며 五衛陣法을 전수해 주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부와 함께 의병진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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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祖植松公遺事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선조인 植松公 金四聰의 행적을 적은 글이다. 공은 1575년(선조 8) 陽良村에서 태어났는데, 18세에 임진왜란을 당하여 伯氏인 參判公과 함께 팔공산으로 피란을 가서 자연재앙과 질병이 창궐한 상황에서도 가족을 잘 돌보아 온가족이 무사할 수 있었다. 여헌 장현광과 한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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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考處士府君行錄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조부인 金南旭의 행록이다. 1730년(영조 6) 6월 10일 洛山村에서 태어났는데, 타고난 성품이 仁厚하고 어려서부터 효성스러웠다. 1795년(정조 19) 2월 1일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향리의 사람들이 모두 “덕이 두터운 군자가 세상을 떴다.”고 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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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考處士府君行錄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아버지 晩覺 金龜翁의 행록이다. 1763년(영조 39) 2월 6일 君于洛에서 아버지 金聲鐸과 어머니 양산김씨 사이에 태어났다. 할아버지에게서 공부를 배웠는데 한번 배운 것은 절대 잊지 않았으며 14세에 향시에서 막힘이 없이 글을 지어 보는 사람이 모두 감탄했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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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妣孺人李氏行錄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돌아가신 어머니 고성이씨의 行錄이다. 18세에 가난한 집안에 시집와서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시고 은혜로움으로 집안을 다스렸다. 기해년에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났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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楸厓李公行狀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영양이씨인 楸厓 李曦蘭 행장이다. 아버지는 李泰春이고, 어머니는 월성이씨 李胤楫의 따님이다. 농사와 독서를 성실히 병행하면서도 늘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했고, 과거에 응시한 적은 있지만 과거에 매이지 않고 과거에서의 득실은 명에 달려 있다는 의연한 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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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友堂裵公兄弟列傳 3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襄世重‧襄世斗의 행적을 기록한 글이다. 양세중은 타고난 자질이 온후하고 재주가 뛰어났으며, 부모에게 화순했고 형과 손윗사람에게 공손했다. 양세두는 바탕이 순수하고 공손하며 大夫人을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였다. 김세중이 죽은 지 7년 후에 관찰사가 그의 효행을 표창할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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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狀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李敦禹가 지은 행장이다. 金翊東은 본관이 道州로서 자는 子翼이고 호는 直齋이다. 高麗시대 平章事를 지낸 英憲公의 후예로서, 고조는 金天鼎이고 증조는 金世寶이며 조부는 金聲重이다. 아버지는 晩覺 金溶과 어머니 고성이씨 李麟의 딸 사이에 1793년(정조 17) 12월 2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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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碣銘(並序)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西山 金興洛이 지은 묘갈명이다. 김익동의 어머니가 김익동을 임신했을 때 黃龍이 사다리를 올라가는 꿈을 꾸고 낳았다. 타고난 성품이 남달랐고 용모가 嚴整했으며, 처음 학문을 배울 때는 다소 늦고 둔했으나 몇 년 만에 정통하게 되었다. 임신년에 홍경래 난이 일어나자 사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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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誌銘(並序)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정재 유치명의 아들인 柳止鎬가 지은 묘지명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곁에서 모실 때 목격한 김익동의 준정한 풍모와 강론의 정미함 그리고 天人과 性命의 문제는 물론이고 귀신과 자연의 이치 등 어떤 것에도 두루 융회관통하던 모습을 회상하면서 김익동의 생애를 기록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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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익동拓菴 金道和(1825~1912)가 지은 발문이다. 정재 유치명의 문인으로 학문 방법 10여조를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았고, 『중용』과 『대학』에 관한 도설 및 『태극도설』과 『서명』 등의 義理에 관한 질문을 주고받은 결과 학문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했다는 인정을 받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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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집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천사집(川沙集) 川沙 金宗德의 문집. 본집 19권 10책. 부록 4권 2책. 목판본. 본집은 1806년(순조 6) 門人이자 從姪인 金堂進의 주도로 간행되었다. 부록은 『聖學入門』과 함께 1936년에 출간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문집에 수록된 詩는 모두 154首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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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偶題, 次放翁七月一日韻(甲戌), 偶題, 馬上口號, 觀退陶集論擊蒙養生法偶題(乙亥), 偶吟, 寓意, 洪杜谷賜祭時韻(丙子), 病中詠菊, 輓族弟安和(宗石) 3首, 梨花(丁丑), 詠菊 2首(戊寅), 敬次大山先生次李松巖韻(松巖李公魯 除正言 人劾之 詠詩曰 有石在路 傍行者 見謂奇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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擬請大山先生院享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大山 李象靖(1711~1781)이 강학하던 高山書堂을 書院으로 승격하기 위한 請願운동을 추진하면서 작성한 疏本이다. 1794년(정조 18) 安東府에서 열린 道會의 요청을 받아들여 製疏한 것이다. 1714년(숙종 40) 甲午定式이 공표된 이후 강화된 서원설립 금지령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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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1711~1781)에게 보낸 편지로, 1759년(영조 35)에 썼다. 스스로 本原을 함양할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전하면서 효율적인 방안에 대해 가르침을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이다. 季父를 통해 전해준 ‘萬事浮雲變(모든 일은 뜬구름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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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0년(영조 36)에 썼다. 작년 別科鄕試에 합격하기는 했지만, 관직에 나아갈 꿈을 버리니 우환은 사라지고 경사가 닥치는 것 같다며 후련한 심정을 전했다. 주위의 만류에도 그 길을 선택한 것은 開發處를 얻기 위한 것으로, 그동안 잃어버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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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0년(영조 36)에 썼다. ‘心與理一(心과 理는 하나다)’은 命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내용이다. 지난번 두 차례 인사차 방문한 뒤 가르침을 얻으려 다시 방문할 생각이 있었지만, 사소한 문제로 번거롭게 할 것 같아 실행하지 못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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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0년(영조 36)에 썼다. 학문을 통한 氣質의 순화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자신의 근황을 전한 내용이다. 자신이 읽던 『朱子書節要』를 동생 金宗敬이 가져가 버린 데다 心學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함으로써 일관된 논리를 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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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大山先生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60년(영조 36)에 썼다. 독서를 통해 心과 身의 合一을 지향하는 방법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 내용이다. 깊은 산골에 들어가 책을 읽던 여가에 개울의 바위에 앉아 스승을 모시고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던 당시를 떠올리면서 마치 꿈속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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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別紙에는 『大學或問』‧『近思錄』‧『孟子』‧『心經』의 해석과 관련하여 자신의 견해를 담은 내용과 함께 이상정이 답변한 항목들이 수록되어 있다. ∙『大學或問』經明德章其所謂明德…失其全矣 問 : 그러면 智 이하의 사람은 未發 이전에 鏡明·水止는 불가능한가. 答 : 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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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0년(영조 36)에 썼다.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心卽理’의 이치를 터득하게 된 경위를 전한 내용이다. 자신이 질문한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상세하게 설명해준 편지를 받고 막힌 부분이 후련하게 해소되어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며 고마움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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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1년(영조 37)에 썼다. 가을이 깊어져 사람들이 논과 밭으로 일하러 나가 조용한 틈을 이용해 홀로 앉아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기는 하지만 우왕좌왕하는 본래의 성품을 억제하지 못해 체계적인 思惟를 하지 못하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며 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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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1년(영조 37)에 썼다. 세상이 온통 붉은 꽃으로 덮여 있는 가운데 홀로 금빛을 발하고 있는 국화의 모습에 취해 감상하면서 배회하다 보니 어느덧 여유로운 생각이 담장 아래까지 도달한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며 자신의 근황을 전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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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1년(영조 37)에 썼다. 큰 눈이 산과 계곡을 온통 하얗게 뒤덮어 흥취를 더하고 있는 가운데 건강이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본래 자신의 학문은 폐기할 상황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서로 뒤엉킨 나머지 벗어날 길을 찾지 못했던 적이 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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別紙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別紙에는 이상정이 1750년(영조 26) 朱熹의 『敬齋箴』에 대한 학설을 모아 정리해 편찬한 『敬齋箴集說』의 내용을 질의하고 응답한 항목들이 수록되어 있다. ∙程子曰儼然…敬自可見 問 : 敬이 있는 곳은 形狀이 없는데 숙연해 보인다는 이유로 敬이 있다고 하면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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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2년(영조 38)에 썼다. 存養의 공부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감회를 술회한 내용이다. 한여름 구름만 하늘을 덮은 채 비는 오지 않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날씨에 농민들은 旱魃을 걱정하는 반면 더위에 약한 사람은 즐거워하는 상반된 현상이 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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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2년(영조 38)에 썼다. 『中庸』을 토대로 여러 서적을 읽으면서 느낀 감회를 전한 내용이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환절기에 건강은 어떠한지를 묻고, 初學이나 다를 바 없이 독서에 두서와 진척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전했다. 읽는 책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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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1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3년(영조 39)에 썼다. ‘收放’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전한 내용이다. 『중용』을 읽는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잡다한 글들을 읽으니 정신이 하나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스스로 점검할 부분을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스승을 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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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4년(영조 40)에 썼다. 子思가 말한 ‘不覩不聞’의 의미를 未發·已發의 관점에서 해석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면서 타당성 여부를 물은 내용이다. 지난번 講論 당시에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듯 했지만, 돌아와 반복해서 자신의 논리를 정립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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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5년(영조 41)에 썼다. 보름 정도 조용히 혼자 지낼 수 있게 된 여가에 주희의 『仁說』을 펴놓고 반복해서 숙독하면서 느낀 자신의 생각뿐만 아니라 先儒의 글에 관한 諸說을 검토하면서 생긴 의혹을 정리하였는데, 오류가 있는지 조언해줄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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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5년(영조 41)에 썼다. 『中庸』 25章 “誠者自成也 而道自道也(誠은 스스로 이루는 것이고 道는 스스로 가는 것이다).”를 근거로 誠과 道가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입증한 내용이다. 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實理가 사물에 있는 것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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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2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5년(영조 41)에 썼다. 스스로 정당한 처신의 방향을 정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이다. 항상 흠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집안의 각종 忌日을 챙기느라 직접 배울 기회를 자주 얻지 못하고 있지만 자신의 모자라는 부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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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6년(영조 42)에 썼다. 이상정이 하던 『仁說』의 批正작업을 승계하라는 권유를 완곡하게 사절하는 내용이다. 먼저 문하에 들어온 지 30년 가까이 되고 있지만 비록 本性을 잃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禽獸나 다를 바 없이 사리를 분별하지 못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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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6년(영조 42)에 썼다. 九思堂 金樂行(1708~1766)의 사망소식을 전해 듣고 아쉬움을 표시함과 동시에 자신의 근황을 전한 내용이다. 그와 같은 뛰어난 인물의 죽음은 하늘의 뜻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사림들에게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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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7년(영조 43)에 썼다. 자신이 판단하고 있는 효율적인 공부의 방법에 대해 술회한 내용이다. 먼저 지난번 심혈을 기울여 공부한 것을 돌이켜보니 나름대로는 체계가 갖추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실천할 때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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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7년(영조 43)에 썼다. 大本을 세워 達道에 이르고 天命을 보면서 마음을 살피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내용이다. 지난번 한 때의 소회를 담은 편지가 천박하지 않았는지를 묻고 躬行의 결실을 얻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서 쓴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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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2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68년(영조 44)에 썼다. 陰陽이 消長하는 이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내용이다. 몸으로 체험할 때 가장 절실하고 당연한 것이 天理와 人欲이 상호 消長한다는 점이다. 인욕이 없이 소멸하지 않으면 천리는 長旺의 理이며, 천리가 없이 접속하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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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70년(영조 46)에 썼다. 義城縣令의 부탁으로 鄕校에서 『大學』을 강론한 사실을 전하면서, 事君·事長·使衆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며 타당성 여부를 질의한 내용이다. 곧 제9장 「治國章」 가운데 “君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고서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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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3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70년(영조 46)에 썼다. 독서를 즐기면서 氣質을 변화하고 物欲을 억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내용이다. 해마다 노력해도 志業은 무너지고 그것을 수습하면서 조금이라도 보충해 보고자 하지만, 進·退, 多·少를 구분해 측량하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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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70년(영조 46)에 썼다. 事君·事長·使衆의 三者에 대한 자신의 질의에 상세하게 설명해준 것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자신의 견해의 일단을 피력한 내용이다. 자신의 의혹은 “군자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나라에 가르침을 이룬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