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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71년(영조 47)에 썼다. 『論語』의 “禮를 활용하면 和가 귀하게 된다(禮之用 和爲貴).”에 대해 論語集註에서 “그 활용은 반드시 종용은 하되 급하게 서둘지 않아야 귀하게 될 수 있다.”고 해석한 것을 보강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출처 : 유교넷 -
360602
問目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이황이 제자들과 강론한 내용을 엮은 『心經講錄』을 이상정이 보완해 『心經講錄刊補』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의문을 서로 질의하고 응답한 항목들이 수록되어 있다. ∙贊義仁中正 問 : 人心·道心은 모두 已發의 心이기 때문에 오로지 情이라 할 수 없지만 오로지 性이출처 : 유교넷 -
360603
答大山先生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71년(영조 47)에 썼다. 『退溪書節要』의 편찬을 축하하면서 자신이 이의를 제기한 사정을 설명한 내용이다. 학문에 대한 자질도 갖추지 못한 데다 文字마저 졸렬한 자신이 定本과 비교해 질의한 내용이 요령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데서 비롯된출처 : 유교넷 -
360604
上大山先生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75년(영조 51)에 썼다. 학문에 진전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한 내용이다. 독서를 하면서 의문이 날 때마다 편지로 품의하며 가르침을 받기는 했지만, 도무지 축적되는 것이 없어 氣象은 천박해지고 실효를 얻지 못하는 현실에 두려움을 느출처 : 유교넷 -
360605
上大山先生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76년(영조 52)에 썼다. 氣質을 변화시키면서 天德과 王道를 말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내용이다. 학자들이 오로지 利害를 좇아 민첩하게 달리고 있는 현실이 가장 큰 우려가 된다고 지적하면서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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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76년(정조 즉위)에 썼다. 英祖의 國喪을 맞아 成服 등과 관련하여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며 조언을 구한 내용이다. 국왕의 상을 당할 경우 京內·京外의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다를 바 없이 같지만, 향촌에 한미한 직함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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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77년(정조 1)에 썼다. 학문에 진척이 없는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전한 내용이다. 추운 날씨에 몸을 추스르면서 감각을 살리고 항상 경계하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펴고자 하지만 실천은 하지 않은 채 생각만 할 뿐이며, 그러면서 세월을 허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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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3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77년(정조 1)에 썼다. 『中庸』을 다 읽고 난 감회를 전한 내용이다. 가을 들어 그동안 읽던 『중용』을 마무리하고 『論語』를 읽기 시작했음을 전하면서, 四書를 토대로 스스로 마땅한 가운데서 단서를 바꾸며 조금이라도 효력을 얻어 보려고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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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大山先生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80년(정조 4)에 썼다. 이상정이 손자 李秉運의 冠禮를 행하기 위해 요청한 字를 지어주면서 경위를 설명한 내용이다. 관례를 행하는 자들은 무릎 꿇고 절하는 사이에 은연중 성실하고 긴밀한 학문을 익힘과 동시에 마음에 여유를 갖게 되어 禮樂출처 : 유교넷 -
360610
上大山先生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80년(정조 4)에 썼다. 『大學』을 읽으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공부의 방법을 전한 내용이다. 일찍이 孔門에서 전수의 뜻을 음미한 적이 있었는데, 근래 朱子가 “曾子는 공자에게서 들었고, 孟子는 子思에게서 전수받았다.”고 한 말을 취하게출처 : 유교넷 -
360611
上大山先生 3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80년(정조 4)에 썼다. 학문에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고민을 토로한 내용이다. 언제나 지극한 의지로 평생의 뜻을 펴보고자 하지만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실감하고 있으며, 간혹 별실에서 독서를 통해 얻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출처 : 유교넷 -
360612
上大山先生 3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象靖에게 보낸 편지로, 1781년(정조 5)에 썼다. 마음을 보존하는 방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한 내용이다. 지난번 인사를 드리고 물러날 때 당부한 ‘血誠’의 요체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다 그것이 궁극에 ‘存心’에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대개 마음은 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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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任剛窩(必大)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剛窩 任必大(1709~1773)에게 보낸 편지로, 1766년(영조 42)에 썼다. 아들 金慶進의 冠禮에 참석하여 교훈이 되는 가르침을 줄 것을 요청한 내용이다. 그래야 후진들이 禮節을 힘써 따르고 학문의 실천도 간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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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任剛窩 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任必大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68년(영조 44)에 썼다. 功利에서 벗어나 마음을 수습하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내용이다. 몸가짐을 지극히 조심하고 근신하는 마음을 절실하게 하는 모습에 존경을 표시하면서, 일상에서 幾微를 살펴 일을 판단하고 하나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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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崔百弗庵(興遠) 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百弗庵 崔興遠(1705~1786)에게 湖上의 사림을 대표해 보낸 편지이다. 일찍이 漆溪先生으로 존경받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직접 배움을 청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德義를 갖춘 풍모에 감응하여 가볍고 천박한 자질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줄출처 : 유교넷 -
360616
與崔百弗庵 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崔興遠에게 보낸 편지로, 1785년(정조 9)에 썼다. 자신의 사정으로 방문을 미루게 되었음을 전하면서, 忠·信의 올바른 실천방법에 대한 가르침을 구한 내용이다. 시끄러운 집안에서 벗어나 君子의 옆에서 道理와 天命의 오묘한 원리를 배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지니고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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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李小山(光靖) 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小山 李光靖(1714~1789)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지난번 직접 찾아 가르침을 얻는 대신 別紙로 질의한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 사정을 설명한 내용이다. 당연히 책을 들고 질문을 하는 것이 도리이지만, 이는 父親이 천연두에 걸려 산으로 피해 있는 바람에 家출처 : 유교넷 -
360618
與李小山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光靖에게 보낸 편지로, 1781년(정조 5)에 썼다. 자신의 잘못된 학문자세를 설명하면서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인도해줄 것을 요청한 내용이다. 편지로 설명해준 내용은 의미를 순조롭게 관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진척이 없는 것은, 모든 경전의 의미가 일상의출처 : 유교넷 -
360619
答李小山 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李光靖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李象靖의 저술인 『心經講錄刊補』의 필사작업이 늦어지고 있는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한 내용이다. 筆寫를 끝내고 교정을 비롯한 갖가지 점검을 해야 하는 시점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이 지체되고 있는 것은 집안의 우환 때문이라고는출처 : 유교넷 -
360620
答蔡尙書(濟恭) 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樊巖 蔡濟恭(1720~1799)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5년(정조 9)에 쓴 것으로 보인다. 仲弟 金宗敬(1732~1785)의 죽음에 위로를 보내준데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함께 보내준 先祖에 관한 글 일부를 수정해줄 것을 부탁한 내용이다. 선조의 문자출처 : 유교넷 -
360621
答李方伯(秉模)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慶尙監司인 靜修齋 李秉模(1742~1806)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9년(정조 13)에 쓴 것으로 보인다. 조정에 자신을 천거해준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면서도,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정중하게 사양한 내용이다. 왕의 은덕을 구가하며 분수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자출처 : 유교넷 -
360622
與李同樞(命天) 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同中樞府使 李命天에게 보낸 편지로, 1787년(정조 11)에 썼다. 학문의 폐단에 대한 소회의 일단을 피력한 내용이다. 행동을 독실하게 해야 할 사람들이 입과 귀로 하는 학문에만 매달리다 보니 규모는 좁아지고 실천은 고식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근래의 병폐라며, 이출처 : 유교넷 -
360623
與李同樞(東英)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同中樞府使 李東英에게 보낸 편지로, 1796년(정조 20)에 썼다. 관직에 나아가게 된 것을 축하하는 마음을 전한 내용이다. 평소 사리를 분별하고 분수에 따라 행동하며 존경을 받던 사람이 관직에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로서 조만간 반가운 마음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출처 : 유교넷 -
360624
答李同樞(守貞) 8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同中樞府使 李守貞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4년(정조 8)에 썼다. 李象靖의 諸子錄 편찬과 관련하여 보완을 제시한 내용이다. 草稿의 字劃이 정밀하고 서술에 조리가 있는 것은 평소 농축한 학문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 치하한 다음, 『大山集』의 蓮臺詩 註를 참고해출처 : 유교넷 -
360625
與趙聖際(運道)聖紹(述道)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趙德璘의 손자로 영양에 살고 있는 趙運道·述道 형제에게 보낸 편지이다. 祖父가 노론세력의 모함을 받아 죽은 일에 연루되어 실의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 내용이다. 과거에 합격하고도 削科된 동생 趙進道의 안부를 물으면서, 통곡할 일기는 하지만 군자의 사업은 뜻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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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聖際聖紹 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趙運道·述道 형제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8년(정조 12)에 쓴 것으로 보인다. 사면된 祖父 趙德璘을 위한 제사를 조언한 내용이다. 戊申亂 1周甲을 맞아 왕에 의해 조부의 죄를 씻은 것에 대한 축하와 함께 서울을 왕래하며 동분서주하며 고생한데 대한 위로의 마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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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趙聖際聖紹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趙運道·述道 형제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1년(정조 15)에 썼다. 학문에만 매진하며 은둔하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교유하면서 후진양성을 위한 활동에도 참여할 것을 권유한 내용이다. 부침하는 세상에 휩쓸려 살다보면 학문에 드러난 결실과 분명함을 얻지출처 : 유교넷 -
360628
與朴戚叔(申慶) 1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戚叔인 能皐 朴申慶(1713~1790)에게 보낸 편지이다. 부인의 외조부가 돌아가신 날 從兄嫂가 사망함에 따라 매장의 주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부당성을 지적한 내용이다. 아들이 사양하지 않는다면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손출처 : 유교넷 -
360629
與黃邦彦(應綸) 11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黃應綸에게 보낸 편지이다. 『大山集』의 편집작업과 관련하여 격려와 함께 의견을 피력한 내용이다. 편집과정에서 생긴 의문을 長者에게 물어 보완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라 규정하면서, 특히 取捨할 생각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삭제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함출처 : 유교넷 -
360630
與柳叔文(道源)叔遠(長源) 1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蘆厓 柳道源(1721~1791)과 東巖 柳長源(1724~1796) 형제에게 보낸 편지로, 1783년(정조 7)에 썼다. 『大山集』의 편찬에 대한 진척상황을 설명하며 교정에 참여해줄 것을 부탁한 내용이다. 李象靖의 遺文을 정리하다 교환한 편지를 읽어보고는 넓은 시각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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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文叔遠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道源·長源 형제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大山集』의 교정상황을 전하면서 자문을 구한 내용이다. 교정과정에서 선생이 말한 ‘篤實’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서로 논란을 거듭하는 바람에 제대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음을 전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問目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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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文叔遠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道源·長源 형제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8년(정조)에 썼다.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戊申亂 1周甲을 맞아 당시 의병을 일으켰던 伯父 柳升鉉이 표창된 것을 축하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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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叔遠 1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에게 보낸 편지로, 1783년(정조 7)에 썼다. 돌아가신 선생 이상정의 모습과 목소리가 점차 아득해져 가면서 의지할 곳이 없는 외로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끼리 寧海의 바닷가에서 한번 만나 회포를 풀 것을 제안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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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叔遠別紙 1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에게 보낸 편지의 別紙이다. 『大山集』의 교정과정에서 대두한 攝祀孫의 心喪과 魂帛의 방위 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내용이다. 攝祀孫이 心喪할 때에는 緇笠과 黑帶를 착용해야 하지만 신주를 별도로 모신 다음 출입할 때에는 素服을 입어야 하며, 魂帛과 별도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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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叔遠 1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에게 보낸 편지로, 1785년(정조 9)에 썼다. 완간된 『大山集』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내용이다. 문장의 段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文理가 군데군데 끊긴 곳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의미가 통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조만간 이 문제를 짚고 완벽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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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叔遠 1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에게 보낸 편지이다. 남의 마음을 헤아려 동정하는 ‘絜矩’의 의미를 분석하며 자문을 구한 내용이다. 이는 朱子가 “齊家 때부터 이미 자신의 작은 이득도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平天下를 구현하는 시작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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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 1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7년(정조 11)에 썼다. ‘絜矩’의 의미에 대한 자신의 질문에 소상하게 설명해준데 대해 經文의 正法에 해당하는 해설이라며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다시 ‘自慊’의 해석과 관련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타당성 여부를 물은 내용이다. 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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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 1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설명해준 ‘自慊說’ 가운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재차 의견을 제시하고 견해를 물은 내용이다. “毋自欺의 功效로 廣胖을 포함해 겸한다.”는 것과 “毋自欺의 工夫로 意誠을 점하여 넘는다.”는 것으로 구분하는 것에 대해 朱子의 논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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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 2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自慊이 廣胖과 意誠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보강한 내용이다. 朱子나 李滉이 말한 ‘意誠之驗’은 그것들이 나누어져 별도의 항목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래야 ‘之驗’은 아름다운 詩文을 徵驗한다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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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 2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朱子와 李滉이 말한 ‘意誠之驗’의 ‘之驗’의 의미에 대한 보완설명을 한 내용이다. 주자가 말한 思辨을 마음이 體胖을 넓히고 自慊을 形容한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之驗’을 해석한다면 英華發外는 粹面盎背의 題目이고 粹面盎背는 英華發外의 符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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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 25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86년(정조 10)에 쓴 것으로 보인다. 『朱子書類編』을 교정하면서 느낀 감상을 전한 내용이다. 역량이 부족한데다 늙어서 정신이 혼미한 자신이 교감을 감당하기에 벅차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朱子의 本旨를 새삼 되새길 수 있다는 점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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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叔遠 26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에게 보낸 편지로, 1792년(정조 16)에 썼다. 지난번 李宗洙의 편지에 답장을 쓰면서 ‘老景工夫 不須一向’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정력을 소비했으며, 節度를 수용해 理·欲의 구분을 명확하게 했다는 사실을 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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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 27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周易』에 관한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거의 30년 가까이 易學에 손을 놓고 있다가 막상 다시 생각해보니 망연하기만 하다는 심정을 표시하면서, 자신의 설명이 이치를 파악하는데 피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退溪集』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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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別紙 29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李滉이 奇大升과 전개한 四端七情 論辨에 대한 2개 조항의 問答을 4개 조항으로 나누는 자신의 논리를 보강한 내용이다. 기대승의 편지에 이황이 ‘泛論’이라 한 점으로 미루어 앞서 논의가 있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더구나 ‘道卽器’의 부분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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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7순에 가까운 늙은 나이에다 해마다 반복되는 흉년으로 인해 심신이 지쳐있는 상황임을 알리면서, 「啓蒙說」의 검토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는 데다 「四端七情說」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을 들은 만큼 다른 의견이 없음을 전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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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叔遠 30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1년(정조 15)에 쓴 것으로 보인다. 宋代 성리학자 張拭의 문집인 『南軒集』을 읽다 『朱子大全』의 내용과 비교해 의혹이 있는 부분을 질문한 내용이다. 別紙에서는 장식의 「仁說」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해석방법에 대해 5개 항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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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 32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南軒集』의 「仁說」에 대한 답장을 받고 의혹이 풀리지 않는 부분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 내용이다. 「仁說」의 요지는 ‘元本體段’에 있다는 점을 전제로, “仁의 體는 막힌 바가 없고, 仁의 用은 미치지 않는 바가 없다.”는 의미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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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柳叔遠 33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에게 보낸 편지로, 1794년(정조 18)에 썼다. 李象靖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한 書院건립을 청원하는 상소가 朝廷의 義理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중단된 것에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겨울이 되기 전에 다시 추진하도록 촉구한 내용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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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李象靖 서원건립 청원상소 운동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지 못한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한 내용이다. 강압적으로 사람들을 모아 상소운동을 전개하는 물리적 방법보다는 疏本을 필사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공론화하여 추진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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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柳叔遠 34 / 기록자료>고도서 / 김종덕柳長源의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1795년(정조 19)에 썼다. 李象靖의 저술인 『心經講錄刊補』의 교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高山書堂에서 회합을 가질 것을 제안한 내용이다. 자신이 편찬을 주도하면서 子姪들에게 자료를 수집하고 필사하도록 했지만, 선생의 本旨를 훼손하지 않출처 : 유교넷


